순수한 미적 쾌락. 장식에 충실한 그물 디테일에 대하여.

 

존재의 이유가 이보다 명백하고 확실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보온이나 안전을 위해서도 아니요, 편리를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오로지 장식을 위해 존재하는 디테일. 어부의 그물망을 닮았다 하여 피시네트라 불리는 그물 디테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물 디테일은 시스루 소재를 닮았다. 안을 비추지만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으며 보일 듯 말 듯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소재의 입체감과 성김의 정도에 따라 복합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는 그물 디테일이 조금 앞선다. 또 이는 크로셰 아이템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손으로 짠 듯한 레이스 술을 통칭하는 크로셰. 코바늘을 이용한 뜨개 방법을 일컫는데, 그물 디테일에 비해 옷의 형태를 단단히 갖추고 있어 장식적인 면에서만 놓고 봤을 때 역시 그물 디테일이 더 우위에 있다 하겠다. 다시 말해서 시스루 소재와 크로셰 기법의 장점만을 갖춘 것이 그물 디테일이다. 이번 시즌, 이 같은 디테일을 톱과 스커트 드레스, 백과 슈즈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아이템을 통해 만날 수 있다.

2021년 봄/여름 시즌, 드리스 반 노튼은 런웨이 대신 네덜란드 출신의 예술가 비비안 사센과 함께 룩북을 촬영했다. 해변으로 향하는 활기찬 발걸음을 주제로 실로 여름날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그 안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역시 그물 디테일이다. 버뮤다 팬츠와 셔츠 위에 레이어드한 그물 재킷, 테일러드 재킷 아래 매치한 붉은 그물 스커트, 파란 줄무늬 셔츠 위에 더한 하얀색 그물 톱 등이 그것인데, 이는 정돈된 것을 비트는 하나의 유머러스한 장식으로 눈길을 끈다. 그물 디테일을 변주해 다양한 아이템에 활용한 브랜드는 펜디다. 성김의 정도를 달리해 리드미컬하게 만든 가죽 코트부터 그러데이션 컬러를 이용해 그물의 늘어짐을 극대화한 토트백, 날렵하게 디자인한 앵클 부츠에 이르기까지. 적재적소에서 활약한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발렌시아가는 전신 보디 슈트 위에 은색 그물 드레스를 더해 드라마틱한 룩을 완성했고, 에르메스는 미니 드레스 위에 톤온톤의 그물 미디 드레스를 더해 우아함을 배가했다. 이에 반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저승을 감싸고 흐르는 강의 신, 플레게톤에서 영감을 받은 릭 오웬스의 룩에서 그물 디테일은 조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구조적 디자인과 해체적 요소 사이를 이으며 전위적인 느낌을 극대화하는 것. 드리스 반 노튼에게는 유머와 활기였던 것이 릭 오웬스에게 와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 시대에 경각심을 주는 룩의 요소로 쓰였다는 점이 신비하고 오묘하다. 또 그물이 교차되는 곳마다 크리스털 장식을 더해 보다 장식성을 끌어올린 버버리, 풀 스커트 위에 무게감 있는 그물 디테일의 슬리브를 더한 랑방, 불규칙한 그물 장식으로 보는 즐거움을 더한 질 샌더의 룩도 눈여겨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여름 휴양지에서 입을 그물 디테일 룩을 찾는다면 아크네 스튜디오, 데이비드 코마, 마르케스 알메이다의 것을 참고하자. 빼는 것이 미덕인 더운 여름날 유일하게 더할 수 있는 이것. 그물 디테일의 묘미에 기꺼이 유혹당해보길.

 

크리스털 장식의 메시 미니 드레스는 6백만원대, 프라다(Prada).

 

메시 소재의 버킷백은 1백50만원대, 프라다.

 

스퀘어 토의 메시 샌들은 1백20만원대,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비건 레더 소재의 메시 호보백은 40만원대, 스타우드(Sta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