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생긴 일 <1>
한 해의 마지막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문화와 예술은 여전히 우리 가까이에서, 그래도 살 만한 세상임을 말한다. 2017년, 우리가 누린 문화와 예술.
MOVIE
‘날으는’ 택시운전사
‘천만 배우’ 송강호는 <택시 운전사>로 다시 한번 천만 관객의 주역이 되었다. 2017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택시 운전사>의 관객수는 약 1천2백만 명.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취재해 세계에 알린 실존 독일 언론인 고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의 취재를 도운 택시 운전사 김사복의 이야기를 힌츠페터의 증언을 바탕으로 각색한 영화다. 김사복에서 모티브를 얻은 만섭은 송강호가, 피터 역은 토마스 크레취만이 맡았다. 실존 인물인지 확인할 수 없었던 김사복은, 영화가 개봉한 후 그의 큰아들이 나타나 실존인물임이 밝혀졌지만, 힌츠페터와 마찬가지로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제4회 사람 사는 영화제에서는 고 김사복 씨에게 ‘사람상’을 안겼다.
LONG GOODBYE
영화 <변호인>, <카트> 등으로 잊지 못할 장면을 남긴 배우 김영애가 4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쇠약해진 마지막까지 대중에게 병을 숨기고, 연기혼을 불태운 그녀는 평생 연기를 해온, 진정한 연기자였다. 제54회 대종상영화제는 그녀에게 특별상을 안겼다. 영화와 드라마, 예능을 종횡무진해온 배우 김주혁은 불의의 사고로 10월의 어느 날 우리 곁을 떠났다. 젊디젊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모두를 망연자실하게 했다. 촬영을 마친 영화 <독전>과 <흥부>가 그의 유작이 되었다. 늘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던 두 배우는 그렇게 긴 잠에 들었다.
올해의 박스 오피스
1 택시운전사 | 1218만 명
2 공조 | 781만 명
3 스파이더맨 : 홈 커밍 | 725만 명
4 군함도 | 659만 명
5 범죄도시 | 640만 명
6 청년경찰 | 565만 명
7 더 킹 | 531만 명
8 미녀와 야수 | 513만 명
9 킹스맨 : 골든 서클 | 494만 명
10 남한산성 | 384만 명
군함도가 남긴 것
올해 최고 기대작으로, 천만 관객을 넘보던 <군함도>는 개봉 전부터 시끄러웠다. 무려 2천여 개 상영관에서 개봉하며 영화 독과점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대형 배급사들의 작품이 몇 백 개의 극장을 선점해 영화 선택권을 빼앗아온 행태와 당장의 개봉 이익을 우선하는 극장에 지친 대중들은 집중포화를 쏟아냈다. 그 사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군함도>의 관객수는 650만 명에서 멈췄다.
OUT!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인 하비 웨인스타인의 스캔들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는 1979년 미라맥스를 공동 설립하고, 1990년대부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모든 영화와 제작, 배급을 맡은 인물이다. <굿 윌 헌팅>, <에비에이터>, <시카고>, <나의 왼발> 등 흥행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무수한 영화에 관여했다. 그가 소유한 와인스타인 컴퍼니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의 배급사이기도하다. 그러나 지난 10월 <뉴욕 타임스>가 배우 애슐리 주드 등과 관련된 성추행 전력을 폭로하면서 영화의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그의 추악한 일면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최초 보도 이후 할리우드 배우들이 줄줄이 그의 성추행을 증언했다.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아시아 아르젠토, 레아 세이두 등도 그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였다. 그 리스트는 100명 가까이 계속 늘어나는 중이며,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최하는 아카데미협회는 그를 완전 제명했다. <유주얼 서스펙트>, <아메리칸 뷰티>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배우 케빈 스페이시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인기 있는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에 출연 중인 그는 1986년 당시 14세의 미성년자 소년을 성추행했다는 폭로에 사과문을 올리며 자신의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했다. 이에 범죄 사실을 커밍아웃으로 덮으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비난이 거세다. 케빈 스페이시 역시 이후 새로운 피해자가 나타났으며,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를 시즌 6으로 취소한다고 발표했고,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도 폐기하겠다며 케빈 스페이시와 결별을 선언했다.
다양성 영화의 목록
올해 관객들의 선택을 받은 다양성 영화는?
1 <눈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뤘다. 일제강점기 속에서 비극을 겪게 되는 두 소녀를 김향기, 김새론이 연기했다.
2 <공범자들> MB와 박근혜 정권 동안 권력이 언론을 어떻게 장악했으며, 공영방송이 어떻게 제 기능을 잃었는지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로 26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3 <더테이블> 김종관 감독의 영화로 임수정,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가 한 카페에서 일어난 일상과 감정을 섬세하게 담았다.
MUSIC
역주행이 대세!
올해는 음원 차트 순위를 거슬러 올라가는 현상을 의미하는 ‘역주행’이 대세였다. 스타트를 끊은 건 어쿠스틱 듀오 신현희와김루트다. ‘오빠야~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혼자 끙끙 앓다가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얘기를 한다’라고 시작하는 이 노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의 애교 레퍼토리로 쓰이곤 한다. 2015년 2월에 출시됐으며 아프리카 TV에서 한 BJ가 부르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이별의 감성이 절절하게 녹아 있는 윤종신표 정통 발라드, ‘좋니’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6월 발매 후 차트 100위권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올라온 이 노래는 두 달 만에 결국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음원 차트 1위에 등극한 것도 모자라 뮤직뱅크에서는 2주 연속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반기는 남성 듀오 멜로망스의 ‘선물’이 차트를 장기 집권하고 있는 추세다. 시작은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이었다. 방송 출연을 통해 검색어에 오르내리기 시작하고, 여타 예능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쓰이면서 이 노래는 10월 중순, 마침내 차트 1위에 등극한다. 에픽하이, 트와이스 등 신곡의 공세에도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음악 외에 다른 요소들이 너무나 중요해진 요즘 가요계에 역주행하는 노래들의 활약은 듣는 노래의 가치가 여전함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이돌 기록제조기
여전히 아이돌은 성장하고, 팬덤은 더욱 공고해졌다. 올 한 해를 장식한 유의미한 기록들.
엑소는 4집 <The War>로 100만 장을 돌파하며 정규 1집부터 4개의 앨범이 연속으로 밀리언셀러를 돌파하는 ‘쿼드 러플 밀리언셀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각종 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쓸면서도 매년 자신의 기록을 꾸준히 경신하며 건재함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5월에 K팝 그룹 최초로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했다. 지난 6년간 저스틴 비버가 독식한 상을, 아리아나 그란데를 비롯한 쟁쟁한 팝스타들을 제치고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방탄소년단의 기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최근 발매된 <LOVE YOURSELF 承 ‘Her’> 앨범은 단일 앨범 최다 판매량인 120만 장을 돌파했고, 11월 19일에는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으로 꼽히는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에 초청받아 공연을 펼친다.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에 우리 곁에 돌아와 귀를 즐겁게 해준 아티스트들.
혁오 혁오는 2년 만에 첫 정규앨범 <23>을 발매했다. <무한도전> 출연 이후 첫 앨범인 만큼 대중의 기대 역시 높아진 상황이지만, 오히려 기존의 혁오 앨범을 관통하던 공허함과 염세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며 혁오만의 음악 세계를 공고히 했다.
검정치마 검정치마는 무려 6년 만에 3집 Part 1 <Team Baby>로 컴백했다. 정규 3집은 총 3가지 파트로 나뉘어 발매될 예정이며 현재 공개된 파트 원 앨범은 사랑을 테마로 하고 있다. 앨범 커버에 실제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을 사용해 그 의미를 더했다. 10곡으로 꽉 찬 앨범은 사랑을 담은 아름다운 멜로디로 가득하다.
에픽하이 <신발장>에 이어 3년 만에 11곡으로 꽉 찬 정규앨범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로 컴백한 에픽하이는 대중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했다. 아이유, 이하이, 오혁, 김종완 등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의 합류로 더욱 풍성해진 음악을 선보였다.
1년 돌아보기
가온 디지털 음원 차트 월간 1위를 차지한 노래.
1 1, 2월_에일리,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2 3월_태연, Fine
3 4월_아이유&오혁, 사랑이 잘
4 5월_싸이, I LUV IT
5 6월_권지용, 무제
6 7월_헤이즈, 비도 오고 그래서
7 8월_EXO , KoKo Bop
8 9월_우원재, 시차
GOODBYE GIRLS!
올해는 유독 걸그룹의 해체 소식이 많았다. 아이돌의 세대 교체는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지만, 이들의 행보는 멈추지 않는다.
1 소녀시대 티파니, 수영, 서현이 소속사 S M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을 택하며 인생 제2막을 열었다. 수영은 연기 활동에 집중할 예정이며, 티파니는 유학, 그리고 서현은 1인 기획사를 세우는 것이 가장 유력한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해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서는 멤버들과 논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 씨스타 씨스타 역시 7월 해체 이후 부지런히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다솜은 드라마 <언니는 살아 있다>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보라는 연기자 전향을 꿈꾸고 있다. 소유와 효린은 솔로 가수로 활동한다. 특히 소유는 성시경과의 듀엣 곡 ‘뻔한 이별’을 공개한 후, 연말에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동욱이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으로 합류했다.
3 원더걸스 원더걸스 멤버들은 해체 후 서로 다른 매력으로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 선미는 메이크어스와 계약 후, ‘가시나’로 컴백해 솔로 아티스트로 존재감을 뽐냈다. 예은 역시 아메바컬처의 첫 여성 아티스트로 계약, 솔로 앨범 <ME iNE>를 발표했다. JYP와 재계약을 택한 혜림은 현재 학업에 매진하고 있으며 유빈은 아직 별다른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STAGE
올해의 스테디셀러
스테디셀러는 오랜 시간 꾸준히 팔린 작품에 붙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다. 특히 올해는 유독 10주년, 20주년을 맞은 작품이 많았다. 지난 2월, 뮤지컬 <쓰릴미>는 2007년 초연 멤버인 최재웅, 김무열, 강필석 등과 함께 10주년 기념 공연을 열었다. 9년 동안 작품에 참여한 김재범, 에녹, 정상윤 등의 합류로 의미 있는 라인업을 선보였다. 뮤지컬 <쓰릴미>는 향후 2년간 작품 보완 작업을 거치며 무대에는 서지 않을 예정이다. 인디밴드 복스팝이 상금 1억을 걸고 열리는 오디션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리는 뮤지컬 <오디션> 역시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모든 배우가 직접 라이브 연주를 겸하는 콘서트형 뮤지컬의 시초로 올해 10주년 자축 공연에는 홍경민, 송용진 등의 배우들이 특별 출연했다. 대학로의 흥행 1순위 연극 <라이어>는 올해로 무려 2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며 진행된 <스페셜라이어>는 이종혁, 안내상 등 역사를 함께해온 배우들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문학은 무대를 타고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은 무대가 가장 사랑하는 소재 중 하나지만, 올해는 유난히 역사 속 문인을 조명한 작품이 많았다. 먼저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 예술단에서는 창작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를 다시 무대 위로 올렸다. 박영수와 온주완이 청년 윤동주로 열연했으며 특히 시대적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무대 구성이 눈에 띈다. 천재 시인 이상의 서거 80주년을 기념하는 뮤지컬 <스모크> 역시 힘을 보탰다. 개성 있는 발상과 표현을 선보인 이상의 대표작을 대사와 노래 가사에 절묘하게 담아내 많은 호응을 받았다. 올겨울 공연을 앞두고 있는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백석의 삶과 그를 사랑한 기생 자야의 이야기를 다룬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년 초연에 이어 올해 역시 약 스무 편이 넘는 백석의 아름다운 시가 가사와 대사에 담겨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1930년대의 문인단체인 구인회에서 모티브를 얻은 뮤지컬 <팬레터>도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입힌 모던 팩션 뮤지컬로, 구인회의 회원이었던 김유정, 이상, 김기림 등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 등장한다. 실제 문학 작품을 인용한 대사로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뉴욕에 진출한 첫 뮤지컬 뮤지컬
<인터뷰>가 창작 뮤지컬 최초로 영어로 번안되어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2016년 5월 초연 이후 호평을 받으며 교토, 도쿄, 뉴욕 등 3개 도시 진출에 성공한 이 작품은 추정화 작, 연출과 허수현 작곡, 음악감독이 함께 만든 창작 뮤지컬이다.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한 소년이 10년 후 죄책감으로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추리소설 베스트셀러 작가와 작가 지망생의 면접 인터뷰는 극이 진행되며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한 심리 싸움으로 변하는데,
팽팽한 긴장감이 극의 매력이다. 6월에는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과 함께 한국에서 재연을 진행했다.
벤허가 이룬 것들
총 86회 무대에 서며 초연을 마친 창작 뮤지컬 <벤허>는 단연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루월러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개막 전부터 왕용범 연출을 비롯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제작진이 참여하면서 기대를 높인 <벤허>는 유준상, 박은태, 카이, 민우혁, 아이비 등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에 탄탄한 스토리와 강렬한 음악까지 어우러지며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은 바 있다. 11월 중순에 열리는 ‘제6회 예그린 뮤지컬 어워즈’에서는 올해의 뮤지컬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앙상블상, 연출상, 안무상, 작곡, 무대예술상 등 9개 부문에 10명의 후보를 올리며 최다 노미네이트 작이라는 영예까지 차지했다.
- 에디터
- 허윤선, 전소영, 정지원
- 일러스트레이션
- Kim Eun H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