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정통으로 맞은 2021 봄/여름 컬렉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극복하고 있는 현재와 희망찬 미래가 동시에 보인다.

 

원래대로라면 뉴욕, 런던, 밀란, 파리 등 세계 4대 패션 도시 중 한 곳의 호텔에서 발송한 초대장을 뜯고 감상하며 정리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날짜와 시간, 쇼장의 위치, 쇼를 보는 자리 등을 확인하며 2021 봄/여름 패션을 마주할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었을 시기. 그러나 코로나19라는 희대의 바이러스로 인해 하늘길이 막혔고, 출장은 꿈도 못 꿀 일이 되었으며 더욱이 수백, 수천 명이 모이는 오프라인 행사가 금기시되어 대부분의 쇼가 비대면 디지털 쇼로 대체되는 상황에 처했다. 사무실로 도착한 하드카피 초대장에는 좌석 넘버 대신 온라인 패션쇼를 감상할 수 있는 URL과 입장 코드 등이 적혀 있었고, 그마저도 생략하고 이메일 초대장을 보내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다가올 패션을 생생히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이 ―쇼뿐만 아니라 각종 전시와 퍼포먼스, 또 한데 모인 사람들과 소통하고 에너지를 나누는 일을 모두 포함해― 퍽 서운하긴 했지만, 분명 편리해진 점도 있다. 시차를 고려하면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열리는 패션쇼. 잠옷을 그대로 입고 침실에서 에르메스 라이브 패션쇼를 감상하는 묘미란, 오프라인 쇼의 감동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급한 대로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기엔 나쁘지 않았다 할 만하다.

이렇듯 2021년 봄/여름 트렌드 역시 코로나19를 정통으로 맞아 쉽고 편리한 흐름이 눈에 띈다. 남자친구의 것을 대충 빌려 입은 것 같은 슈퍼 오버사이즈 셔츠나(마이클 코어스 컬렉션, 발렌티노, 발렌시아가 등) 원마일웨어 룩으로 제격인 바람막이, 점프슈트와 같은 스포티한 의상들(프라다, 마린 세르, 버버리 등), 활동이 편리한 와이드 실루엣 데님(토템, 발맹, 빅토리아 베컴 등), 룸 슬리퍼로도 탐나는 하이브리드 슈즈(빈스, 구찌, 펜디 등) 등이 대표적이다. 코로나블루를 타파하고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기와 에너지로 꽉꽉 채워 분위기를 끌어올린 컬렉션도 많이 보인다. 생 로랑과 지방시, 몰리 고다르 등은 원색에 러플 디테일을 더한 드레스로 우아하면서도 소녀미를 잃지 않는 룩을 선보였고, 로다테와 에르뎀 등은 플라워 모티브 드레스로 코로나19 너머의 판타지를 꿈꾸게 했으며, 가브리엘라 허스트, 베르사체, 아크네 등은 희망의 선봉장을 자처하듯 무지개 줄무늬 패턴으로 활력을 더했다. 힘든 시기에도 새로움을 찾아 헤매는 패션의 혁명가적 기질은 계속된다. 한껏 부풀린 빅 퍼프 소매를 선보인 로에베, 뾰족한 봉우리처럼 솟은 어깨 라인의 발맹, 오리고 붙인 듯한 의상을 입은 메종 마르지엘라 등은 현실주의가 만연한 패션위크에서 여전히 볼거리와 진한 영감을 선사하는 바. 거기에 더해 너무나 익숙해서 더 좋은, 매일 입을 수 있는 다양한 디테일의 트렌치코트, 단정한 실루엣에 더한 고급스러운 가죽 소재의 아우터들, 오버사이즈 재킷, 니트 베스트, 낙낙한 치노 팬츠 등 쿨한 톰보이 룩을 완성하는 아이템들도 눈여겨보자. 현명히 잘 극복해야 할 현재. 패션이 희망의 매개가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누려볼 것.

 

무지개 무늬 니트 톱은 가격미정, 더 엘더 스테이트먼트 바이 매치스패션(The Elder Statesmant by Matchesfashion).

 

브랜드 로고로 장식한 트렌치코트는 가격미정, 구찌(Guc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