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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록

누구나 매일 하루 두세 번은 음식을 먹게 된다. 생존을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다. 여기 세 권의 책은 각각의 시선으로 음식을 만드는 공간, 여행에서의 음식, 직접 재배하고 만들어 먹는 삶의 기쁨을 발견하고 전한다. <도쿄의 부엌>은 음식이 만들어지는 가장 일상적 공간인 부엌을 들여다본다. 핀터레스트, 요리 블로그에서 보던 예쁜 부엌을 기대한다면, 조금 놀랄지도 모른다. 가구 카탈로그에서 막 나온 듯한 부엌 대신 지극히 현실적인 얼굴을 한 103곳의 부엌이 있다. 매일 쓰는 양념이 쌓여 있고, 좁은 공간에 많은 물건을 수납하려 애쓰며, 아수라장 틈틈이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발견하는 일상적 풍경에 짧은 인물 소개를 곁들였다. 자식들을 출가시킨 후 샤미센을 배우고, 혼자 반주를 곁들이는 것이 취미인 80대 할머니의 부엌처럼, 다들 이렇게 살고 있구나 또는 이렇게 살면 좋겠다 싶다. 그런 삶의 온기가 느껴진다. <여행자의 식탁>은 여행 중에 ‘차린’ 음식이다. 푸드스타일링 컴퍼니 ‘차리다’의 부부가 홋카이도, 하노이, 치앙마이, 제주에 머물며 그곳의 음식을 맛본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와 직접 만들어낸 음식을 담았다. 최대한 레시피를 쉽게 전달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10년 넘게 자연에서 텃밭을 일군 노선미 작가의 그림과 글이 실린 <먹이는 간소하게>는 음식이 주는 단순한 기쁨을 전달한다. 이국적이거나 화려한 재료는 거의 없다. <리틀 포레스트>의 현실판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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訃告

지난달, 이 페이지에 황현산 선생의 <사소한 부탁>을 소개했을 때만 해도 그것이 선생의 마지막 부탁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점점 희귀해지는 이 시기에 황현산 선생은 몇 안 되는 스승이었다. 트위터 계정으로 동시대에 소통할 때에도 자신의 문장과 생각을 잃지 않았다. 편찮으시다는 소식이 들린 후 마감 이틀 전 선생의 부음이 전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스승을, 뛰어난 작가를 잃었다. 미국 문학의 거장인 필립 로스 역시 올해 5월 세상을 떠났다. 뇌졸중에 걸린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을 기록한 1992년 작 <아버지의 유산>은, 20여 년이 흘러 자신의 이야기가 되었다. <사실들>은 소설 속에 자신의 조각을 많이 반영하기로 유명했던 그가 남긴 유일한 자서전이다. 열정과 혼돈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던 자신의 청년 시절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두 작가는 떠났지만 책은 남았다. 냉혹한 생과 사에서 문학이 주는 유일한 위안일지 모른다. 그 한 장, 한 장 속에서 작가는 영원히 숨쉰다.

 


NEW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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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마도>
정확하고 선별된 정보를 전달하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는 개인적으로 즐겨 보는 잡지다. 그때마다 만나는 김연수의 칼럼은 빠트릴 수 없는 즐거움이다. 4년 동안 연재한 글에 새로운 글을 더했더니 한 권의 책이 완성되었다. 저자 김연수 출판 컬처그라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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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를 위한 고대 로마 안내서>
‘역사 덕후’라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상상해보기 마련이다. 고대 로마라면 어떤가? 기꺼이 타임 코스모스에 탑승하고 싶지 않을까? 마치 현대 로마를 여행하듯 고대 로마를 안내하는 안내서다. 진짜로 생생하다니까. 저자 필립 마티작 출판 리얼부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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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소설가 가와카미 미에코가 하루키를 인터뷰한 기록. 2015년부터 네 차례에 걸친 긴 인터뷰를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궁금한 작가 하루키를 발견해낸다. 특히 현재의 하루키가 궁금한 사람에게 권한다. 저자 가와카미 미에코 출판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