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매기는 세상. 거대한 디지털 지구 속 기대와 논란이 공존하는 NFT가 패션과 함께할 수 있을까?

 

BALENCIAGA

한참을 들여다봐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사라는 건가? 입지도 신지도 못할 디지털 속의 허상(?)을 돈 주고 사라고?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디지털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NFT’다.

그런데 NFT가 뭘까? 그것부터 알아야 했다. NFT(Non- Fungible Token)란 말 그대로 ‘대체 불가능한 토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자산의 소유주를 증명하는 일종의 디지털 소유권 증명서다. 손쉽게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콘텐츠가 어떤 것이 원본이고, 그것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명확히 해준다는 점에서 새로운 디지털 자산으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NFT가 거래되고 있는 분야는 예술, 수집품, 패션, 스포츠, 게임, 메타버스가 주를 이룬다. 여기서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우주와 경험세계를 동시에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구현한 디지털 세계를 의미한다. 거창해 보이지만 컴퓨터와 스마트폰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에 일상을 올리고, 온라인 게임을 하고 쇼핑을 하는 등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저 조금 더 그 세계관이 커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커져가는 메타버스에서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NFT가 이 신세계를 성장시키는  증폭제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RARE SHOE

RARE SHOE

그렇다면 NFT를 주목하는 이유가 뭘까? 일론 머스크의 여자친구로 잘 알려진 그라임스가 자신의 작품 10개를 20분 만에 65억원에 판매해 화제를 모았고, 미국의 아티스트 비플이 5000일 동안 그린 5000개의 Jpeg파일로 만든 작품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올려 7백85억원에 판매했다. 디지털상에 존재하는 파일 하나가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리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투자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또 이것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들에게도 기회의 장이 되었다. 독창적인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아티스트들이 하나 둘 부각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좋아하고 수집해오던 신발에서 영감을 받아 NFT 스니커즈를 출시한 아티스트 그룹 레어슈는 나이키의 덩크와 조던에서 영감을 받아 ‘Donk’ 시리즈와 ‘Jurdan1’을 소개했다. 신고 모으기만 했던 스니커즈를 아트로 승화시킨 경우다. 지금도 이 같은 일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세상의 간편한 접근성은 누구나 작가가 되어 창의적인 작품을 공개하고 또 누구나 그것을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스포츠 업계에서도 NFT 바람이 분 건 마찬가지. 경기 중 포착한 결정적인 순간을 카드 형태로 만들어 그 순간을 소장하고 싶은 팬들에게 판매하는 NBA 탑 샷이 대표적이다. 이미 10만 명의 구매자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다.

GUCCI

NFT에 눈길을 돌리는 패션 신

Z세대의 주 놀이터인 메타버스와 긴밀하게 연결되며 각자 고유한 디지털 코드로 희소성을 입증하고, 그것이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지자 패션계에서도 NFT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3D 아바타를 통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매장을 만들었던 구찌는 3D월드 맵 ‘구찌 빌라’를 론칭해 아바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자사 앱을 통해 AR 피팅룸에서 3D 증강현실 스니커즈를 내놓더니 마침내 경매사 크리스티를 통해 브랜드 최초로 NFT를 공개했다. 최근 선보인 100주년 기념 아리아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가 그 주인공. 3개의 창으로 표현한 동영상은 영화감독 플로리아 시지스몬디가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런웨이 쇼와 함께 공개한 영화의 확장판이다. 이 작품은 2만 달러 가치의 이더리움 화폐가 초기 입찰가로 정해졌으며, 이번 NFT 판매 수익금은 유니세프 USA에 기부할 예정이다. 또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NFT 아트 플랫폼 슈퍼 레어(Super Rare)를 통해 아티스트 그룹 AES+F와 함께 작업한 나노 컬렉션 비디오 아트워크를 경매에 올렸다. 초현실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마주하는 순간을 젠틀몬스터의 나노 컬렉션과 함께 표현한 작품. 예술과 상업 그리고 패션의 경계를 허무는 첫 번째 시도가 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포부다.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5월 미식축구선수 트레버 로웬스와 함께 NFT 카드를 판매한 것. 3D 애니메이션 형태의 파일로 1천 달러짜리 한정판과 1백 달러짜리 일반 판을 1시간 동안 판매, 총 수익금은 19억5천만원에 달한다고.

BREITLING

BREITLING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특수성은 브랜드 제품의 진품 여부와 희소성을 대변하는 역할로 기대가 크다. 그중 나이키의 소식이 흥미롭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운동화 정보를 토큰화시키는 NFT와 관련한 특허를 등록한 것이다. 앞으로 크립토킥스(Cryptokicks)라고 불릴 이 라인은 블록체인 기술로 암호화한 보안 디지털 자산을 나이키의 실제 제품과 연결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크립토킥스’ 라인의 신발 한 켤레를 구입하면 해당 운동화에 첨부된 디지털 자산도 함께 소유하게 되는 식이다. 그동안 골머리를 앓았던 가품에 대한 문제와 거대하게 몸집을 불린 리셀 시장에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될 소식이다. 가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워치 분야도 마찬가지다.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 브라이틀링은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패스포트와 함께 제공한 첫 번째 시계로 ‘탑 타임 리미티드 에디션’을 2000개 한정으로 소개했다. 정품인증과 희소성에 대한 반응은 역시 뜨거웠고 이는 브랜드에서 점차 상용화 예정이라고.

하지만 이토록 영향력을 키우는 NFT에도 우려는 있다. 대체 불가한 희소성을 보장하고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앞세우더라도 실체 없이 디지털에만 존재한다는 점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Ctrl C, Ctrl V(복사하기, 붙여넣기)가 제일 쉬운 디지털 세상에서 과연 이 소유권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 또한 떨칠 수 없는 부분. 이 같은 NFT의 특수성이 작품이나 제품의 가치를 공고히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할지 희소성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지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할 시기인 듯하다. 지적 재산권 문제도 쟁점 중 하나다. 작품의 원작자와 NFT 발행자가 다를 경우 저작권 도용 문제와 NFT 중복 발행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현재까지 창작자는 자신의 동의 없이 작품의 NFT를 발행하는 경우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아직까지 NFT에 대한 과세 기준이 없다는 점도 쟁점 중 하나다. 거래되고 있는 대부분이 예술 작품이나 사치품에 해당하는 NFT에 훗날 생각지도 못한 세금이 청구될 수도 있다는 점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가상화폐 도지 코인의 모델이 된 도지 ‘밈’의 원작 사진이 온라인 경매에서 45억원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확신 없는 NFT 세계에 대해 또다시 실낱 같은 꿈을 꾸게 만든다. 조용히 NFT를 시작할 방법을 찾아봤다. 1 인터넷에 올릴 만한(밈이 되거나 작품이 될 만한) 사진을 찾거나 그림을 그려서 디지털 파일화한다. 2 파일화한 작품에 코드값을 부여한다. 3 그 코드값을 블록체인에 기록한다. 4 로열티를 설정해서 경매에 올린다. 5 작품이 팔린다. 6 가상화폐 수입이 생긴다. 7 작품이 팔릴 때마다 나에게 로열티가 지급된다. 방법도 알았으니 잠시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이런 상상을 하고 있는 에디터는 물론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이 거대한 메타버스 세계에 올라타 있다. 새로운 세계를 즐길지 그저 관망할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물론 그 책임도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