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부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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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일 개봉 예정인 영화 <파울라>는 시대가 감당하지 못했던 위대한 독일 출신 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인생을 다룬다. 정물, 초상, 풍경 등을 대범하고 풍부하게 표현한 화가였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 채 비웃음만 받았던 파울라. 20세기 여성화가의 삶은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는 지난해부터 뜨거운 감자로 페미니즘 운동이 떠올랐지만 사실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세기부터였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부딪혀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관에 부는 여성화가 혹은 여성을 다루는 전시의 의미는 크다. 그리고 작가 개인전이 아닌 여성작가들이 연대했을 때 그 힘은 더욱 커진다. 지난 9월부터 시작해 12월 1일에 전시가 끝나는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전은 아시아권 10개국 출신의 여성작가 24명이 참가했다. 아시아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지배당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근대화를 맞았고, 현대화도 겪었다. 이 소용돌이치는 시대에 여성의 삶에 대해 물을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점점 여성의 삶은 고립됐다. 그러나 이 전시는 이젠 여성의 삶을 제대로 묻고자 한다. 미술은 여성이 자기실현의 욕구를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 이 전시에 참여한 아시아 여성미술가들은 아프고 불안한 슬픔을 용감하게 드러내며 여성들의 맨 얼굴을 예술이라는 언어로 고발한다. 또 그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대변하며 작품으로 표현한다. 전시는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린다.

다른 관점으로 여성을 주목하고 있는 전시도 있다. 내년 4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전시 <신여성 도착하다>다. 한국이 근대화를 맞이하며 만나게 된 다양한 여성의 얼굴이 ‘신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려졌다. ‘기생도 아니고 여학생도 아닌 애매스러운 녀자’로 불렸던 신여성은 여성 안에서도 불분명한 위치를 차지했다. 지금은 그 신여성의 얼굴에서 서양, 일본의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전통과 새로움, 자연과 문명 등 갈등의 상황과 복잡한 시대성을 본다. 이 전시에서 식민지 근대의 일상, 이미지, 담론, 서사 등이 오롯이 응축돼 있는 상징적인 인물로 주목받는 신여성을 두루 엿볼 수 있을 것이다.

BBC라디오 4채널은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혁신적이고 흥미로운 공예가 또는 디자이너를 찾기 위한 공모전 ‘여성의 시간’을 70년 동안 진행했다. 올해엔 70주년을 기념해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에서 공모전을 통해 최종 선발된 12명의 작품을 전시한다. 그들이 부러운 건 해마다 12명의 신예 여성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고, 그들의 무대가 지속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여성예술가들을 위한 자리가 지금보다 더 선명해질 수 있을까. 그날을 기대해본다.

    에디터
    전소영
    포토그래퍼
    Courtesy of MMA, J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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