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에서 / 고성희, 윤현민
2020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사람과 사람, 홀로그램 인공지능의 마음을 담은 <나 홀로 그대>로 시작한다. 배우 고성희와 윤현민은 그 마음의 힘을 믿는다.
{ 고성희 }
지난 화보를 찾아봤는데 계속 뭘 노려보고 있더라고요. 오늘은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해보는 거 어때요?
하하. 진짜 그랬어요. 자연스러운 거 좋아요. 지금 좀 설레는데요.
고성희, 윤현민 씨 모두 반려견을 기르는 것 같길래 함께해도 좋다고 제안했어요. 두 분 다 오케이할 줄은 몰랐지만요.
그 제안받고 너무 신났어요. 언제 한번 제 반려견 루아랑 함께하고 싶었거든요. 성은 저를 따라 고, 이름은 루아예요. 이제 16개월 된 장모 닥스 훈트고요. 되게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 이 작은 생명체가 제 인생을 많이 바꿔놨죠.
어떤 의미죠?
아주 좋은 쪽으로요. 원래 일이 없을 때 집에 붙어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거든요. 무조건 친구들 불러서 밖으로 나다니는 스타일이었어요. 그게 좋기도 했지만 혼자 집에 있으면 불안정한 감정이 들어서 싫더라고요. 근데 루아를 만나고 감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러모로 안정을 찾게 됐어요. 밖에 나가지 않고 얘랑 둘이 집에서 놀아요. 책임감도 많이 배우고 있고요.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됐어요.
뭐가 보이던가요?
솔직히 저는 유기견이나 동물 복지에 관심이 ‘1’도 없던 사람이에요. 루아는 돈을 지불하고 분양받는 시스템으로 저에게 왔지만 최근 유기견 문제나 동물 복지에 관심이 생겼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생각하기도 해요.
아주 좋은 변화네요. 평소 도전이나 모험을 즐기는 편인가요?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요. 굉장히 그런 편이었죠. 도전 의식이 강했어요. 죄송해요, 루아가 자꾸만 짖어서요.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아요. 괜히 대장질하고 싶어서 저러는 거예요.(웃음) 아무튼, 일을 시작하면서 여러모로 조심하는 쪽으로 바뀐 거 같아요. 걱정이라면 걱정이죠. 예전처럼 용감하고 도전적인 삶을 살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아요. 자꾸만 몸을 사리게 돼요.
그건 신중함일까요? 아니면 겁이 나는 걸까요?
둘 다요. 제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이기도 해요. 작품에 참여하고 있을 때 어떤 식으로든 사고가 나면 안 되니까요. 너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잖아요. 그럴까봐 겁이 나기도 하죠.
딱 1년 전 <나 홀로 그대>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된다는 기사가 났죠. 촬영 스틸에선 당신은 단발머리였는데 지금은 머리카락이 이만큼 자랐네요.
그러게요. 제 머리 길이를 보니까 시간이 느껴져요. 딱 1년 만인 2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돼요.
<나 홀로 그대>는 어떤 작품인가요? 당신이 연기하는 소연은 어떤 사람이에요?
‘소연’은 어떤 결핍을 안고 사는 인물이에요. 커리어적으로 굉장히 프로페셔널하지만 그 결핍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외로운 인물이죠. 어느 날 그 앞에 ‘홀로’라는 이름의 홀로그램 인공지능 서비스가 나타나요. 소연은 홀로를 이용하면서 특별한 교감을 나누고 의지하게 돼요. 사랑의 감정마저 느끼게 되죠. 그리고 그걸 다 지켜보던 홀로의 개발자 ‘난도’가 등장해요. 장르물이면서 동시에 멜로이기도 하죠. 말씀드릴 순 없지만 또 다른 어떤 말을 건네기도 할 거예요.
2020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한국 첫 작품인데 어때요?
저도 궁금하고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어요. 시청자로서 넷플릭스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거든요. 지난 연말에 하와이와 LA로 한 달 살기 여행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많이 봤어요. 재미있는 시리즈가 많더라고요. 저희 작품도 잘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고, 어떻게 보여질까 하는 궁금증도 있어요. 사람과 홀로그램 인공지능의 미묘한 관계를 말하는 작품이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으니까요.
윤현민이라는 배우와 함께한 건 어때요?
첫인상은 훤칠하고 도시적인 느낌이 강한 분이잖아요. 실제로는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세요.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해주시고요. 알고 보니까 저희가 같은 동네에 살더라고요. 촬영 기간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동네에서 밥도 먹고, 간단히 술도 한잔하면서 동네 오빠처럼 지냈어요.(웃음) 덕분에 현장이 좀 더 편안했죠.
시간이 좀 흐르긴 했지만 당신을 만나면 2018년에 방영한 <마더>라는 작품을 특별히 언급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 작품이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어려운 작품이었죠. 당시 저는 20대였는데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는 미혼모 역할을 선택하는 건 분명 쉽지 않았어요. 주위의 모든 분이 다 반대하셨어요. <마더>를 연출하신 김철규 감독님과는 그 전에 <아름다운 나의 신부>라는 작품을 함께 했는데요. 감독님조차 제가 ‘자영’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말리실 정도였어요. 제가 오히려 감독님을 설득했거든요. 모르겠어요, 근데 저는 꼭 하고 싶더라고요. 굉장히 무거운 내용의 드라마였고, 어두운 역할을 연기해야 했는데 오히려 행복했어요. 뭔가 여기에 쌓여 있는 게 해소된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지금껏 제가 맡은 인물 중에 <마더>의 자영이가 제일 보고 싶어요.
그 말이 정말 좋네요. 하지만 다시 만날 순 없죠.
맞아요. 다시 만날 순 없겠죠. 자영이가 잘 살길 바라요.
<마더>의 자영도 <나 홀로 그대>의 소연도 모두 결핍과 외로움을 지닌 인물이죠. 유독 그런 인물에 마음이 가요?
저도 그게 늘 의문이에요. 제 실제 성격은 그와 정반대거든요. 걸걸한 면도 있고, 생각 없이 밝을 때가 더 많아요. 근데 작품을 선택할 때는 어두운 구석이 있는 인물에 마음이 가요. 생각해보면 제 안에 있는 어두운 마음들,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는 걸 연기라는 구실을 통해서 표출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도 다 어두운 구석이 있으니까요. 오히려 진짜 저와 닮은 인물은 <슈츠>의 ‘지나’였어요.
좋아하는 넷플릭스 시리즈는 뭐예요?
당연히 <기묘한 이야기>죠.(웃음)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할 땐 관심이 없었는데 뒤늦게 빠졌어요. 하와이에서 지내는 동안 밤을 꼴딱 지새면서 봤거든요. 부럽더라고요. 굉장히 어린 배우들이 그런 좋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환경과, 시즌이 거듭할수록 성장하는 모습을 전 세계 시청자들이 지켜보잖아요. 최근에는 미국판 <지정 생존자>를 보기 시작했어요. 시즌 1은 진짜 재미있게 봤는데, 시즌2는 좀 아쉬워서 힘이 빠진 상태예요. 또 뭐가 재미있을지 찾아보는 중이에요.
넷플릭스는 꼭 콘텐츠의 망망대해 같아요. 셀 수도 없이 많은 콘텐츠가 바다 위를 떠다니죠. 시청자에게는 그걸 건져 올리는 것도 일이라서 어떤 시리즈를 정주행할지 말지 결정하는 잣대는 첫 1회의 재미에 달려 있어요. 냉정하죠. 이제 곧 <나 홀로 그대>도 그 바다 위를 떠다닐 텐데 두렵진 않아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없고요. 나머지는 시청자들의 선택이죠. 여러 장르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고 그저 단순한 내용은 아니라서 지루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우리 세대의 개인주의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잖아요. 그리고 다들 외롭잖아요. 많은 공감과 힐링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믿어요.
그나저나 루아는 계속 짖고, 당신의 휴대폰 케이스에는 ‘Lover’라는 단어가 정성껏 수놓아져 있네요.
<나 홀로 그대> 촬영을 끝내고 친구랑 칸쿤에 다녀왔는데요. 거기 공항에서 구입했어요. 칸쿤에 가는 게 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거든요.
{ 윤현민 }
반려견을 정말 사랑하시나봐요? 인스타그램에 온통 강아지 사진이더라고요.
좋아해요. 강아지 세 마리 기르고 있어요. 첫째 칠봉이는 푸들이고요. 둘째 꼬봉이는 비숑이에요. 오늘 함께 온 막내 시봉이는 시바견이고요.
마치 자녀 셋을 둔 아버지처럼 말하네요.
그게 맞아요.(웃음)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이 좋다고 소문난 키즈 카페 많이 가시잖아요. 저도 최근에 되게 좋은 애견 카페를 발견해서 애들 데리고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거기 가면 진짜 아빠의 마음으로 다른 집 애들이랑 싸우고 다니는 건 아닌지, 맞고 다니는 건 아닌지 안절부절하며 지켜보게 돼요.
오늘 화보를 함께 찍은 시봉이는 어떤 아이죠?
태어난 지 오늘로 1년 됐어요. 오늘이 얘 생일이에요.(웃음) 딱 1년 전에 <나 홀로 그대> 촬영을 시작했는데 딱 그 즈음 입양받았죠. 그래서 촬영장에 늘 함께 다녔어요. 뭐 현장 스태프들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심지어 이번 작품에도 한 번 출연했고요.
<나 홀로 그대>에서 홀로그램 인공지능 ‘홀로’를 연기하죠. 생각해보면 AI나 반려견 모두 주인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공통점이 있네요. 자발적으로.
맞아요. 아무리 어리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강아지들도 자기 주인은 알아보죠. 낯선 사람을 경계하기도 하고요. 한 번씩은 그게 고맙고 든든할 때가 있어요.
넷플릭스와 함께 작업한 건 어때요?
넷플릭스에 한창 빠지기 시작할 무렵 <나 홀로 그대>의 출연 제안을 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넷플릭스와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우선 대본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요. 게다가 모든 배우가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1인 2역이라는 점도 욕심이 났어요.
당신이 연기한 홀로와 난도는 어떤 인물인가요?
난도는 천재 개발자예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살고 있지만 마치 없는 사람처럼 숨죽이고 사는 인물이에요. 무척 외롭죠. 그 친구가 자기와 똑같은 외형을 가진 인공지능 홀로그램을 만들어요. 그 이름이 홀로예요. 결국 다른 듯 같은 인물이 아닐까 생각해요.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면서 함께 성장하죠.
지킬 앤 하이드처럼 양 극단의 감정을 가진 1인 2역보다 미묘한 지점이 많은 것처럼 느껴져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하더라고요. 몹시 예민해야 하고요. 미세하고 사소한 부분으로 시청자들이 감정이입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유난스럽지 않은 디테일로 차별점을 두려고 노력했어요.
100% 사전 제작이죠? 경험해 보니 어때요?
장점이 훨씬 큰 거 같아요. 수개월 동안 작품을 찍다 보면 체력 저하나 집중력이 저하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거든요. 사전 제작의 경우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보니 어느 정도 수정과 보완이 가능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런 작은 디테일이 결국 작품의 완성도를 탄탄하게 만들어주거든요. 그런 구조적인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모로 배우 윤현민에게 변곡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데뷔한 지 올해로 딱 10년 됐어요. 초반 3~4년 동안은 저 스스로 ‘배우 윤현민’이라고 말하는 게 영 어색했거든요. 쑥스럽기도 하고요. 아마 배우로 산 시간보다 야구 선수로 산 시간이 더 길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아무리 못해도 한 분야에서 최소 10년 정도는 버텨야 제 이름 앞에 그 직업을 말하는 게 떳떳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여전히 잘 모르겠네요.(웃음) 아직도 좀 부끄러워요.
고성희 씨와의 호흡은 어땠어요? 아까 둘의 모습을 보니까 에너지 자체가 좀 다른 것처럼 느껴지긴 했거든요.
이 작품 때문에 성희 씨랑 거의 1년을 꾸준히 보고 있어요. 저희 친해요. 물론 시간이 우리를 친해질 수 있도록 도운 것도 있지만, 안 맞으려면 아무리 긴 시간을 함께해도 소용 없잖아요. 제가 본 성희 씨는 아무한테나 쉽게 마음을 여는 친구는 아닌데 고맙게도 제게는 열어준 것 같아요. 되게 자유로운 친구라 어느 날엔 선배님이라고 했다가 어느 날엔 오빠라고 했다가 내키는 대로 그러는데 그게 싫지 않아요.
요즘 정주행 중인 넷플릭스 시리즈가 있어요?
어제 <두 교황>을 봤어요. 좋아하는 시리즈인 <너의 모든 것>의 새 시즌이 시작해서 그것도 보는 중이고요. 며칠 전에는 <결혼 이야기>도 봤죠. 와, 근데 그 작품은 배우로서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를 보는데 무슨 외계인처럼 잘하던데요.(웃음)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리고 숨 죽이면서 봤어요. <두 교황>도 마찬가지고요. 진짜 끔찍하게 잘하더라고요. 괜히 부러웠어요.
넷플릭스는 그런 곳이죠. 그 끔찍하게 대단한 리스트 사이에 2월 7일이면 <나 홀로 그대>가 포함될 거고요.
성취감 비슷한 건 있어요. 넷플릭스의 좋은 작품들을 보면서 내 작품도 같은 공간에서 볼 수 있다는 게 기쁘죠. 190개국에서 동시에 오픈되거든요. 그걸 생각하면 또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해요.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넷플릭스 시리즈 중 가장 착한 작품일 거라고 확신해요. 착하고 바른 시리즈요. 편견 없이 일단 플레이 버튼을 눌러주시면 좋겠어요. 끝까지 다 보시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질 거예요.
결국 우리는 전부 외롭고 불완전한 존재겠죠. 어쩌면 이 작품이 그런 이야기를 건넬 것 같기도 하네요.
맞아요. 누구나 다 외롭죠. 저도 제 삶의 절반 정도를 혼자 살았거든요. 늘 외로운 환경에서 지냈어요.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외로운 감정이 들 때가 많은 사람이고요. 근데 저는 그걸 잘 표현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대신 늘 밖으로 나돌았어요. 친구들이랑 술이나 마시고 쿨한 척하면서요. 행복하다고 저를 속였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요. 작년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로 했어요. 강아지들이랑 동네 한 바퀴 산책하면서요. 외로우면 외롭게 좀 두기도 하고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요.
신기해요. 아까 고성희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저도 혼자 사는데 강아지든 고양이든 금붕어든 앵무새든 얼른 식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반려동물의 힘일지도 모르죠. 한번 용기 내서 길러보세요. 책임감을 가지고요. 정말 어마어마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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