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LOVE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응축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아마도 시가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 중 하나일 거다. 네 명의 젊은 시인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띄우는 연서를 보내왔다. ‘여기 내 마음속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아이유, ‘밤편지’ 중에서)

서윤후

2009년 스무 살의 나이에 <월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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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린 당신의 등을 어루만질 때, 나는 당신을 번역한다는 생각을 해.
눈금 없이 불어난 피로를 헤아리다가,

우리만 아는 유머를 킥킥거리며 지나던 골목에 들어서기도 하지.
어쩌면 마음이 계속 재잘거리는 걸 듣는 것만 같아.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퀴즈쇼를 보는 기분이 들어.
맞힐 것도, 틀릴 것도 많은 어리석은 내가 엎드린 당신 옆에서

할 수 있는 건, 함께 엎드리는 것뿐이지만.
깍지 낀 두 손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감싸 안았지.
엎드려 우는 사람의 표정이나, 낮게 드리운 어둠을, 사람들 속에서 다친 마음을,
막 태어난 진심을 서로에게 보내는 조심성을 우리는 끌어안는다.
나는 당신의 등에 몰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몰랐을 때 알아줬으면 하는 것을 알면 좋겠어.
아주 가까운 미래 정도는내다볼 수 있어서 자주 뜻밖의 장소에서 나타나고 싶어.

내가 필요할 때, 당신이 필요할 때, 포개어진 두 손으로 빌어보는 일이하나 있어.
사랑이 우스워지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웃었으면 좋겠다고.
엎드린 당신이 일어나 내 이름을 부를 때까지,

나는 잠시 간절해지곤 해.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는 지점이 있나요?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줄 때, 호감을 많이 느껴요. 눈앞에 보일 때만 잘해주는 게 아니라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함께했던 장면을 떠올리며 보이지 않은 것도 헤아리는 게 사랑의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연애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친구 같은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 이게 불가능하단 걸 깨달았어요. 그럼 그냥 친구로 지내는 게 맞아요.(웃음) 항상 만났던 친구들이 ‘내가 친구냐’라고 빈정댈 때, ‘친구는 아니지’라고 변명했지만 결국엔 서로 원하는 게 달랐다고 생각해요.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게 중요해요.

연애를 하는 게 글을 쓰는 데 영향을 주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어떤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고 그 사람이 좋아지는 기간에는 시가 밝아지거나 시의 채도가 높아지곤 했어요. 하지만 근래에는 영향을 아예 안 받아요. 오늘 기쁜 일이 있었다고 해서 시가 기쁘게 표현되진 않고, 평소에 경험하는 것들을 시 쓰는 자아에게 보내면 그 자아는 자아대로 알아서 작동하는 것 같아요. 이제 각각의 자아가 분리된 느낌이에요.

사랑을 하게 되면 풍부해지는 감정이 당연히 창작에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까 하고 싶지 않은 말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쓴 시를 봐도 내 언어가 아닌, 사랑이 조작한 언어라는 의심을 하게 되거든요. 연인과 헤어지고 난 후에 보면 그 시는 내 시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더욱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사랑한다’는 말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줄 수 있나요?
두 사람만의 유머나 암호가 생기는 것.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 함께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두 사람만 웃는 거요. 100명 안에 있어도 그 두 사람만이 웃을 수 있는 것. 그게 사랑의 언어죠.

최지인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최근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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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게 살고 싶지 않아,
오늘과 내일이 달랐으면 좋겠어.
먹고사는 거 때문에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
가끔은 비싼 음식 나눠 먹으며, 바다가 보이는 펜션에서, 야경이 멋진 호텔에서, 쓸데없는 이야기하염없이 하다가 아침을 맞이하면 좋겠어.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아쉬워하지도 않고,
십 년 뒤 너와 이십 년 뒤 내가 무사했으면 좋겠어.창가의 식물처럼 쪼그라든 내가 너에게 말했다.

자신 없다, 앞날이 깜깜하다, 이제 예전 같지 않다,우린 어떻게 될까? 네 뒷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곤 했어.닮아가는구나, 익숙한 사람이 되었구나 생각했어.그런 시간들, 어제오늘 같은 날들,
되돌아보면 많은 일이 있었구나 하는.

파도 앞에 선 사람처럼 두 손 꼭 잡은 연인 있다.그들에게도 미래가 있을 거다,
믿는 마음, 손안에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는 지점이 있나요?
저를 이해해주고 그게 너의 탓이 아니라고 얘기해주는 순간에 사랑을 느껴요. 누군가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순간이 저에겐 가장 소중해요.

연애를 하는 게 글을 쓰는 데 영향을 주는 편인가요?
사람들의 모습이나 말, 제 평소 생활을 통해서 글을 쓰는 편이기 때문에 확실히 영향을 받아요. 누군가와 교제하고 만난다는 건 나의 생활 일부를 공유하는 거니까. 특히 상대를 내밀하게 알다 보면 내가 몰랐던 걸 알게 되고, 그런 깨달음이 작품에 종종 드러나요.

연애를 할 때 스스로가 가장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고, ‘바르게 살아야겠다,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좋은 연인을 만난 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행운을 갖게 됐으니까 놓치지 않기 위해서 혹시라도 부정 탈 만한 일을 하지 않아요. 업보를 만들거나 누군가의 원한을 사서는 안 되기 때문에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죠. 잘 지켜내고 싶으니까.

시인의 연애는 어때요? 평범한가요?
어릴 때, 미술하는 친구랑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화가가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면 그 사람이 뮤즈가 되는 것처럼 연인이 나를 그려주기를 바랐어요. 예술가인 연인을 갖게 되는 건 그런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자기가 소재거나 자기가 등장하는 작품을 갖게 되는 거죠. 저도 시집에 많이 드러나요. 좋았던 기억보단 싸웠거나 서로 힘들었던 좋지 않은 기억을 더 많이 쓰는 편이어서 상대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저는 주변 사람들 얘기를 많이 써서 주변에 많이 물어봐요. ‘나 이거 써도 돼?’

 ‘사랑한다’는 말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줄 수 있나요?
‘나는 널 믿어’라고 말할 거 같아요. ‘널 믿고, 모든 건 잘될 거야, 나아질 거야’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한편으로는 상대가 잘되고 나아지길 원하기 때문에 더 믿는다고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구현우

2014년 <문학동네>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최근 시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에 참여했다.
작사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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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두 시를 기다려. 정오와 자정 모두를.
지금은 둘이 함께 와본 적 없는 카페에 앉아 있어.네가 없어도 나는 온전할 수 있을까?
이렇게 쓴맛이 진한 커피를 주문하고 싶었어.
가끔은 해가 뜨고 지고 눈이 내리고 비가 오는
그런 시간이 너를 포함하는 아름다움이나
기쁨과 슬픔이 아니기를 바라는 거야.
혼자 음악을 들으며 혼자 읽어야 좋은 책을 펼쳐.오롯이 타인의 사랑을 관음하는 것.
그러나 네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너를 생각하지않으려고 생각하면, 그것도 결국 너에 대한 생각이므로,열두 시는 나를 기다리지 않아.
평등해 보이는 테이블 그 위로 우리가 쏟아지고
곧 어느 한쪽으로는 흘러 넘치리라는 것.
알고 있어도 그것이 흐르는 순간에는
모자란 나를 들키게 되는 거지.
눈이 멀고, 귀를 닫고, 말을 잊고, 살아서 감각한다는 게믿기 어려운, 너는 나의 유일한 장르야.
열두 시를 잊어도 너는 오겠지.
몸과 마음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나의 거의 모든 것은 네가 되어버리는 거야.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는 지점이 있나요?
대화하면서 같은 순간에 웃을 때. 상대방과 나의 코드가 맞았다는 뜻이니까요. 그 이후에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이 궁금해져요. 또, 특별히 좋아하는 성향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 작업을 긍정해주고, 나도 상대의 작업을 긍정해줄 수 있을 때 사랑을 느끼는 편이에요.

사랑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예의.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말을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연인 사이에 어떤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참 어렵죠. 연인과 서로 존댓말을 쓰기로 한 적도 있었는데, 덕분에 싸우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연애를 하는 게 글을 쓰는 데 영향을 주는 편인가요?
헤어지고 나면 시나 가사가 압도적으로 나와요. 제가 쓴 이별 노래도 제 얘기인 경우가 많거든요. 명작은 헤어지고 나온다는 말도 있듯이 사실 사랑할 땐 시를 쓰는 일이든, 다른 어떤 일이든 집중하기가 힘들어요. 한창 행복할 땐, 그걸 글로 쓸 이유가 없잖아요. 눈앞에 있는 그 사람을 만나면 되고, 함께 이야기를 하면 되니까 따로 기록할 필요가 없다고 할까?

사랑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물이랑 비슷해요. 너무 불타서 날아가버릴 수 있으면서도, 한순간에 얼어버릴 수도 있는 거죠.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냥 흘러버리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사랑한다’는 말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줄 수 있나요?
지코의 노래 가사를 빌려 ‘나는 너 너는 나’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전혀 다른 사람인데도 나는 너인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는 순간, 그게 사랑이지 않을까?

박세미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최근 시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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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나를 뿌리치던 나의 게으른 영혼이당신의 손을 잡았군요일으켜주시겠어요?
만약 당신이 돌아선다면 내 영혼은주인을 잃어버린 개의 다급한 발처럼구름 속에 끼어있는 기린의 머리처럼한동안 열심히 슬픔을 지워야겠지만오늘은 부디,
내 영혼과 왈츠를 추어주겠어요?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는 지점이 있나요?
상대의 다정함에 끌리는 편이에요. 딱히 좋아하는 스타일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첫눈에 사랑에 빠져요. 제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동일하다면, 늘 거의 처음 만나고 바로 연애를 시작했어요. 오래 알던 친구와 사귀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거든요.

연애를 하다 보면 첫인상과 다른 경우도 많을 텐데.
늘 다르죠. 실제로 연애를 하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랑 너무나 다르지만 한번 사랑에 빠지고 나면 다른 건 다 포용해요. ‘내가 생각했던 거랑 다른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요.

연애를 하는 게 글을 쓰는 데 영향을 주는 편인가요?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평소와는 달리 연애를 하면 감정이 들뜨다 보니까 시를 쓰는 데 있어 좋은 영향을 주는 거 같은데 저는 좀 달라요. 영향을 엄청 많이 받지만, 그게 오히려 시 쓰는 데 방해가 되거든요. 시를 쓸 때 너무 차갑거나 뜨겁지 않게,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무심하게 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연애의 감정이 들어오면 그 무심함을 지키기가 힘들어요.

연애할 때 스스로가 가장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
가볍게 얘기하면, 외모가 가장 많이 달라지죠. 또 사랑에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보니까 상대가 생활의 중심이 돼요. 한편으로 그 점이 아킬레스건이에요. 쿨하고 무심하게 연애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고 그 사람과 만나는 시간이 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되어버리죠.

사랑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은 타이밍과 호르몬, 그 두 개가 합쳐졌을 때 가능한 것이에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사랑에 빠지는 타입이다 보니까 어떤 특정한 타이밍에 그 사람의 어떤 체취와 눈빛 같은 게 저의 호르몬을 자극하면 그때부터 사랑이 시작돼요. 오랜 친구에게서 그 사람의 어떤 좋은 점을 보고 만나는 것과는 확실히 달라요.

‘사랑한다’는 말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줄 수 있나요?
예전에 연애를 하면서 들었던 말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안았을 때 너무 나한테 정확한 두께야.’ 그게 사랑한다는 말로 들렸어요. 그 말이 저한테는 되게 강렬했어요.

    에디터
    정지원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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