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히로인으로 돌아온 고아성

밤의 차양이 내린 호텔에서 만난 고아성은 자유로워 보였다. 흥미로운 필모그래피를 지나 최근 <심야식당 : 도쿄 스토리>의 사랑스러운 히로인으로 돌아온 이 배우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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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소재 원피스는 구찌(Gucci).

새해의 산뜻한 기운이 아직 남아 있던 날.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도착한 고아성에게도 좋은 기분이 느껴졌다. ‘아역’이라는 수식어가 있던 때부터 지금까지 늘 흥미로운 작품과 역할을 보여줬던 그녀의 최근 작품은 일본의 인기 드라마 <심야식당>. 일본인 물리학자와 사랑에 빠진 한국인 여성을 연기하며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사랑스러운 연기를 선보였다. 이러한 사랑스러움이 본래 가진 얼굴 중 하나라는 건, 고아성과 1시간만 함께 있어도 알게 된다. 최근 본 영화라는 <라라랜드> OST에 맞춰 춤을 추며,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의 클래식한 스위트룸 곳곳을 누볐다. 창 밖으로는 어둠이 깔리고, 시간도 제법 늦었지만 조급할 이유는 없었다. 밤은 낮보다 속이 깊고, 고아성은 원래 밤과 친하다.

ㅡ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심야식당 : 도쿄 스토리>로 만나게 되었죠.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죠?
<심야식당> 시즌4에 한국 여자 역할이 있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그래서 원작을 보니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 여성이 일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원작과 많이 바뀌긴 했지만 국경을 뛰어넘어 사랑한다는 주제는 같아요.
ㅡ그래서인지 유독 사랑스러운 에피소드더군요. 촬영도 재미있었나요?
마츠오카 조지 감독님 덕분에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어요. 스태프들도 <심야식당> 시즌1부터 계속하셨던 분들이라 팀워크도 좋았어요. 일본에서는 사흘 촬영했는데, 제가 다른 세계에 간 느낌이었어요. 한국과 일본의 식문화 차이도 느껴지더라고요. 처음에 감독님이랑 상의할 때, 일본 생활에 얼마나 적응한 인물로 연기해야 할지 오래 상의했어요. 감독님께서는 실제 신주쿠에서 일하는 한국 여성들을 보면 그들만의 언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신대요. 제 역할도 아직은 힘든 단계가 아닐까 해서, 일본 식당에서 일본 음식을 먹더라도 조금의 위화감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ㅡ이를테면 어떤 장면이었어요?
저는 별 말을 하지 않고, 특별한 장치가 없어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느껴지는, 그 사람의 삶이 보이는 연기를 꿈꿔요. 그래서 마스터의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너무 편해 보이지만은 않게 했어요.
ㅡ마스터 역은 물론 다른 배우들도 시즌1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죠. 다들 새로운 문화권에서 온 당신에게 관심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봤다, <괴물>을 봤다.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또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건, 1990년대에 우리나라 촬영 현장에서 일본어를 굉장히 많이 썼어요. ‘가뀨’, ‘야지’ 이런 거 있잖아요. 그 용어를 실제로 쓰는 현장을 만나니까 저도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이 드라마가 아주 작게 시작을 해서 인기가 많아졌고, 처음에는굉장히 열악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아주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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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소재 드레스는 지암바티스타 발리(Giambattista Valli).

ㅡ<심야식당>의 촬영 세트는 어때요? 대부분 그곳에서 촬영이 이루어지잖아요.
세트를 보면서 정말 놀랐어요. 가게 안도 그렇고 가게 밖에서 우산 쓰고 파출소로 가는 길도 다 세트거든요. 새삼 제가 세트 운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세트가 연기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ㅡ어떤 도움이 되나요?
실제 공간 같은 곳에서는 몰입이 더 잘되죠. <설국열차>도 기차를 만들어서 찍었고, <풍문으로 들었소>도 그 커다란 집을 다 지어놨었어요. 그런 세트 도움을 참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방송국 세트인 경우에는 만약 월요일에 찍으면 다른 요일 촬영 팀을 위해서 다 부수고 다시 짓는 경우도 많은데 <풍문으로 들었소>는 안 그랬어요. 그대로 유지해두었죠. 정말 이번 <심야식당> 세트장은 디테일 하나하나가 놀라웠어요. 그래서 세트장을 계속 유지하나 싶었는데, 시즌이 끝나면 부수고 복원한대요.
ㅡ에피소드마다 음식이 등장하는데, 당신의 에피소드에는 ‘오므라이스’가 등장하죠.
처음 제안을 받은 날 오므라이스를 직접 만들어 먹었어요. 이번에 일본식 오므라이스를 배웠는데, 많이 다르더라고요.
ㅡ에피소드 마지막에서 버터를 많이 넣으라고 가르쳐주던데요?
맞아요. 버터도 많이 넣고, 달걀도 훨씬 설익은 듯 하는 게 중요했어요. 달걀의 온도 조절이 관건인데 계속 실패를 하다가 네 번째에 완벽한 계란을 성공했거든요. 스태프분들이 실패작을 맛있게 먹어주었죠.
ㅡ<심야식당 : 도쿄 스토리>는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어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도 구독자예요. <심야식당>을 하기 전에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Orange is the New Black)>을 좋아해서 처음 가입했고, 다음 시즌을 기다리고 있어요. 시즌 드라마를 보는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정이 많이 들고, 인물에 대한 정보도 많이 쌓이고, 또 기다리는 맛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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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코스 소재 톱, 타조털 장식의 시폰 소재 드레스는 모두 프라다(Prada). 비닐과 아크릴 소재 슈즈는 미우미우(Miu Miu).

ㅡ그러고 보니 정말 다양한 촬영장을 경험하고 있네요? 시스템의 차이도 느껴지나요?
<설국열차>는 스태프들이 정말 국제적이었어요. 할리우드에서 온 분도 있고, 유럽분들도 있어서 현장 분위기가 아주 독특했어요. 유럽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굉장히 국제적인 현장이었거든요. <심야식당>은 일본의 현장이 이럴까 싶게 아주 정갈한 느낌이랄까요?
ㅡ어린 시절부터 내로라하는 감독님들과 작업을 해서인지 사람들이 당신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나요?
장난기가 많은 편인데, 아무래도 진지한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인지 실제로 만나면 놀라시는 것 같아요. <오피스>는 신인 감독님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신인 감독님들과도 다섯 편 정도 했거든요. 흥행이 된 작품은 유명한 감독님의 작품이 많았지만, 다양한 감독님들을 만났어요.
ㅡ또래보다는 나이가 많은 베테랑 배우들과 작업한 게 더 많아요.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과 연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 것 같아요.
또래랑 연기한 경험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게 좀 신기했어요. 저도 해보고 싶어요.
ㅡ제가 만난 배우들은, 배우가 선택하는 입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선택당하는 입장이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전적으로 동의해요.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직접적인 메시지는 감독님이 원하는 메시지고, 저는 그 메시지를 구현해주는 입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그런 능동적인 부분에 있어서 항상 갈증은 있어요.
ㅡ감독에게 왜 당신이어야 하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편이에요?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어요. 궁금하긴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하기가 사실 어려운 분위기예요. 해줬으면 좋겠다 정도죠. 감독님이나 배우들 사이에서는, 서로를 잘 평가하지 않는 것 같아요.
ㅡ무언의 믿음인가요?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왜 제가 이 역할을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가도, 촬영 시작하면 궁금하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져요. 배우들은 아무래도 작품을 하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나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 손이 닿아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은 갈증이 생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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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소재 드레스는 구찌.

ㅡ그래서 어떤 배우는 그런 갈증을 직접 풀기도 하죠.
맞아요. 책도 쓰고, 연출도 하죠.
ㅡ당신은 생각 없나요?
작품 안에서 도전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도전인 것 같아요. 책도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는 많지만 직접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 박정민 배우가 책을 쓴 게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ㅡ그럼 지금 어떤 도전을 기다리고 있어요?
실존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실존 인물을 염두에 두고 연기하는 경험이 어떨까 궁금해요. 특히 실제 인물에게 직접 자문을 받아서 하는 경우는 더 색다르다고 하더라고요. 항상 새로운 역할을 하고 싶은데, 실존인물은 아니어도 아마 다음에는 굉장히 다른 역할이지 않을까 싶어요.
ㅡ화보 촬영은 어때요? 늘 다른가요?
연기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물과 콘셉트가 있는 것도 비슷하죠. 실제 촬영에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제 스스로를 돋우기 위해서 만약에 이 컷에서 이 인물이 말한다면 어떤 말을 할까 상상해요. 그런 것들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라라랜드> OST 들은 게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의상이 로맨틱했는데, 그 영화를 정말 낭만적으로 봤거든요.
ㅡ학사 일정 때문에 일을 거절한 적도 있어요?
딱히 없었어요. 지금까지 7학기를 다녔는데 휴학도 몇 번 했고요. 그동안 작품 했을 때, 촬영해야 하면 휴학하고, 아니면 학교 다니고 그랬어요. 이제 한 학기 남았어요. 졸업은 작품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 결정하려고요. 공부도 고민 중이고, 생각할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일도 많이 안 했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계속 가지고 있어요.
ㅡ졸업하게 되면 뭐가 가장 아쉬울 것 같아요?
친구들과 도서관이 가장 그리울 것 같아요. 책을 그만큼 쉽게 빌려볼 수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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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소재 드레스는 블루걸(Blugirl). 타조털 장식이 염소가죽 소재 슈즈는 프라다(Prada).

ㅡ시간이 꽤 늦었네요. 밤이라는 시간은 좋아해요?
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촬영을 하지 않는, 일상에 규칙이 없는 지금 같은 때에는 정말 밤낮이 바뀌어요. 오후 2~3시에 자서 밤 10~11시에 일어나요. 그러면 하루가 거의 밤이죠. 저절로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게는 밤이 낮보다 더 친숙한 시간이에요.
ㅡ저도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면, 꼭 침대에서 1시간은 책이나 영화를 보곤 해요. 그래야 충전이 되는 느낌이라서.
맞아요. 하루가 더 가기 전에, 뭔가 이 하루가 갉아 먹힌 부분을 어떻게든 채워 넣고 자야겠다는 의지가 있죠.
ㅡ촬영이 있어도 틈틈이 잠을 자두는 편인가요? 
아무래도 촬영하면 잠을 못 자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원래도 잠을 잘 못자요. 잠은 제 인생의 영원한 숙제예요.
ㅡ잠이 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요?
잠이 들 때까지 굉장히 노력할 때도 있고, 아니면 아예 포기할 때도 있어요. 잠이 제일 고민이죠. 제 맘대로 되는 부분이 아니라서 항상 수면 문제가 심해요. 촬영 끝나고 집에 올 때 차 안에서 잠이 제일 잘 와요. 그리고 또 집에 오면 밤을 새우죠.
ㅡ고아성이라는 배우는 어떨 때 가장 행복해요?
숙면할 때. 또 재미있는 책 읽을 때. 집에서 책 읽을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지금은 학교도 안 가니까, 집에서 책만 읽고 있어요.
ㅡ오늘 밤은 잠이 잘 올까요?
오늘이요? 네, 화보를 다 찍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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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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