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림의 온도
배우 송재림과 <얼루어>는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향했다. 나눔이 모여 완성된 꿈의 마을 드림 빌리지. 그곳에서 얻은 희망의 조각들. 당신이 꿈꾸는 세상은 어떠한 모습인가?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아동 책팩에 대해 알아가면서 캄보디아와 부쩍 가까워졌어요. 그리고 제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드림 빌리지’는 배우 송재림이 직접 국제구호개발 NGO인 플랜코리아에 제안해서 진행 중인 캠페인이다. 마을이 자립하도록 돕는 지역개발사업(Area Development Program, ADP)이 중심이 된다. ‘드림 빌리지’는 모든 아이의 꿈이 이루어지는 마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단순히 보여주기식의 봉사가 아닌, 실제로 도움을 주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의 답이었다. 서늘하고 느릿한 송재림의 말투에서 진지함이 묻어났다. 그의 의지로 프로젝트가 가동되면서 플랜코리아는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지역개발 사업이 시급한 장소를 추렸다. 씨엠립에서 1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스레이 스남 지역, 그중에서도 프놈데이는 837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관광도시로 유명한 씨엠립이 캄보디아의 24개 주에서 세 번째로 가난하다니! 다섯 살 미만의 영유아 사망률이 1000명당 178명으로 전국 평균인 83명과 비교해 월등히 높은 통계가 낯설다. 개발 지수가 낮고, 사회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씨엠립 아동의 건강상태 또한 현저히 떨어졌다. 그리고 이곳은 그가 후원하는 책팩의 동네이기도 했다.
건강한 물 한 모금의 힘
아이가 행복하게 꿈꾸며, 건강하게 자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드림 빌리지’를 시작하게 된 근본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첫 번째는 늘 곁에 있지만, 소중함의 무게를 느끼기 어려운 그것. 바로 물이다. 깨끗한 하수도 시설과 누르면 맑은 물이 콸콸 나오는 수도꼭지는 모든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해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개발도상국의 빈곤지역일수록 식수가 현저히 부족하다. 개발도상국에서 발병하는 질병의 80%가 깨끗하지 않은 물과 부적절한 위생상태에서 발생하고, 전 세계적으로 8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없는 열악한 위생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이유로 매년 1400만 명의 어린이가 사망한다. 1분에 세명의 어린이가 하늘나라로 간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837명이 살고 있는 프놈데이 마을에서 시급한 문제 역시 식수였다. 마을에는 10개의 자연 우물이 있었지만, 그나마 식수로 활용하는 우물은 고작 한 개였다. 건기가 되면 그마저 다 말라버린다고 했다. ‘드림 빌리지’를 시작하며 프놈데이 마을에 첫 방문했을 때, 주민들이 사용하던 우물을 함께 둘러봤어요.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우물 상태에도 놀랐지만, 웅덩이나 다름없는 우물이 위 험해 보여서 더 놀랐죠.” 실제로 아이들이 물을 긷다가 우물에 빠지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식수로 사용하는 탁한 우물에는 나뭇잎과 불순물이 둥둥 떠 있었고, 동물과 가축이 우물 주위를 맴돌았다. 캄보디아 아동에게 발생하는 질병의 대부분이 수인성 질병이라는 자료가 이해가 갔다. “그냥 땅을 파면 나오는 물이 아니라, 깨끗하고 안전한 시설이 절실했어요.” 그 다음 중요한 보건소를 확인했다. 어린이가 건강하기 위해선 질병과 사고를 예방하고 치료해줄 수 있는 의료시설이 밑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도착한 보건소의 오래된 시설은 손볼 곳이 많았다. 주저앉은 천장부터 화장실, 병실 등 개보수해야할 부분을 확인했다. 그는 책팩의 집에 가 서 부재한 아버지 대신 삐걱거리는 계단과 비가 새는 외벽을 수리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꼬박 이틀이 걸렸지만, 손에서 공구를 내려놓진 않았다. 부족함이 자꾸 눈에 밟혀 전구와 배터리를 선물하고 나서야 발걸음을 뗐다. 밤에도 책을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송재림은 한국으로 돌아와 우물과 보건소 개보수를 위한 ‘드림 빌리지’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모금을 진행한 첫날, 우물 하나를 세울 수 있는 기금 3백만원을 마련했다. 보건소 개보수에 필요한 4천만원을 모으기 위해 본인이 모델로 활동한 캐주얼 브랜드와 협업 상품을 출시했고, 판매 수익금의 3%를 우물 건립 지원에 보탰다. 국내외 각지에서 크고 작은 모금이 이어졌다. 몇 달 뒤 ‘드림 빌리지’의 첫 프로젝트인 우물이 완성된 순간, 송재림은 다시 캄보디아를 찾았다. 준공된 우물을 확인하고, 직접 자신의 손으로 펜스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배우 송재림을 너머 인간적인 그가 와 닿았다.
진정한 나눔의 땀방울
어느덧 ‘드림 빌리지’ 캠페인이 시작된 지 1 년이 지났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 얼루어>는 그의 세 번째 ‘드림 빌리지’ 방문에 함께했다. 정글 속에 잠자는 사원, 신비의 앙코르와트로 기억되던 도시 씨엠립은 이방인을 따뜻한 공기로 맞이했다. 지루한 우기가 끝나고, 햇빛이 바삭거리는 건기가 내려온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곁에는 활기찬 네 명의 청년이 함께했다. 배우 송재림과 절친한 배우 김영용을 비롯한 두 명의 후배가 드림팀이 되어 힘을 보탰다. “놀라지 마세요, 저희는 진짜 일만 해요. 온몸으로 하는 봉사죠.”
흙먼지와 함께 도착한 보건소에는 이미 여러 명의 환자가 누워 있었다. 이곳은 슬랭 스핀 지역의 유일한 보건 시설이었다. 7개 마을을 넘어 인근 마을까지, 무려 15개 마을 주민들이 이용했다. 턱없이 부족한 의료진과 낙후된 시설 때문에 기본적인 검진과 예방접종, 출산 진료만 가능했지만 아이들의 발걸음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다른 보건소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을뿐더러 구급차나 간이 침대 등 환자 이송 시설 또한 없었다. 응급 환자가 발생해도 적절한 치료를 받긴 어려웠다. 개보수 공사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주저앉았던 천장이 제자리를 찾았고, 깔끔한 신식 화장실이 세워졌다. 송재림과 친구들은 비 오는 날에도 환자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튼튼한 보도를 만드는 시멘트 미장 공사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에서 공병으로 일했다는 김영용이 설계를 맡았다. 데뷔 전, 공사장과 공장을 누비며 일해봐서 이 정도야 익숙하다는 송재림과 젊은 혈기의 후배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흙먼지는 계속 들숨과 날숨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태양은 뜨겁게 내려와 살을 태웠다. 공사 도구와 장비가 열악했으니, 쉬울 리가 없었다. 김광석의 음악이 노동요가 되어 기력을 실었다. 타는 목마름에 연신 마신 물은 금세 땀이 되어 증발해버렸다. 저러다 몸이라도 다치면 어쩌나 걱정이 들다가, 이내 모두에게 열기가 전염되고 말았다. 저마다 붓을 들고 보건소 외벽을 칠하기 시작했다. 이날 현장에는 책팩이 왔다. 부끄러움 많은 소년 책팩과 속정만 깊은 형의 만남이었다. 그동안 여자친구는 생겼는지, 성적은 올랐는지의 대화가 오갔다. 수줍음을 타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경상도 아버지에게 무뚝뚝한 피를 나눠 받은 형제 같았다. 송재림은 커다란 손으로 책팩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음을 나눴다. 시간이 흐르자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15미터의 보도가 모양새를 갖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방인을 낯설어 하던 주민들의 불안한 눈빛이 어느새 웃음으로 변했다. 완성과 동시에 송재림의 다리가 풀려 휘청거릴 때,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진심은 마음을 움직인다. 단순한 진리가 새삼 짙게 느껴졌다.
웃음이 자라는 교실
마을이 자립해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 번째 조건인 배움의 교실이 완성되어야만 한다. 교육은 빈곤의 굴레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대한민국의 남다른 맹모삼천지교 교육열의 시작도 같은 이유였다. 배움은 삶을 변화시키고, 나라를 바꾼다. 송재림은 반테이스레이 지역 룬타 엑 마을에 있는 룬타엑 종합학교를 찾았다. 이 지역은 그동안 중학교가 부족해 상급학교 진학률이 매우 낮았던 곳이다. 플랜코리아의 지역개발 사업을 통해 지난해 중학교 건립이 지원되었고, 덕분에 인근 마을의 어린이 350여 명이 진학의 혜택을 받았다. 송재림은 학교장의 의견을 수렴해 도서관과 교실에 배치될 서랍장과 기물을 기증했다. 물론 온몸으로 날라서 말이다. 어린아이들은 이방인들이 신기한 듯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주위에 몰려들었다. 풍선을 불어주고 비눗방울을 날리는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그 모습은 티 없이 싱그러웠다. 비눗방울을 불 수 있는 손바닥만 한 장난감을 건네줬다. 소녀의 얼굴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더위에 지쳤지만 되레 배가 불렀다.
오후에는 중학생들과 편을 나눠 배구를 겨뤘다. 구기종목에 약하다며 손사래를 쳤던 송재림은 시합 도중 갑자기 운동화를 벗었다. 운동장이 매끄러울 리 없었다. 그러고는 발을 다쳐 피를 봤다.“ 학생들이 맨발로 운동장을 뛰고 있죠? 처음 캄보디아에 왔을 땐, 그 모습이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어요. 하지만 이젠 이해해요. 흙을 밟고 사는 문화인데 내 식대로만 해석하려 한 거잖아요.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축구화가 아닌 깨끗한 물과 안전한 보건소, 배움의 학교가 훨씬 중요하죠.” 송재림이 웃으며 말했다.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운동화를 벗었던 그였다. 관찰하면 발견하게 되고, 발견이 겹겹이 모이면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든든한 힘이 되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 우물을 둘러보던 순간을 기억해요. 비위생적인 우물을 이용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가 떠나도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상비약을 챙겨주었는데요. 돌이켜보면 그 약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이라면 더 지속적인 가치에 집중했을 거예요.” 이를테면 병원 시설에 투자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전해졌다. 그가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는 ‘드림 빌리지’를 거듭할수록 시야가 넓어진다고 답했다. “점점 더 큰 틀을 고민하게 되요.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고, 무얼 해도 부족한 것 같은 아쉬움이 생기죠. 가끔은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 회의감도 들어요. 그러니까 그걸 채우기 위해 고민하는 것 같아요. 보건소 개보수 작업은 꼬박 1년이 걸려요. 몇 번의 방문, 며칠의 노동과 아이들과의 만남이 그들 삶에 큰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지 않아요. 정말 미미할 거예요. 금방 잊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를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알게 되는 거잖아요? 그들에게 봉사의 즐거움을 주는 통로가 되고 싶어요.” 단어를 고민해가며 대화를 이어가던 그의 목소리는 굳건했다.
캄보디아의 ‘드림 빌리지’ 프로젝트가 끝나면 태국에서 새로운 ‘드림 빌리지’를 시작할 계획을 세웠다. “태국은 캄보디아와는 또 다를 거예요. 어떤 활동이 효과적일지는 가서 눈으로 확인해봐야겠죠.” 진심에 시간이 쌓이면 더 단단해질 게 분명했다. 관심과 나눔이 모여 만들어진 드림 빌리지를 꿈꾸며, 오늘보다 내일을 더 기대해본다.
플랜코리아는?
제3세계 어린이들의 권리 보장 및 어린이의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어린이 중심 지역개발, CCCD(Child Centered Community Development)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국제 NGO 단체다. 현재 플랜 인터내셔널을 통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21개국의 후원국에서 저개발국의 150만 명 어린이를 후원하며, 이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자립을 꾀한다. 국제단체 신뢰도 평가기관인 T‘he One World Trust’가 실시한 평가에서 우수한 수행 능력과 재정적 투명성으로 신뢰를 인정받았다. ‘드림 빌리지’ 캠페인에 참여하고 싶다면, 홈페이지를 통해 아동결연 후원, 지역개발사업 후원, 플랜샵 판매수익금 기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누구나 희망을 나눌 수 있다. 문의 www.plan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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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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