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러도 괜찮아

2012년 처음 선보인 장진의 코믹극 <서툰 사람들>은 마음 약한 도둑 장덕배와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영어 교사가 도둑과 집주인으로 만난 하룻밤 소동에 관한 이야기다. 코엑스 아트홀에서 시작하는 그 무대에 오종혁이 오른다. 제대 이후 뮤지컬 <그날들>과 연극 <프라이드>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탄탄한 행보를 이어온 그가 도둑이 되어 소동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슈트는 브룩스 브라더스(Brooks Brothers), 스카프와 스웨터는 자라(Zara).

슈트는 브룩스 브라더스(Brooks Brothers), 스카프와 스웨터는 자라(Zara).

연극 <서툰 사람들>은 주인공 두 사람, 장덕배와 유화이가 극의 대부분을 이끌어간다. 분량이나 비중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대사량은 물론 엄청나다. 무대에서 거의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애드리브까지 포함하면 ‘방대하다’고 해도 좋다. 그런데도 대본을 보자마자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코미디 연기에 도전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코미디 연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은 있었기에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그래서 막상 도전해보니 어떤가. 많은 배우가 코미디 연기가 제일 어렵다고 하더라.
정말 어렵다. 자칫하면 연극이 아닌 그냥 코미디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다.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이 애드리브에 워낙 강하다. 못하는 걸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익숙한 드라마 연기에 집중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어떤 애드리브를 개발할지 고민했다면 지금은 극의 큰 흐름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나 할까.

창작 뮤지컬이었던 <그날들>과 연극 <프라이드>, 그리고 조정석과 함께 출연한 <블러드 브라더스>까지. 제대 후 출연한 작품은 모두 국내 초연이었다. 반면 <서툰 사람들>은 2013년 초연 당시 정웅인, 예지원, 류덕환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도 주목받았던 작품이다. 당신에 대한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상관없다. 연기하는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같은 배역, 같은 대사라도 느낌이 정말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누가 이 역을 했느냐는 신경 쓰지 않는다. 비교는 물론 당할 수 있다. 그건 비교하는 사람의 몫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부러 다르게 하려고 하는 것도 억지스럽지 않나.

아이돌 그룹 출신이기 때문에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눈에 띄었을 거다. 힘든 점은 없었나?
군 입대 전, 2010년에 출연한 뮤지컬 <쓰릴 미>가 두 번째 작품이었다. 이지훈 씨와 함께 개막 이후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교당했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누구처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좋은 의미의 비교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했나?
공연 후기를 검색하는 걸 볼 엄두를 못 낼 정도였다. 그 당시 <쓰릴미>는 대중적이지도 않고, 공연 팬들 사이에서 성역 같은 공연이었다. 지금처럼 아이돌 출신의 배우가 많이 참여할 때도 아니었으니 ‘어딜 감히?’ 같은 시선이 있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만 다하자는 생각으로 버텼다. 숫자는 적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알아채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계속할 용기가 생겼다.

클릭비에서 메인 보컬이었기에 뮤지컬로의 행보는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프라이드>에 이어 <서툰 사람들>, 그리고 5월 개막인 <킬 미 나우>까지 연극을 꾸준히 택한 것은 의외다. 특히 첫 연극인 <프라이드>는 공연 시간만 세 시간에 달하고 내용도 무겁다. 첫 작품으로 너무 어려운 도전을 했던 것 아닌가?
볼거리가 강조된 작품보다 좀 더 연극적인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무렵 <프라이드> 출연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대본을 보는데 정말 너무 어려운 거다! 세 번이나 정독했는데도 내가 도전하기에는 너무 이른 작품이라고 생각해 처음에는 거절했다. 함께 만들어가자고 연출팀이 북돋아주지 않았다면 끝내 못했을 거다.

다행히 당시 연기는 호평받았다. 
정말 완전히 대본이 갖고 있는 힘 덕분이다. 여전히 내가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자료 보관용으로 촬영해둔 공연 영상을 볼 때마다 계속 ‘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쉽다.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주니 그래도 내가 잘 가고 있나보다, 다행이다 싶은 거다.

역할을 택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것 같다. <프라이드>는 동성애자를, <블러드 브라더스>에서는 아홉 살 소년부터 서른 살까지 연기했다. <서툰 사람들>에서는 코믹 연기에 도전하고, <킬 미 나우>는 장애를 가진 10대 소년 역할이다. 해병대 출신의 도전 정신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아니. 나는 군인 정신 같은 건 하나도 없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대본을 보고 캐릭터가 매력이 있으면 일단 시작한다. 그리고 <프라이드>로 연극 신고식을 호되게 치러서 자신감이 조금 붙은 것도 있다. <서툰 사람들>은 정말 유쾌하고, 대본을 보는 순간 무대 위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그림이 그려지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고민 없이 택했다. 사실 연습을 시작하면서 후회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힘들어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지만 늘 내게 과분한 작품을 택하는 건 맞다.

하나하나 해나가는 과정에 있다. 주변에서 격려를 많이 해준다고 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듣는지 궁금하다.
진심이 느껴진다는 말. 아직 서툴고 다듬어야 할 부분은 많지만 지금의 마음을 계속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매 작품마다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듣는다. 발성도 표현력도 떨어지는데 무대에 올라서 관객들로부터 어느 정도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건 내가 가진 진정성 때문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공연 때마다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나는 아직 무대 위에서 스스로 에너지를 내지 못한다. 상대 배우의 에너지를 받고 좇다 보면 상황에 몰입하게 되고 시너지가 생긴다. 그게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상대 배우와의 교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게 느껴진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험도 있나?
분명히 무대 위에서 계속 움직였는데 어떻게 이 장면까지 왔는지 모를 때가 있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내가 울고 있는 거다. 중간 휴식 때 대기실에 들어오니 좋았던 느낌만 기억이 나고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다른 배우들과 같은 공기 안에 있다는 게 뭔지 알았다. 그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건 엄청난 행운 같다. 그런데 그 느낌을 다시 찾으려고 하다 보니 그 다음 공연 몇 회는 오히려 망쳤다. 하하.

가수로서도 무대에 오랜 시간 서왔다. 그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인 걸까?
많이 다르다. ‘연기를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지금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을 정도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무대에 선다는 것, 등장인물의 감정을 실제로 내가 느낄 때 생기는 짜릿함이 있다. 클릭비로 무대에 설 때는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멤버들에게서 유대감을 느낀다. 형제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것은 여전히 낯선 기분이다.

고등학생 때 데뷔했으니 벌써 15년 넘게 유명인으로 살아온 셈이다. 굴곡이 있었던 만큼 스스로 중심을 잡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솔직히 나는 내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싫다. 누군가가 내게 ‘넌 연예인이잖아’라고 하면 정색할 정도다.

그 말에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싫어하는 건가?
<서툰 사람들>에도 나오는 대사인데 평생 먹고살아야 하는 게 직업이다. 그런데 ‘연예인이잖아’라는 말은 ‘가수잖아’, ‘배우잖아’와는 다르다. 그 안에는 ‘넌 돈 많이 벌잖아, 화려하게 살잖아, 매니저가 다 해주잖아’ 같은 함의가 들어 있다. 사람들이 종종 내게 다음엔 뭐 할 거냐고 묻는다. 그런데 나는 중심도 없고 계획도 없다. 그저 사람으로서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무대를 택한 건가? 제대 이후 뮤지컬 <그날들>에 바로 출연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장유정 연출에 유준상, 오만석 배우가 출연했던 화제작이었다.
제대 무렵 ‘다시 방송으로 돌아가면 그 스트레스 속에서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하긴 해야겠지’ 하고 고민이 많았다. 그때 <그날들> 출연 제안을 받게 된 거다. 정말 하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전역을 연기하는 바람에 연습에 한 달 늦게 합류하게 됐다.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마다 대본을 한 장씩 찢어서 외우고, 제대하고 이틀 뒤부터 바로 연습실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내 역할은 자유로운 영혼의 경호원이었는데 출연진 중에서 내가 제일 각이 잡혀 있었다. 너무 군인 티가 난 거지.

마지막으로 <서툰 사람들>의 매력을 어필한다면?
도둑 장덕배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다 서툴다. 그 서툰 사람들 사이에서 이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이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잘 봐줬으면 좋겠다. 우리도 다 서툰 사람들이니까.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계획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올해 소소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나?
우선 <서툰 사람들>을 좋은 공연으로 만드는 거다.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나도 성장하겠다는 것이 지금 세운 계획의 전부다. 많은 사람이 이 공연을 사랑해주길! 그 뒤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

    에디터
    이마루
    포토그래퍼
    정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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