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아의 낮과 밤
낮과 밤 사이에서 현명하게 빛나는 우리가 몰랐던 이청아.
아침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거의 10시간을 촬영했어요. 많이 힘들었죠?
하루 종일 함께하고 끝날 때가 되니 한 가족이 된 것 같네요.
준비한 의상을 조금 낯설어하는 것 같아서 걱정했어요.
노출이 있는 옷이어서 조금 긴장했어요.
의외였어요. 맡은 역할에서는 화려한 옷이나 몸매가 드러나는 옷도 잘 소화해내는 것 같았거든요.
극중 캐릭터가 입는 건 상관없어요. 그런데 이청아는 아직 어색한 것 같아요.(웃음)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청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게 배우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는데, 끝까지 해냈네요.
화보 촬영 작업은 대본이 없는 연기를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캐릭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주는 게 더 어렵죠. 확실히 첫 컷은 어색하게 시작했는데, 촬영한 걸 보니 뿌듯하네요. 마지막 컷은 마치 그림 속에 들어간 느낌이었어요.
성공했네요. 드라마 <낮과 밤> 속 냉철한 범죄 심리연구소 박사 제이미 레이튼 역할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죠?
하하 그런가요? 드라마 촬영 내내 꾸밈없는 슈트에 백팩만 메고 다녔으니까요.
드라마가 방영 중이죠. 첫 등장부터 조금 놀랐어요. 여성 배우가 슈트에 백팩만 계속 메고 나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누구의 아이디어인가요?
백팩은 작가님의 설정이었어요. 미국에서 온 범죄심리연구소 박사의 성격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아이템이죠. 극중 제이미의 성격과 잘 맞는 중요 아이템이에요.
백팩에는 뭐가 들었나 항상 궁금했어요.
그 가방에는 제이미의 모든 것이 들어 있어요.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만능 가방이거든요. 강박증과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제이미의 성격에 맞게 물통부터 서류, 펜까지 똑같은 규격의 파우치에 담겨 있어요. 아직 드라마에 나온 적은 없는데 무게가 3킬로그램일 정도로 무거워요.(웃음)
제이미의 패션을 보고 디테일이 남다르다고 느꼈어요.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 패션과 메이크업 그리고 연기의 조화는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20대 때는 잘 몰랐는데, 30대가 지나면서 스타일이 캐릭터를 잡아가는 데 너무 중요한 요소라는 걸 깨달았어요. 시청자는 겉모습을 보고 캐릭터를 상상하니까요. 극중 강박증과 결벽증이 있는 제이미는 편안하고 실용적인 게 최고인 사람이죠. 옷에 액세서리나 디테일 등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제일 미국인스러운 제이미를 표현하고 싶어 일부러 오래된 셔츠를 입고 평소 제가 좋아하던 투박한 구두도 매치했어요.
화제가 된 <VIP>의 이현아와 지금 <낮과 밤>의 제이미는 묘하게 닮았어요.
당차고 똑 부러지는 성격은 비슷하지만 조금 결이 달라요. 겉으로는 제이미가 더 따뜻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 정이 많은 건 현아 쪽이죠. 현아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 강한 척을 한 아이라면 제이미는 외부 자극에 전혀 상처받지 않는 진짜 단단한 사람이에요. 웃는 법도 교육으로 배운 것 같은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 특수한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공부가 더 필요한가요?
<낮과 밤> 촬영 전에 프로파일러들의 영상이나 인터뷰를 많이 찾아봤어요. 그들의 심문 방법이나 리액션 등을 보고 연구를 많이 했어요.
꼼꼼한 성격인가요?
집요한 면이 있죠. 그게 제이미와 제일 닮은 것 같아요.
반면 인터넷에 이청아를 치면 ‘VIP’ ‘걸크러시’ 같은 연관어가 떠요.
아마도 <VIP> 속 현아 역할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실제로 거칠고 센 느낌은 아닌데.(웃음)
본인의 목소리를 자주 내는 편인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미디어에 비치는 면과는 다른 면도 가지고 있죠. 저는 스스로 항상 ‘내가 맞나?’ 의심하는 사람이에요. 무척 신중한 성격이거든요. 하지만 제가 돕고 싶고 도움이 될 일에는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편이에요.
팬들은 그런 소신 있는 면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
신중하고 따뜻한 면을 그렇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근래 이청아의 연기를 보면 캐릭터에서 외로움과 고독함이 느껴져요. 분명 당찬 역할인데 말이죠. ‘이게 지금의 이청아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신기하네요. 어릴 때부터 감독님들께 그런 얘기를 종종 들었어요. 밝은 얼굴에 뭔지 모를 처연함이 비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죠. 이전에는 연기할 때 그런 이청아 본연의 재료를 쓰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땐 제 스스로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요?
이제는 연기에 제가 점점 더 많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저라는 사람이 역할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더라고요.
그런 차분한 무드가 <뮤지엄 에이로그>를 진행할 때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이 항상 “좀 더 밝게 해주세요”라고 하나 봐요.(웃음)
<뮤지엄 에이로그>를 통해 목소리로 전시를 소개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원래 그림 보는 걸 좋아하는데, 전시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말에 혹했죠. 전시를 보고 나의 감정을 담아 소개하는 행복한 작업이에요. 공부도 많이 되고요.
그림을 보고 있는 것처럼 설명해주더군요. 어떤 그림인지 궁금해질 만큼.
그림을 편하게 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림은 관련 정보를 곁들여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냥 쉽게 봐도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추천해주고 싶은 전시가 있나요?
성수 그라운드시소에서 하고 있는 무민 전시요. 녹음하면서 울 뻔했어요.
유명한 동화 아닌가요?
무민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예요. 무민이 혼자 겨울잠에서 깬 후 첫눈을 보고 이런 말을 해요. “아 나는 첫눈을 봤어. 나는 한 해를 모두 겪어낸 첫 번째 무민이야.”
지금 우리와 닮았네요.
코로나19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도 이걸 다 이겨낸 강한 사람들이 되어 있을 거예요. 그 문장을 읽으면서 그런 위로가 되더라고요.
코로나19 외에 지금 걱정하는 게 있나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하고 있어요.
잘 사는 게 뭘까요?
평온하고 행복한 것이요.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이런 외로운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평온하고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죠.
트위터를 보니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행복하게 만드는 것, 해야만 하는 것들을 오랜 시간 기록하고 있더군요.
낙서장 같은 곳이에요. 저는 배우가 되지 않았으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 상황이나 기분을 표현해야 하기에 히스토리를 남기는 거예요. 연초나 연말 즈음에 결산도 해요. 이룬 것도 있고 못 이룬 것도 있어요.
올해는 무엇을 이뤘나요?
이사를 했어요! 미니멀 라이프를 살아보고 싶어서 싹 버리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 버렸나요?
아직이요. 원래 버리지 못하고 다 끌어안고 사는 스타일이고, 마음에 드는 건 오래 가지고 가는 성격이라 무언가를 고르는 것도 버리는 것도 힘드네요. 아직 소파도 못 골랐어요. 소파 고르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요? 맘에 안 드는 걸 사자니 차라리 방석에 앉는 게 낫겠다 싶어요.
이런 성격이군요! 이청아의 신중함이 오롯이 느껴지네요.(웃음) 그런 고민이 많아지면 스트레스도 많이 쌓이지 않나요? 스트레스 풀 때는 뭐 해요?
그림 보고, 운동하고, 사람들 만나서 술도 마시죠!
쉬는 방법이 확실하네요. 스스로를 잘 아는 것 같아요.
다행히 쉴 때 잘 쉬는 편이에요.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 있고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쌓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후자예요. 저를 충전한 후에 사람들을 만나죠. 그래서 그림 보는 걸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혼자서도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거든요. 요즘 같을 때는 혼자 있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찾았으면 좋겠어요. 각자 위로받는 취미는 꼭 하나씩 찾길 바라요.
현명한 언니의 조언 같아요. 우리 2021년에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드라마로 찾아뵐 것 같아요.
바로 또 시작이겠네요.
꾸준히 작업하는 스타일이에요. 지금은 배울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고 작품으로 신뢰를 줘야 하는 때인 것 같아요. 건강하게 소처럼 일해야죠.(웃음)
- 포토그래퍼
- Kim Sun Hye
- 에디터
- 이하얀
- 헤어
- 윤성호
- 메이크업
- 서옥(위위아뜰리에)
- 어시스턴트 에디터
- 이다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