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세상

4월에는 여배우들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을 다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는 왜 <캐롤>이 없나. 레즈비언의 사랑을 섬세하게 그린 <캐롤>이 작지만 강한 호응을 얻자, 영화계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탄식의 목소리를 높였다. 소수자의 사랑을 다룬 주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배우가 작품의 대부분을 끌고 갈 수 있는 영화를 만나고 싶다는 절절한 목마름에 대한 것이었다. 30대 이상의 여배우가 많은 한 소속사의 관계자는 이런 작품만 있다면 개런티를 깎아서라도 출연시키겠다고 한숨을 지었고, 제작사에 몸담았던 영화홍보인은 그런 영화는 투자가 안 되는 게 현실이라며 낙담했다. 할리우드 역시 정도만 다를 뿐 주연 자리는 대부분 남자 배우들 차지다. 다행스럽게도 4월에는 여배우들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을 다수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니, 이 목마름은 좀 해소가 될까?

<퀸 오브 데저트>는 1868년 태어난 탐험가이자 작가인 거트루드 벨의 삶을 그린다. 여성이 남성 재산의 일부로 여겨지던 시대, 상류층에서 태어났으나 남자들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내며 시대를 앞서간 여자다. 중동 전문가로 세계대전 후에는 영국 정보국의 스파이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거트루드 벨을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다.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여러 번의 연애가 알려져 있다. 그녀의 첫사랑 헨리는 제임스 프랭코, 탐험 동료는 로버트 패틴슨이 맡았다. 니콜 키드먼의 영화는 또 있다. 니콜 키드먼과 줄리아 로버츠가 함께 호흡을 맞춘 <시크릿 인 데어 아이즈>는 미제 사건을 다룬다. 니콜 키드먼은 13년 전 미제 사건 재수사의 키를 쥐고 있는 검사 클레어를, 줄리아 로버츠는 자신의 딸을 죽이고 사라진 범인을 쫓는 경찰 제스를 연기한다. 납치된 여자가 아닌 범인을 쫓는 역할을 맡은 이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여자들만의 세계를 흥미롭게 들여다보는 두 편의 영화도 있다. <무스탕 : 랄리의 여름>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터키 영화다. 터키의 외딴 마을에 살고 있는 랄리와 다섯 자매가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터키의 문화와 싸우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아름다운 영상미는 덤. 여학교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그린 <폴링>은 1969년 영국의 보수적인 여학교를 배경으로 사춘기 여학생들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그린다.

그럼 우리나라 여배우들은? 라인업을 보면 한숨이 날 정도로 남자 배우로만 가득한 한국 영화계이지만 <해어화>가 눈에 들어온다. 1940년대, 가수를 꿈꾼 마지막 기생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한효주와 천우희가 정가의 명인이 되고자 하는 기생을 연기한다. 정가는 가곡, 가사, 시조로 이루어진 우리 고유의 성악곡으로 지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바 있다. 마지막 기생 역을 맡은 한효주는 영화 제작 전 4개월간 정가를 배웠다고. 천우희는 경성의 기생학교 대성권번에서 한효주와 우정을 나누지만, 노래를 두고 라이벌이 되는 연희를 연기한다. <해어화>는 4월 13일 개봉할 예정이다. 올해는 좀 더 많은 여배우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되길.

    에디터
    허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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