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이 된 텃밭 일기, 박세라

가을에 심어 추운 겨울을 나고 이듬해 여름에 수확하는 양파. 박세라는 줄곧 양파처럼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플라워 프린트 드레스와 트레이닝 쇼츠, 리본 장식 양말은 모두 미우미우 (Miu Miu). 하얀색 펌프스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작년 가을쯤이었죠? 별안간 귀농을 선언하며 본격적으로 농사를 한다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나요.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몇 년 전부터 모델 일이 줄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었어요. 굳이 서울에 살며 일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걸 개척해보자 생각했죠. 주위를 환기시키는 데 터전을 바꾸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잖아요. 강원도, 제주도 등지에서 얼마간씩 지냈는데 좋기는 하지만 내가 머무를 곳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서울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확고했기에 부모님이 계신 무안으로 갔죠. 부모님이 양파 농사를 지으셔서 예전부터 막연히 양파즙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했었거든요. 이번에는 “이거다!” 싶은 게 양파와 관련된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았어요.

그러다 ‘슈퍼모델 귀농일기 케세라세라’라는 유튜브를 통해 아예 낫을 들고 판을 깔았잖아요.
제가 모델 오지영 님을 참 좋아해요. 한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또 아내이자 엄마로서 그분의 SNS를 보면 건강한 라이프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거든요. 어느 날 오지영 님의 책 <소소하게 찬란하게> 출판기념회에 초대를 받아 갔다가 스피커 전미경 대표님을 만났어요. 그날 저의 근황과 농사 얘기를 들려드렸는데 다음 날 전화가 왔더라고요. 유튜브를 해보면 어떻겠냐고요.

유튜브는 할 만하던가요?
유튜브를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튜브 덕분에 양파즙 제작이 활기를 띠게 되었어요. 구독자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박세라의 새로운 도전을 지지하는 누군가는 영상을 볼 테니 그분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되죠. 또 ‘부모님의 농사를 값어치 있고 빛나게 하자’라고 마음 먹었으니 더 허투루 할 수 없었어요. 유튜브 콘텐츠를 위해서는 양파즙 사업이 진척되어야 했기에 더 열심히 매달렸습니다.

유튜버라는 타이틀은 어때요?
아직 너무 낯설어요. 그냥 저에게 유튜브는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찾아와 영상 하나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거예요. 더 많은 구독자분들이 사랑해주시면 좀 더 익숙해지려나요?(웃음)

유튜브를 통해 ‘농알못(농사 알지 못하는 사람)’을 고백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어요?
이번에 서울 와서 필라테스를 갔는데 골반이 벌어지지 않더라고요. 유연성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깜짝 놀랐어요. 단기간에 몸이 뻣뻣해진 걸 본 선생님도 당황하셨을 정도예요. 그게 다 시골에서 쭈그리고 앉아 일해서 그런 거래요.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과 팬츠, 가죽 소재의 드레스 글러브는 모두 지방시(Givenchy).

매우 열심히 하는 ‘농알못’이라고 들리는데요?
하하, 알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죠? 성분이나 수치 등의 상관관계는 배우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냥 저답게, 잘 모르는 부분도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성장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래도 처음이랑은 많이 달라졌죠?
물론이죠. 무엇보다 애착이 강해졌어요. 예전에는 무안에 내려가 7일 정도 있으면 농가에는 3일 정도만 나갔어요. 요즘은 비 오는 날도 거르지 않고 매일 가요. 웃기게 들리겠지만, 서울에서 화분을 키울 때 식물들과 대화하듯 이야기했었거든요? 요즘은 농가에 있는 농작물들과 얘기해요. 잘 자라라고, 내가 잘 봐주겠다고. 마음을 전하는 거죠.

그렇다면 농부가 그저 부캐는 아닐 거예요. 농부로서 종국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요?
서울에 세라네 텃밭 아틀리에를 만들고 싶어요.

근사해요! ‘세라네 텃밭 아틀리에’에서는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고 머릿속으로 그림만 그리고 있어요. 아마 무안에 있는 세라네 텃밭에서 수확하는 제철 채소를 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질 거예요. 내년에 선보일 다음 계획이 있어 그것들도 함께 만날 수 있겠죠. 아직은 비밀이에요.

아틀리에가 생긴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도시와 자연의 화합이겠어요.
맞아요. 2~3평 남짓 되는 작은 공간으로 작지만 정이 느껴지는 곳이 되길 바라요. 꿈이 너무 큰가 싶지만, 아주 나중에는 무안에 있는 농가도 서울 사람들이 내려와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어요. 제가 자연 가까이에 살며 마음의 병이 많이 치유됐거든요. 저와 비슷한 분들이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기쁨이 될 것 같아요.

모델 활동도 여전히 하고 있으니 서울과 무안을 왔다 갔다 하는 셈인데, 한 달에 서울과 무안에서 머무는 비율은 어떻게 돼요?
거의 반반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10월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올라와 3~4일 동안 머물다 가곤 했어요.

직접 운전해서 다녀요?
물론이죠. 평균 4시간 정도 걸리는데, 저는 운전하는 그 시간이 참 좋아요. 제가 생각이 많거든요.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어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데 운전을 하는 동안 그게 차근차근 다 정리가 돼요. 그 시간이 단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어요.

플라워 프린트 드레스와 격자무늬 셔츠, 모직 코트, 크리스털 귀고리는 모두 구찌(Gucci). 미드 힐 펌프스는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멀리 여행을 갔다 돌아오면 동네 초입만 들어서도 편하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현재로선 서울과 무안 중 어디가 그래요?
똑같아요. 우선 서울에서 일과 사람에 치이다가 무안에 오면 마음이 편해요. 일이 없다는 건 아니에요. 시골은 게으르면 살 수 없는 곳이에요. 늦잠은 잘 수 있지만 집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자발적으로 움직여 하루를 든든하게 보내야 해요. 그런데 쭉 있다 보면 살짝 지루한 순간이 와요. 그때는 서울에 갈 타이밍이죠. 서울에 가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가운데 에너지를 얻어요. 다시 말해서 무안에서는 평화로운 에너지를, 서울에서는 치열하고 도전적인 에너지를 흡수하죠.

인스타그램을 보면 자신은 물론 함께하는 이들의 평온과 사랑을 바라는 글이 종종 보여요. 에디터도 그 짧은 글을 통해 위안받기도 하고요. 본인만의 명상법인가요?
맞아요! 제 마음은 제가 가장 잘 알잖아요. 아무도 제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거든요. 제가 저에게 하는 말이지만 누군가 나와 비슷한 감정선을 가졌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쓰기 시작했어요.

이번에 무안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지금은 온통 머릿속에 세라네 텃밭 생각뿐이에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잘 이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접근성이 더 좋아지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오늘도 도시에서 또는 자연에서 열심히 하루를 보냈을 <얼루어 코리아> 오디언스에게 질문을 해주세요.
현재 시속 몇 킬로로 달리고 있나요? 자기와 맞는 속도로 가고 있나요?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에디터
    김지은
    헤어
    김귀애
    메이크업
    이숙경
    어시스턴트 에디터
    이다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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