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으로 살아남는 법
지난 4월 7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중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40%에 달한다. 가족의 달 5월에 ‘나의 가족은 나’라고 말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
슬기로운 비혼 생활
나는 지금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나? 혼자라서 겪은 곤란이 뭐였더라?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았다. 가만히 지난날을 짚어본다. 지난 명절에 엄마에게 들은 독설? (“남편도 없고 애도 없어서 힘을 뺄 데가 없으니 그 에너지가 다 히스테리로 가는 거 아니야?”) 친구들의 시, 때 안 가리는 참견? (“이제 눈 좀 낮추고 짝 좀 찾아. 제발!”) 솔직히… 타격이 별로 없다. 하루, 이틀 정도는 부아가 날 때도 있지만… 그 저의가 내 영혼을 궤멸시키려는 심사는 아니라는 걸 아니까.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내게 관심과 걱정과 사랑을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분이 바지에 흘린 소주 한 방울처럼 금세 증발한다. 그럼 ‘외로움’이 비혼자의 애로일까? 외로운 기혼이 벚꽃철 인파만큼 지천에 넘쳐나므로 그건 빼자. 게다가 나는 이제 그 감정과 아주 친한 벗이 되어서 그럭저럭 잘 지낸다. 쓰다 보니 생각이 났는데, 최근에 비혼이라 불편하고 부당하다고 느낀 점이 하나 있긴 하다.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나이 들 수 있는 노년을 위해 돈 잘 벌 때 주거 안정을 이루고 싶은데,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거. ‘자녀가 있는 신혼 부부’에게 각종 우선권이 몰려 있는 주택, 대출 혜택들에 앞통수를 맞고 ‘아, 정말 별로네…’ 한 적은 있다.
물론 지난날에도 비혼 생활을 이렇게 ‘한 점 우울감 없이’, 태평하게, 만끽했던 것은 아니다. 서른일곱쯤엔 ‘더 늙기 전에 승부수를 띄워야 하나?’ 하는 조급함에 쫓겨 애먼 남사친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저런 게 결혼 생활이라니’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주변 친구들의 결혼 생활을 보며 굳게 다지는 비혼의 의지와 ‘그래도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도 사실이다. 기로에서 발을 헛디디지 않은 건 ‘불안’을 중요한 결정의 동력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잘나서, 나 혼자 깨우친 것이 아니라 비혼 상태로 잘 사는, 나보다 먼저 어떤 시간을(또는 시련을) 잘 건넌 언니들의 너그러운 나눔 덕이다. 건강하며 선구적인 생각을 가진 여성들의 말과 책, 인생을 가까이하고 그들의 멋진 마수가 뻗치는 영역 안에 나를 두는 것은 슬기로운 비혼 생활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주제에 다시 초점을 맞춰본다면, 나는 나 자신과 시간을 보내는 일에 매우 능숙해서 ‘비혼 상태’에 딱히 큰 애로가 없다. 다르게 말하면 자신과 잘 지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 ‘비혼으로 잘 살아남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기까진 물론 부단한 시행착오와 광란의 음주, 눈물, 몸부림, 삽질의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 사이의 균형을 세밀하게 살피기 시작하면서 타인과 세계, 그리고 나 사이에 선 그을 타이밍을 예전보다는 능란하게 짚어낸다. 저녁 아홉 시 이후 휴대폰을 방해금지 모드로 돌려놓기, 주말의 디지털 디톡스 등 자발적으로 만든 단절의 시간은 소모되거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나 자신과 보내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말, 판단 등에 딱히 가치를 두지 않게 된다. 얼마 전엔 BBC, CNN의 프리랜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나타샤 스크립처의 책 <Man Fast>를 읽다가 ‘나에게 필요한 지혜는 이미 내 안에 다 있다’는 문장을 보고 내면의 무릎을 탁, 쳤다. 그는 일부일처제하에서 이성애자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삶은 체제일 뿐이며, 이 가부장체제에서 아주 쉽게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해온 집단이 능력과 자율성과 과감함이 있는, 통제되거나 예속될 수 없는 오늘날의 여성이 힘의 역학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에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비혼을 택한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받고 있는 압력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는 말이었다. ‘모름지기 여자는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지’라는 그 압박 말이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비혼은 ‘혼자’가 아니다. ‘혼인을 하지 않은 상태’일 뿐이지, 독고다이 인생을 선택한 은둔의 칼잡이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지와 사랑, 위로를 안겨주는 가족, 친구들이야말로 비혼 서바이벌 세계의 은인이다. 그리고 ‘남들 다 하는 결혼을 안 하고 사는 만큼 보란 듯이 더 잘 살아야지!’라는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도 나의 정신 건강을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뭘 보란듯이 살아?
그냥 나 사는 대로 살 거야.
– 류진(칼럼니스트)
나다울 수 있는 삶
‘비혼주의’라는 말이 없던 때의 옛날 사람이다. 아니 뭐 있기도 했겠지만 나 때는 누구도 쓰지 않았다. 그러니 ‘비혼 선언’이라는 것이 일부나마 사회적 지지와 진중한 논의를 얻어낼 세대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독신주의’라는 선언은 잠시의 주장으로 무시되고 비웃음 사기 일쑤였다.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던 불평등과 혐오의 시대에서 살아남은 비혼주의자(처럼 보이는 사람)라고 하면 이 글이 조금 설득력 있을지 모르지만 또 막상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결혼하고 싶어!”라 외치는 친구에게 “일단 해보렴”이라 말하고 ‘후회할 테니’라는 꼬리를 숨기는 것은 내 오랜 버릇이다. “하지 마”라고 말려봤자 “넌 해보긴 했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어버릴 것만 같은 친구들도 있고 그럴 때는 아는 한도 내에서 ‘결혼을 생각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미 마음에 결혼이 차 있는 사람에게 이런 충고가 먹힐 리 없다.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하고 애까지 낳은 시점에서 내가 꽤 늦게 결혼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애초에 글러먹은 태도다. 친구들 모두 내게 ‘너는 결혼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라고 했다. 연애를 오래 하지 못하고, 남녀를 둘러싼 사회적 불평등에 매일 분노하고, 학교나 직장 남자 선배들과 싸워 ‘쌈닭’이라는 별명을 얻고,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을 잡았다가 주먹으로 얼굴을 맞고, 상사의 성추행 문제를 제기해 연판장을 돌리던 내가 결혼에 조금이나마 희망을 걸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 엄마의 지나친 결혼 강요-회유-협박(아침에 눈 뜨자마자 ‘너 때문에 못살아’로 시작되는 하루. 딸이 결혼 안 하고 독립만 할 경우 ‘죽어버리겠다’고 마무리하는 저녁)에 결국 지고 말았다.
결혼 생활이란 조금도 행복하지 않은 무엇이라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작은 행복을 위해 감당해야 할 게 너무 크다. 결혼이라는 것은 부모를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해방시키면서 그 짐을 그대로 떠안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남의 짐까지. 그래, 남의 짐 좀 짊어지는 게 뭐 대수인가, 더 어려운 일도 하는데. 근데 엄마가 암 진단을 받고 병원 알아보느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며느리에게 전화해 “어머니가 암이시라며? 근데 나도 귀가 요즘 아프다”라고 말하는 시어머니나 나와 사회생활로 얽힌 후배를 붙들고 “남의 집에 시집왔으면 애를 낳아야지!”라고 말하는 시아주버니 등의 ‘공감능력 제로 사람들’까지 감당하면서 그 생활을 유지할 필요가 있나 생각하면 인생이 갑갑해진다. 무슨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자꾸 여자에게 이타적 삶을 강요하고, 그래서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나도 모르게 주눅들고 죄책감을 갖게 하는 것이 ‘한국의 결혼’이다. 혼자라면 가질 필요 없는 마음들이 끝없이 자신을 괴롭힌다. 그래도 혼자는 외롭다고 말한다면 장담컨대, 같이 있는 것도 외롭다. 외롭지 않을 거라는 기대 때문에 더 외롭다.
여자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든 한국 사회에서 나에게만큼은 이기적이고 싶다면 비혼주의자를 권한다. 서로의 생활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각자의 길을 독립적으로 갈 수 있는 삶이란 결혼 내에서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부장 못 버리는 이 땅에서, ‘너 페미니스트야?’라는 걸 질문이랍시고 하는 이 나라에서, 좋은 남자가 나오긴 힘들다는 그런 얘긴 아예 하지도 않겠다. 정말이지 나는, 한국에 더 많은 비혼 선언이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빛이 나는 솔로’가 돼라는 게 아니다. ‘빗치(Bitch)’가 되어야만 겨우 나다울 수 있는 이 사회에서 ‘빗치! 나는 솔로’를 말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비혼 친구들이 여럿이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어차피 ‘결혼이 강요되던’ 그때에도 내 친한 친구들은 이혼을 두세 번씩 했고 나중에 친하게 된 젊은 친구들 중에서도 비혼을 결심한 뒤 이에 따르는 걱정을 덜기 위해 ‘생활 동반자’를 찾기도 했다. 우리의 연대가 늘어날수록 사는 게 조금 더 즐거워진다 하면 내가 너무 사악한가. 분명한 건, 어제의 나보다는 오늘의 내가 덜 외롭다는 것이다.
– 이현수(미디어2.0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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