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나누는 공간 <2>
파퓨머리523 | 대표이사 이태의
국내 대표적인 향수 바잉 및 유통 업체인 칸타브에서 운영하는 니치 퍼퓸 플래그숍으로, 국내 니치 향수 숍의 시조격이다. 소량의 향수를 가져와 판매하는 것이 아닌, 해당 브랜드의 국내 유통까지 담당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스뜨와 드 파퓸(Histoires De Parfums), 로베르트 피게(Robert Piguet), 플로리스 런던(Floris London), 토카(Tocca), 윈 뉘 어 발리(Une Nuit A Bali) 등의 니치 브랜드의 향수를 판매하고 있다.
ㅡ최근 서울에 니치 향수를 접할 수 있는 셀렉트 숍이 꽤 많이 생겼다.
분명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니치 향수를 니치(Niche)가 아니라, 리치(Rich)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이건 분명 잘못된 인식이다.
ㅡ그렇다면 니치 향수란 정확히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역사적으로 향수는 퍼퓨머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왔다. 겔랑, 코티 등이 대표적인 유럽의 정통 퍼퓨머리다. 사실, 향수 시장의 판도 변화는 패션의 영향이 크다. 패션 사업이 확장될수록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브랜드를 대변해줄 향을 만들기를 열망한다. 샤넬이 에르네스트 보를 조향사로 둬서 넘버5를 만들고 최근 에르메스가 인하우스 퍼퓨머리를 부활시켜 장 클로드 엘레나를 채용한 것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웬만한 자금력과 규모를 지니지 않고는 인하우스 퍼퓨머리를 두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패션 브랜드들은 라이선스 비용을 지급하고 향수 제조사를 통해 자신의 향수 레이블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그런데 제조사 입장에서는 생산량이 늘어야 수익이 높아지니 인공향료나 합성향료 사용량을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제조 단가를 낮춘 향수를 대량 유통하기 시작했다. 향수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향수가 흔해지다 보니, 자신만의 특별한 향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유통 채널이 아닌, 콘셉트 스토어나 셀렉트 숍 등을 찾게 되었다. 조향사들도 대량 판매를 위한 향수 조향이 아닌, 창작자로서 자신만의 개성을 녹인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시판 향수와 차별화하기 위해 비싼 향료, 특이한 향료를 주로 사용했는데, 이게 바로 니치 향수다. 따라서 니치 향수 브랜드는 소량만 생산 가능하고 시판 향수와 같은 대량 유통이나 마케팅을 할 자금력이 없다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향의 완성도는 높지만 결코 대중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ㅡ니치 향수의 향의 차별화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인공향료 등 석유화학 추출물이 적게 들어가다 보니, 뿌리는 사람의 체취와 섞이는 비율이 높다. 또한, 시판 향수의 경우 첫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톱 노트에 향의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은데, 니치 향수의 경우 주로 베이스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시판 향수가 첫 향기를 맡게 하기 위해 시향지에 시향하는 것과 달리, 니치 향수는 잔향이 중요하기 때문에 컵, 세라믹, 진공관 등 독특한 시향 도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ㅡ그렇다면 파퓨머리523만의 니치 향수 셀렉팅의 기준은 무엇인가?
독특한 니치 향수 브랜드들을 인큐베이팅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한국 소비자들의 향에 대한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 따라서 초창기에는 정말 니치한 브랜드를 찾는 데 주력했다. 최근에는 좀 더 대중적인 니치 브랜드까지 그 영역을 조금씩 확장하고 있다.
ㅡ대중적인 니치 브랜드란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
플로리스 런던이나 토카 같은 브랜드다. 둘 다 유서 깊은 퍼퓨머리의 브랜드들인데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조라 한국인의 취향에 잘 맞는다.
ㅡ파퓨머리523의 아이덴티티를 대변하는 진정한 니치 향수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스뜨와 드 파퓸. 연도별로 위인을 대입시켜 그 사람의 이미지를 향으로 구현하는 브랜드다. 니치 브랜드 역시 시간이 흐르면 시장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이 생기는데, 이 브랜드는 대중의 취향에 맞춰 향이나 콘셉트를 수정하는 대신, 용량을 다양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고집과 철학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ㅡ니치 향수 시장에도 트렌드가 존재하긴 할 것 같다.
3~4년 전에는 우드 계열이 인기였고, 그 이후에는 바닐라 향조가 유행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유행이 뭐라고 정리하기 어렵다. 대중적인 니치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시트러스 계열, 플로럴 계열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향조 위주로 마케팅하기 때문이다.
ㅡ한국의 향수 시장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의 향수에 대한 호감은 이미 충분히 늘었다. 하지만 그 이상을 채우고 교육해줄 채널이 거의 없다. 향수에 대해 보다 전문적으로 분석해주는 전문가, 매거진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파퓨머리523과 같은 셀렉트 숍 등도 더욱 많이 생겨야 한다.
1 이스뜨와 드 파퓸의 1725 카사노바 오드 트왈렛. 60ml 18만5천원.
2 플로리스 런던의 그레이프프루트 & 로즈마리 룸 스프레이. 100ml 5만3천원.
3 로베르트 피게의 차이 오드 트왈렛. 100ml 22만5천원.
센트87 | 매니저 홍선형
향수뿐 아니라 디퓨저, 캔들, 비누 등 니치급 홈 프래그런스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에서 수입하는 토털 향 편집숍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브랜드 중에서도 유럽에서 역사와 품질이 검증된 브랜드들만 모아서 판매하고 있다.
ㅡ센트87의 대표 브랜드는 무엇인가?
월리(Wally)와 로렌조 빌로레시(Lorenzo Villoresi)라고 생각한다. 왈리는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의 디퓨저 브랜드로 17가지 향과 250ml, 500ml, 3000ml까지 다양한 사이즈로 출시되는 것이 특징이다. 로렌조 역시 이탈리아 브랜드인데, 2006년 향수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최고 퍼퓨머에게 주어지는 프랑수아 코티 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밀라노와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어메니티로 사용되고 있다. 니콜 키드먼과 브래드 피트가 사용하는 향수로도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센트87에서만 구입 가능하다.
ㅡ센트87만의 향수 선정 기준이 있다면?
니치 향수의 정의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은, 틈새의 특화된 취향을 대변한다는 것 아닌가. 따라서 무조건 국내에 소개된 적 없는 브랜드 위주로 찾는다. 브랜드의 역사, 유럽 내에서의 인지도 등을 현지 조사해서 일차적으로 브랜드를 선별한 다음, 조향사들에게 조언을 구한 후 최종적으로 수입을 결정한다.
ㅡ프랑스, 이탈리아의 향수 브랜드가 많다. 그곳에서 요즘 향수 트렌드는 무엇인가?
앰버나 베티버가 들어간 우디 향이 인기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전히 파우더리한 잔향의 달콤한 향이 유행이다.
ㅡ센트87을 찾는 소비자들의 취향은 좀 더 남다를 것 같다.
니치 향수 브랜드가 국내에 많이 유통되고 소비자도 다양한 향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남이 쓰지 않는 자신만의 향을 찾는 현상이 늘어났다.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보는 브랜드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향이라면 망설임 없이 선택한다. 또한 전체적으로 여성이나 남성 어느 한쪽에 편향되지 않는 중성적인 느낌의 향을 더 선호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ㅡ최근 눈여겨보고 있는 향수 브랜드가 있다면?
라우라(Laura). 맞춤 향수를 만들기도 하는 이탈리아 브랜드다.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맞춤 컬렉션을 제작하기도 했고, 조지 클루니가 사용한다고 해서 유명해진 브랜드이기도 하다. 4월 말에 여덟 가지 라인이 입고될 예정인데 봄, 여름에 사용하기 좋은 달콤하면서 상쾌한 향부터 우디한 향까지 다양한 향조가 매력적이다.
1 월리의 피오니아 디퓨져. 500ml 11만원.
2 라우라의 일꼬르티 델 자가레 디퓨져. 500ml 12만8천원.
3 로렌조의 아우라 마리스 향수. 100ml 20만원.
메종드파팡 | 대표 김승훈
2013년 가로수길에 매장을 연 향수 전문 매장. 메종드파팡의 레이블을 단 향수 라인부터, 에따 리브르 도랑주(Etat Libre D’Orange), 라티잔 파퓨머(L’Artisan Parfumer), 올팩티브 스튜디오(Olfactive Studio), 힐리(Heely) 등 10여 개의 니치 향수 브랜드를 만날 수 있다. 세계적인 조향사들과 협업하여 맞춤 향수 제작 및 향에 대한 컨설팅 업무도 함께 하고 있다.
ㅡ요즘 유행하는 향은 어떤 것들인가?
향수는 패션과 다르게, 트렌드에 구속되지 않아야 진짜 좋은 향수라고 생각한다. 굳이 트렌드를 꼽자면, 대륙별로 그 양상이 다른데, 향수의 성지라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는 오리엔탈, 시프레 등이 인기고, 유럽 전체로 봤을 때는 우디, 시프레 향이 트렌드다. 향수 시장이 점차 성숙해지고 있는 미국의 경우는 오리엔탈 계열이 강세다. 한국은 미국과 비슷한 양상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국내 니치 마켓은 요즘 시트러스 향수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아틀리에 코롱 등 최근 브랜드들의 출시 경향이 다 그렇다.
ㅡ한국 니치 향수 시장만의 특징이 있나?
프란시스 커정처럼 향수의 영감 자체가 서정적이고 편안한 향이 인기다. 그의 향수는 프렌치 퍼퓸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향의 변주를 더하는 것이 특징인데, 우아하고 가볍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다. 이렇게 니치 향수 중에서도 대중적인 코드가 많은 브랜드가 인기인 것이 특징이다.
ㅡ매장을 오픈한 지 벌써 5년째다. 5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변화가 꽤 클 것 같다.
향수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었다. 질적인 면에서 보자면, 매장을 통해 다양한 브랜드에 노출되고 향의 경험 폭이 넓어지며 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던 향인데, 고객들이 이제야 호감을 느끼게 되는 향수도 많다. 예를 들어, 시가 향, 정액 향 등 독특한 향조로 유명한 에따 리브르 도랑주 같은 브랜드. 그만큼 향에 대한 지식이 많이 쌓였다는 의미 같다.
ㅡ향에 대한 지식이 쌓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쉽게 말해 와인과 같다. 그 미세한 맛을 모르면 진가를 알기 힘들지 않나. 덜 익숙한 냄새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보통 섬유유연제, 세제, 샴푸, 보디로션 등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그 향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그런 제품군의 경우 보통 플로럴, 프루티 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런 향 외 다른 향은 생소하게 느끼는 것이다. 다양한 향기를 경험해볼수록 새로운 향도 쉽게 받아들이고 나름의 취향도 생긴다. 향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보편적인 향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ㅡ메종드파팡을 처음 방문하는 손님이라면 어떤 브랜드를 주목해야 하나?
대표 브랜드가 없어야 향수 부티크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굳이 꼽으라면 제품 각각 모두 조향사 한 명과 사진작가 한 명이 팀을 이뤄 제작된 향수로 시각적, 후각적 감각을 모두 일깨우는 올팩티브 스튜디오, 단일 향료를 다양하게 분자화하고 이를 특화하여 만든 이센트릭 몰리큘스(Escentric Molecules) 등이 메종드파팡의 아이덴티티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ㅡ직접 제조하는 향수도 있다고 들었다.
직접 조향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조향사들에게 조향을 의뢰한다. 최근에는 CK원, 랄프 로렌 로망스 등으로 유명한 해리 프리몽트(Harry Fremont)가 만든 향을 토대로 다바나 우드 서울이라는 향수를 만들었다. 첫 향은 재스민, 사프론 등 도시적인 향이 긴장감을 주고, 우디 부케 향으로 부드럽게 마무리된다. 이 외에도 향을 컨설팅하는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센텐스 등이 그 예다.
ㅡ국내에서 직접 조향하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나?
국내에서 좋은 향료를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세계적으로 좋은 향료는 대부분 향료 회사가 갖고 있는데, 좋은 향료를 구하기 위해 내로라하는 조향사들조차도 그들의 그룹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우리가 원하는 콘셉트나 마케팅 목적에 맞게 국외 조향사들에게 향을 의뢰하거나, 혹은 그들이 이미 작업해둔 향을 사오는 형식이다.
ㅡ최근 눈여겨보고 있는 니치 향수 브랜드가 있다면?
얼마 전 니치 향수 박람회인 엑상스에 다녀왔다. 마스크 밀라노(Masque Milano)라는 이탈리아 브랜드를 알게 되었는데, 우리의 인생 자체가 무대와 같다는 콘셉트 아래 무대의 막처럼 향수를 구성했다. 그 독특하고 명확한 콘셉트가 마음에 들었다.1 이센트릭 몰리큘스 by 메종드파팡의 이센트릭 01. 100ml 21만5천원.
2 에따 리브르 도랑주 by 메종드파팡의 유 오어 썸원 라이크 유. 30ml 8만원.
3 올팩티브 스튜디오 by 메종드파팡의 뤼미에르 블랑쉐. 100ml 2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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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이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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