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하온
김하온은 지난 1년간 변할 만큼 변했고, 앞으로 좀 더 변할 작정이다.

톱은 트리플 RRR 바이 분더샵(Triple RRR by Boon the Shop). 팬츠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신발은 프라다(Prada). 네크리스는 크롬 하츠(Chrome Hearts).

셔츠는 베트멍 바이 분더샵(Vetements by Boon the Shop). 재킷은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팬츠는 디스퀘어드2(Dsquared2). 신발은 알렉산더 맥퀸. 장갑은 자라(Zara). 반지는 펜디(Fendi).
세 번째 만남이네요. 딱 일년이 지났고.
네, 아까 얼굴 보자마자 기억 났어요. <얼루어>로 옮기셨네요.
덕분에 또 만났죠. 하온의 회사는 여전히 하이어뮤직이죠?
저는 아직 회사를 옮기고 뭐 그런 생각은 아예 안 하고 있어요.
그럼 그동안 잘 지냈어요?
(한참 생각하다가) 아니요. 제 기준에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냥 형식적으로 던진 인사인데 이렇게 나오면 오늘 얘기가 좀 달라져요.
잠깐만요. 좀 혼란스러워요. 지난 1년간 신인상도 2개나 받았고, 와우. 운동도 시작했어요. 아버지에게 자동차도 사드렸고, 가족과 함께 살던 남양주에 집도 해드렸어요. 그런 거 보면 아주 잘한 건 맞죠.
‘잘 지낸 것’과 ‘잘한 것’은 다른 의미일까요?
제 생각에는요. 잘 지냈다는 건 무탈하게, 그러니까 제가 좋아하는 환경 안에서 잘 쉬고, 잘 먹고 하면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여유가 있었냐는 거거든요. 잘 지냈다고 반갑게 말씀드리면 좋을 텐데,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어쩌면 균형이 맞지 않았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해요.
맞아요. 균형과 속도가 맞지 않았다고 할 수 있어요. 쉬는 날에도요. 멍하니 소파에 앉아서 몸은 쉬고 있는데 머리는, 마음은 쉬지 못할 때가 더 많았어요. ‘아, 빨리 앨범 만들어야 하는데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저 사람들은 저렇게 빨리 앞에 가버렸는데, 난 어떡하지? 나는 가족을 돌봐야 하고, 그러려면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심장이 막 빨리 뛰어요. 컴퓨터로 치면요. 모니터는 꺼져 있는데 본체는 계속 돌고 있는 상태죠.
그새 집안을 책임지게 됐나 봐요?
어느 날부턴가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일을 그만 하시더라고요. 형은 아직 학생이고요. 처음엔 좀 의아했죠. ‘아버지가 왜 일을 안 하시지, 그래도 되나’.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집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저뿐인 거예요. 그때 그냥 내가 우리 가족을 책임져야 하나 보다 생각했어요. 아버지 평생 꿈이 딱 2개였대요. 하나는 벤츠 타는 거고 나머지 하나는 백수 되는 거. 제 덕분에 그 둘을 다 이뤘다고 행복해하시는데요. 고맙다고 막 그러시는데, 기분 좋더라고요. 저는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린 아들이니까요. 감사한 삶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어요.
무겁거나 무섭진 않아요?
‘지금’을 유지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 때요. 저는 뭐 하나를 할 때 시간이 드는 타입이거든요. 가사를 쓰든, 사람을 만나면서 친해지든. 이제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빨리, 균일한 속도로 쉬지 않고 뭔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겼어요. 그래야 잊히지 않는다는 게 저와 회사의 생각이거든요.

니트는 오프화이트(Off-White). 팬츠는 8 몽클레르 팜 엔젤스(8 Moncler Palm Angels). 신발은 나이키 X 오프화이트(Nike X Off-White). 네크리스는 메종 마르지엘라.
스무 살이 됐죠. 열아홉과 꽤 달라요?
자유롭죠, 훨씬. 자주 가진 않지만 클럽에 간다거나, 특히 새벽에 PC방, 찜질방을 편하게 갈 수 있는 건 진짜 마음에 들어요.(웃음) 제가 진짜 놀란 게 뭔지 아세요? 즐겨 하는 게임이 있는데요. 현실의 돈을 게임상의 돈으로 바꾸는 거 있잖아요. 작년까진 그 절차가 너무 복잡했단 말이에요. 근데 올해 생일이 딱 지나니까 5초 만에 가능해졌어요. 그때 ‘이야, 어른 할 만하네’ 그런 생각 했어요.
보통의 스무 살과 완전히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한 삶을 동시에 살고 있네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에요. 주위에 나랑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이 좀 있다면 힌트라도 얻을 텐데, 전혀 없으니까요. 전부 다 직접 부딪혀서 경험해봐야 하니까 어렵죠.
차라리 누군가 명쾌하고 단순한 답을 주기를 바랄 때도 있어요?
겁쟁이처럼 들리겠지만 누가 시키는 대로 하고 싶기도 해요. 그럼 오히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온 씨 마음대로 해주세요”라는 말이 요즘은 제일 어렵고 무서워요.
자꾸만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커지면 어떡해요?
전에는 그런 감정이 들면 최대한 떼어내려고 노력했거든요. 근데 이제는 그 마음을 이렇게 관찰하곤 해요.
어떤 관찰이죠?
지금 드는 슬프고,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잘 기억해뒀다가 내가 하는 일에 써먹어야겠다. 그런 의미의 관찰이요.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이거를 없애거나 떨쳐버릴 순 없더라고요. 그럴 바엔 차라리 내게 왜 이런 마음이 생기는지를 생각하고, 거기서 뭘 읽어내거나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어요. 저 되게 생산적이지 않아요?(웃음)
어른의 말처럼 들려요. 어릴 땐 안 좋은 상황이 닥치면 거기에 빠져서 허우적대거나, 도망쳐버리고 마는데, 어른은 어떻게든 현실적으로 해결한다잖아요.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으니까 스스로.
저도 그런가 봐요. 성장통이라고 생각할래요. 내가 또 이만큼 자라고 있나 보다. 새로운 무대로 가려나 보구나.
그건 좋은 마음이네요. 피처링에 참여한 곡 말고, 올해 지금까지 김하온의 이름으로 나온 노래는 <꽃>과 <BwB>이죠?
아, 그거밖에 없다니 너무 슬프다. 근데 저 이제부터 그걸 안 하기로 했어요. 적어도 음악적으로는요. 사람들이 원하는 거에 나를 끼워 맞추는 거요. 제가 원하지 않으면 안 하려고요. 최대한. 딱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말만 할 거예요. 그렇게 안 하면 터져버릴 것 같더라고요.
언제부터 그 마음을 먹었어요?
올해 초에 나온 <꽃> 이후부터인 거 같아요. 그전까지 나온 노래는 완전한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좀 이기적으로 보이더라도 ‘내 것’이라는 주인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 자신감이 없었어요. 여러 의미에서요.
그럼 7월 7일 김하온의 스무 살 생일에 나온 노래 <BwB>는 어때요?
떳떳해요. 저 자신에게요. 애썼다. 고생했다. 스스로 말해줄 수 있어요. 그건 내 것이에요 내 것. 이제 그렇게 할 거예요. 그대로 멈춰 있길 바라지 않아요.

재킷은 가렛 바이 I.M.Z 프리미엄(Garrett by I.M.Z Premium). 선글라스는 젠틀 몬스터(Gentle Monster). 네크리스와 반지는 베르사체(Versace).
술은 좀 마셔요?
아직 즐기진 않아요. 굳이 찾아 마시는 일도 없고요. 같이 있는 사람들이 권하면 분위기에 맞게 좀 마시는 정도?
취할 때도 있어요?
당연하죠. 저는 취하면 주로 업되는 편이긴 한데, 그날 분위기에 따라 오히려 진지해질 때도 있고요. 파티에서는 춤을 열심히 추게 돼요.(웃음) 그리고 이제 그건 알 것 같아요. 사람들이 왜 술에 기대고 의지하는지요. 별 생각이 없어지고 좀 멍해지더라고요. 걱정도, 고통도 사라지고 무뎌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맛에 술을 마시나 봐요.
요즘 누구에게 기대고 의지해요? 하이어 뮤직의 형들?
맞아요. 형들이 지금 제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작업도 함께 하고, 행사도 다니면 되게 든든해요. 내 형들이고, 내 사람들이고 그런 마음이 막 들거든요. 무적이 된 것처럼 절대 망하지 않을 거 같은 느낌이요. 제가 이렇게 강해지는 것 같아요.
어떤 형이 그렇게 좋아요?
재범이 형과 식케이 형은 지금 저에게는 어떤 기준이라고 할 수 있어요. pH-1형도 좋아해요. <Halo> 앨범 들어보셨어요? 와 진짜 경외심이 들어요. 진짜 잘해요. 휴.
이 한숨은 뭐죠?
몰라요. 그렇게 잘하는 사람 보면 좀 그래요.
누가 김하온의 인터뷰를 나보다 잘 썼을 때의 기분 같은 건가? 참 잘한다, 인정하지만 뭔지 모를 경쟁과 짜증과 질투와 반성이 동시에 밀려오는?
으, 제가 원래 진짜 안 그런 애였거든요.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우직하게 내 스탠스를 잘 유지하던 애였는데, 어느 순간 그 친구가 사라졌어요. 지금은 잘하는 사람 보면 딱 말씀하신 그 감정이 다 들어요.
여전히 스탠리 큐브릭 좋아해요? 스무 살이 되면 그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꼭 보겠다고 했잖아요.
당연하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인걸요. 하하하. 봤지, 봤지. 봤어요! 진짜 미친 거 같아요.(웃음) 뭐랄까, 특유의 이상한 게 있잖아요. 캐릭터, 스토리, 미장센 전부요. 물론 영화가 그리는 폭력이나 도덕성에 관한 건 말 그대로 역겨운 부분도 있지만 여러모로 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큐브릭은 지독한 완벽주의자였대요.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이 치를 떨며 도망칠 정도로. 하온은 어때요?
저는 절대 아니에요.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뭐든지 흐르는 대로 놔두는 편이죠. 함께 일하는 누군가 실수를 해도 그러려니 해요. 그냥 그게 운명이었나 보다. 넘어가는 편이거든요. 저는 완벽주의자는 될 수 없을 거예요. 일단 게으른 편이라서요.(웃음)
김하온 하면 또 명상인데 오늘 명상의 ‘ㅁ’도 안 꺼냈어요. 이제 명상은 그만뒀어요?
솔직히요. 아직 하긴 해요. 근데 확실히 전처럼 열심히 하진 않아요. 그러니까 내년에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땐 정말 안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제가 어떻게 변할지 저도 몰라요.
오늘 인터뷰를 영화로 치고 ‘스무 살 여름의 하온이 어디까지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한 줄 평 어때요?
그럼 저는 <풀 메탈 재킷> 과 <샤이닝> 이라고 말할래요. 큐브릭의 영화 중 가장 혼란스럽잖아요. 지금의 저처럼요. 물론 둘 중 하나만 고를 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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