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끝자락에서 혹시 나이가 한 살 더 들었다고 한숨 짓고 있는 건 아닌가? 노화는 사실 나이에 있지 않다. 우리 안의 태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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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모델 미시 레이더(Missy Rayder)가 입은 캐시미어 소재 재킷은 더 로우(The Row). 면 혼방 소재 팬츠는 A.W.A.K.E. 가운데 모델이 입은 폴리우레탄 소재 케이프는 샤넬(Chanel). 브라 외 속옷은 에레스(Eres).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타샤 틸버그(Tasha Tilberg)가 입은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울 소재 팬츠는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

한 해의 마지막인 12월호를 마감하는 지금, 후배들이 다가와 어깨를 톡톡 두드려 가보니 생일 케이크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초는 세 개. 그렇다.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촛불을 후 불어서 끄고 나니 이제 더 이상 만 나이를 우길 수도 없이 한 살 더 먹었음을 실감했다. 또한 한달 후 2018년이 되면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다 같이 한 살 더 먹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나이를 먹는 것에 대단히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무례한 사람들이 종종 행하는 ‘나이 후려치기’를 제외하면 나는 나이를 먹는 게 좋다. 나이를 드는 건 감사한 일이다. ‘<개 같은 날의 오후> 같은 20대’가 끝난 건 얼마나 다행이었나. 내가 지금보다 어리고 예쁘고, 인기가 많았더라도 나는 정말이지 후회와 실수로 점철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30대에 (적어도 20대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됐다. 그래서 나는 서른셋과 넷, 다섯과 여섯을 지나는 게 좋았다. 어려 보이는 스타일을 추구하거나, 어려 보이기 위해 시술을 받으려 한 적도 없다. 항상 자연스럽게 나이 들겠다고 호언장담해왔다.
그러나 그게 젊은 날의 오만임을 올해야 나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인생의 가장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기에 노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그런데 그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 어느 날, 무릎 위에 희미하게 생긴 주름 두 줄을 보는 순간, 나는 정전기가 이는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주름은 어디에나 생긴다, 그게 무릎일지라도. 의학적으로 인간의 노화는 20대부터 시작된다. 많은 사람이 30대부터 늙었다고, 여성으로 생명력을 잃은 것처럼 떠든다. 물론 노화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고 있는 게 사실. 그렇지만 이제 서른 살이 된 당신이 거울 속에서 노화의 실제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이건 세계에서도 아주 드문 우리나라식 나이 셈법의 영향도 있다. 우리나라 나이로 어느 해 1월 1일에 서른 살이 되어봤자 세계 나이로 당신은 불과 스물여덟, 스물아홉일 뿐. 아직 20대다. 오히려 서른 살이 되며 심적 여유와 경제력,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알아보는 취향이 생기며 당신은 오히려 더 예뻐진다. 미소와 태도는 더 당당해졌을 것이고, 자신만의 뷰티 노하우도 생겼을 것이다. 난 이 무렵 눈 전체에 아이라인을 그리면 오히려 눈이 답답해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눈앞머리에는 라인을 그리지 않고 마스카라를 바르기로 결정했고, 아직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 서른 중반에 이르기까지 사진 속의 당신은 스무 살과 그리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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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렉스 저지 톱, 실크 혼방 소재 팬츠, 메시 가방은 모두 파코 라반(Paco Rabanne). 가죽 소재 가방은 3.1 필립 림 (3.1 Phillip Lim). 귀고리는 레이디 그레이(Lady Grey).

노화는 갑작스러운 천둥번개처럼 나타났다. 올해 나는 머리카락 속에서 새치 몇 가닥을 발견했다. 스트레스라고만 여겼다. 석 달 후, 몇 가닥의 새치는 봄철 벼 모종처럼 늘어났다. 다시 석 달 후, 새치는 이제 한 고랑을 이루고 있었다.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나이가 들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염색을 마지막으로 한 게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가. 친구처럼 지내는 헤어 아티스트는 그럼에도 염색을 만류했다. 머리카락이 워낙 가늘고 힘이 없,어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참고, 또 참다가 뿌리 염색 방식으로 새치를 가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거울 속 나의 얼굴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부담스럽게 진했던 쌍꺼풀은, 눈꺼풀이 조금 처져 이제 보통 사람의 것 같았다. 자연스러워졌지만 어쩐지 섭섭했다. 관자놀이나 이마는 꺼지고, 턱선도 처졌다. 언젠가 취재했던 피부과 전문의의 말이 떠올랐다. “노화의 과정 중 하나가 곧 해골화(Skeletonization)죠. 지방과 콜라겐 등이 줄어들면서 얼굴의 뼈대가 점점 드러나고 얼굴의 굴곡이 강조되죠. 텐팅 효과가 줄어드는 거예요. 텐트를 세울 때 폴대를 세우잖아요? 그 폴대가 무너진다고 생각해봐요. 그럼 그 안의 지방이 꺼지고, 처지고. 특히 기자님은 콜라겐이 많지 않게 타고나긴 했어요. 피부가 아주 얇아요. 어릴 적부터 피부가 말랑말랑했을 텐데, 어릴 적엔 그게 좋았을 테지만 노화에는 불리하죠.” 몸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운전할 때 손에도 자외선차단제를 바르기 시작했다. 늘 하루 종일 움직이는 손에도 어느덧 노화의 흔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정말 슬펐다). 탄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엉덩이와 아까 고백했듯 무릎 위의 주름도 눈에 들어온다. 여러분, 작은 가슴도 처진다는 걸 명심하세요. 그때야 비로소 나는 그저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며, 그것 역시 나름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노화의 흔적은 잠시나마 스스로를 슬프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이다. “오, 망할! 내가 늙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