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립 생활 보고서 <1>
철저히 혼자가 돼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은 결혼을 꿈꾸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독립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독거의 고수부터 1년이 채 되지 않은 초보들이 전하는 독립 생활의 매력과 생활의 무게.
미니멀리즘? 난 맥시멀리즘!
본가가 서울인 사람이 독립을 꾀하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경제적으로만 따져볼 때 이런 상황에서 독립은 분명히 비효율적이다. 한국에서 집은 어쩔 수 없이 자취를 해야 하거나 결혼을 해서 신혼집을 구해야 하는 경우, 아이 때문에 조금 더 넓은 집을 구해야 하는 경우 등에만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의 총체가 녹아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도 독립을 감행했다. 독립의 삶을 늘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집은 늘 돈이 걸림돌이 됐다. 독립을 결심하고 매일 밤 인터넷 카페에 등록된 집을 검색하다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다. 회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연희동에 위치한 집이었다. 다음 날 바로 연락해 직접 방을 봤고,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 사실 예산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보증금 약간에 월세60만원. 집을 구경하러 올 사람이 또 있다는 부동산 중개사의 말에 망설임 없이, 순식간에 계약을 해버렸다. 베개와 책, LP 몇 개만 소형차 트렁크에 구겨 넣고 첫 독립 생활을 시작했다. 집은 개인이 우주를 갖는 것과 같다.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나만의 공간. 그래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여유로운 공간의 집이었는데, 다행히 내 집은 일반적인 원룸이라기보다는 스튜디오 개념에 가까워 넓은 편이다. 난 요즘 대세인 ‘미니멀리즘’과 반대인 ‘맥시멀리즘’을 추구한다. 누구에게나 예쁘게 보이는 그런 집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한 나의 우주를 만드는 데에 몇 가지 팁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좋아하는 영화의 포스터 혹은 좋아하는 뮤지션의 앨범 커버나 포스터를 액자에 거는 것이다. 난 LP 판을 애용한다. 한 장만 둬도 멋있는데 이걸 얇게 포개서 책처럼 꽂아두면 이보다 완벽한 소품은 없다. 가장 유용한 가구는 이케아의 칼락스 제품이다. LP 보관장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원룸 공간을 분리할 수 있는 파티션이 된다. 음악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미술을 좋아한다면 벨벳언더그라운드의 바나나 앨범도 추천한다. 바이닐 한 장에 3만원, 액자는 1만원으로 총 4만원이면 앤디 워홀의 오리지널 아트워크를 벽에 거는 셈이 되니 얼마나 합리적이고 멋진 일인가! 커피를 내리고,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사랑을 나누고. 이전에는 밖에서 따로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것들이 집 안에서 모두 가능해진 순간, 비로소 내 삶이 진짜 나의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독립에서 정서적인 독립까지 완전해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독립을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언한다. 당신의 우주는 부모님의 우주 안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구출해야 한다. 그래야 팽창할 테니까. – 한창헌 (35세, CJ E&M 마케터, 독립 2년 차)
나의 이중생활
지금 혼자 사는 곳은 연남동. 이곳에 둥지를 튼 변명과 포부의 출발은 살인적인 출퇴근 시간이었다. 본가는 송파, 회사는 서울의 끝 김포공항. 아침에 집을 나서는 시각 5시 50분.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야근이라도 해서 택시를 타면 회사 지원금을 가뿐히 넘어 4 만원에 육박하는 택시비와 퇴근시간엔 턱없이 막히는 강변북로나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는 만원 지하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논리적으로 완벽했지만 독립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미국에서 1년, 일본에서 1년. 공부와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했기에 혼자 지내는 삶은 자신 있었지만, 딸을 시집 보내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품안에 두고 싶었던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출퇴근이 고되면 공항 근처에서 살지 왜 홍대에서 사냐”, (맞는 말씀) “차라리 차를 사줄 게 그냥 있어라” (잠깐 흔들렸다), “너 그러다 영영 시집 못 간다. ” (악담에 놀랐다) 등등. 부모님의 걱정과 우려에도 맹렬히 설득했다. 계속해서 곡 작업을 하려면 퇴근 이후에 작업과 연결된 동선 확보가 필수였기 때문에 연남동을 택했다. 그 덕에 출퇴근에 할애했던 시간을 곡 작업에 배분할 수 있어 시간의 여유가 생겼고, 도처에 사는 아티스트들과의 교류가 많아지게 된 데다, 무엇보다 연남동이 풍기는 생기가 직장 생활과 음악 생활에 큰 활기로 작용했다. 혼자 지낸년 3 동안 가장 큰 소득은 혼자서,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노하우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편의점에서 파는 네 개 만원짜리 수입맥주를 사서 컵에 부어놓고, 마스크 팩을 얼굴에 올려놓은 다음,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회사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퇴근을 해 나만의 공간에서 비로소 긴장의 끈을 놓을 때 전해지는 위로가 혼자 사는 생활의 정점이다. 이제 그 시간을 뒤로하고, 곧 결혼을 한다.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공간 덕에, 자유와 독립에 애걸복걸하지 않고, 자연스레 결혼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 어쩌면 아티스트(33세, 제주항공 마케터 겸 싱어송라이터, 독립 6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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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전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