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김’의 디자이너 김인태

꽃이 가진 실루엣과 향기를 의상에 표현하고 싶다는 디자이너 김인태. 철학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풀어낸 섬세한 ‘김해김’의 의상은 여자들에게 현실적인 판타지를 선사한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김인태. 그의 브랜드 ‘김해김(KimheKim)’의 옷에는 현대 여성이 원하는 아름다움이 녹아 있다. 과감한 듯 섬세한 커팅과 부드럽게 흐르는 실루엣의 의상은 우아하지만 경쾌하다. 그는 할머니에게 배운 한국의 전통적인 바느질 기법과 발렌시아가와 이브 살로몬 등 파리 쿠튀르 브랜드에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2014년, 파리에서 ‘김해김’을 론칭했다. “꽃은 아름답죠. 하지만 디자인을 할 때는 단순히 표면적인 모습이 아닌 꽃이 가진 개념을 먼저 생각해요” 라는 김인태의 말처럼, 그의 옷은 꽃에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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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브랜드명이 독특해요.
저의 본관인 ‘김해’와 성인 ‘김’을 영어로 표기한 것이에요. 처음 파리에 갔을 때 ‘김인태’ 석 자를 이름으로 쓰고, 성은 김해 가문의 김씨, ‘김해김’이라고 소개했어요. 사람들이 제 성을 자연스레 김해김으로 부르게 되면서 저 역시 익숙해졌죠. 제 모든 것은 제 뿌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브래드의 이름을 ‘김해김’으로 결정했어요.

ㅡ파리에서 유학을 했죠.
에스모드 파리에서는 쿠튀르를 전공했어요. 하지만 배움의 열망이 커서 스튜디오 베르소에 편입을 했죠. 스튜디오 베르소에서는 여성복은 물론 남성복과 아동복까지 모두 배웠어요. 파리의 장점은 학교 밖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거예요. 당시 파티 문화에 흠뻑 빠져 각종 매거진과 브랜드 파티 등 다양한 파티를 즐겼어요. 나만의 파티 룩을 만들기 위해 빈티지 숍에서 옷을 사서 리폼하기도 했죠. 그런 경험에서 체득한 영감이 아직도 아이디어로 발현되곤 해요.

ㅡ발렌시아가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한 이력이 눈에 띄어요.
스튜디오 베르소를 졸업할 때 발렌시아가에 이력서를 보냈어요. 원단 관리 인턴팀 자리였는데 면접관이 저의 창의성을 높이 사 컬렉션팀과 면접을 다시 하게 되었고, 당시의 발렌시아가 수석 디자이너였던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함께 일할 수 있었죠. 2년 동안 거의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쉴 틈 없이 바쁘게 일했지만 귀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ㅡ2014년 선보인 첫 컬렉션을 오트 쿠튀르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정교한 디테일을 보여주려면 기성복보다는 오트 쿠튀르가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어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는 꽃을 주제로 잡았는데, 소재가 얇고 디테일이 많았기 때문에 손바느질을 많이 해야 했죠. 의상과 어울리는 장소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열고 싶어 파리의 꽃집에서 의상을 선보였어요.

ㅡ매시즌 꽃을 주제로 의상을 전개하고 있어요.
꽃을 바라보면 저절로 기분이 즐거워지고, 꽃처럼 아름다운 의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창작 의지가 샘솟아요. 무엇보다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이 우리의 인생과 닮은 것 같아요. 피기 시작할 때부터 시들어 떨어질 때까지 매순간이 아름답죠. 그 아름다움을 의상에 담아내고 싶어요.

ㅡ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뻔하게 들리겠지만 모든 요소가 중요해요. 소재, 패턴, 디테일, 색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죠.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김해김스러운가?’예요. 어떤 주제로 의상을 만들더라도 ‘김해김이다’라고 느낄 수 있는 저만의 아이덴티티를 찾고 싶어요. 지금은 그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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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디자인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요?
주변환경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요.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편이죠. 한국에서 지냈던 지난 4개월 동안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알록달록한 도시락과 세 명의 조카가 보내준 생일축하 비디오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일상을 살아가며 마음에 새겨진 사건이나 이미지들은 어떤 식으로라도 컬렉션에 표현된다고 생각해요.

ㅡ201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집중한 건 무엇인가요?
‘싹이 트다(Sprout)’라는 콘셉트로 오간자와 크레이프 소재를 사용해 꽃잎의 하늘거림과 섬세함을 표현했죠. 꽃이 주는 화사함을 담아내고 싶어 컬러 조합에도 신경을 썼어요. 화이트, 핑크, 베이지를 많이 사용했고, 중간중간 옐로, 레드, 그린으로 포인트를 더했어요.

ㅡ당신의 의상을 여성으로 표현한다면 누구와 닮았을까요?
현대 여성의 삶은 바쁘지만 들여다보면 지루하고 반복적이죠. 하지만 이런 삶을 퍽퍽하다고 생각하기보다 환상을 가지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힘을 가진 여성이었으면 해요. 예를 들어 삭막한 사무실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더라도 우아한 시스루 드레스를 입고 미술관을 가거나 파티를 가는 장면을 꿈꾸며 즐거워하는 그런 여자요.

ㅡ감성적이고 철학적인 요소를 탐구하는 것처럼 보여요.
사람들이 거울을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본인의 눈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화려한 옷을 입고도 자신의 눈빛에서 확신을 찾을 수 없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인 거죠. 보통 우리가 말하는 의복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보다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은 장식예술의 일부일 수 있지만, ‘김해김’은 장식예술의 개념을 떠나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여성들을 대표하는 브랜드였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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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서울에 쇼룸을 낸 이유가 궁금해요.
의상 제작을 한국에서 하기로 결정한 후 지난 12월에 한남동에 아틀리에를 오픈했어요. 조용하고 한적한 파리의 뒷골목 같아서 무척 마음에 들어요.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데 그 빛이 주는 온화함은 삶에 활기를 줘요.  햇빛을 쬐며 가만히 앉아 마음을 다스리거나 디자인을  떠올려요.

ㅡ아틀리에가 온통 하얀색이네요.
작업 환경이 최대한 깔끔하고 정갈해야 해요. 그래야 더욱 집중할 수 있거든요. 또한 제가 그 공간을 도화지처럼 상상하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얗게 만들었죠.

ㅡ파리 컬렉션 기간에 쇼룸을 오픈한다고 들었어요.
브랜드를 론칭한 2014년도부터 매시즌 컬렉션 기간에 쇼룸을 열었어요. 이번 파리 컬렉션 기간에도 쇼룸에서 2017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의상을 통해 사람들이 좀 더 밝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컬러와 소재를 활용해 낙관적인 무드를 담고자 했어요. 꽃의 형태는 언밸런스하게 표현해 모던함을 강조했고요.

ㅡ현재 ‘김해김’의 옷은 어디서 구입할 수 있나요?
김해김 공식 사이트(kimhekim.com)와 한남동 아틀리에에 방문하면 제작 주문 형태로 구매할 수 있어요. 2017년 가을/겨울 컬렉션은 3월 24일부터 프리오더 사이트인 모다오페란디(Moda Operandi)에서 선주문이 가능해요. 쉽게 구할 수 없어서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재고를 만들지 않는 게 저희의 경영방침이에요.

ㅡ2017년의 계획은요?
아직은 한국보다는 해외 시장에 집중하려고 해요. 6월에는 유럽 시장을 겨냥해 리조트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그리고 10년의 파리 생활을 담은 책을 써볼까 해요. 책 제목도 이미 정했어요. ‘파리, 10년’

ㅡ궁극적으로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나요?
비판보다 무서운 건 무관심이죠. 끝을 모르는 장편 소설처럼 다음이 기다려지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늘 꿈을 꾸면서 고객들과 호흡하는 살아 있는 디자이너가 되는 게 목표예요.

1 서울 쇼룸에서 만난 김인태 디자이너.

2 온통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한남동 쇼룸의 전경.

3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작은 소품들.

4,6,8 밝은 컬러와 패턴을 많이 활용한 2017년 가을/겨울 컬렉션.

5,7 2017년 봄/여름 컬렉션. 꽃잎을 닮은  하늘거리는 디테일이 인상적이다.

    에디터
    김지후
    포토그래퍼
    Courtesy of Kimhe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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