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언니가 추천하는 인생템’, ‘SNS 대란템’.구독한 적 없는 콘텐츠가 피드에 출몰한다. 광고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더 보러 가기’를 누르게 만드는 파워풀한 디지털 버즈, 신(新) 구전 이야기.

0817-074-1

지난 3월 올리브영은 물에 적시면 부풀어 올라 윤광 메이크업이 가능하고 그냥 사용하면 커버력이 좋아지는 젤리킹 스펀지를 출시했다. 하지만 겉보기엔 어느 브랜드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모양새다. 올리브영 브랜드 마케팅팀 한창희 팀장은 뷰튜버 라뮤끄와의 콘텐츠 콜라보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녀의 추천과 더불어 채널 구독자에게 샘플링을 했어요. 이것이 연계 바이럴로 확산되며 ‘되게 핫하다던데’, ‘꼭 써야 한다던데’로 퍼져 있었죠.” 젤리킹은 단숨에 올리브영 판매 1등을 찍었고 매달 1억5천만원씩 매출을 올리는 효자 아이템이 됐다. 이 작업을 진행한 건 뷰티 전문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 뷰스 컴퍼니. 이 회사의 CEO 박진호 대표는 요즘 가장 만나기 힘든 사람 중 하나다. 그에게 얄밉도록 ‘잘 띄우는’ 비법을 물으니 “번역을 잘할 뿐”이라고 답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언어가 다르거든요.” 브랜드가 좋은 제품이라고 아무리 자랑을 해봤자 소비자는 알아듣지 못하고 들으려고도 안 한다. “그들이 누구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지켜봐요. 결속력이 강한 커뮤니티를 통해 붐을 일으키는 것도 효율적인 방법이죠.” 타깃에 맞는 언어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20대에겐 ‘안티에이징’이 아니라 ‘탄력’이라고 해야 ‘구매하러 가기’를 누른다. 더 자세한 건 영업 비밀이다.

인플루언서 스폰서드 콘텐츠는 2018년 8월 현재도 여전히 가장 핫한 마케팅 화두다. 그리고 동시에 계륵이다. 요즘 들어 효율이 부쩍 낮아진 탓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100을 뿌리면 너끈히 150을 거뒀죠. 하지만 올해 들어 70을 거두지 못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어요. 이러한 변화가 무섭도록 빨리 찾아왔고요.” 뷰티 컨설턴트, 퍼플 패치 최대균 대표는 그 원인을 올라버린 인플루언서들의 몸값과 줄어든 오가닉 콘텐츠에서 찾는다. 한때 디지털 바이럴은 작은 브랜드에게 등대 같은 존재였지만 지금은 자본이 없으면 접근이 불가한 그림의 떡이 됐다. 일부 진짜 인플루언서들을 제외하면 그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도 마케터들을 곤란하게 한다. 게다가 상품 자체에만 집중하는 기획은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지만 연속성이 없어 매번 돈이 들어간다. 브랜드 자산이 되기 어렵다는 거다. “H&B 스토어를 둘러보세요. 작년 이맘때 SNS 대란템, 없어서 못 판다던 제품 중 몇 개나 살아남았나요? 실제로 지금은 전혀 버즈가 일어나지 않아요.” 한창희 팀장은 브랜드 정체성을 함께 알리는 것은 느리지만 필수적인 마케팅이라고 말한다.

최근 프레스티지 브랜드 S의 홍보 담당자는 잠시 외면했던 ‘전통적’ 언론 채널 기사와 블로그 후기 작업에 다시 열을 올리고 있다. 검색을 했을 때 상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분석 때문이다. 박진호 대표 역시 핵심은 신뢰라고 강조한다. “콘텐츠 도달률이 곧 구매율은 아니에요. 웃기고 재미있는 콘텐츠도 많이 만들어봤지만 구매로 이어지는 포인트는 결국 믿음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전문성에서 미래를 찾고 있죠.” 그렇다고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인플루언서 & 커뮤니티 마케팅, 스폰서드 광고를 멈출 수는 없다. 이제 그건 기본이니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SNS 체험단도 운영해야 한다. 큰 이슈가 되는 건 아니지만 비교적 적은 돈으로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안 하면 불안하다. 이래저래 뷰티 브랜드들, 참 분주하다.

얼마 전 “별명 짓기가 제품 기획의 7할이 된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가 ‘옛날사람’이라 놀림을 받았다. 그래도 이것만은 기억하면 좋겠다. 한 번 치고 빠지는 상품 ‘대란’은 계속해서 더 자극적인 ‘신박함’을 요구한다. 그것들 대부분이 새로운 기획일 뿐 새로운 제품은 아니다. 그러니 디지털 전단지가 제공하는 리뷰 롤러코스터를 즐기며 미래에 충성을 바칠 제품과 브랜드를 탐색하는 안테나도 함께 세워두길 권한다. ‘화장품 다 거기서 거기, 이젠 정착해야겠다’ 싶은 때가 오면 내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받아들일 ‘가치 있는 하나’를 선택해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