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민의 숲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된다. 드라마 <계룡선녀전> 역시 그렇다. 이 드라마에서 배우 윤현민은 코믹 연기로 색다른 변신을 시도한다. 아직도 대중에게 보여줄 게 많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숲을 닮았다.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는 어느 울창한 숲에서 시작한다. 나무를 베던 나무꾼 앞에 사슴과 선녀가 나타난다. 11월, tvN에서 첫 방송을 앞둔 <계룡선녀전> 역시 이 이야기를 토대로 했다. 바리스타로 환생한 선녀가 남편과 함께 선녀 옷을 찾는 여정을 담은 코믹 판타지 로맨스로, 배우 윤현민과 문채원이 호흡을 맞춘다. 지난해, 윤현민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본 이라면 코믹 연기를 하는 그가 잘 상상이 되지 않겠지만 사실 그는 이미 2014년 <연애의 발견>에서 코믹한 연기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후 그의 진가는 다음 해 <내 딸 금사월>에서 빛을 발한다. 이 드라마로 윤현민은 그해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터널>의 김선재로, <마법의 법정>의 여진욱으로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온 그가 보여줄 또 다른 모습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본방 사수할 수밖에 없겠다.
지난해는 장르물 속에 푹 빠져 살았죠. 배우 입장에서는 새로운 코믹 로맨스물이 기다려졌을 것 같아요.
완전히 색다른 장르를 만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하려니까 조금 걱정이 되더라고요. 뮤지컬이나 <연애의 발견> 이후 몇 년간 코믹한 연기를 하지 않아서 부담이 컸어요.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항상 좋아하는 이성을 만나러 가는 설레는 기분을 유지하며 연기를 하자는 것이었어요. 그게 바로 코미디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굳이 힘 줘서 웃기려고 하기보다는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어요. 잠은 잘 못 자고 있지만요.
<계룡선녀전>은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했죠.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요?
웹툰을 먼저 읽고 당황했어요.(웃음)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은 독특한 구조라서 이야기로는 재미있는데 드라마로 표현됐을 때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됐거든요. 하지만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에 확신을 가졌어요.
판타지적 요소가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인가요?
촬영을 시작한 지는 벌써 두 달째인데 극의 절반 정도만 촬영했어요. 그만큼 공들여 찍기도 했고, CG 작업을 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호랑이와 여러 신들도 등장하니까요. 판타지적 요소 외에도 원작과는 다른 배우들의 입체적인 캐릭터를 눈여겨봐주세요. 여주인공인 문채원 씨와는 거의 매 신 붙어서 촬영하고 있어요.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호흡도 척척 맞죠. 화기애애한 현장 덕에 촬영장 가는 길이 늘 즐거워요.
주인공과 ‘싱크로율 100%’라는 반응도 있던데요?
본래 일년에 두 작품 이상은 꼭 해왔는데 올해는 이 한 작품뿐이에요.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다는 뜻이에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신 만큼 고심해서 연기하고 있어요. 극중 ‘정이현’은 모태솔로 생물학과 교수예요. 원작과는 다르게 결벽증까지 있죠. 유별나게 깔끔을 떤다는 건 제 실제 모습을 조금 반영한 결과이기도 해요.(웃음) 많은 마니아층이 형성된 원작이다 보니 내용과 결말은 존중하되, 해석은 조금 다르게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실제 모습과 캐릭터가 비슷한 점이 많으면 연기를 하기가 더 쉽나요?
어떻게 하든 극중 캐릭터에는 제 실제 모습이 묻어날 수밖에 없거든요. 말투나 억양, 습관 같은 것들요. 좀 더 자연스럽게 제 모습이 캐릭터에 녹아들 수 있게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 경우는 캐릭터 자체보다 주변 사람들의 기운에 많은 영향을 받아요. 예를 들어, <마녀의 법정>이라는 법정물을 할 때는 그 드라마 분위기에 맞춰 평소 말투도 차분해졌고, <터널>을 찍을 때는 일상에서도 거친 성격이 되더라고요. 이번 작품은 장르의 특성상, 쉬는 시간에도 스태프들과 재미있는 농담도 하고 장난도 많이 쳐요. 현장에서 천대받는 걸 좋아해요.(웃음)
배우는 캐릭터를 잘 만나야 한다고들 해요. ‘인생 캐릭터’는 무엇이었어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모든 캐릭터에 애착이 가지만, 한 번 더 만나고 싶은 캐릭터는 있어요. 5년 전 드라마 <무정도시>의 김현수 역을 정경호 형과 한 번 더 연기해보고 싶어요. 그때는 스스로 너무나 부족하기도 했고, 지금 이 시점에 그 역을 맡는다면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거든요. 지금이라면 좀 더 멋지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요.
인터뷰 때마다 정경호 배우가 자주 등장하는데,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아무리 같은 업계 동료라도 속 이야기를 터놓는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경호 형은 마치 친형 같아요. 유일하게 제 가정사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한 달 동안 함께 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해요.
함께 어디를 다녀왔어요?
뉴욕과 스페인이요. 저녁에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왜 더 우리를 적극적으로 기용하지 않는 거야!’ 하는 류의 수다죠.(웃음)
낯선 곳에 가면 마음이 환기되나요?
난생처음 보는 공간 속에 있으면 감수성도 풍부해지고, 새로운 국적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영감도 받아요. 앞으로도 아무 계획 없이 경호 형과 떠나고 싶어요.
영감이 꼭 새로움으로부터 탄생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오래된 것들 중 반복해서 들여다보는 것이 있나요?
영화 <노팅 힐>을 셀 수 없이 봤어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예요. 스물여섯 살에 연기를 시작했을 때 훨씬 더 잘하고 싶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항상 내 서른 살이 궁금했죠. 거울을 보면서 여기에 조금 더 주름이 있으면 좋을 텐데, 싶어서 얼굴도 많이 찡그리고 다녔고요. 그런데 막상 서른이 되니까 달라지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또다시 멋진 40대를 맞이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죠. 연륜에서 오는 멋이 있잖아요.
휴 그랜트처럼요?
네, 맞아요. 친한 선배 중에 허준호 배우가 있는데, 제 중고등학교 직속 선배예요. 가끔 만나면 준호 선배의 주름진 얼굴이나 목소리 같은 것들에 감탄하곤 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멋있어요. 저도 꼭 그렇게 나이 들고 싶어요.
배우로서 자신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하기 전에 야구선수의 삶을 살았어요. 그래서 괜한 자격지심이 있었어요. 연기 공부를 하지 않은 야구선수 출신의 배우가 어떻게 연기를 하냐는 식의 말도 들었고요. 그 덕에 대본에 엄청난 집착을 했어요. 몇 배로 노력해야 했죠. 그게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 같아요. 매 작품 좋은 호응을 얻었으니까요. 계속해서 운이 따라준다면, 그 운을 충분히 담을 수 있는 그릇의 배우가 되어야 하겠죠.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새로운 역할이 있어요?
<노팅 힐> 같은 따뜻한 로맨스물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제가 평소에 말을 하지 않으면 사납고 차가운 성격일 거라고 오해하시더라고요. 그에 어울릴 만한 거친 누아르물도 만나보고 싶어요. 이왕이면 영화가 됐으면 좋겠고요.
그 차가운 이미지는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완전히 깨졌어요. ‘다정한 살림꾼’이던데요?
주변에 친한 지인들이 적극 추천해서 <나 혼자 산다>에 나가게 됐어요. 제 실제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동안 너무 날카롭고 센 역할들만 맡아와서요. 다만 작가님과 미팅하면서 이런 말은 했어요. 내 인생 정말 재미없는데 괜찮겠냐고,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하시라고.(웃음) 그럴 만한 게 전 집 밖에 자주 나가지 않아요. 빨래하고 청소하고 침구를 가는 게 전부인데 그걸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던데요?
그건 제 결핍에서 파생된 취미가 아닐까 생각해요.(웃음) 야구선수였기 때문에 내내 숙소 생활을 했거든요. 늘 땀 냄새가 가득한 공간에서 남자들끼리 엉켜 살았어요. 그후에는 자연스레 내 공간에 대한 욕심이 생겼죠.
최근 집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어요?
코스트코에 가서 스팀 청소기를 샀어요. 물걸레의 일종인데 뜨거운 열기가 나와요. 깔끔하게 바닥을 청소할 수 있죠.
시간이 흘러 집이 변화한 만큼, 윤현민도 변화했나요?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예전에는 촬영 현장에 가면 제 대본만 쥐고 벌벌 떨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60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최대한 화기애애한 촬영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잘 아니까, 배우의 덕목이란 연기력은 당연하고, 주변 사람들도 잘 챙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죠. 이게 가장 큰 변화예요.
먼 훗날에는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요?
어떤 옷을 입혀놔도 잘 어울리는 배우,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배우요.
당장 11월에 방영을 앞둔 <계룡선녀전>은 잘될까요?
시청률에 대한 부담이 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에요. 나라는 배우를 선택해줬을 때, 감독님이든 제작사든, 나를 지켜보는 대중이든, 좋은 성과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연기에 임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현장에서 제 모든 걸 걸고 연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대해주셔도 좋아요.
-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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