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상영하다
음식을 소재로 삼은 영화가 아닌, 요리와 셰프가 주인공인 진짜 음식 영화가 있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탐식가, 학구적인 미식가들이라면 금세 사랑에 빠질 영화 아홉 편.
<셰프의 테이블>
세계 최정상 셰프들의 열정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로 넷플릭스를 대표하는 오리지널 다큐 시리즈로 손꼽힌다. 넷플릭스 가입자들이 통과의례처럼 보는 인기 콘텐츠이기도 하다. 각 에피소드마다 한 명의 셰프를 선정해 심도 있게 다루는 방식으로 셰프들의 제각기 다른 방식과 스타일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시즌 1에는 2016년 산 펠레그리노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1위를 차지한 이탈리아의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의 셰프 마시모 보투라와 댄 바버, 니키 나카야마가 등장한다. 시즌 2에는 방콕에 위치해 한국 여행자들에게도 인기 있는 레스토랑인 가간의 오너 가간 아난드를 비롯한 여섯 명 셰프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2017년에 공개될 시즌 4에서는 백양사 천진암 정관스님의 사찰음식이 등장할 예정이다. 프랑스 셰프만을 다룬 스핀오프 <셰프의 테이블 프랑스>도 놓치지 말길.
<더 마인드 오브 셰프>
셰프테이너의 조상격인 앤서니 보뎅. 그는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노골적으로 폭로한 – 음식 재활용, 손님을 등쳐먹기 위해 만드는 메뉴들, 오늘의 메뉴라는 미끼로 오래된 재고를 소진하는 방법 등 – <키친 컨피덴셜>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 후로 그는 자신의 재능을 요리 대신 저술과 방송으로 사용하게 된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쓴 <쿡스 투어>와 이번에는 셰프들의 선한 면을 부각시킨 <셰프>와 같은 책을 냈고, 세계 음식을 맛보는 <노 레저베이션> 시리즈를 만들었다. <더 마인드 오브 셰프>는 앤서니 보뎅이 프로듀서이자 내레이터로 등장해 레스토랑 모모푸쿠 누들바의 데이비드 창과 같은 다양한 젊은 스타 셰프를 만나는 음식 다큐멘터리로 올해 시즌 5가 방영된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레스토랑과 힙스터들에게 사랑받는 레스토랑의 셰프를 만나는 데다 앤서니 보뎅 특유의 유쾌한 진행으로 즐겁게 볼 수 있는 시리즈다.
<스시 장인 : 지로의 꿈>
극장에서 정식 개봉한 음식 다큐멘터리 중 가장 인기를 모은 작품은 <스시 장인 : 지로의 꿈>일 것이다. 영화는 도쿄 긴자 지하철역 근처의 스키야바시 지로를 운영하는, 당시 85세의 고령 요리사 오노 지로와 가업을 잇는 두 아들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60년 이상 초밥을 쥐고 있는 이 늙은 요리사는 평생을 구도하듯이 살아간다. 정원 한 뼘 없이 지하에 있는 소박한 레스토랑이지만, 맛으로 찾아오는 오랜 단골들과 미슐랭 3스타의 레스토랑에 대한 기대를 안고 찾아오는 손님들로 예약은 바늘구멍이다. 매달 1일 전화로 다음 달 예약을 받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한다. 초밥 요리사로 한평생을 살아온 노요리사가 가장 걱정하는 건 환경 오염에 따른 식재료의 변화다. 피조개가 사라지고, 가리비가 사라지는 환경을 걱정하며 무엇이든 풍족했던 어시장의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다. 현재 그는 아흔 살로 여전히 스키야바시 지로를 운영하고 있다.
<엘 불리 : 요리는 진행 중>
덴마크의 르네 레드제피와 스페인의 로카 형제 이전에도 레스토랑계의 슈퍼스타는 있었다. 바로 엘 불리이다. 엘 불리를 이끄는 페란 아드리아는 그렇게 규정하는 걸 질색했지만, 엘 불리는 ‘분자 요리’라는 것을 미식의 식탁에 올린 셰프임은 틀림없다. 또 새로운 요리 연구를 위해 1년에 반만 레스토랑을 여는 획기적인 방식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해변에 위치한 아름다운 레스토랑의 그해 마지막 영업일이 끝나면 이들은 실험실 같은 주방, 아니 주방을 빙자한 실험실에 모여 온갖 요리 실험을 해댔다. 이 영화가 개봉한 2012년에도 그들은 세계의 관심의 중심에 있었지만 엘 불리의 멋진 모습은 이 영화로 영원히 봉인되었다. “엘 불리는 폐업하는 것이 아니라 변모하는 것”이라고 말한 페란 아드리아는 현재 전시, 교육, 연구, 컨설팅, 예술 등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천재성을 세상에 선보이는 중이다.
<푸드 주식회사>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푸드 주식회사(Food, Inc)>는 그 어떤 영화보다 흥미진진할 것이다. 아카데미 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한 이 다큐멘터리는 꼼꼼한 취재로 푸드 산업의 상업화 과정을 치밀하게 따라간다. 영화에 따르면 미국의 농업은 크게 네 개의 회사가 독점하는 구조다. 이들은 더 큰 수익을 위해 재배와 수확, 유통을 간소화하고 이 농작물로 소, 돼지, 닭을 키운다. 소신에 따라 유전자 조작 콩과 옥수수를 재배하지 않는 농부들은 종자를 구입하지 못해 예전 방식으로 스스로 씨앗을 얻어야 한다. 농업이 미국의 초대형 산업으로 변하는 과정과 그 농산물로 생산된 음식이 슈퍼마켓으로 오는 그 과정을 살핀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입맛이 싹 달아날지도 모른다.
<노마 : 뉴 노르딕 퀴진의 비밀 >
영화는 “산 펠레그리노 2010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은 노마입니다!”라는 시상식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2011년, 2012년, 2014년에도 1위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노마였다. 르네 레드제피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다. 노마는 세계 미식계의 뒷전에 있던 ‘뉴 노르딕 퀴진’을 일약 트렌드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다. 북유럽산 식재료만 사용하는 답답한 방식은 오히려 열광적인 팬을 낳았다. 지금껏 세상에 없던 북유럽 고유의 요리를 선보이며 25세에 자신의 레스토랑 ‘노마’를 설립한 르네레드제피. 그러나 그는 사실 마케도니아의 무슬림 이민자 2세로 인종 차별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북유럽인보다 더 북유럽다운 음식으로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닥친 고난을 조명하기도 하지만,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리크를 기르는 농부, 성게를 채취하는 어부 등 식재료를 공급하는 사람들과의 교감이다.
<수제 맥주에 도전하다>
크래프트 비어, 즉 수제 맥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미국의 젊은 양조업자들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수제 맥주의 유행은 전 세계적인 식문화 트렌드 중 하나다. 미국에서 가장 큰 붐이 일어났지만 아시아 대도시에서도 사랑받는다. 크래프트 비어를 만들고 있는 양조장과 이들에게서 맥주를 받아 판매하는 펍의 오너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이 날 때부터 맥주를 만들었을 리는 없고, 본래 다른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이 맥주가 좋아서 시작한 경우가 많다. 원하는 일을 하기에 행복할 수 있는 이들이지만, 영화는 이들이 결국 다양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과정을 조명한다. 허름한 창고를 개조해 만든 양조장이 인기를 끌고. 맥주 산업으로 다양한 사람이 찾아와 활기가 생긴 동네는 더 나아가 맥주의 도시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Cooked: 요리를 욕망하다>
<세컨 네이처>, <욕망하는 식물>, <잡식동물의 딜레마> 등 여러 베스트셀러를 쓴 인기 작가 마이클 폴란의 <요리를 욕망하다 : 요리의 사회문화사>를 원작으로 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로 불, 물, 공기, 흙이라는 네 개의 키워드로 요리의 진화와 요리와 인류의 관계를 사회문화적으로 설명한다. 인류의 문명과 함께 시작된 요리의 역사를 뛰어난 영상미로 시각적으로 설명해주는데, 그 과정이 매우 흥미진진하다. 원작자인 마이클 폴란이 직접 내레이션을 맡아 저자의 강의를 듣는 것 같은 효과도 있다. 인류는 요리와 함께 어떻게 발전해왔을까? 학구적인 미식가라면 반드시 봐야 할 콘텐츠다.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
중국 CCTV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광활한 중국 대륙의 음식을 감각적으로 소개해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호평받으며 BBC 등에 수출되기도 했다. 영문 제목은 [A Bite of China]. 시즌 1, 2를 통틀어 모두 15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 역시 급격한 도시화를 겪으며 고유의 음식 문화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 중국 각 지방의 음식을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함께 소개하는 방식으로 감동과 리얼리티를 모두 살렸다. 우리와 닮은 듯 다른 가까운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영화다.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CJ E&M 채널과 함께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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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허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