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도시 농부
농사가 놀이처럼 문화가 되고, 즐거운 취미가 될 수는 없을까? 정답은 있다! 계절의 변화로 행복을 찾고, 흙과 사람을 통해 기쁨을 얻는 젊은 도시 농부들을 만났다.
<비밀의 화원>, <소공녀>의 일러스트 화가이자 동화 작가였던 타샤 튜더. 100여 권이 넘는 그림책을 펴낸 그녀는 원예가로도 유명했다. 30만 평의 대지에 18세기 영국식으로 꾸민 정원은 일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지상낙원으로 불렸다. 기르던 염소의 젖을 짜고, 맨발로 정원을 가꾸고,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식탁을 차려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삶. 그 속에서 얻은 영감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니! 그녀의 삶을 담은 책< 타샤의 정원>을 읽으며 “나도 그렇게 아름답게, 생기 넘치게 살고 싶다”를 되뇌었다.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거다. 자연에서 숨쉰 그녀의 일생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고요하고 또 아름다웠으니까.
자연과 벗하는 삶은 타샤 튜더에게 배운 꿈이었지만, 도시에 사는 우리에겐 말 그대로 꿈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4월호를 취재하며 만났던 많은 사람은 저마다 도시에서 자연과 즐기는 법을 실천하고 있었다. “농사란 고단하고 억척스러운 노동이 아니에요. 생산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멋진 일이죠. 흙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따는 등 일일이 손을 거치는 순간마다 커다란 성취감을 얻을 수 있거든요! 부담스럽지도 않아요. 작은 텃밭 상자면 충분하죠.” 파머스러브레인의 대표인 디자이너 정의선의 말이다.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관심은 도심에서 텃밭을 가꾸는 농사로 번져, 도시농업용품 브랜드까지 만들게 되었다는 그녀의 열혈 스토리는 솔깃했다. 생기 넘치는 표정과 목소리를 타고 진심이 전해졌다. 도시농사를 짓는 젊은 공동체 중에서도 ‘파절이’가 유명하다는 그녀의 추천이 더해졌고, 흙에서 기쁨을 누리는 그들이 궁금해졌다.
마포구 구수동 수협건물, 5층 빌딩의 옥상에 오르자 피라미드처럼 쌓인 건물 사이로 텃밭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곳 공중텃밭의 주인인 ‘파절이’는 ‘파릇한 젊은이’의 줄임말이다. 방치된 옥상에서 일군 수확물을 인근 레스토랑에 납품해보고자 시작된 대학생들의 아이디어였다. 2011년 출발한 프로젝트는 텀블벅에서 후원을 받아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고, 이후 협동조합을 거쳐 지금의 비영리단체로 자리 잡았다. 어느덧 6년째다. “농사를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해요. 즐겁게 농사를 지어 수확한 채소로 밥을 나눠 먹고, 다양한 문화활동을 해보자는 취지로 사람들이 모였어요.” 파절이의 대표 김나희가 답했다.
세상이 부드럽게 피어나는 4월부터 10월까지 파절이의 옥상은 바쁘다. 흙을 매만져 씨앗을 뿌리는 봄, 초록이 무성한 여름과 작물이 익는 가을! 여름밤에는 풀벌레와 매미가 연주를 시작하고, 가을에는 선선한 바람이 더해져 운치를 드리운다. 겨울을 제외한 매주 토요일마다 농사모임을 갖는다. 음악을 틀어놓고, 신나게 흙을 느낀다. 그러는 동안 방울토마토와 가지, 상추와 깻잎, 허브, 참외, 호박, 오크라, 옥수수 등 붉고,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슈퍼마켓에서만 보던 채소와 과일이 자라나는 과정은 매순간 보람의 연속이었다. 김나희 대표는 이제 그 재미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때 더 큰 즐거움을 얻는다. 농사를 짓는 시기에는 목요일마다 회원들이 모여 식사하는 ‘목요밥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옥상에서 기른 식재료로 풍성한 밥 한 끼를 나누는 것이다. “도시농업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소비하느냐로 귀결돼요. 단순히 키우기만 하면 농사의 지속성과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거든요. 다함께 한 끼를 나눈다는 것만큼 뜻깊은 일도 드물죠.” 파절이의 홈페이지(pajeori.org)에는 목요밥상을 ‘외로운 영혼, 독거청년들의 저녁만찬’이라 설명한다. 냉장고에서 쓸쓸히 지내는 밑반찬과 쌀 한 줌을 가져와서 옥상텃밭 채소의 싱싱함을 더해 마음을 나누자는 설명이 유쾌하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끓이고, 새해에는 만두를 빚어 먹는다. 수확한 토마토로 피클과 바질 페스토, 김치를 담거나 감말랭이를 만들어 근처 레스토랑에 판매하기도 한다. 날씨가 좋으면 다 같이 둘러앉아 영화를 보는 공중영화관과 작은 음악회, 공중야시장을 연다. 그들은 농사를 중심으로 지역의 안녕을 돌보고 재미를 찾는다.
물론 도시의 농사가 쉬울 리는 없다. 옥상텃밭은 비옥한 노지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작물을 기를 수가 없다. 또 유기농산물을 위해 음식 찌꺼기를 비료로 만들거나 지렁이 분변토를 연계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쳐 배우는 중이다. 폭우와 가뭄, 태풍의 무서움도 느꼈다.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고 감사함을 느끼는 것 또한 농부가 배운 삶의 깨달음이다.“ 농사를 놀이문화로 생각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지만, 결코 농사를 만만하게 보진 않아요. 농사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재미있게 즐겨보자는 의미인 거죠. 저희가 느낀, 흙에서 땀을 흘리는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널리 퍼트렸으면 좋겠어요.” 파절이에게 도시농부란 가장 매력적인 취미 생활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올해의 목표는 옥상텃밭을 지속 가능한 모델로 키우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회원비로 운영되는 체계를 튼튼히 만들어 옥상 2호점, 3호점의 문을 열 계획을 세웠다. 마음이 젊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회색 빌딩의 옥상마다 싱그러운 초록이 물들고 붉은 고추와 짙은 자주색의 가지가 자란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먹거리에 대한 불신, 어느 순간 사라진 공동체 문화, 흙에 대한 그리움이 채워질 수 있을까?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계절이 돌아 다시 봄이 왔다. 젊은 농부가 기지개를 켤 시간이다. 즐겁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서.
녹색의 재발견
작은 식물은 도시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인스타그램에서 찾은 녹음이 짙은 계정들.
1 컨서버토리 아카이브 @conservatory_achives
빈티지 소품과 작은 식물을 파는 런던에 위치한 가게. 센스 있는 공간의 주인은 반갑게도 한국인이다. 영국 유학 중에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 정착하게 됐고, 농예를 배운 후 런던에 가게를 내게 된 것. 실내에 놓을 수 있는 아기자기한 식물을 파는 것이 특징.
2 자네크 루어세마 @still_______
암스테르담의 사진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관찰하기 좋아하고 정물화적인 요소를 이용해 인테리어를 완성한다는 소개글처럼 그의 인스타그램은 광활한 자연 풍경과 작은 화분을 이용한 실내 인테리어로 가득하다. 무엇을 찍든 특유의 차분하고 잔잔한 감성은 그대로다.
3 더 실 @thesill
더 실은 뉴욕에 위치한 작은 가든 숍이다. 주인인 엘리자베스는 뉴욕으로 이사 오면서 삭막한 도시의 일상에 ‘초록’이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고 이곳을 열었다. 그녀는 식물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믿는다! 식물로 공간을 꾸미는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얻고 싶을 때 참고할 것.
4 어반 정글 블로그 @urbanjungleblog
다양한 사람들이 식물을 이용해 어떻게 자신의 공간을 꾸미는지 알고 싶다면 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를 소개하는 어반 정글 블로그를 팔로우하는 게 답이다. 일상적인 공간에 약간의 초록빛만 얹어주면 꽤 근사한 장소로 거듭난다는 것을 갖가지 사례를 통해 알게 된다.
5 보타니 @botanyshope5
런던에 위치한 또 다른 식물 가게. 선하고, 실용적이고, 윤리적인 디자인이 아름답고 균형 잡힌 삶을 만든다는 신념 아래 식물은 물론이고 가드닝에 필요한 다양한 소품을 판다. 다른 어떤 가게보다 소품 하나하나가 감각적이다. 런던에 가면 방문해보고 싶을 정도!
6 알레한드라
은은한 햇빛이 비치는 사진에서는 스페인의 풍경이 느껴진다. 바르셀로나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알레한드라는 식물과 사진 찍는 일을 사랑한다. 그 접점에서 탄생한 것이 그녀의 계정. 슬쩍 들여다보기만 해도 나른한 휴식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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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박소현, 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