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재택 생활

갑작스럽게 재택 근무를 시작하게 된 당신. 만족도는 어떻고, 능률은 어떠했나? 재택 근무 속에서도 ‘워라밸’과 ‘생산성’을 놓치지 않기 위한 몇 가지.

엄격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며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많은 회사원이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한동안 SNS에는 자기자신이 재택 타입인지, 재택이 불가능한 타입인지에 대한 언급이 이어졌다. 재택으로 업무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준비 없이 생애 첫 재택근무에 들어간 사람들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얼루어> 편집부 역시 2주간의 재택 기간을 거쳤지만 “촬영은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이미 많은 스케줄이 정해진 상태)”, “비용 정산은 어떻게 하는가?(우회 접속할 수 있는 주소를 회사가 제공함)”. “화보 사진 셀렉트가 불가능하다(일반적으로 담당 에디터와 편집장, 아트 디렉터가 회의 테이블에 모여 사진 프린트를 늘어놓고 한다)”, “제때 와야 할 원고가 왜 안 오는가?(이거야말로 미스터리지만 집으로 원고를 받으러 갈 수도 없고!)” 등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특히 낮에 촬영과 취재를 하고 밤에 원고를 쓰는 에디터들의 업무루틴은 재택 속에서 큰 위기를 겪었고, 급기야 안 와도 된다는데도 마스크를 착용한 채 굳이 출근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2주가 흘러 마감을 위해 다시 회사에 모여 들어본 재택의 후기는 그야말로 제각각. “집에선 아무것도 안 써진다”부터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해야 할지 모르겠다”, “집이 너무 적막해 TV를 오디오 삼아 틀어놨는데, 몇 시간째 TV만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괜스레 기분이 처졌다” 등등. 모두가 각자의 ‘큰 깨달음’을 얻은 2주가 지났다. 워낙 사회 분위기가 울적한 때라, 좀 더 유머러스한 톤으로 표현해봤지만 재택에도 가이드라인과 룰이 필요하다는 건 분명하다. 과연, 효율적인 재택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증언 1 “일하려니 필요한 물품이 없어요”

일에 필요한 준비물 재택 시행에 관한 회사의 메일이 도착했을 때 나는 마침 사무실에 있었다. 그 메일을 받고 후배들에게 간단한 공지를 한 뒤 내가 가장 처음 한 행동은? 바로 회사 총무과에서 ‘랩톱’을 빌리는 일이었다. 나의 오래된 맥북은 오랜 시간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 인터넷 말고는 아무것도 안 되는 벽돌 상태였기 때문. 그렇게 한 대의 노트북을 확보한 다음에야 안도할 수 있었다.

재택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일에 필요한 모든 것이 구비된 사무실이 얼마나 좋은 업무 환경인지를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토로한다. 아닌 게 아니라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재택 근무 관련 물품의 소비는 크게 늘었다. 바로 책상, 모니터, 노트북, 프린터 등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사용하지 않은 책상을 처분한 사람들은 이내 커피 테이블은 커피를 마시기 위한 용도일 뿐 결코 사무용 데스크의 대용품이 아니라는 걸 금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높낮이가 맞지 않으면 목과 허리가 금세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증언 2 “밥 해 먹다가 하루가 다 갔어요”

먹고 사는 문제 재택 전에는 눈 뜨면 회사에 갔고, 점심은 사 먹었으며 야근을 해도 역시 음식을 사 먹었다. 그런데 집에서라면 어떨까? 보통 점심시간이라고 생각하는 1시간은 음식 자체를 섭취하는 시간으로서는 충분하겠지만 만들고 치우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즉석밥을 데워 3분 카레를 붓는 게 아니고서야 쌀을 씻고, 밥을 하고, 반찬 한두 가지, 국 하나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것까지 1시간 안에는 불가능한 일. 이걸 계속 반복하다 보면 만들고 먹고 치우고 일하고, 만들고 먹고 치우고 일하는 사이 ‘인간이 세 끼를 꼬박 챙기는 건 얼마나 사치인가’라는 생각만 든다. 점심은 전날 해둔 음식을 간단히 데우는 정도나 간편식을 활용하고 설거지는 업무가 끝난 후 몰아서 하는 식으로 타협이 필요하다. 산업부의 발표에 따르면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소비가 확산되며 간편식의 온라인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 그중 ‘재택러’가 왜 없겠는가.

증언 3 “집중이 안 돼요”

1 일 모드로 전환 다른 방해요인이 적고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일할 때에는 ‘일 모드’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 막 일어나 타인과 한마디도 하지 않은 상태로 멍하니 움직이지 않다가 노트북의 전원을 켠다면 집중하기가 어려운 것도 당연하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한 재택 생활을 위해서 마음뿐만 아니라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어났으면 세수 및 샤워를 간단히 하고, 잠옷에서 외출이 가능한 옷으로 갈아입는 사이 스스로의 기분이 달라지며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몇 시부터 일을 시작하고, 언제 어떤 업무를 할 것인지 간단한 시간표를 작성해두면 도움이 된다.

2 카페인 공급하기 출근길에 사 마시던 아메리카노나 회사 탕비실에 비치되어 있던 캡슐 커피가 그립다면 집에 홈카페를 차릴 수밖에. 내 경우에는 드립백을 마시다가 아예 캡슐 커피 머신을 새로 들였다. 카페인 음료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면 집에서도 적절하게 커피를 섭취하는 편이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3 일하는 공간을 꾸밀 것 자신의 사무실에서도 좋아하는 오브제, 사진, 포스터 등을 붙여두는 편이라면 집에서도 그렇게 해두는 편이 좋다. 앞으로의 업무도 재택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면 적절하게 색을 사용해보길. 자연광이 들어오는 환경도 도움이 된다. 컬러 연구에 따르면 특정 색은 심리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레드는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블루는 창의성에 영감을 주며, 자연광은 세로토닌을 촉진한다. 식물 역시 도움이 된다. 갇혀 있는 분위기를 싱그럽게 만들고 스트레스와 근심걱정을 완화해주기 때문.

4 음악을 듣는 것이 좋을까? 롯데백화점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프리미엄 음향 시장 매출은 19.2% 증가했다. 집에서 음악을 듣거나 넷플릭스, 유튜브 등의 동영상 시장이 성장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넷플릭스의 매출도 전년 동기 30.6% 늘었으며 유료 계정도 21% 늘었다. 정답은 없지만 일정한 데시벨의 음악이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는 사람들이 많다.

5 향 테라피 “레몬은 정신을 맑게 해주죠. 집중력이 필요할 경우에는 레몬, 로즈메리, 사이프러스를 혼합한 오일이 효과적이에요”라고 뉴욕 아로마 연구소의 에이미 겔퍼(Amy Galper)가 말한다. 라벤더, 프랑킨센스, 레드 만다린 블렌드는 진정 효과가 뛰어나다. 디퓨저가 없다면 에센셜 오일을 천에 뿌린 후 깊게 호흡을 해도 좋다.

증언 4 “건강이 나빠지는 느낌이에요”

적당한 움직임 전문가는 재택 근무 중이라도 하루에 한 번은 외출하는 편이 건강은 물론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잠시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것. 그러나 다른 상황도 아닌 팬데믹 상황에서는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는 편이 좋으므로 집에서 간단히 홈트레이닝을 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홈트레이닝 제품 역시 최근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 앉은 자세와 서 있는 자세를 자주 반복하면 혈압을 낮추고 심박수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집에서 종종 랩톱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서서 작업하거나 중간중간에 스트레칭을 해주면 자세에 관련된 통증도 미리 방지할 수 있다.

증언 5 “팀원들과 소통이 잘 안 돼요”

소통의 시간을 가질 것 매일 사무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던 동료 사이에서는 언제 어느 때고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하다. 언제든 모여 회의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택에서는? 전문가들은 전화와 화상으로 대화를 나누고 회의를 진행하는 일이 업무 효율뿐만 아니라 재택근무로 인한 불안함, 고립감까지 덜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매일 한두 번씩 정해진 시간에 화상 회의를 하거나, 단체 대화방에서 그날 해야 할 일과 업무 진행 상황에 대해 짤막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직접 대면하지 못하기에 업무 진행상황에 대한 내용을 전화, 메일 등 적절한 수단으로 적시에 공유하는 일은 더욱 중요해졌다. 한편, 화상회의 때에는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동시에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 화상 회의를 하는 사이 사적인 메시지가 노출되거나, 속옷만 입은 연인이 등장하는 영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재택 토크

미국 <얼루어> 사무실에는 몇 년째 재택근무만 하고 있는 두 에디터가 있다고 한다.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았다.

언제부터 재택 근무를 시작했나요?
그때 대통령이 클린턴이었어요.

무엇을 입고 일하나요?
저는 이걸 1990년대 애슬레저 룩이라 불러요. 러닝 팬츠, 블랙 티셔츠, 그레이 후디 등이죠. 언제든지 운동을 할 수 있거든요. 한번은 컨퍼런스 콜을 하면서 스쿼트 중이었는데 갑자기 미팅이 멈추더니 누군가 말했어요. “휴대폰 음 소거 좀 해줄래요? 숨소리가 너무 거칠어요!” 네일을 다듬을 때도 있어요.

재택 근무의 장점을 뭐라고 생각해요?
시간과 환경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이점은 엄청난 거죠. 난 일할 때 약간의 소음이 필요한 타입이에요. 너무 조용한 것보다는 훨씬 능률이 오르거든요. CNN을 낮게 틀어놓고 일하는 편이에요. 출퇴근 시간과 쓸데없는 미팅으로 소모되는 시간이 사라지니 업무 효율은 훨씬 좋아졌어요.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일하는 건 어떤가요?
일하기 위해서 매일 이메일과 문자를 주고받긴 하지만, 그들의 대부분을 알지 못해요. 그래서 장점도 있어요. 그들이 날 화나게 할 때도 시각적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거든요. 직접 만나는 게 아니라서 더 조심스러운 소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변 사람들이 나더러 살짝 빈정대는 말투일 때가 있다고 지적하거든요. 모르는 사람들과 이메일이나 문자를 주고받을 때 주의하려 애쓰고 있어요.

때때로 사무실과 동료들이 그립나요?
함께 웃고 싶을 때요.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각나요. 웃음은 치유 효과가 있고, 유대감을 끈끈하게 만들어 더 나은 팀으로 만들어주니까요. 창의적인 사람들과 어울릴 때 우린 더 창의적일 수 있어요. 스마트한 사람들, 그리고 회사에 깔려 있는 초고속 인터넷이 그리워요.

    에디터
    허윤선 
    포토그래퍼
    SARAH O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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