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시간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공평하게 적용된다. 자식이 나이 들수록, 부모 역시 더 나이 들어간다. 조금씩 달라지는 부모를 지켜보는 것 또한 인생의 과정이다. 모두 그렇게 어른이 된다.
책 읽기와 나이
어머니는 한때 상당한 독서가였다. 해마다 쫓기듯 이사를 다녔지만 그때마다 유리문이 5단인 책장과 거기에 이중으로 꽂혀 있던 책은 여전히 우리 가족을 따라 제 몸을 옮겨왔다. 어머니는 퇴근길에 참고서나 필기구 따위를 함께 파는 동네 서점에 들러 아무런 책이나 사 왔던 것 같다. <닥터 노먼 베쑨>이나 <세계사 100장면> 같은 책에서 <토지>나 <혼불>, <아리랑> 등의 대하 장편소설이 책장 가운데 위풍당당했지만 김용의 무협소설 <사조영웅전>의 복제판인 <영웅문>도 한곳에 숨죽이듯 번뜩이며 있었고, <홀로서기>나 <동의보감> 같은 베스트셀러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전집보다 어머니의 책장에 있는 책을 한두 권 빼 읽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 나에게 나름대로 괜찮은 점이 있다면 그때의 독서 덕이 클 것이다. 가령 <김약국의 딸들>을 더듬더듬 읽어나간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기억 자체가 나에겐 일종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이제 책을 읽지 않는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꽤 두터운 안경을 쓰는데, 책을 읽기가 쉽지는 않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틈만 나면 어느 책이든 펼쳐 들던 당신의 모습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텔레비전에서는 하필 종편 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그런 방송을 보는 중장년 세대의 지적인 게으름과 논리적 부박함을 지적하고 조롱하기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동시에 그 대상이 내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머니는 책을 읽던 사람이다. 어머니는 박경리와 최명희와 박완서의 소설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란 말이다.
책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일이 가능할까? 최근에 어머니는 책 몇 권을 보내달라 하였다. <역사저널 그날> 세트였는데, 그 방송에 시인이 패널로 출연하는 걸 보고, 우리 아들이 나오면 더 잘할 텐데 하는 마음으로 보다가 책까지 궁금해졌다고 한다. 아니요, 어머니, 더 잘할 수 없고, 섭외도 없어요. 그러나 책은 보내드릴게요. 인터넷 서점으로 후딱 결제했고, 책은 택배로 도달할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사는 동네에는 더 이상 서점도 없고, 어머니의 친구 중에는 더 이상 독자라 할 사람이 없으며, 어머니의 또래 중에 꾸준히 책을 내는 작가도 별로 없다. 나이가 든 건 어머니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책을 읽지 않게 된 게 어머니의 잘못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책 읽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늘 저녁에는 다시 박완서를 읽어볼까 한다. 같은 날 저녁 어머니도 안경 너머 조선시대 어디 즈음을 읽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서효인(시인)
엄마는 어려진다
불과 며칠 전에 물었다. “엄마, 나는 엄마 딸 맞아?” 과년한 딸이 기대한 답은 “그럼!”이었으나 엄마의 답은 의외였다. “왜?” 왜? 왜 묻는지 모르시나요? 물론 엄마가 모를 리 없다. 그 ‘왜’에 담긴 함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 딸이다’라는 것일 게다.
엄마와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다. 철이 들기도 전에 알아챈 것, 오히려 늦게 알았으면 좋았을 것. 어려서는 그 ‘다름’에 대해 잘 몰라 내가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고집해서 하고 있다는 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게 의심한다 해도 겉으로는 내색하고 싶지 않은 나의 고집이 엄마와 나를 힘들게 했다.
엄마는 너무 세심하고 섬세하고 부끄러움이 많고 모든 것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데 반해, 나는 너무 뻔뻔하고 무덤덤 무신경한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이런 것. 십여 년 전 엄마가 유방암 수술을 하면서 한쪽 가슴을 들어냈다. 암이란 것에 신경이 곤두서긴 했지만 그전에도 다른 병으로 오랫동안 아팠던 엄마이기 때문에, 암을 이겨낸 엄마가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엄마가 회복기에 접어들자 나는 엄마가 좋아할 만한 여행을 계획했다. 일본 온천. 엄마가 목욕은 좋아하지만 가슴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같이 탕에 들어가는 건 꺼려하실 듯하여 가족탕이 있는 료칸을 예약했다. 그렇게 엄마와 딸만 둘이 들어가는 탕 탈의실에서 딸이 훌러덩 옷을 벗어 젖히고 있는데, 엄마가 큰 타월을 몸에 감싸더니 뭔가 주섬주섬 꾸리기 시작했다. “엄마 뭐 해?” 내 앞에서 타월을 두르고 옷을 벗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아 물었다. “아, 옷 입어.” 탕에 들어가야 하는 엄마는 옷을 벗지 않고 갈아입고 있었다. 온천에 가기 며칠 전부터 엄마는 가슴을 가릴 수 있으면서 탕에도 들어갈 만한 옷을 만들고 계셨던 것이다. 물을 먹어 무거워지지 않으면서 가슴만 가릴 수 있는 옷. 타월을 벗은 엄마가 입은 건 때밀이 수건으로 만든 가슴 가리개였다. 딸에게도 엄마는 그 사라진 가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대체 왜 남도 아닌 딸에게까지 보일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 뒤로도 몇 번 엄마와 온천에 갔으나 엄마는 다양한 가슴 가리개를 착용했다. 때론 속치마를 가슴까지 올리거나 수영복을 입거나.
그러고 또 십여 년이 지나 엄마의 암보다 다른 것을 걱정해야 할 때가 왔다. “누나, 빨리 한국에 들어와야겠어.” 동생의 전화에 울면서 비행기를 타고 내리자마자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나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엄마 옆에서 며칠 동안 거의 깨어 있는 상태로 쪽잠을 잤다. 그러고 새벽 다섯 시쯤 됐을까, 엄마가 뒤척이며 뭔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 엄마, 엄마 뭐 해줄까요 물었다. “목욕하고 싶다.” 삼십 킬로의 엄마를 안고 욕실에 가서 병원복을 벗겼다. 바지 먼저, 그리고 윗도리. 엄마의 가슴을 봐도 되는 건지 아닌지 몰라 샤워기의 물만 틀고 있을 때 엄마가 말했다. “결국 너에게도 보였네, 끝까지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 순간 내가 막 호탕한 척하며 깔깔 웃었다. “엄마! 이게 뭔 대수라고!”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부끄러움이 그냥 딸 앞에서 든든하고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었던 것을 이제는 안다. 노모란 돌봐야 할 아이일 거라 생각했으나 결국 나는 나이가 들어도 엄마 앞에서는 어린애이고, 엄마는 그대로인데 내가 나이 들고 변한 건지도 모르겠다.
– 이현수(media 2.0 편집장)
엄마와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다. 철이 들기도 전에 알아챈 것, 오히려 늦게 알았으면 좋았을 것. 어려서는 그 ‘다름’에 대해 잘 몰라 내가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고집해서 하고 있다는 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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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허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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