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을 닮은 패션 트렌드

세상이 긍정과 낭만으로 가득 차길 바란 디자이너들은 올봄에도 자연을 우리의 몸으로 불러들였다. 이번에는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며 달콤한 과일의 향과 작은 벌레의 신비로움이 가득한 에덴 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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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디자이너들은 자연스럽게 자연의 부름에 응답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밀림과 꽃이 만발한 정원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광활한 대지의 색과 싱그러운 바람의 촉감을 담은 소재로 봄이 왔음을 알린다. 자연의 소재는 언제나 실패할 일이 없다. 줄곧 그 이유를 생각해보다 우연히 읽은 동화책에서 그 답을 얻게 되었다. 몰리 뱅의 <소피가 화나면 정말정말 화나면>에서는 소피가 화가 날 때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주저앉을 때까지 달려요. 그런 다음 훌쩍 아주 잠깐 울어요. 이제 소피는 바위를, 나무를, 그리고 고사리를 봐요.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어요. 그러고는 늙은 너도밤나무를 찾아가 나무 위로 올라가요. 소피는 머릿결을 어루만지는 산들바람을 느껴요.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봐요. 드넓은 세상이 소피를 포근히 감싸줘요.” 몰리 뱅은 자연이 우리에게 무엇을 선사하는지에 대한 답을 매우 단순하게 알려준다. 바로 치유와 평화. 아슬아슬한 긴장과 낮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팍팍한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현대의 도시인은 자연과 고요함에서 불안을 잠재우고 재충전할 기회를 얻는다. 자연에게 이끌리는 또 다른 이유는 신이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고 말하길 ‘보기 좋았다던 자연이야말로 순수하고 보편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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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면 소재 재킷은 67만원, MM6. 2 진주와 크리스털 장식의 메탈 소재 귀고리는 2백29만원, 구찌(Gucci). 3 골드 도금 소재 뱅글은 39만5천원, 레 네레이드(Les Nereides). 4 폴리에스테르 소재 원피스는 95만8천원, 블루걸(Blugirl). 5 실크 소재 머플러는 40만원대,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6 소가죽 소재 레이스업 슈즈는 가격미정, 프란체스코 루소 바이 분더샵(Francesco Russo by Boon the Shop).

올봄에는 긍정과 낙관으로 가득한 에덴 동산이 뉴 로맨티시즘과 자연주의를 전한다. 재미있게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엔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장식과 기교가 흘러 넘 쳤다. 꽃 모티브는 그 어느 시즌보다 정교하게 표현되었고, 그 위에 자수와 비즈가 더해져 화려하게 반짝였다. 그 대표주자는 구찌였다. 분홍색 뱀이 구불구불 그려진 카펫 위로 쏟아진 화려한 의상 곳곳엔 사실적으로 묘사한 꽃과 새, 나비가 수놓여 있었다. 흐드러지게 핀 수선화, 동백, 연꽃, 양귀비는 프린트와 자카드, 루렉스, 아플리케 코르사주로 둔갑했다. 나뭇잎 모양으로 커팅한 톱과 슈즈, 원숭이를 조각한 귀고리, 비즈를 촘촘하게 박은 무당벌레와 넥타이 브로치는 정교하고 화려한 구찌의 정원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야말로 장인정신이 이룩한 지상 낙원! 올 시즌 자연의 속삭임은 모던함을 유지하면서 여성성을 불어넣기 위해 디자이너들이 꺼내든 비장의 카드이기도 하다. 수백만송이의 청보랏빛 델피니움이 만발한 무대 위로 빅토리아풍의 시스루 의상을 입은 모델의 행렬을 쏟아낸 디올의 라프 시몬스는 자연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자신이 원했던 순수함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장식을 최대한 배제한 룩에 섬세함으로 점철된 입체적인 비즈 꽃만큼은 빼놓지 않았다. 몽클레르 감므 루즈는 어떠한가? “감므 루즈는 스포티하지만 저는 그것을 입고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말처럼 네오프렌 소재의 슈트, 펜싱 선수를 연상케 하는 보디 슈트와 스니커즈의 매치 위에 소녀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은 물망초가 피어났다. 로에베는 인공과 자연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혁신적인 소재로 브랜드를 보다 젊게 만들고 싶었다던 조나단 앤더슨은 비닐과 합성 피혁, 메탈릭한 프린지와 미러 아크릴 등 지극히 인공적인 소재에 천둥오리, 목련 등의 자연 모티브의 사실적 프린트를 더해 모던과 서정,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장미와 물망초로 뒤덮인 낭만적인 드레스의 향연을 선보인 알렉산더 맥퀸의 사라 버튼, 후드스웨트 셔츠와 모터사이클 재킷 등의 스트리트 아이템 속에 영국식 빈티지 장미 드레스로 여성성을 더한 베트멍의 뎀나 즈바살리아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드리우기 위해 자연의 모티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디자이너이다. 이번 시즌은 다양한 동물과 곤충도 등장했다. 꽃에 비해 그 표현법이 그래픽적이었다는 것이 차이점. 발렌티노는 추상적으로 단순화시킨 치타를, 로샤스는 태양의 기운을 받고 있는 기린을, 생 로랑은 포효하는 호랑이를, 하우스 오브 홀랜드는 키치한 감성을 담은 형광빛 곤충 모티브의 브로치와 자수를 옷 여기저기에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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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면 소재 브라톱은 70만원, 에트로(Etro). 8 자수 장식의 고무 소재 부츠는 2백70만원대, 생 로랑 바이 에디 슬리먼(Saint Laurent by Hedi Slimane). 9 크리스털 장식의 메탈 소재 팔찌는 46만원, 스와로브스키(Swarovski). 10 비스코스 소재 슬리브리스 톱은 4만5천원, 자라(Zara). 11 라피아 소재의 모자는 가격미정, 에르메스(Hermes). 12 송아지 가죽 소재 버킷백은 가격미정, 디올(Dior). 13 면 소재 원피스는 75만원, 폴앤조(Paul&Joe).

디자이너들이 자연을 불러들이는 방식은 다양하다. 이번 시즌처럼 꽃과 나비를 담아 낭만을 자아내거나 자연 친화적인 소재와 흙의 색, 바위의 질감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그려내기도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이 지구에 사는 한 자연은 영원 불멸한 테마이며 매번 새로운 치유의 방식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에디터
    남지현
    포토그래퍼
    InDigital, James Cochrane, 이수강
    어시스턴트
    김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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