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우리는 2020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다섯 명의 사진가가 각자의 도시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한 2020년의 순간을 여기에 붙박아놓는다. 지금은 도무지 알 수 없기에, 나중에 꼭 다시 펼쳐보기 위해서.

 

LA, 미국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여기에 왔을 때 딱 코로나가 터진 시점이었다. 우리의 반려견 밤스키는 천사니까, 천사들의 도시에 살고 싶었다. 처음 록다운이 왔을 때 바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중의 아비규환이었는데, 폭동과 총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호기심이 생겼지만, 아내의 만류로 한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니 그날의 기록은 없다. 모처럼 카메라를 들고 LA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인 세계 최대 규모의 독립 레코드숍 ‘아메바 뮤직’으로 향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자리를 옮겨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도시의 상징이기도 했던 공간이 사라져버린 셈이다. 그 사실이 두고두고 아프다. 여행자로 이곳에 방문할 때 마주쳤던 사람들의 얼굴과 미소, 함께 나눠 듣던 음악이 나를 이 도시로 이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휑한 거리 위로 홈리스들만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내 담배를 갈취하려 든다. 세상에, 이런 아비규환이 또 있나 싶다. – 곽기곤(사진가)

 

베를린, 독일

사진이든 삶이든 더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한국을 떠나 2017년에 이곳, 베를린에 왔다. 사진은 1차 팬데믹이 닥친 4월의 기록이다. 나는 어떤 아이러니와 직면하고야 말았는데 그 사실이 흥미롭기도 하고, 조금은 우습기도 하며 어쩌면 서글프기도 한 것 같다. 평소처럼 장을 보러 동네 슈퍼마켓에 갔는데 파스타와 휴지, 밀가루 같은 생필품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크나큰 재난이 닥쳐올 것 같은 풍경이었다. 베를린의 겨울은 어둡고 음습하다. 4월부터는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데 재난 영화에 등장할 법한 텅 빈 슈퍼마켓을 뒤로하고 향한 공원에는 햇살을 즐기러 나온 시민이 가득했다. 누구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고, 사회적 거리 두기 또한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이곳에서 아주 귀가 아프도록 들은 이야기가 “코로나는 그냥 독감 같은 거야. 우린 두렵지 않아”라는 말이다. 약국에 갔다. 주변 약국을 다 돌았는데 마스크를 구할 수 없었다. 인간의 민낯이 다 드러난 코로나 시대의 이중적 풍경. 지금은 다들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나름의 일상을 사는 것 같지만. – 이동호(사진가)

 

런던, 영국

런던에 산 지 20년이 넘어간다. 낯설다는 느낌이 사라진 건 오래고, 여기가 내 집이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록다운의 경험은 이곳에 온 뒤 처음으로 좀 다른 마음을 먹게 한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에 관해서, 특히 신체 접촉에 대해서 많은 생각과 현실적인 한계를 경험했다. 정부 방침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촬영 진행이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그때부터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서 진행할 수 있는 작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진 속 인물은 제이콥(Jacob)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다. 바로 옆집에 사는 꼬마인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준수하며 촬영했다. 팬데믹이 가져온 좋은 점도 있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족 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자주 서로를 바라보게 된 것. 사진을 통해 그 소중함을 전하고 싶다. – 전승환(사진가)

 

산토도밍고, 도미니카공화국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도미니카 공화국은 저기 쿠바 아래, 아이티와 닿아 있는 곳이다. 열여덟 살 무렵 아버지 사업 때문에 이민을 왔고, 올해로 7년째 살고 있다. 바이러스는 이 아름다운 도시마저 피해가지 않았다. 많은 감염자가 발생했는데 팬데믹 이후 평일은 밤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주말은 저녁 7시부터 오전 5시까지 이동이 금지된 상황이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불편함이 가장 피부에 와 닿는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약속이 줄었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최소 2주에 한 번 미용실에 다녔는데 그 텀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 쇼핑할 구실과 여유도 사라졌다. 낙원처럼 아름다운 산토도밍고의 사진을 보낸다. 답답하고 혼란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감하겠지만 아름다운 풍경이 조금의 위로가 되면 좋겠다. 나 또한 자유롭고 안전하게 서울에 갈 날을 기다린다. – 김태환(사진가)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유학 온 지 1년 반 정도 됐다. 팬데믹 초반에는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고, 여름 방학이 지난 후 나름의 수칙을 준수하며 조심스럽게 학업을 이어오고 있다. 11월 중순인 지금 암스테르담의 카페와 식당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다. 삭막한 그 풍경이 차가운 계절과 맞물리며 쓸쓸한 기운을 몰고 오지만,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며칠 전부터 거리에 등장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고요하기만 하던 도시에 약간의 활기를 더한다. 친구의 졸업 전시에 다녀오던 날의 노을 사진이다. 전시는 센트럴 역에서 페리를 타고 30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 한적한 곳에서 열렸는데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제한된 인원만 입장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낯선 나라에서 그보다 더 낯선 상황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양날의 검을 쥐고 있는 것 같다. 비가 산발적으로 자주 내리지만, 살면서 본 적 없는 극적인 하늘이 보란 듯이 열리곤 하는 암스테르담에서. – 조희재(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