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내돈내산
여러 가지가 박탈된 2020년, <얼루어> 에디터에게 부여된 자유는 오직 자신의 월급뿐! 앞뒤 잴 것 없이 사버린 <얼루어> 에디터들의 보복소비템.
| 샤넬의 숄더백 |
주식 시장이 들썩이던 어느 날, 한 메이크업 실장이 ‘주식보다 샤테크를 하라’고 했다. 그 말이 귀에 콕 박혔다. 어차피 언젠가 구매할 거 좀 더 빨리 사는 것도 좋겠다. 감가상각 비용도 적을 거라고! 홀리듯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하나 남았다는 제품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두어 번 어깨에 걸쳤나?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격 인상 소식이 들려왔다. ‘리세일’을 위해 산 것도 아니고, 실제로 이득을 본 것도 아닌데 기분이 그냥 좋았다. 시퍼런 불이 켜진 주식창을 보다가 가방을 한번 바라보며 나를 위로한다. – 김민지(뷰티 에디터)
| 삼성 갤럭시 Z 플립 톰브라운 에디션 |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요즘, 나의 갤럭시 Z 톰브라운 에디션은 부럽게도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국내에서는 온라인 추첨이나 10 꼬르소 꼬모 앞에 줄을 서서도 구하기 힘든 이 제품을 어느 새벽, 무심코 들어간 네타포르테에서 클릭 한 번에 구입한 것. 국내에서 웃돈을 얹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남편의 말을 뒤로한 채 몇 세대 동안 고집하던 아이폰에서 2635달러의 갤럭시 핸드폰으로 갈아탔다. 스마트폰에 이렇게 큰돈을 쓸 일이었나? 그 돈으로 테슬라 주식을 샀어야 했나. – 서혜원(뷰티 & 콘텐츠 디렉터)
| 셀린느의 미드힐 슈즈 |
모셔둘 것이 뻔한 예쁘고 예민한 슈즈를 올해 마지막 여행 중 구입했다. 하필 발에 딱 맞는 사이즈 한 켤레뿐이라니 안 사고 배길 수가 없었다. 여행의 부재로 본의 아니게 시간이 많아져 32년 만에 면허를 땄고 덜컥 차를 샀다. 코로나19의 본격화 직전인 올해 1월, 미국 여행 중에 사서 모셔두었던 ‘세상 예쁜데 어렵고 예민한 슈즈’를 드디어 출근길에도 꺼내 신을 수 있게 됐다. – 황선미(디지털 에디터)
| 애플의 맥북에어 |
엄마가 되고 회사에 돌아오니 이전처럼 생활했다가는 실패한 워킹맘이 될 것 같았다. 마음껏 야근을 할 수 없기에, 스튜디오에서 사진가가 촬영을 준비하는 시간에도 멍 때리거나 수다 떠는 일 등을 용납할 수 없게 됐다. 틈새 시간에도 일을 하기 위해 휴대성 좋은 노트북이 필요했다. 그래서 샀다. 워드와 인터넷 정도만 사용하는데 왜 맥북이냐고? 다들 알지 않나. 보기 좋아야 일도 잘된다는 거. 힘들수록 더더욱. – 이정혜 (뷰티 에디터)
| 멜리사 오바다시의 수영복 & 셀린느의 가방 |
스트레스는 동물의 이상행동을 부른다더니, 올해 비합리적인 선택을 두 번했다. 휴가를 못 가는 게 불 보듯 뻔하고, 사람들이 많은 수영장에 몸을 담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매치스패션에서 수영복을 샀다. 물건을 모시지 못하는 내 성격상 분명히 금세 더러워질 걸 알면서도 새하얀 도화지 같은 가방도 샀다. 도화지는 점점 얼룩지고 있고, 수영복은 여전히 새것이다. 상황이 좋아지면 해변에서 이 수영복에 이 가방을 들 것이다. 촬영을 위해서 태그만 떼었다. – 허윤선(피처 디렉터)
| 드비어스의 다이아몬드 세팅 밴드 |
솔리테어 다이아몬드 링을 사고 싶었다. 껴보니 더 예쁘기도 하고, 다이아몬드니까 두고두고 잘 착용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막상 사려니 남편도 없는데 웨딩 반지 혼자 마련하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뭐라고… 반지 하나에 오만 가지 생각이 넘쳤다. 급하게 데일리 링으로 노선을 바꿨다. 성질 나서 두 개나 샀다. 예쁘니까 후회는 없다. – 이하얀(패션 에디터)
| 메종 마르지엘라의 울코트 |
여름의 쇼핑이란 철저히 욕망에 충실한 편이다. 옷장만 보면 밤무대 가수처럼 난리다. 반면 겨울의 쇼핑은 안전을 지향한다. 코트는 무조건 검은색. ‘디테일’이라고 불리는 주접스러움이 없을수록 좋다. 새벽 네 시쯤 사무실에 앉아 파페치 장바구니에 ‘담겨만’ 있던 코트를 결제했다. 이미 많은 검정 코트가 있지만 마르지엘라의 것은 또 처음이니 상관없다. 게다가 이건 여성복. 검정 코트만 입다가 인생을 끝내도 좋다. – 최지웅(피처 에디터)
| 빈티지 가방 |
커다랗고 넉넉한 가방을 선호하던 내가 작은 가방을 하나 둘 사게 된 계기는 이 가방이다. 빈티지 쇼핑을 할 때는 유독 작고 귀여운 것들에 눈길이 가는데 부드러운 정사각 모양과 섬세하게 수놓은 꽃자수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손바닥 크기로 자꾸 물건이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탓에 열 번도 채 들지 않았지만 세상의 모든 소비에는 이유가 있는 법. 작은 가방의 매력을 알려준 이 가방의 진정한 쓸모를 찾을 날이 오길. – 이다솔(패션 에디터)
| 폴리포켓의 스타 라이트 업 캐슬 |
어릴 적 출장을 다녀오던 아빠의 손에는 항상 폴리포켓이 들려 있었다. 시간이 지나 골동품 취급하다 처분해버린 지 20여 년, 무엇이 그리웠는지 불현듯 생각나 빈티지 토이숍을 들락날락했다. 더 이상 판매하지 않기에 거금을 주고 어렵게 손에 넣었는데, 나는 이 장난감이 올해 구매한 그 무엇보다 의미 있는 소비라고 자부한다. 어른이 된 나에게는 시간 여행을 부르는 타임머신과도 같기에. – 황혜진(뷰티 에디터)
| 호주 맥라렌 베일 와이너리의 투핸즈 섹시 비스트 카베르네 소비뇽 |
이 와인을 처음 마신 날 그는 입술에 묻은 아주 조금의 흔적도 남김없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진한 자두 향의 묵직한 바디감으로 시작해 바닐라, 오크, 우디 향을 지나 마지막에는 허브와 흙내음과 같은 마른 풀향까지 느낄 수 있는 복잡미묘관능의 맛. 세계 곳곳의 많은 카베르네 소비뇽을 맛보았지만, 호주산은 처음. 그 후 우리는 시간만 나면 호주로 방구석 여행을 떠난다. – 김지은(패션 에디터)
| 우머나이저의 리버티 바이 릴리 알렌 |
사랑이 변하고 사람이 떠나도 기구는 남는다. 언젠가의 연애가 나에게 남긴 것은 첫 번째 우머나이저였다. 다만 폭풍 같은 이별은 충전 케이블까지 챙길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 짧은 선을 사려고 했던 것뿐인데 정신차려보니 두 번째 한정판 우머나이저를 갖게 되었다. 지나간 사람도 새로운 사람도 만나기 애매한 코로나 시대, 반려기구야말로 세이프 섹스의 정령이 아닐까? 무엇보다 한결같으니 과연 사람보다 낫다. – 정지원(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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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허윤선
- 포토그래퍼
- KIM MYUNG 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