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이 안녕을 고하고 있다. 올해도 문화 전반은 분주히 돌아갔고, 기억할 만한 일들은 기억될 것이다.

 

나영석 피디는 2016년 한 강연에서 <신서유기>를 두고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라고 말한 바 있다.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을 실험해보고 싶었고, 잠재력은 발견했지만 비즈니스 모델로는 실패했다는 이야기였다. 나영석 피디의 시도는 올해 유튜브에서 계속되었다. 은지원, 이수근이 얻은 아이슬란드 여행권을 주제로 한 <아이슬란드로 간 세 끼>는 TV에서 5분간의 짧은 버전을 방영하고, 자체 유튜브 채널인 ‘채널십오야’를 통해 풀 버전을 공개하는 방식을 취했다. 사실상 TV는 예고편격이 됐다. 나영석 피디는 구독자 100만 명이 되면 은지원과 이수근을 달나라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공언했는데, 현재 구독자 수는 95만 명을 넘어섰다.

 

<프로듀스101>의 몰락

설마 했던 일. 올해 시즌4편에 이르기까지 악편과 밀어주기 논란은 계속되어왔지만 투표수까지 조작했을 줄이야. Mnet <프로듀스X101> 조작 의혹으로 CJ ENM 안준영PD, 김용범 CP가 구속되었고, 현재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안준영PD는 시즌3, 시즌4에 조작이 있었음을 시인했다고 알려졌다. 연습생을 데뷔시키고 싶다던 ‘국민 프로듀서’의 마음은 그저 몇몇 개인과 집단의 탐욕을 위한 볼모였을까. 아이오아이, 워너원, 아이즈원, 엑스원 등도 함께 빛이 바랬다. 아이즈원은 물론 엑스원은 데뷔의 기쁨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활동에 먹구름이 드리워졌고, 멤버와 팬들은 해체와 방출과 강행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다. 케이팝의 신화가 케이팝의 부끄러운 민낯이 됐다.

 

 드라마의 신스틸러

김선영
연극배우 출신의 이 배우는 올해 <열여덟의 순간>에서는 딸 김향기의 성적에 집착하는 엘리트 엄마였고, <동백꽃 필 무렵>에서는 옹벤저스의 ‘준기 엄마’ 역을 맡아 능청스러운 사투리를 뽐내는 중이다. 이 둘이 같은 사람이라니.

 

이규한
이제야 제 옷을 입었다 싶을 정도로 <우아한 가>의 이규한은 빛났다. 낭만주의자이자 시대를 빛낼 영화 감독이 될 수도 있었지만 재벌의 어엿한 후계자이길 원했던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첫째 아들을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허정도
전문직부터 허드렛일까지, 뒤늦게 연기를 시작한 허정도는 올해도 드라마 속 다양한 직업을 섭렵 중이다. <신입사관 구해령>에서는 정7품 봉규 양시행으로 분했다. 꼰대인 듯 꼰대 남자로 드라마 속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만하면 성공

몇 년간 해외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계속되었지만 시청률과 작품성 면에서 재미를 본 작품은 드물었다. 올해엔 <나쁜 형사>와 <60일, 지정생존자>, <더 뱅커>가 있었다. 분단이라는 특수성과 우리나라 헌법을 반영한 <60일, 지정생존자>의 각색은 원작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나쁜 형사>는 영국 BBC 드라마 <루터>를 리메이크해 믿고 보는 배우 신하균의 열연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15~19세 이상 시청가 등급으로 방영되었으며, 최고 시청률은 10.6%로 최근 MBC 드라마에서는 높은 수치다.

 

나만 본 드라마

다들 본다고 하는데 정작 시청률은 낮았다. 말하자면 시청률 대신 화제성을 챙겨간 드라마다.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로 화제를 모은 JTBC의 <멜로가 체질>은 최고 시청률조차 1.8%로 낮은 기록이지만 특유의 유머코드와 현실적인 연애묘사로 2030 팬층을 사로잡았다. 장범준이 부른 OST가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방영 중인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2~4%대의 시청률에 맴돌고 있지만 1020세대의 사랑을 받았다. TV 화제성 데이터를 조사하는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어하루’는 10월 드라마 화제성 부문에서 KBS <동백꽃 필 무렵>과 박빙으로 1, 2위를 다투었다. ‘동백’의 18%를 웃도는 높은 시청률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수치다. 야망 있는 여자들의 케미를 보여준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도 있다. 최고 시청률은 4.2%를 기록했다.

 

드라마 연말결산

➊ KBS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35.9%

➋ jtbc <스카이캐슬> 23.8%

➌ SBS <열혈사제> 22%

➍ KBS <동백꽃 필 무렵> 20.87

➎ SBS <닥터프리즈너> 15.8%

 

채널별 1위 드라마

MBC <슬플 때 사랑한다> 13%
tvN <호텔델루나> 12%
MBN <우아한 가> 8.5%
OCN <왓쳐> 6.6%
⁎출처 닐슨코리아(11월 12일 기준)

 

시즌제 드라마는 진행 중

<검법남녀 시즌2>, <아스달 연대기>, <보좌관> 등은 올해 시즌제 형식을 취했다. 시청자의 선호 및 근로기준법에 따른 제작 환경의 변화에 따른 선택이기도 하다. <보좌관>은 처음부터 시즌1, 2를 함께 기획했던 드라마로, 최근 이슈인 드라마 현장 가이드라인을 맞추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던 것. 결과적으로 제작 현장 개선이라는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냈다. 반면 가장 큰 화제작이었던 <아스달 연대기>의 경우 시즌제를 취하면서 오히려 후반부로 향할 수 있었던 힘이 빠졌다.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아스달 연대기>는 낮은 시청률은 아니었지만 제작비와 화제성에 비해선 아쉬운 결과. 파트1, 2, 3로 전개되었지만 막상 보면 파트별로 나눠야 할 이유를 느낄 수 없었다. 파트3의 시청자 반응이 가장 좋았던 걸 보면 오히려 쭉 끌어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예능의 면면

올해를 빛낸 얼굴들.

장성규
선을 넘는 장성규라는 별명처럼 활동해온 아나운서 장성규. 올해 JTBC를 퇴사하며 프리랜서가 되었고, 유튜브 프로그램 ‘워크맨’으로 데뷔 이래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박나래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의 중심축은 여전히 박나래다. 넷플릭스에서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를 공개하며 여성 코미디언들의 스탠드업 코미디 진출에 포문을 열었다.

 

펭수
그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이미 50만 명을 넘어섰다. 거침없는 입담과 신비로운 정체로 어른들의 뽀로로로 거듭난 지 오래. 교육방송 채널과 B급 감성의 만남으로 탄생한 유쾌한 혼종.

 

건후
더 이상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시청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건후는 안다. 오동통한 무발목의 세 살배기가 지겹다 싶던 예능을 살려낸 구원투수가 되었다.

 

백종원
<골목식당>,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등으로 열일한 백셰프. ‘진짜 레시피’를 보여준다며 유튜브를 시작, 3일 만에 백만 유튜버가 되며 연일 화제를 모았다. 유튜브의 ‘끝판왕’ 등장.

 

올해의 명대사

“안으면… 포근해”
<멜로가 체질>에서 새로운 러브 라인을 구성한 은정(전여빈)과 상수(손석구). 두 사람은 각자 기부를 해온 보육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갑자기 “안아줄까요?” 라는 말을 건네며 손석구가 한 말.

 

“하느님이 너 때리래”
“용서와 사랑, 신부님은 하느님 잘 따르셔야죠”라는 말에 대한 김해일(김남길)의 대답. <열혈사제> 1회에 나온 대사로 캐릭터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

 

“니가 먼저 했다”
마냥 착하던 <동백꽃 필 무렵>의 용식이(강하늘)가 대범해진 순간. 먼저 뽀뽀한 동백이(공효진)에게 키스하며.

 

“약한 사내다”
<아스달 연대기>의 세계관에서는 말에게도 대사가 주어졌다. 송중기를 두고 한 말의 속마음이었다. 아고족의 욕으로 등장한 드라마 속 단어 ‘삐에제에에뜨’도 있었지만 역시 임팩트는 이쪽.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김혜자의 헌정 드라마와도 같았던 <눈이 부시게>는 올해 초반을 빛낸 명작이었다. 마지막 내레이션은 주제와도 같았다. “내 삶은 때로는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저기 가볼까?

프로그램은 새로울 것 없다지만 배경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tvN <스페인 하숙>의 산티아고 순례길
차승원과 유해진, 배정남이 운영하는 하숙집에 묵게 된 손님들은 순례길 여정을 결심한 저마다의 일화가 있었다. 스페인의 근사한 경관보다 고단하지만 그만큼의 평화를 얻은 듯한 그들의 표정이 순례길에 대한 관심을 모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JTBC <비긴어게인3>의 암스테르담
광장에 울려 퍼지던 태연의 목소리는 암스테르담을 다른 색채로 물들였다. 크고 작은 운하로 이어진 도시의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더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멤버들이 묵었던 숙소. 호숫가 바로 옆에 위치해 매일 아침 물비늘이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며 커피를 즐길 수 있다.

 

SBS <캠핑클럽>의 경주 화랑의 언덕
이효리와 이진이 바위에 걸터앉은 채 맞이한 일출은 벅차오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들이 다녀간 후 소수의 사람들만 찾던 화랑의 언덕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명소가 되었다고. 숨어 있던 절경의 발견이다.

 

드라마의 장르

| 스릴러, 추리, 범죄 |
OCN <왓쳐>, <미스터 기간제>, <보이스3>, <타인은 지옥이다>, <구해줘2> / KBS <저스티스> / MBC <나쁜 형사>
OCN은 올해도 스릴러를 쏟아내며 장르물의 명가라는 타이틀을 지켰다. 지상파 드라마 또한 조금씩 장르물을 시도 중.

| 메디컬 |
SBS <닥터탐정>, <의사요한>, <닥터 프리즈너>
수작으로 꼽히는 <의사 요한>과 각각 추리물과 스릴러의 요소를 넣은 <닥터탐정>과 <닥터 프리즈너>로 메디컬 드라마의 계보를 이어갔다.

| SF, 판타지 |
넷플릭스 <킹덤> /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날 녹여주오>,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호텔 델루나>
<호텔 델루나>가 12%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게임 속으로 들어간 현빈, 박신혜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고, K-좀비물의 주역인 <킹덤>의 화제성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킹덤>은 시즌 2를 내년 3월에 공개할 예정이다.

| 정치, 사회 |
tvN <60일, 지정생존자> / JTBC <보좌관> / MBC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더 뱅커> / OCN <달리는 조사관>
<60일, 지정생존자>와 <보좌관>은 정치를, <더 뱅커>는 은행권 바탕의 사내 정치를 다뤘다. 노동 환경을 담은 드라마는 우리 모두를 되돌아보게 했다.

 

기묘한 케미

작품을 돋보이게 한 드라마 속 케미.

JTBC <눈이 부시게>의 김혜자(김혜자 & 한지민)
하나의 역할을 나이 차 나는 두 사람이 연기했다.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혜자는 작품을 이끌어가는 축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김혜자는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SBS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남궁민) & 선민식(김병철)
서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연합을 맺는다. 어제는 적이었는데, 오늘은 내 편이다. 피 튀기며 대립각을 세우던 두 사람이 이해관계로 손을 잡을 때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KBS <동백꽃 필 무렵> 염혜란(홍자영) & 노태규(오정세)
옹산 최고 브레인 자영과 지질하지만 결코 악인은 아닌 태규는 현재 드라마 시점에서 이혼한 상태. 하지만 “드리프트는 빼박이지”라는 대사처럼 이들의 케미는 이혼 후 타오르기 시작했다.

 

OCN <타인은 지옥이다>의 윤종우(임시완) & 서문조(이동욱)
이들이 마주칠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슴을 조이는 일촉즉발 케미.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윤종우와 서문조의 갈등은 후반부로 갈수록 절정을 이뤘다.

 

새로운 예능

두 칼럼니스트가 뻔하디뻔한 예능 속에서 빛난 예능 두 편을 골라냈다.

<구해줘 홈즈>, 민달팽이의 환상을 자극하는 쇼의 광채와 슬픔
하다못해 두꺼비도, 달팽이도 집이 있는데, 사람이 자기 살 집 한 채, 방 한 칸 구하는 게 어쩌다 인생 프로젝트가 되었는지. <구해줘 홈즈>는 대한민국의 팍팍한 부동산 현실을 파고드는 주택 정보쇼다. 집이 필요한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서 요건에 맞는 집을 구해준다는 설정의 <구해줘 홈즈>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모은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에 와서 온갖 집을 구해보았다는 김숙과 박나래 두 여성 메인 MC의 노하우가 빛을 발하고, 대결이라는 포맷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어느새 일요일 밤의 안정적 시청률을 확보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쇼의 큰 주인공은 집과 거기 살 사람들이다. 서울에 갓 취직한 새내기 직장인을 위한 원룸, 아이들과 함께 산책할 숲세권을 원하는 가족, 작업실 겸 거주공간을 찾는 목수 파트너 등,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의뢰인들이 이 쇼의 결을 풍성하게 한다. 시청자들은 여기 나오는 어떤 인물들에게도 이입할 수 있고,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집들의 면면을 온라인 쇼핑하듯 찾아볼 수도 있다. 그중 단연 화제가 된 건 제주 애월의 복층 빌라. 보증금 500에 연세 800, 그리고 풀옵션이라는 놀라운 가격과 편의성을 보여준 이 집은 제주 1년 살기의 꿈을 꾸는 도시인들에게 환상 같기도 했다. 또, 서울 지사에 발령받아 월세 5000달러의 집을 찾는 미국 가족을 위한 미션은 고급 주택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쇼가 끄는 인기의 이면에는 빠듯한 예산으로 최대의 공간을 찾아야 하는 삶의 고난이 어려 있다. 집에 대한 냉철한 평가에는 실질적 효용이 있지만, 거기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평가기도 하다. 이런 조그만 집에 어떻게 살아. 이런 계단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선택이나 조건에 대한 비하가 될 수도 있다. 무주택자에게 집세 받는 게 목적인 비실용적 건축을 고발하는 건 의미 있지만, 그 안의 삶을 늘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노홍철 씨는 구옥의 매력 좀 그만 강조하시길. 집은 취향을 위한 공간만이 아니라, 살기 위한 공간이라는 데 초점을 맞춰주시길. – 박현주(소설가) 

 

꽃길이 아닌 내 길을 간다, <퀸덤>
처음에는 방송국 놈들이 이번에는 또 무슨 장난을 치나 싶었다. Mnet의 장난질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면모가 있는데, 난데없는 비극으로 끝난 국민 프로듀서 사태에서 우리의 미침은 가히 절정에 다다랐었다. 어쩌면 우리는 10대 시절부터 재능 갈취와 노동 착취를 견디고 견뎌 기어코 꽃길에 탑승하는 아이돌 서사에 매몰되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이제는 문화를 가장 잘 안다며 접근하는 이 사기꾼 놈들에게 두 번 다시 당하지 않으리라 결심하던 찰나에 <퀸덤>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멀쩡하게 활동 잘하고 있는 걸그룹들이 굳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지만, 거기에 ‘컴백 전쟁’이니 ‘파격적인 정면승부’니 하는 요사스러운 홍보도 볼썽사나웠다. 예전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은근히 부추겼던 ‘캣파이트’를 걸그룹에게서도 원하는 방송국의 속내가 엿보여 거북하기도 했다. 이런 프로그램 관심도 주지 않을 것이다. 안 보면 그만이다… 생각했으나 지난 인생의 과오와 마찬가지로, 이번 턴에도 방송국 놈들에게 지고 만 것이다. 처음 부득불 <퀸덤>을 보았던 목요일 밤이, 방송을 거듭할수록 감정과 감각의 축제가 되었다. 순위 발표는 김빠졌으되, 방송 자체는 흥할 대로 흥한 초유의 사태.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누추했던 프로그램의 취지를 극적으로 살린 건 전적으로 출연진의 공로다. 경연 무대가 본인의 팀보다 별로였던 팀 하나는 꼭 선정해야 한다는, 누가 Mnet 아니랄까봐 만들어놓은 장치에도 불구하고 참가 팀들은 서로를 아끼며 존중하는, 프로의 태도를 보여줬다. 논란을 만들지 않으려는 조심성이라기보다는 같은 업계에서 영광과 상처를 공유하는 동료에 대한 예의와 우정으로 보여 더욱 찡하고 든든했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태도는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프로다움이란 결국 무대에서 드러나야 한다. <퀸덤>의 경연은 길이 남을 무대를 여럿 남겼다. AOA의 ‘너나 해’, 오마이걸의 ‘Destiny’, (여자)아이들의 ‘Lion’ 등은 케이팝의 걸그룹들에게 꽃길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들은 AOA 지민의 랩 가사처럼 꽃이 되길 거부하고 나무가 되려 한다. 꽃길을 걷기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 한다. 이토록 더 이상 걸그룹이 아닌, 아티스트의 퍼포먼스가 불꽃놀이처럼 터졌던 목요일 밤의 비밀정원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케이팝에 다섯 번째 계절이 온 것이다. 컴백 전쟁이고 나발이고, 그런 것은 모르겠고. <퀸덤>에 출연한 여섯 팀의 강건한 미래를 응원할 따름이다. – 서효인(시인) 

 

THIS IS COMPETITION

올해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업 앤 다운으로 평가했다.

미스트롯 – UP
선정성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2019년 오디션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인 18.1%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송가인이라는 슈퍼스타를 발굴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퀸덤 – UP
참가한 6팀 모두 미션무대를 그간 보여주지 못한 매력을 십분 발휘하는 기회로 삼았다. 우승은 마마무에게로 돌아갔지만 사실상 모든 팀이 위너.

고등래퍼3 – DOWN
이영지의 우승은 멋있었지만 이전 시즌들에 레전드 무대로 불리는 기억에 남는 무대와 음원이 없었던 것도 사실.

쇼미더머니8 – DOWN
이미 다 알아서 문제다. 지원자, 심사위원, 경연 과정과 편집도 너무 익숙해지며 지루해졌다.

 

악인열전

드라마의 다양한 인간 군상 중 악인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의 악인 3인을 뽑았다.

서문조(이동욱)|OCN <타인은 지옥이다>
훈훈한 치과의사인 듯 보이던 304호의 정체는 탐미주의 살인마였다. 에덴고시원에 군림하며 집요하게 종우(임시완)를 주시하는 눈빛은 소름 끼침 이상의 감각을 선사했다. 이동욱의 새하얀 피부가 섬뜩한 느낌을 더했다.

 

선민식(김병철)|SBS <닥터 프리즈너>
엘리트 의사 집안 출신의 교도소 의료과장. 자신의 이익에 따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처세를 달리하던 그의 모습은 극의 긴장감을 더했다. 타인에 대한 불신이 커져만 가는 시대, 우리와 가장 닮은 얼굴을 한 올해의 악인.

 

카네키 마사유키(박병은)|OCN <보이스 시즌3>
존경받는 인권운동가의 다른 얼굴은 악질적 범죄를 일삼는 사이코패스였다. 친절한 미소를 짓다가 혼자 남겨지는 순간, 살의에 가득 찬 눈빛으로 돌변하던 모습은 드라마의 명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