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 그 향기
작가 4인의 인생 책과 글귀,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주하게 될 어떤 향기.
“나는 그들과 함께 시와 소설을 즐기고 커다란 쇼핑백에 담아온 내 시집을 1달러씩에 팔았다.”
<Just kids>+풋풋하지만 당당한 파리의 향
유지혜 | 여행 작가
스물셋 첫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샀다. 집에 두고 여행을 다녀와서 읽었는데, 센세이셔널하고 예술적인 패티 스미스의 인생 이야기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원래 전혀 모르던 책이었고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은 게 아니라서 더 좋았다. 날것의 느낌, 풋풋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당당함이 느껴지는 파리의 향기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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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진한 기억을 초대한다는 것. 그것이 책과 향의 공통점이다.
“오, 아름다움아. 너는 깊은 하늘에서 왔어, 심연에서 왔어? 악마 같으면서도 신 같은 네 눈길은 은혜와 죄악을 닥치는 대로 퍼부으니 너는 포도주와 같구나.”
<악의 꽃>+무거움에서 상쾌함으로 넘어가는 향
김은비 | 시인
시를 보여주기도 전부터 독자를 집어삼키는 힘을 가진 책이다. 프롤로그 페이지인 ‘독자에게’를 읽을 때 나는 감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 안에 어떤 시가 나를 살게 하기도, 죽게 하기도 하겠다고. 짐작할 수 없으나 그에게 기꺼이 나를 내어주고 싶다고. 사랑의 무게를 받아들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듯이 특유의 무거움에서 상쾌함으로 넘어가는 향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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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나를 완전해지게 하는 책이나 향기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들은 내면을 지배하는 힘을 가졌으니까. 나의 경우 마음이 불안정할 때 향을 피우고 좋아하는 책을 펼치면 완전한 보호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각자 그런 책과 향기에 대해 떠올려보았으면 좋겠다.
“헤프지 않은 나의 웃음, 아껴둔 나의 향기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중 ‘제비꽃연가’ +나의 20대를 떠오르게 하는 새파란 향
김경현 | 시인
따뜻한 바닷바람 사이로 아이들이 뛰놀고, 하늘은 드높아서 책을 읽기 좋은 날이었다. 어느 날 누군가 내게 읽어주었던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속 ‘제비꽃연가’를 다시 펼쳐보았다. 헤프지 않았던, 아껴두었던, 모두 당신의 것이었던 나의 20대와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새파란 향이 떠오른다. 쉽게 사라지는 듯하지만 섬세하게 남아 있는 향기가 퍽 마음에 들었던 그때.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여서, 누구보다 작은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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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이란 가볍지만 은은하게 퍼져 길가에서 쉽게 지나치는 제비꽃을 닮았다. 누구에게는 가장 작은 꽃일 제비꽃이 가장 큰 기쁨이 되기도 하듯이, 숨겨둔 나의 향기는 모두 당신의 것이기도 하듯이.
“그리고 방금 또 다른 교훈이 떠올랐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는 것. 그것이 남는 장사다.”
<마더 나이트>+캐모마일을 품은 샤프한 곡선의 향
태재 | 시인
흠모하던 선배의 추천으로 접하게 된 <마더 나이트>, 그리고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 그 선배에게서 처음 맡은 아련한 캐모마일 향과 커트 보네거트가 가진 샤프한 곡선의 느낌은 이런 이야기의 도움을 받았겠구나 하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나와 나의 작업에 적절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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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향은 부조리한 것들에 유머를 투척하는 저력을 가졌다. 그 유머가 비록 쓴웃음일지라도. 단순히 매혹적이거나 진하지 않은, 어딘가 쎄한 이야기 말이다.
- 에디터
- 황혜진
- 포토그래퍼
- Jung Won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