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클로에 모레츠

클로에 모레츠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정치와 성별 규범, 페미니즘에 대한 소신을 밝힐 때도 거침이 없다. 그것은 스크린 위에서든, 밖에서든 마찬가지다.

재킷은 파우스토 푸글리시(Fausto Puglisi). 톱은 에르베 레제 바이 막스 아즈리아(Herve Leger by Max Azria). 팬츠와 부츠는 랙앤본(Rag&Bone). 반다나는 코치 1941(Coach 1941).

재킷은 파우스토 푸글리시(Fausto Puglisi). 톱은 에르베 레제 바이 막스 아즈리아(Herve Leger by Max Azria). 팬츠와 부츠는 랙앤본(Rag&Bone). 반다나는 코치 1941(Coach 1941).

클로에 모레츠는 아역 시절부터 감독의 지시에 따라 언제든 울 수 있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녀 이력에서 처음으로 비중 높은 배역을 맡았던 영화 <아미티빌 호러(The Amityville Horror)>를 촬영할 당시, 그녀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열한 살 무렵에는 엄마의 신장암 투병 생활을 지켜보았고, 두 오빠 트레버와 콜린이 커밍아웃을 했을 때 그들의 든든한 응원군이 되었으며, 곧이어 부모의 이혼을 겪었다. 문을 닫아걸고 방 안에 틀어 박혀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보다 미래지향적인 길을 선택했다. <킥애스(Kick-Ass)>의 소녀 암살자 캐릭터인 힛걸 역을 덥석 맡으면서 ‘보스 기질’이 있는 여주인공 역할에 집중하겠다고 언론에 발표한 것이다. 그렇게 아역 배우에서 주연 여배우로의 변신이 시작되었다. <킥애스> 이후 클로에는 <렛미인(Let Me In)>의 뱀파이어, <캐리(Carrie)>의 왕따 소녀를 소화했고, <이프 아이 스테이(If I Stay)>에서는 자동차 사고 이후 사후의 삶을 경험하는 여자를 연기했다. 신작 코미디 영화 <나쁜 이웃들2(Neighbors 2)>에서 성차별적 회원 제도를 뒤엎어버리는 여학생 역할도 그녀의 목표에 걸맞은 캐릭터다. 가장 최근 개봉작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브레인 온 파이어(Brain on Fire)>다. 여기서 클로에는 광기로 치닫는 저널리스트를 연기한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들처럼 클로에 역시 머리가 아닌 가슴의 소리를 따른다. 자신의 직감을 믿고 옳다고 여기는 바를 분명히 말할 줄 안다. 캐릭터가 반여성주의적이라면 감독과 설전을 벌이길 주저하지 않고, 성적소수자 오빠들이 겪은 괴롭힘 사례를 얘기하면서 동성애 혐오에 맞서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정치가 도널드 트럼프의 시대에 역행하는 견해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유세에 뛰어든다. 심지어는 SNS에 누드 사진을 올린 킴 카다시안에게 면박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사진이 젊은 여성들에게 잘못된 본보기로 비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전 대화를 시작하고 싶었어요. 상대방이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건 오히려 환영할 일이죠. 전 서로 다른 생각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하길 좋아해요.” 바로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그녀와 마주 앉았다.

야구 모자를 쓰고 있으니 아무도 당신을 못 알아볼 것 같네요.
얼굴을 숨기려고 쓴 건 절대 아니에요. 날이 화창해서, 인터뷰 후에 오빠와 스케이트보드나 탈까 하고 쓰고 나온 거예요.

이제껏 반항적인 여성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잖아요. 작품을 검토할 때 그런 유형의 캐릭터를 일부러 찾는 건가요?
그런 편이에요. <킥애스>, <캐리>, <렛미인> 같은 작품들을 하면서 활동 폭을 넓힐 수 있었죠. 덕분에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되고, 각본도 쓰고, 영화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성별에 따른 사회적 규범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제겐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에요. 목표는 성 평등에 입각한 영화를 만드는 거예요. 배역을 남자 배우가 맡든, 여자 배우가 맡든 차이가 없는 그런 작품을요.

<나쁜 이웃들2>에서 맡은 셸비 역도 마찬가지죠. 그녀는 어떤 식으로 사회적인 편견에 맞서나요?
셸비는 여자와 남자로 나뉜 대학생 사교클럽의 규정에 불만을 품고, 틀을 깨트리는 자신만의 클럽을 만들어요. 즉흥적인 결정이었는데, 그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렇게 중요사안을 얼렁뚱땅 결정해버리는 여성 캐릭터는 영화에서 흔치 않거든요. 편견에 맞서는 젊은 여성 캐릭터는 주로 침착하고 지적인, 교양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니까요. 하지만 셸비는 안 그래요. 말 그대로 진짜 ‘또라이’거든요!

로즈 번, 세스 로건, 잭 에프론, 셀레나 고메즈까지 캐스팅이 놀라워요. 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건 어땠나요?
얼굴만 마주쳐도 서로 장난치기 바빴죠. 언제 어디서든 절 골탕 먹일 거리를 귀신같이 찾아내더라고요. 근데, 장난이 아닌 진짜로 절 짜증나게 한 사람도 있었어요.

누구였죠?
아, 그건 말 못해요. 유명한 사람들이거든요.

주로 어떤 타입의 인간이 당신을 짜증나게 하나요?
성별에 대해서 고루하고 잘못된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 엄청 거들먹거리면서 함부로 남을 재단하는 편협한 인간요. 그리고 자신을 평범함의 기준에 억지로 맞추려고 애쓰는 사람도요.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오히려 그와 정반대인 사람이란 걸 제가 알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최근 킴 카다시안과 주고받은 트위터 내용이 화제였어요.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누드 사진을 올리자, 당신은 그녀에게 이런 트윗을 남겼죠. “목표 설정이 젊은 여성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당신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여성에겐 육체 말고도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게 훨씬 많다는 걸 알려주세요.” 왜 이런 메시지를 보냈나요?
그때는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공항에 내렸을 때였어요. 시차때문에 피곤한 상태에서 그 사진을 봤고,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 사진은 신체적 자신감과는 관계가 없어요. 그러니까 ‘#bodyconfidence’ 라든가 ‘#LoveWhoYouAre’ 같은 해시태그가 붙을 사진이 아니었다고요. 단지 ‘좋아요’를 받기 위해 관음적인 욕망을 부추기는 사진을 올린다는 게 끔찍했어요. 전 야한 것에 두드러기 반응을 일으키진 않아요. 그 사진은 전혀 다른 문제죠.

킴은 당신의 트윗을 이렇게 리트윗했어요. “다같이 @ChloeGMoretz를 환영해줘요. 사람들이 그녀가 누군지 잘 모르거든요.” 
그걸 보고 웃음이 터졌어요.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트위터 알림이 떴거든요. “오 마이 갓! 그녀가 답장을 보내왔어.” 엄마는 엄청 기분이 상하셨어요. 여자끼리 싸우는 건 볼썽사납고, 게다가 킴이 보인 반응이 그리 교양 있다고 보긴 어려웠으니까요. 그녀의 메시지는 공격적이었어요. 또 맞는 얘기도 아니었죠. 제겐 7660만 명의 팔로워도 없고, 사생활을 뒤쫓는 TV쇼도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제가 누군지 알아요. 전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누구처럼 다른 사람에게 비아냥거리는 표현을 쓰지도 않고요.

나중에 킴은 SNS에 이런 글을 덧붙였어요. “나의 육체는 내게 자신감을 준다. 나의 섹슈얼리티가 내게 힘을 준다.”
흥미로운 글이에요. 좀 더 일찍 그런 글을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 멋진 메시지지만, 늦게 올린 감이 있었어요.

당신은 “비키니 입은 내 사진을 올리면, 새 팔로워가 수천 명 늘어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도 비키니 사진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건 새 팔로워를 얻기 위해서였나요?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가요?
그 사진은 성적 매력을 어필하려고 올린 게 아니에요. 신체적 자신감과 관계가 있죠. 멕시코의 아름다운 해변에 있던 그날 기분이 좋았거든요. 제가 사진을 올리면 수많은 젊은 여성이 보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요. 그리고 그 사진이 우아하다고 확신했어요. 실제로도 너무 얌전한 척한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정말요? 믿을 수가 없군요!
그렇다니까요. 몸을 과시하지 않으려 한다는 이유로 그런 얘길 들었죠.

“나는 확고한 페미니스트다. 하지만 모든 남자를 혐오하지는 않는다.” 몇 년 전 당신이 한 말이죠. 그때 페미니스트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나요?
열세 살이었던 전 네 명의 오빠와 혼자가 된 엄마를 지켜야 했어요. 그 시절 제게 있어 페미니즘이란 남자와 여자가 서로 힘을 합쳐 노력하는 것. 가족 구성원 간의 평등을 뜻했어요.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나요?
그땐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 겪고 있는 이런저런 역경들, 특히 직업에서 겪는 어려움을 그 나이 때에는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요. 이후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책을 읽으며 다양한 사회 현실을 알게 되었죠. 일종의 진화 과정을 겪었다고 할까요? 지금 제게 페미니즘이란 성별, 인종, 경제적 처지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걸 뜻해요. 페미니즘은 남자를 혐오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사람들이 절 그런 식으로 오해할까 봐 두려워요.

유감스럽게도, 페미니즘 하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바로 그런 것이죠.
오늘날 페미니즘의 의미는 지나치게 양극화되어 있어요.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유세에 동참하면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죠. 제가 만난 수많은 여성이 이런 식으로 얘기하더군요. “힐러리에게 내 표를 주고 싶어요. 그녀가 우리 대통령이 된다면 정말 좋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힐러리에게 투표하면, 젊은 남자들이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보게 될까 봐 그게 두려워요”라고요.

설마요!
농담 아니에요. 페미니즘의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어요. 제 주변의 젊은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고 싶어요.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보낸 시간은 어땠나요?
그녀는 ‘오, 당신이 오늘 내 선거 캠페인을 도와주러 온 유명인인가요? 정말 고맙군요’ 같은 식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녀는 제 나이 또래의 미국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지 궁금해했어요. 싱글맘 밑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오빠들이 나를 강압적으로 대했는지, 다정하게 대했는지, 또 게이 오빠들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등에 대해서 물어보았죠.

당신은 가족을 버린 아빠에 대해 종종 언급해왔어요. 이젠 아빠를 용서할 수 있나요?
아니요. 그리고 앞으로도 용서하지 못할 거예요. 그 사건에 휘둘리지 않고 제 삶을 사는 것만이 나름의 용서가 될지도 모르죠. 그때 전 고작 열두살이었어요. 가족 모두가 너무나 힘들어했고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지만, 오히려 관계는 전보다 단단해졌죠. 아빠 역할을 떠맡은 오빠들은 공기방울 같은 보호막이 되어주었고요. 덕분에 제 세상은 권태롭거나 황량하지 않았어요.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절에 겪은 일이잖아요. 사람을 신뢰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전 대체로 사람을 쉽게 믿질 못해요. 누군가를 제 삶 속으로 받아들일 때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얽히곤 하죠. 하지만 조금씩 극복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유를 모를 때, 자기 내면의 깨진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보기 시작해요. 그리고 깨닫게 되죠.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요.

당신은 유명인이에요. 마음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지는 않나요? 이를테면, ‘이 사람이 내게 관심을 보이는 건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가진 부와 명예 때문일까?’ 하고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했어요. 제 안에는 많은 벽이 있거든요. 엄마도 저와 똑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죠. 하지만 엄마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신뢰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려요. 거기엔 장점도 있죠. 입을 꽉 다문 조개처럼 살아선 안 되겠지만요, 그렇다고해서 이제 고작 데이트 한 번 한 상대에게 온 마음을 뺏겨서도 안 되잖아요.

당신은 연애에 관련한 사생활만큼은 철저히 비밀로 해왔어요. 그 이유는 뭔가요?(최근 그녀는 브루클린 베컴과 첫 공개연애를 시작했다!)
연애란 너무나 사적이고 특별한 경험이라 생각했어요. 그런 사적인 순간들을 다른 누군가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요? 타인의 사생활을 TV에서 보여주는 것도 전 정말 싫어요.

두 오빠가 게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당했던 괴롭힘을 고백한 적이 많아요. 요즘도 오빠들을 위해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 생기나요?
네,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에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바에서 피자와 치킨을 시켜서 먹고 있는데 한 무리가 다가오더니 이러는 거예요. “대체 누가 이 호모 새끼들을 안에 들인 거지?” 제가 그랬죠. “방금 뭐라고 했어? 지금 한 말 다시 한 번 해볼래?” 그랬더니 “아니, 아무 일도 아니야.” 그렇게 꼬리를 내리더라고요. 누구든 가족을 건드리면 절대 가만있지 않아요.

이처럼 촬영장에서도 당신을 지지해줄 멋진 조력자가 존재하겠죠?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누군가요?
개봉 예정인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에서 함께 작업한 레베카 토마스 감독님이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에요. 감독님이 제시하는 아이디어들은 언제나 놀라워요.

<인어공주>는 한 남자를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하는 여자에 관한 내용이잖아요. 당신이 연기한 인어공주가 어떤 모습일지 흥미롭군요.
그야말로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한 인어공주예요. 여전히 왕자가 등장하지만, 상상치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좋아하는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제작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연기 외에 이런 도전을 하는 이유는요?
배우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로서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어요. 연출, 글쓰기, 영화제작, 촬영까지요. 앞으로 제가 이뤄내야 할 중요한 목표들이에요. 어서 달려와 넘어보라고 손짓하는 인생의 허들 같아요. 그러니 도전해보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재킷은 오프화이트 버질 에이블로 (Off-White c/o Virgil Abloh). 부츠는 파우스토 푸글리시.

재킷은 오프화이트 버질 에이블로 (Off-White c/o Virgil Abloh). 부츠는 파우스토 푸글리시.

    포토그래퍼
    Steve Pan
    스타일리스트
    로라 페라라(Laura Ferrara)
    헤어
    데이비드 본 카노나트 (David von Cannonat)
    메이크업
    메이 퀸(Mai Quynh)
    매니큐어
    애슐리 존슨(Ashlie Johnson)
    세트 스타일리스트
    토마스 터너 (Thomas Thurnauer)
    제네비브 필드(Genevieve Field)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