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뭔지도 모르면서
김초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 속 이 대사의 의미는 영화를 봐야만 안다. 음악감독을 맡은 정중엽과 더불어 이 찬란한 영화를 들여다봤다.
[ 감 독 김 초 희 ]
장편영화 입봉이 늦은 편이다. 홍상수 감독의 프로듀서로 많이 알려져 있었는데, 프로듀서로 일한 건 감독이 되는 과정이었나?
홍상수 감독님의 연출부로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있을 당시 프랑스에서 촬영된 <밤과 낮>이라는 영화에 프랑스어가 가능한 연출부를 찾았다. 감독을 하고 싶었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오랜 기간 공부만 했으니까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러다 현장을 경험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감독이 아니라도 현장에서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느 프로듀서보다 다양한 일을 하지 않았나.
상업영화에서 프로듀서가 일반적으로 하는 일과는 다른 역할을 했다. <옥희의 영화>부터는 조감독 역할도 했고, 전원사(홍상수 감독의 제작사)의 살림도 맡아서 했다. 조감독과 피디가 합쳐진 멀티 역할이었달까.
직접 마주하니 영화 속 ‘찬실’과 똑같은 동남방언을 쓴다. 의도했나?
처음에 시나리오를 쓸 때 사투리를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었다. 그런데 강말금 배우가 같은 부산 출생이더라. 사투리로 고치면 사람들한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고쳤다.
40대에 실직해 영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내용이 자전적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어디까지가 실제 경험일까 하는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데뷔작에 감독들의 자전적 이야기가 많이 녹아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모든 걸 내가 경험한 것은 아니다. 2015년에 영화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마흔하나였다. 그때까지 영화를 하겠다고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오기만 했던 것 같다. ‘실직’을 하고 나니까 일이 없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 상황을 모티브로 해서 이야기를 발전시킨 거다.
노감독이 술 게임을 하다 급사하는 걸로 영화가 시작된다. 여러 의견이 있을 법한데?
술을 그렇게 마시는 문화가 흔하다. 영화는 실직을 한 찬실에서 출발하는데, 무엇 때문에 실직하게 됐는가를 영화에서 보여줘야 했다. 전사가 너무 길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펼칠 수 없으니까 잘 어울릴 만한 설정이 앞에 와야 뒷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 있었다. 죽음만큼 강렬한 건 없지 않나.(웃음)
급사라고 표현하니 급진적이지만 관객으로서는 굉장히 리드미컬하면서 유머러스한 느낌이 들었다.
잘 보았다. 이 코믹한 톤에 제일 어울릴 만한 사건을 만들고 싶었던 거니까.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다”라는 찬실의 대사는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어떤 경험에서 나온 말인가?
영화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었다. 그 일을 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 기뻐서 막 달려왔는데 실직을 하고 나니까 ‘세상에는 꿈 말고도 중요한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무엇을 해서 꿈을 이룬다고 생각했던 20~30대였다면, 40대에접어들었을 살 것인가가 무엇을 할 것인가만큼 중요했다. 그걸 잘 몰랐다.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소소한 것은 너무 많다. 동시에 행복의 본질이 뭔지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크고 작은 위기가 있는 가운데 기다려서 큰 행복이 오기도 하듯이, 갈등하고 위기를 겪는 속에 성장하는 행복이 있다. 성장 속의 행복은 지속적이기 때문에 또 의미가 있고.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지만 복이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그 대사를 썼던 것 같다.
영화 속에 망했다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어떤 의도로 썼나?
망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더 편하지 않나? 더 잃을 게 없기 때문에 용감해질 수밖에 없다. 망하면 사실 엄청 아프다. 그걸 각오하는 게 용기가 아닐까.
장편 데뷔작이지만 배우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 윤여정, 최화정, 윤승아, 정성일 등등.
의외로 프로듀서를 하면서 만난 인연이 아니다. 윤여정 선생님과는 오랜 인연이지만, 나머지 배우분들은 시나리오를 보내고 응한 분들이다.
영화 속의 대사가 말맛이 있으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아무리 경험을 해도 보편성을 가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공감을 끌어낼 수 없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 나한테, 친구들한테 통용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공감이 될 만한 대사라고 생각되면 사용했다.
집필에서 퇴고까지 얼마나 걸렸나?
일년 내내 고쳤다.(웃음) 남들이 보면 금방 썼을 것 같지만 초고를 쓰기까지 2달 걸렸고, 그걸 총 다섯 번을 고쳤다. 전혀 다른 버전이 다섯 개 있다. 이 모티브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본 거다. 일년 내내 아무것도 안 하고 그것만 붙들고 있었다.
다섯 버전 중 가장 아까운 건 무엇인가?
세 번째 버전이 제일 마음에 든다. 처음 구상한 예산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상황이라 대대적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한 버전이 지금의 영화다. 지금 영화는 한 장소 안에 세 인물이 살지만 원래는 셋이 각각 다른 집에 살았다. 복실 할머니(윤여정 역)는 감 마을에 사는 할머니고 찬실이 감 따는 알바를 하러 가서 만난다. 장국영(김영민 역)은 저택에 산다.
말했듯 영화는 제작비가 중요하다. <찬실>의 제작비는 어땠나?
세 곳의 지원금으로 찍었다. 운이 좋았다.
그렇게 완성한 영화가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고, 또 호평을 받았다. 이제 3월 중에 정식 개봉도 기다리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대운이 들어온 것 같다. 열심히 한 것도 맞지만 사실 이런 건 운도 따라줘야 된다. 안 풀릴 때는 죽어도 안 풀리니까. 우리가 무수하게 문을 두드려도 거의 대부분 실패하고 가끔 결실을 보는 것 같다.
상을 받고 자기 일처럼 가장 기뻐해준 사람은 누군가?
윤여정 선생님이다. 힘든 시기에 내가 고생하는 걸 많이 보셨다. 그래서 더 기뻐하셨던 것 같다.
이번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감독 김초희가 기억될 텐데.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단편도 어디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냥 안 만들면 못 살 것 같아서 만들었다. 이 시나리오를 쓸 때도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에 미쳐서 열심히 썼던 것 같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이번 영화는 내 어느 부분이 모티브가 됐는데 이제는 그걸로부터 자유로운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장편 시나리오를 써놓은 게 하나 있는데 그것이 작은 씨앗이 돼서 다음 길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찬실은 이제 어떻게 살까?
찬실이라는 인물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잘 살 것 같다. 정신보다 마음이 더 건강한 사람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와 찬실이 똑같지는 않다.(웃음).
[ 음악감독 정중엽 ]
장기하와 얼굴들의 베이시스트로 <얼루어>와도 여러 번 만났다. 그땐 음악감독으로 만나게 될 줄 몰랐는데.
어릴 때부터 밴드 하는 걸 좋아하고 밴드 음악만 생각하고 살아서 그 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하면서도 다른 밴드들을 했었는데, ‘밤신사’라는 밴드가 해체하면서 이제 더 이상 장기하와 얼굴들과 다른 밴드를 병행하는 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밴드가 아니면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게 어떤 게 있을까를 그때 처음 생각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어땠나?
광고, 영화, 연극과 같이 음악을 필요로 하는 곳은 다양하게 있는데 지금까지 너무 밴드만 생각하고 살았구나 싶었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조웅 형을 찾아가서 다른 쪽 작업을 해보고 싶으니 아는 분들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음악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밴드음악을 한 경험이 음악감독을 할 때 어떤 장점이 되나?
원래는 기타 전공이었다가 작곡으로 전과를 했다. 그러다 밴드에서는 베이스를 치게 된 거다. 밴드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자연스레 멤버들의 취향을 공유하게 되는데, 그게 장점이 된 것 같다. 영화음악을 하고 보니까 음악감독 중에 베이시스트 출신이 꽤 많더라. 베이시스트가 중심축을 잡고 가야 되는 부분이 많아서 큰 흐름을 보는 훈련이 된 건 아닐까 싶다. 밴드에서는 베이시스트가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데 영화음악도 역시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쪽이 아니라는 점이 비슷하다. 베이시스트는 프런트맨이 아니니까.
어떤 영화를 좋아했나?
대학생 때부터 스스로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당시 짐 자무쉬, 우디 앨런 영화를 좋아했다. 음악도 관심 있게 들었다.
밴드로 선보이던 음악과 최근 작업한 영화음악은 뭐가 다른가?
밴드음악은 기본적으로 멤버들이 만족하는 게 첫 번째, 두 번째가 ‘대중들도 좋아하면 좋겠다’이다. 주어진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끼리 으쌰으쌰해서 재미있으면 최선인 거다. 영화음악은 클라이언트가 있는 점이 우선 다르다.
영화음악의 클라이언트는 누구인가, 감독?
일단 감독님이다. 큰 상업영화의 경우에는 제작사까지 만족시켜야 된다고 하더라. 내가 만들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영화에 맞고 감독님의 생각에 맞는 음악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음악적인 걸로 치면 영화음악 쪽이 할 수 있는 장르는 더 많다. 감독의 생각을 반영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이야기해줘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바빠지고 피곤한 부분도 있지만 더 재미있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영화음악을 맡은 첫 작품은 뭐였나?
영화음악에 처음 참가한 건 <사생결단>이다. 음악을 밴드 느낌으로 하고 싶다고 했었다. 음악감독으로서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첫 작품이다. 감독님이 어느 날 연락을 주셔서, 편집이 끝난 영화가 있는데 작업을 해보겠냐고 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는 무엇인가?
이렇게 빨리 입봉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다. 일단 프로그램 다루는 것부터.
김초희 감독이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실직’에 대한 영화라고 했는데 실제로 실직(해체)을 하고 영화음악을 맡게 되었다.
그렇다.(웃음) 그래서 공감대가 있었다. 한곳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자기 의지와는 크게 상관없이 일을 그만두는 상황이 된 거니까. 나 같은 경우는 해체할 때 만약 내가 결혼을 안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음악을 아예 쉬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웃음) 음악을 얼마나 넣을지, 시작점은 어디로 할지 등등을 상의하면서 했는데, 감독님이 음악을 좋아하고 디렉션이 굉장히 명확하신 편이어서 좋았다.
감독의 가장 큰 디렉션은 뭐였나?
오프닝으로 레퀴엠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셨는데 딱 듣는 순간 너무 좋았다. 다른 음악을 만들어봤지만 이길 수는 없었다. 그 다음엔 미니멀한 사운드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많이 수정했다.
뭐가 아쉽고, 뭐가 흡족한가?
흡족하다. 영화음악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서 영화 자체도 마음에 들고 음악도 마음에 들게 나왔다. 아쉬운 건 조그만 디테일이다.
완성된 영화를 본 느낌은 어땠나?
감독님이 전에 만드신 <산나물 처녀>라는 단편도 되게 재미있었고 이번 영화도 그렇다. 부산영화제에도 참석했는데 명함도 만들어서 갔다. 초록색으로 해서 흰색 글씨로 ‘Music’이라고 써서.
음악 관련은 다 연락 달라는 뜻인가?
맞다. 저녁에 간단한 파티가 있으니까 저녁 먹고 가라고 해서 가보니까 시상식이었다. 그 시상식에서 우리 영화가 상을 연달아 세 개 정도 받았는데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해졌다.
영화 속 대사인 “영화 안 하고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질문을 당신에게 한다면?
음악을 안 하고도 먹고야 살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사는 스킬을 음악 쪽에 집중해왔는데 다른 걸 연습하려면 더 오래 걸리지 않을까. 다음 작품이 정해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넷플릭스의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드라마를 하고 있다.
- 에디터
- 허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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