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을 파는 뷰티 놀이터
그저 제품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닌, 써보고 즐기고 체험하는 다양한 뷰티 놀이가 가득한 그곳. 화장품 매장으로 놀러 가는 여자들이 늘고 있다.
“건대 더샘으로 옮긴 구 스킨푸드 동자신 만나러 놀러 같이 가실 분!” 최 근 한 뷰티 커뮤니티에서 흥미로운 게시글이 올라왔다. 웬 화장품 매장에 동자신? 자세한 내용은 이렇다. 예전 스킨푸드 매장에 있던 직원인데, 고 객들의 피부 습관이나 상태를 정말 잘 파악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앞으로 피부가 이렇게 변할 거라 예측까지 해줘, 급기야 동자신이라는 별명을 얻 게 되었다고. 그런 그가 건대 더샘으로 옮겼으니 만나러 가자는 것이다. 이 게시글에는 순식간에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스타를 방불케 하는 뷰티 컨설턴트의 존재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이 글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사람들이 화장품 매장에 ‘놀러 간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어때서요? 저는 친구 만날 때 일부러 파미에 스트리트에서 약속을 잡아요. 거기에 뷰티 매장이 많거든요. 새로운 화장품도 구경하고, 메이 크업 수정도 할 겸 뷰티 매장에서 친구를 기다려요.” 20대 후반의 후배 역 시 뷰티 매장을 내 집처럼 드나든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뷰티 매장의 문 턱이 낮아진 배경에는 올리브영과 롭스, 랄라블라, 부츠와 같은 H&B 스 토어가 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화장품을 구입하려면 으레 백화점이 나 로드숍을 방문했는데, 원스톱 쇼핑 트렌드가 확산되며 편집숍 형태의 뷰티 매장이 대세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대표주자는 단연 올리브영. 올 리브영에는 기발한 콘셉트의 중소형 뷰티 브랜드에서부터 인기 해외 상 품, 그리고 백화점 브랜드 제품까지 한 매장에 4천5백 개에서 많게는 9천 개에 달하는 다양한 상품군을 갖추고 있어, 한곳에서 여러 제품을 비교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다. “그냥 구경하기 좋아요. 무엇보다 점 원이 귀찮게 안 하죠.” 잘 대접하고자 하는 백화점 매장과 달리 스스로 구 경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캐주얼한 분위기가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부 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 실제로 H&B 스토어 대부분 에는 제품을 자유롭게 테스트해볼 수 있는 셀프 체험바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즘에는 광고나 입소문보다 실제로 내가 써보고, 나한 테 잘 맞는지와 같은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뷰티 전문 편집숍 시코 르 역시 ‘뷰티홀릭들의 놀이터’ 콘셉트를 앞세우며 론칭 1년 반 만에 코엑 스, 용산 등 지점을 넓혀가며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시코 르는 단순한 제품 테스트 공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쁘띠 메이크업이나 눈썹 왁싱, 블로우 드라이 등 다양한 뷰티 서비스를 제공해 보다 적극적 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점이 눈을 사로잡는다. 또한 메이크업한 본인의 모 습이나 친구들 또는 연인과의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다양한 포토존도 마련 되어 있어 인기가 높다.
최근 이렇게 뷰티 제품 구입에 ‘체험’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게 되면 서 백화점 명품 브랜드 혹은 국내 로드숍 브랜드 매장 역시 ‘체험형 콘텐 츠’로 채워지고 있다. 그중 이슈가 되고 있는 곳을 꼽자면 가장 최근 오픈 한 신세계 강남 파미에 스트리트의 ‘아르마니 뷰티 스토어’다. 전 세계에 서 서울에 최초로 공개해 주목받았는데, 직접 촬영이 가능한 셀프 슈팅 스튜디오, 현장에서 체험한 본인의 메이크업 하우 투를 저장할 수 있는 커넥티드 미러 등 디지털과 뷰티를 접목한 콘셉트가 반응이 좋다. 제품에 원하는 문구를 새겨주는 인그레이빙 서비스 또한 이곳만의 시그니처. 지 방에서도 방문할 정도로 서울의 핫 스팟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화여 대 인근에 위치한 라네즈 플래그십 스토어 역시 빠뜨릴 수 없다. 키 포인 트는 다른 매장에선 구입할 수 없는 마이 립 슬리핑 마스크. 아홉 가지 향 중 한 가지를 골라 제품을 직접 제조하고, 20가지 디자인의 패키지 라벨 을 선택해 나만의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다. 최첨단 뷰티 디지털 체험을 원한다면 네이처컬렉션 강남점으로 향하자. 메이크업을 한 상태로 기계 앞에서 사진을 촬영하면 오늘 나의 메이크업을 분석해주는 ‘인공지능 메 이크업 평가 앱’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한다. 카메라가 얼굴을 인식할 수 있도록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귀 뒤로 넘기고 정면을 본 후 촬영 버튼을 누르면 끝! 내추럴, 러블리, 스모키 중 그날 나의 메이크업 콘셉트를 선택 하면 베이스, 아이, 블러셔, 립 등 총 다섯 가지 항목별로 메이크업을 얼마 나 잘했는지 점수가 합산되어 나오고, 이에 따른 추천 제품과 전문가 코 멘트도 받아볼 수 있다.
이니스프리는 유동인구가 많고 친근한 장소, 예를 들어 지하철역, 영화관, 터미널, 대학 캠퍼스 등에 그린 라운지를 오픈했다. 보다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제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의도 지하철역에 위치한 이니스프리 그린라운지에서는 구매에 대한 부담 없이 약 600종 의 상품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중앙대학교 캠퍼스 안의 그린라운지는 메이크업과 네일 케어 서비스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져 하루 평균 20명 정도가 면접이나 소개팅 전 메이크업 점검을 위해 서비스를 받는다고. 특 히 모든 테스터 제품을 매일 수시로 세척, 소독해 청결 관리에 각별히 신 경 쓰는 점은 일반적인 H&B 매장에서 널브러진 화장품, 꼬질꼬질한 퍼 프, 사용하기 꺼려지는 브러시 등에 눈살을 찌푸리던 뷰티 구루들의 우려 를 불식시켜준다.
그렇다면 실제로 체험이 구매로 이어질까? 100% 장담은 할 수 없다. ‘쇼 루밍(showrooming)’족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 을 살펴본 후 실제 구입은 최저가 검색을 통해 온라인에서 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쇼루밍족도 증가하는 추세다. 온라인 쇼핑몰에 서 성분이나 리뷰 등을 자세히 살펴본 뒤,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 나에 게 실제 어울리는지 테스트해보고 구매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잘 못 된 선택을 할 확률을 줄이고 배송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운이 좋 으면 더 싸게 사거나 샘플 등을 얻을 수도 있답니다.” 중요한 건 오감으로 경험한 체험은 손가락으로 스크롤하며 습득한 정보보다 강력하고 여운 이 오래간다는 것이다. 거기에 즐거움이라는 놀이 감각과 내가 주체가 된 적극성까지 더해진다면 더더욱! 매장에 오래도록 머무를수록 고객의 지 갑이 열리는 기회는 더 많아지기 마련이다.
- 에디터
- 서혜원
- 포토그래퍼
- Sally Song, Courtesy of Giorgio Armani Beauty, Chicor, Innisfree, Laneige, Nature Col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