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연애를 하지 않는가
연애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연애의 달콤함도 알고, 뜨겁게 불타오르는 열정도 겪어봤다. 그런데 그 열정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연애에 둔감해진 걸까?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심리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상담센터를 찾았다.
따져보면 연애를 안 한 지 3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동안 연애를 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았다. 연애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이 많았고, 연애를 하기 위해 필요한 일련의 노력을 하기에는 거기에 쏟을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연애를 하지 않아도 세상은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했고, 좀처럼 심심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주위의 친구들 역시 한 목소리로 연애에 쓸 에너지도 없을뿐더러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한다고 털어놓는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공감을 일으키는 키워드가 되었고, 혼밥, 혼술 등 그 어느 때보다 싱글 라이프스타일을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도 연애를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개팅도, 데이트도 모두 시큰둥한 이 연애불감증의 심리적 기저에는 어떤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심리상담소로 향했다.
심리 검사를 받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 반, 내밀한 부분까지 들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반으로 움 심리 상담 연구소를 찾았다. 검사는 그림을 통해 무의식을 알아보는 투사 검사(HTP), 성격의 병리를 열 가지 측면에서 알아보는 다면적 인성 검사(MMPI), 그리고 성격 유형을 알아보는 자기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MBTI)로 진행되었다. 진명자 소장과 함께 1대1로 진행된 투사 검사는 개인의 방어기제, 강박적 사고나 행동, 공포증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검사였다. 내게 빈 A4용지 네 장이 주어졌고, 집, 나무, 사람 등을 그리게 했다.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본 게 얼마만이던가? 말도 안 되는 유아 수준의 그림을 그려내면 그것과 관련한 질문이 이어졌다. 집을 그릴 때는 이 집는 누가 사나, 나는 어디에 있나, 지금 뭐 하고 있나 등의 질문을 받는 식이었다. 이어진 검사는 다면적 인성 검사. ‘ 나는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한다’,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건강 걱정을 하지 않는다’와 같이 나의 성향에 대해 묻는 약 550가지의 문항에 그렇다와 아니다를 선택해야 하는 MMPI 검사는 객관식으로,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에도 무조건 하나의 답을 선택해야 한다. 반복 문항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쪽에 체크하면 된다. 다면적 인성 검사는 건강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지 그 적응도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검사로 실제로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많이 사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인관계 스타일, 의사소통 스타일, 진로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기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인 MBTI 검사가 이어졌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 자신의 행동과 가깝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선택하거나 주어진 낱말 중 자신에게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말을 고르는 식으로 검사가 진행된다. 이 세 가지의 검사는 그 사람을 심층적이고 복합적으로 분석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검사다. 4일 후, 결과를 듣기 위해 진명자 소장과 마주 앉았다. 복합적인 심리 검사 결과,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황마다 마주하는 생각이나 감정을 방어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남들에게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 크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검사 결과를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결과가 왜곡됐을 가능성을 생각하고 약간의 가설을 세워야 한다고 한다. 서로 다른 검사를 실시하는 이유도 MBTI와 MMPI를 통해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욕망을 읽어내고, 무의식 검사를 통해 그와 반대되는 본질적인 부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무의식 결과를 살펴보면 나름의 원칙이나 규칙을 세우는 경직되고 제한된 면모를 보이는 편인 데 반해, MBTI에서는 상당히 열려 있는 사람으로 나온 것이다. 그 차이는 사회화된 나, 즉, 개방적인 나의 모습이 사회에서는 더욱 진보적으로 평가받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된다는게 소장의 설명이다.
연애에 무기력한 이유 연애를 회피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을 지니고 타인의 주목을 끌기 좋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재된 인정 욕구와 주목 욕구를 상대가 지속적으로 채워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유통기한은 길지 않고, 상대가 영원히 나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내줄 수는 없는 법이다. 진명자 소장의 설명은 이랬다. “ 연애의 달콤함에 취해 있던 사람은 뜨거웠던 연애가 안정적이고 편안한 우정의 관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쓸쓸함과 허전함을 느껴요. 그 서늘함이 두려워서 애초에 시작을 못하는 걸 수도 있죠.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평소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사랑보다 우정을 믿는 내게 우정은 절대 부정적인 어감을 가진 단어가 아니다. 이런 의문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답을 주었다. “처음부터 상대에게 우정을 기대하면 괜찮지만, 우리가 연애할 때 으레 기대하는 달콤함이 있잖아요. 그게 깨질 때 남겨지는 삭막함을 못 견디는 거죠. 어차피 우정으로 이어진다면 이미 주변에 우정을 나눌 친구가 많은 것을 깨달아버리니 굳이 연애를 할 이유를 못 찾는 겁니다. 혹은 사랑의 끝이 두려워서 애초에 시작을 꺼리는 거예요.” 정상수치보다 높게 나온 불안감정 역시 연애를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일과 관련한 부분에서 불안함을 꽤 많이 느끼는데,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연애의 감정은 또 다른 불안감을 양성한다. 그러니 더 이상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를 만들기 싫어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 “요즘 청춘남녀가 집단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지 않나 생각해요. 연애를 할 때는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정도의 대가를 치를 만큼 심리적인 여유가 부족하죠. 사람들이 초콜릿을 먹는 이유는 살이 찌고 이가 썩는다고 해도 그걸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현실의 팍팍함,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같은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붙들고 있던 관계가 끝나면 더 이상 대책이 안 설 것 같다고 판단해서 연애를 꺼리는 거죠. 흔히 연애가 귀찮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 귀차니즘은 애정 관계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가 없으니까 그런 거예요.” 사람들은 일이나 연애가 안 풀릴 때 운세를 보러 간다. 운세를 보는 것과 달리 심리 검사는 자신이 실제로 생각하는 것을 토대로 숨겨져 있던 심리까지 알려주기 때문에 좀 더 명쾌하다.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센터를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몰랐던 연애에 대한 두려움의 원인을 마주하고 나니 연애를 하고 싶다는 자극은 물론이고, 관계를 쌓아가는 데도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꼭 연애 문제가 아니더라도 객관적인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건 한 해가 시작되는 시점에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어줄 거다.
상담 프로그램 셋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때, 일반적으로 찾는 프로그램들.
의사소통 훈련 프로그램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상대의 관심이나 접근에 적절한 반응이 어려운 사람, 할 말을 못하고 속으로만 앓다가 관계를 회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성격탐구 프로그램 정서 불안으로 인해 사회에 적응하기가 어렵고, 강박으로 결정을 미루고 일에 대한 효율성이 떨어지며 분노 조절이 안 된다고 느낄 때 그에 대한 적절한 조언을 구할 수 있다.
대인관계 촉진 프로그램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평소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 지나치게 수줍어서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