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ENA IN CHARGE, 셀레나 고메즈
팝스타에서 연기자, 제작자를 넘어 이제 뷰티산업까지 섭렵하려 나선 셀레나 고메즈의 용감한 도전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넘지 못할 선은 어디에도 없다.
LOUD AND CLEAR
셀레나 고메즈는 변화의 필요성을 믿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의 대화가 이어진 날, 셀레나 고메즈는 28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생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생일 계획을 물었더니 “생일은 늘 어색한 것 같아요. 코로나19의 영향도 있고 하니 친한 친구 몇 명과 조촐한 시간을 가지려 해요” 하며 겸연쩍게 웃고 말았다.
사실 우리의 대화는 한 공간에 마주 앉는 대신, 각자의 침실에 앉아 화상 채팅으로 진행됐다. 전 세계를 집어삼킨 팬데믹 영향 아래, 모두에게 낯설고도 흥미로운 경험임이 분명해 보였다. 화상 채팅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싶었지만, 같은 공간에 나란히 앉은 듯 충분한 친밀함 속에서 느긋한 소통을 나눌 수 있었다. 화면 속 셀레나는 꾸미지 않은 수수한 모습 그대로였다. 낙낙한 핏의 크림색 튜닉을 입었는데 심플하면서도 우아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아름다운 작품을 마주하는 듯했고, 그 모습 그대로 런웨이를 활보해도 손색없어 보였다.
헤어스타일은 또 어떤가. 정석보다 높게 묶은 포니테일 스타일은 그야말로 무심하면서도 시크한 룩을 완성했다. 특유의 긴 속눈썹과 아치 모양의 또렷한 눈썹은 천사 같은 순진한 인상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화면 속 셀레나가 갑자기 방긋 웃는 순간, 마음이 부드럽게 녹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과 스타일, 메이크업이야말로 진정한 요즘 스타일 아닐까.
그의 얼굴을 조목조목 관찰하고 묘사한 이유가 있다. 최근 셀레나 고메즈는 2년간의 연구와 준비 끝에 자신의 뷰티 브랜드 레어 뷰티(Rare Beauty)를 론칭했다. “처음부터 브랜드의 이름은 ‘레어’로 짓기로 마음먹었어요. 희귀하다는 뜻을 가진 그 단어만큼 저와 제 브랜드의 정체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소비자와 브랜드, 또 저까지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답답하고 무력한 오늘의 상황에서 깊은 연대감이나 포용력을 갖는 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이런 상황일수록 자신을 가꾸고 돌보고 관리하는 일은 삶에 중요한 동기부여가 된다. 레어 뷰티의 일루미네이팅 프라이머를 직접 사용해봤다. 금세 산뜻한 느낌의 도자기 피부결이 완성돼 그 위에 파운데이션을 덧바를 생각이 들지 않았다. 파운데이션을 꼭 사용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까다로운 피부톤을 가진 사람이 쓱쓱 발라도 들뜨지 않고 착 달라붙으니까. 레어 뷰티의 아이템은 이렇게 넓고 큼직한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
RARE FORM
셀레나 고메즈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헝 반고의 원격 도움을 받아 셀프 메이크업을 완성했다.
인터뷰 며칠 전 <얼루어>와의 촬영을 먼저 진행했다.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거리 두기와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애쓰며 진행한 촬영에서 셀레나 고메즈는 모델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역할까지 도맡았다. 그는 스태프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메이크업을 완성해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원격으로 조언만 했다. “한 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은근히 긴장도 됐는데, 제 브랜드의 메이크업 제품으로 직접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뿌듯하더라고요. 내내 ‘잘하고 있는 건가? 이게 맞는 걸까?’ 의심을 하긴 했지만요.”
셀레나는 유난히 차분하고 평온한 태도로 여러 이슈에 관한 대화를 이어갔다. 코로나19로 멈춘 무대에 다시 서서 공연하는 일이나 이민과 인종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땐 엄숙할 정도로 진중한 태도를 보였고, 화려한 삶과 대중의 관심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땐 자칫 자기 비하로 비춰질 정도로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인터뷰 내내 한쪽 무릎을 팔로 감싸 안고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는 소탈한 모습은 그가 세계적인 팝스타라는 사실을 이따금 잊게 했다.
그는 단순한 팝스타가 아니다. 라틴계 여성 최초로 디즈니 채널의 작품에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청소년이 겪는 트라우마와 자살, 강간, 미국 이민법을 비판하는 등 민감한 사회 이슈를 가감 없이 다루는 몇 편의 드라마에 제작자로 나서기도 한 용감한 개척자다.
이 엄청난 일들을 모두 서른이 되기 전에 이뤘다. 그의 경력과 도전은 남보다 일찍 시작됐다. 또래 아이들이 장난감이나 인형을 가지고 놀았을 열 살 무렵, 셀레나는 이미 대형 텔레비전 쇼에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밀레니얼 세대가 방송계에 유입되며 막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 이미 백만장자 톱스타가 되었다. 인기와 행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자신을 ‘셀레네이터’라고 부르는 전 세계의 팬덤을 거느리며 동시대의 슈퍼스타로 군림한다. 2억 명에 가까운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그 영향력을 아주 직관적으로 입증한다.
셀레나 고메즈는 1992년 7월 22일 미국 텍사스주 그랜드 프리에에서 태어났다. “엄마가 공연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 엄마의 모습에 매료됐어요. 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저도 엄마처럼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걸 즐기던 아이였어요. 대중 앞에 서는 일이 제가 꼭 해야 할 소명처럼 느껴질 정도였죠.” 데뷔작인 <바니와 친구들> 이후 각종 광고와 작품을 종횡무진하던 셀레나는 마침내 자신의 커리어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다. “열세 살 때 <우리 가족 마법사>라는 파일럿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어요. 파일럿으로 시작했지만, 시리즈는 4년 반 동안이나 이어졌어요. 쉬지 않고 달렸어요.”
FRINGE BENEFITS
셀레나 고메즈의 레어 뷰티는 포용성의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
셀레나는 여전히 디즈니 채널에서의 경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텍사스 출신인 제가 미국에서 가장 큰 스튜디오와 지속해서 일한 건 엄청난 행운이에요. 감사한 일이죠. 저는 디즈니 채널이 구축해낸 여성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하지도 나약하지도 않아요. 강인한 힘을 가지고 있죠. 어린 시절 디즈니 채널에 출연하며 경험한 모든 것이 더 나은 배우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믿어요.”
물론, 긍정적인 면만 있었던 건 아니다. 셀레나의 인기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그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 했다. 파파라치나 극성 팬덤이 밤낮없이 주위를 어슬렁거렸고, 토크쇼 진행자들은 그의 연애사를 캐기 바빴다. 가판대의 타블로이드지와 각종 SNS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셀레나의 사생활을 파헤쳤다. “저의 일상을, 개인적인 생활을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땐 정말 힘들었어요.”
셀레나 고메즈를 다루는 일부 미디어에는 윤리의 브레이크가 없었다. 셀레나는 자가면역 질환인 루푸스 투병과 두 번에 걸친 대수술의 고통을 이겨냈다. 미디어는 수술 후 재활과 회복에 전념하느라 체중이 늘어난 셀레나의 몸을 조롱하거나 비난하기 바빴다. “한 개인이 온전히 감당해내기에는 너무 버거운 일이었어요.” 그는 담담한 태도로 당시의 기억을 꺼내놓았다.
불편한 기억은 이게 다가 아니다. 그는 과거 자신의 뮤직비디오에서 성적인 모습이 지나치게 부각된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일까, 여러 번 말을 멈추고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려 애썼다. <Revival>이라는 앨범을 준비할 때였어요. 주위에서 성숙한 이미지 변신이 필요할 때라고 조언하더군요. 그래서 노출을 했죠. 저도 동의한 일이긴 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모습은 저답지 않았어요.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셀레나는 솔직하다. 대중과 미디어가 괴롭히듯 가십을 쏟아내도 움츠러들거나 숨지 않는다. 자신이 겪은 개인적인 문제와 상처, 질병을 밝히는 데도 거침이 없다. 올봄 셀레나는 디즈니의 아역 출신 배우이자 뮤지션 마일리 사이러스와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통해 자신이 품고 있는 조울증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조울증이라는 질병이 저를 찾아왔어요. 저는 제가 가진 질병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싶었어요. 알면 알수록 두려움은 없어질 거라고 믿었거든요. 두려움은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 아주 큰 태풍이 온 적이 있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엄마는 그런 저를 무조건 달래지 않으셨어요. 대신 태풍을 비롯한 기후 현상에 관한 책 몇 권을 건네셨죠. “제가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잘 알게 된다면 더는 두렵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셀레나는 여전히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소통한다. “중요한 건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기에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요.”
문득 궁금해졌다. 셀레나 고메즈는 때때로 구글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할까? 그는 몸서리치며,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아! 지난 몇 년간 그런 일을 해본 적은 없어요. 솔직히 말하면 무서워서 못 하겠더라고요.” 그는 정신 건강을 위해 의식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미디어와 거리를 두려 한다. 댓글을 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SOFT FOCUS
“저는 여러 면에서 강하지만 마음은 무척 여린 사람이에요.”
셀레나가 유일하게 활발한 활동을 하는 건 인스타그램이다. 전 세계의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일만큼은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은 때론 셀레나 고메즈의 발언대가 되기도 한다. 조지 플루이드가 죽었을 때 셀레나는 무려 2주 동안 이 문제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한 다양한 포스팅을 지속해서 올렸다.
이런 활동가적인 기질은 어디에서 비롯한 걸까. 그는 머리를 뒤로 넘기더니 말했다. “그동안 무지하게 살았어요. 모르는 게 너무 많았어요. 사람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 심지어 제 지인들조차 오랫동안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주체할 수 없이 고통스럽더라고요. 단순한 일회성 포스팅으로 그치고 싶지 않았어요. 더 나아가고, 더 행동하고 싶어요.” 실제로 셀레나는 비영리 단체 플러스원이 설립한 ‘Black Equality Fund’로 캠페인 후원에 동참했다.
셀레나는 흑인도, 백인도 아닌 라틴계다. 그 역시 소수자다. “저도 차별을 경험했죠.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있었는데 사람들이 멕시코 출신인 아빠의 피부색을 보고 모멸적인 발언을 했어요. 저도 들었죠. 아빠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말라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그렇게 황급히 그 자리를 떴어요.” 셀레나의 아버지는 부딪치지 않고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셀레나는 달랐다.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한 <리빙 언도큐먼티드>의 총괄 제작을 맡아 미국 이민 정책으로 인해 생이별하게 된 가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소개했다. 셀레나는 분노하고 있었다. “좌절감은 물론, 미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역겨움과 분노의 감정이 요동쳤어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참혹한 현실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때로는 외면하고 싶은 부분, 모르고 있는 걸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고통스럽더라도 그래야 해요.”
<리빙 언도큐먼티드>의 제작에 참여한 것은 셀레나 스스로 지금까지 이룬 성과 중 가장 자부심을 갖는 일이다. 그는 기세를 몰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프로듀서에도 이름을 올렸다. 청소년의 자살, 강간, 왕따, 학대, 정신 질환을 전면으로 다루는 논쟁적인 시리즈는 공개 직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셀레나는 의연하게 자기주장을 이어갔다. “불편한 장면이 있을 수 있어요.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보기 싫다는 이유로 마냥 덮어놓고 모른 체하는 게 너무 많아요. 저는 이 드라마가 논쟁적인 담론을 만들어내는 촉진제가 되기를 바랐어요.” 시리즈는 논란을 넘어 강도 높은 비난에 휩싸였고, 일부 단체의 격렬한 항의 끝에 결국 몇몇 장면은 삭제되었다. 셀레나는 개의치 않는다.
셀레나 고메즈를 꼭 닮은 레어 뷰티의 행보도 계속된다. 전력 질주하던 과거보다 속도를 조금 늦춘 채 양옆과 자신이 속한 세계를 두루두루 살피며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요즘은 저를 기업가, 보스로 소개하고 있어요. 처음엔 어색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직함이 그렇게 어색한 건 또 아닌 것 같아요.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해요. 일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을 나름대로 잘, 주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인생의 모든 면을 관리하는 ‘보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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