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주사 한 방?

팽팽한 이마와 쭉 뻗은 콧날, 앵두 같은 입술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시술의 고통을 참는다. 하지만 그 주사기가 누구 손에 쥐여져 있는지 살펴본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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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이 집을 나서면 그때부터 시작이죠. 출근 시간에 맞춰서 집으로 가요.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요!” 비벌리힐스에서 미용 시술 전문의로 활동 중인 나드카니의 이야기다. 그는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가서 필러를 시술한다. 평범한 주부부터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명인이나 배우까지 고객층은 다양하다. ‘미용 전문의’라고 불리긴 하지만, 사실은 단지 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을 뿐. 심지어는 본인 소유의 번듯한 병원도 없다. 사실 미국에서 미용 시술 전문의는 특별한 연수 기간을 거칠 필요가 없어서, 이 의사가 얼마나 미용 시술 경험이 있고 숙련된 사람인지 증명할 길이 없다. 나드카니는 보톡스 시술을 수천 번 해본 덕에 얼굴 근육 조직을 잘 안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아직도 업계에서 시술로 인한 부작용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금이 오가는 산업이고 진료를 원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미용 시술 전문의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고도 전했다.

곧 카페에서 “커피는 아메리카노, 필러는 레스틸렌으로 하시겠어요?”라고 물어올지도 모른다. 음, 사실 카페는 아직은 이른 것 같다. 하지만 이미 호텔이나 교외 컨트리 클럽, 혹은 타투숍, 심지어는 집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가 됐다. 마이애미 등지에서는 이미 자선 모금 행사나 론칭 행사에서 보톡스를 경품처럼 나눠주곤 한다. LA에서 피부과 의사로 일하는 제시카 우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타투, 발가락 반지, 보톡스!’라고 쓰인 간판을 본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아마 한 사람이 간판에 쓰인 세 가지를 다 하는 건 아닐 거라면서도, “그 간판에 쓰인 것도 참 이상했지만, 보톡스나 필러 시술을 받고 같은 병원에서 자궁암 검사까지 받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산부인과에서까지 이런 시술을 행하는 현상을 꼬집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치과에서도 완벽한 미소 라인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보톡스와 필러 시술을 하곤 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시술을 통해 눈가 주름을 펴거나 입술을 통통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동시에 관련 법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하곤 한다. 보통 시술을 해준다고 하면 ‘뭐 비슷한 자격증 같은 거 있지 않겠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글쎄. 미국에서 보톡스나 필러 제품을 구입하려면 의료 자격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시술은 따로 요건이 정해져 있지 않아 누구나 할 수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의료법에 의해 의사 면허를 소지한 자만 시술할 수 있다). 필러나 보톡스 시술에 대한 수요는 날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미국 성형외과 의사 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시술 횟수는 700만에 이르렀고 메드 스파(의료적인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스파) 산업도 39억7천만 달러 정도의 시장 규모를 자랑하며 성장 중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규제를 위한 당국의 법적 기준이 딱히 없는 실정이다. 뉴욕시 피부과 의사인 세잘 샤는 보톡스와 필러가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해 붐이 일기 시작했고 정부의 규제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용실에서도 보톡스를 놓아주기도 하고, 전문의라고 믿었던 시술자가 알고 보니 간호학 박사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이런 일은 우리 나라에서도 왕왕 발생한다!). 결국 고객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 시술을 받는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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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하자. 입술 필러 후 수포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처방약을 알려달라고 환자가 시술자에게 문의했을 때, 처방법을 잘 모르거나 알려주지 않는다면? 이때 바로 의심을 해야 한다고 피부과 의사 세잘 샤는 조언한다.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대처 방법을 모른다면 애초에 제대로 된 시술이 가능할 리 없다. 아마 법망을 피해 몰래 보톡스나 필러를 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피부과 의사 제시카 우는 ‘터키산 보톡스 할인가 제공’과 같은 팩스를 종종 받는다고 했다.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믿기 힘들 만큼 저렴한 제품의 경우 실제 보톡스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필러도 마찬가지다. 제시카 우는 한 환자의 얘기를 꺼냈다. 간호대학을 갓 졸업한 친구가 필러를 시술해주었는데 방문한 환자의 윗입술은 아랫입술보다 세 배는 커져 있었던 것. 미국산 주비덤 필러라고 산 제품이었지만 제품 포장지에는 버젓이 그리스어가 쓰여 있었다. 미국산이 아닌 제품이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얘기는 그나마 양호하다. 뉴욕시의 피부과 의사 도리스 데이를 찾은 여성의 사연은 더욱 심각하다. 환자의 윗입술은 울퉁불퉁했고 거의 매달려 있다시피 부어 있었다. 입술 필러인 줄 알고 구입했지만 그녀가 산 것은 시술 후 처치도 힘든 실리콘이었다. 이렇게 부작용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은 많아지고 있지만 근원을 알 수 없는 주사제를 시술하고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를 반기는 의사는 많지않다. 보스턴에서 피부과를 운영 중인 라넬라 허르치는 “주입된 물질의 성분을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치료를 할 수 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미용실은 물론이고 메드 스파라 하더라도 어떤 주사제를 사용했는지 관련 의료 내역을 전혀 알 수 없으니, 의사도 별 수 없는 노릇이다.

치과의사도 전문의에 속하지만 치과에서 미용을 위한 주사제를 시술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우리나라에서도 피부과와 치과 간의 영역 다툼으로, 치과의사의 미용 시술 범위를 어디까지 한정해야 하는지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미국 치과 협회에서도 이런 애매모호한 규정을 딱히 바로 잡으려고 하진 않는다. 이에 따라 일부 치과 의사들은 입술 보톡스나 잇몸 미소 치료 등 미용적 목적을 위해 필러와 보톡스를 시술하고 있다. 뉴욕대의 구강악안면외과의 부교수 바실리키 칼리스는 “규제 개선이 없다면 소비자 판단의 몫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시술자의 교육 이수 여부나 경력 기간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시술을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술자에 따라 수년간의 경험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주말만 투자하면 되는 간단한 트레이닝 과정을 밟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한 미용 아카데미에서의 보톡스, 필러 특강은 주말 단 이틀이면 끝난다. 비전문의의 경우에도 주말 사이에 주사제 시술법을 배울 수 있다. 교육 강사가 늘 전문의도 아니다. 단 이틀만이라니. 과연 주말 이틀을 써서 마스터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피부과 의사인 도리스 데이는 “몇 년째 필러와 보톡스를 시술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어요”라면서 “인간의 복잡한 얼굴 근육을 주말 이틀 동안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요. 혈관을 건드릴 수도 있고, 시신경을 건드려 시력을 잃게 할 수도 있어요. 과하게 많은 양을 주사하면 얼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수도 있죠”라고 말했다. 즉, 시술을 원한다면 반드시 피부과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충분히 숙련된 전문의이자 증명된 시술자들이니까요.”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필러나 보톡스에 대한 두려움 없이 너무나 쉽게 시술을 받고 있다.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 들지 않나? 피부과 의사 허르치도 시상식만 끝나면 누가 시술을 했더라는 이야기만 떠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간단해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의료적인 행위입니다. 게다가 얼굴에 시술하는 거라고요. 하지만 부작용을 겪지 않는 이상 요즘 사람들은 시술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게 문제입니다.” 꼭 시술을 받길 원한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재료를 이용해 시술하는지 먼저 꼼꼼하게 따져보고 결정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시술에 대한 수요는 날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용실에서도 보톡스를 놓아주기도 하고, 전문의라고 믿었던 시술자가 알고 보니 간호학 박사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고객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 시술을 받는지 알 길이 없다.

    에디터
    엘리자베스 시걸(Eliabeth Siegel)
    포토그래퍼
    Horacio Sali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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