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에콜로지 패션
산과 들,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색이 면, 리넨, 개버딘, 라피아와 나무 등의 자연스러운 소재, 그리고 낙낙하고 여유로운 실루엣과 만났다. 그러데이션으로 엷게 물든 치맛단과 올이 풀어진 소매, 토속적인 장식 등은 자연 친화적인 무드를 완성한다.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반 고흐가 자신의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모은 이 책 구석구석에는 자연이 예술가에게 주는 영감이 나열되어 있다. 고흐는 어린 나무가 대지 위에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뿌리내리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회색에서부터 부드럽거나 환한 녹색, 찬란한 빨간색 등 색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주로 꽃 그림만 그렸다. 그는 사이프러스 나무 옆으로, 혹은 잘 익은 밀밭 위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고 싶어 했다.
디자이너들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사람이다. 2017년 봄/여름 시즌에도 자연은 디자이너들의 영혼을 풍요롭게 해주었고, 이는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 여유로운 룩을 선사했다. 지난해 봄/여름 시즌, 디자이너들이 긍정과 낭만을 담아 자연을 비즈, 아플리케, 코르사주 등의 장식으로 화려하게 묘사했다면 올봄에는 말 그대로 자연다움을 우아한 편안함으로 승화시켰다. 몸을 구속하지 않는 편안하고 낙낙한 실루엣 위에 대지를 닮은 색이 가공하지 않은 듯한 천연 소재와 어우러져 컬렉션에 목가적이고 원시적인 느낌을 드리운 것. 이는 새로운 에콜로지 패션이라 불리기 충분했다.
자연 친화주의를 이끈 것은 로에베의 조나단 앤더슨이다. 그는 로에베로 이적한 이후 줄곧 원시 부족의 예술품과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공예를 의상에 접목해왔고, 올봄 컬렉션 역시 옷의 소재와 질감을 통해 자연주의적인 철학을 드러냈다. 그는 다양한 패턴의 리넨과 굵은 삼베를 패치워크하고 이세이 미야케 풍의 주름을 짓고 밑단의 올을 풀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가죽과 프린지 장식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가공하지 않은 것 같은 면 소재의페이전트 풍 벌룬 소매 블라우스, 지그재그로 불규칙하게 늘어진 스커트, 라피아 소재의 가방과 실타래처럼 묶은 가방 스트랩 등이 자연을 대담하게 표현하는 데 한몫했다. 조각품처럼 보이는 벨트와 커다란 백합 팔찌는 이렇게 거칠고 투박한 자연의 무드에 절제되고 세련된 현대 예술의 흔적을 남겼다. 조나단 앤더슨이 에콜로지에 예술을 가미했다면 스텔라 맥카트니는 에콜로지에 현실 감각을 지닌 애슬레저 요소를 더해 세련되고 쾌활한 자연 친화적인 행보를 지속했다. 실제로 친환경적인 소재만 사용하는 스텔라 맥카트니지만 올봄에는 유독 한눈에 보기에도 자연에서 온 듯한 소재를 마련했다. 오프 화이트, 모래와 흙빛의 다채로운 갈색톤, 따뜻해 보이는 카키 등의 면 소재, 자연스럽게 워싱한 데님, 축 늘어지도록 성글게 짠 리넨이 주를 이루었다. 여기에 낙하산 소재의 팬츠와 그래픽적인 패턴의 보디 슈트가 역동적인 도시의 기운을 더했다. 소재와 더불어 실루엣을 통해 자연의 관대함을 가져왔다. 활동하기 편하게 과장되고 여유로운 실루엣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을 아름답게 하는 스텔라 맥카트니만의 부드러움이 묻어났는데, 몸을 적당하게 보정하는 비율에 그 답이 있었다. 과장된 어깨의 형태는 둥그렇게 굴려 완곡하게 표현했고 허리는 코르셋의 디테일을 빌려 잘록하게 했지만 결코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페이퍼 백’처럼 주름을 잡아 허리를 조이고 밑은 풍성하게 한 바지도 몸을 부드럽게 과장한 영민한 방법이었다. 세린느, 마르니, 르메르, 질 샌더와 끌로에도 도회적인 룩 안에 자연의 여유로움과 관대함을 소재와 형태로 담백하게 담아내며 신(新) 에콜로지 바람에 힘을 실어주었다.
프랑스 남부 시골 소녀들을 런웨이로 불러들인 자크뮈스도 과장되고 여유로운 실루엣으로 자연의 영감을 풀어냈다. 그의 옷 역시 어깨는 넓었지만 적당하게 허리를 조였고, 풍성한 벌룬 소매와 커다란 밀짚모자로 목가적인 낭만을 불러들였다. 런웨이 끝에는 저녁 노을처럼 보이는 주황색 태양이 빛나고 있었는데, 이는 지금 패션 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연상케 했다. 자연광으로 포착한 패션 사진, 꽃, 과일이 함께 놓인 패션 제품, 바람이 느껴지는 자연의 이미지들과 배치한 모델의 얼굴 등이 그것이다.
인공적이고 기계적인 것들이 넘쳐나고 삶이 속도전이 되어갈수록 우리는 더욱더 강력하게 자연의 품을 그리워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천천히 여유롭게 쉬어가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다행히 패션은 자연스러운 것들이 주는 싱그러움과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자연의 영감을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냈고 올봄은 우아한 여자가 되기 위해서 첫 번째로 자연스러운 소재, 자연스러운 컬러, 자연스러운 실루엣을 갖추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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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남지현
- 포토그래퍼
- Kim Myung Sung, InDigital, James Cochrane
- 어시스턴트
- 김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