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뷰티 파워 리스트<3>
얼마 전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군 세포라의‘ K- 뷰티’ 캠페인의 뒤에는 바로 한국인 이보영 상무가 있었다. 뿐만 아니다. 이미 꽤 많은 한국 여성이 글로벌 브랜드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총괄하는 마케팅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할 뉴스였다.
세계가 사랑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 정샘물
‘투명 메이크업’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26년 경력의 대한민국 대표 메이크업 아티스트.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헤어메이크업 숍인 정샘물 인스피레이션, 메이크업 스쿨을 운영하고 있으며 얼마 전 브랜드 정‘ 샘물’을 론칭하기도 했다. ‘갓샘물’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유튜브에서도 인기 만점이다. 30만에 가까운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작년, 한국인 최초로 크리니크의 컬러 프로그램 아시아 대표로 발탁되었다.
이제 글로벌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9년 전 처음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메이크업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데, 개별적으로 일일이 다 알려주기 어려운 것이 늘 안타까웠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발견하고 이거구나 싶었다. 그 즈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 것도 이유였다. 오랫동안 운영해오던 정샘물 인스피레이션을 장기간 비워야 했기 때문에 나의 부재를 대신 해줄 도구가 필요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아직 유튜브 채널에 대한 인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런데 그게 한국을 넘어 아시아까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 같다.
크리니크의 글로벌 아티스트로도 발탁되었다.
감사한 기회였지만 처음 연락을 받은 당시, 이미 나만의 브랜드정 ‘샘물’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이런 상황을 설명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1년간 함께 활동하기로 결정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펼치게 되나?
나를 비롯해 각각 유럽과 미주를 대표하는 3명의 아티스트가 함께 활동한다. 크리니크에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면 그 제품에 맞는 새로운 룩과 트렌드를 제안해주는 형식이다. 이미 작년 가을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유럽의 뷰티 에디터들과 블로거를 상대로 트렌드 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아시아 중에서도 한국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선정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파리에서 한 독일 기자가 나에게 말했다. 제품은 매번 더 새롭게 변하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해석은 늘 천편일률적이었는데, 정샘물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나는 추상적으로 어떤 컬러와 컬러가 어울린다고 설명하기보다는 과학적으로 법칙을 찾아내고 적용하는 식으로 작업한다. ‘Warm & Cool’, ‘Dry & Wet’ 등 피부톤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7가지 법칙을 만들어냈다. 그게 신선하다고들 하더라. 아마도 이것은 내가 미국 유학 시 파인 아트를 공부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이전의 나는 메이크업을 늘 뜬구름 잡듯 추상적으로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갑갑했다. 그런데 순수 미술을 공부하다 보니 컬러의 논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를 피부에 접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헷갈려하고 어려워하는 메이크업에 대해 뾰족한 대안을 제시해주니 좋아하는 것 같다. 당시 파리의 트렌드 발표장에 3명의 아티스트가 있었는데 나에게 가장 많은 질문이 몰리는 것을 보고, 현재 K-뷰티의 위상을 다시금 확인했다.
K-뷰티의 중심에 서 있는 정샘물이 판단하는 K-뷰티의 미래는 어떠한가?
한번쯤 되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한국의 화장품 브랜드들이나 아티스트가 정말 세계가 인정하는 수준인지 점검해봐야 한다. 혹시 우리가 어설픈 뷰티 전문가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브랜드들의 히스토리와 철학은 명쾌한가? 이슈에 합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나? 프랑스의 샤넬이나 디올처럼 긴 생명력을 가진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유행에 타협하지 않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K-뷰티의 실력을 다시금 점검하고 다질 때이다.
한국에서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중 돌연 유학을 떠났다.
나는 논리적으로 메이크업 룩을 잘 설명하고, 그 룩을 보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때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늘 트렌드를 꿰뚫어볼 수 있는 전문가적인 안목과 그를 재현해낼 수 있는 섬세한 손을 갖고 싶었다. 그걸 끊임없이 배우고 훈련하고 싶었다. 단순히 미용실 원장이 아니라 아티스트로서 오래 활동하고 싶은 욕심도 컸다. 더 오래 잘하기 위해 잠시 재충전을 했다고 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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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했다. 제품 개발이나 트렌드를 제안할 때 주로 어디에 서 영감을 받나?
책을 많이 본다. 전시회 갈 때마다 한아름씩 사서 모으는 파인 아트 서적 외에도 일러스트북이나 건축, 그래피티 아트까지 종류를 막론하고 다양한 책을 본다. 이런 책을 보다 보면 정말 신기하게도 곧 다가올 트렌드가 보인다. 예를 들어 올해는 아주 발색력이 높은 색이 유행할 것인데, 이런 징후들은 이미 순수 미술계에서 보여진 경향이다. 경기 불황에서 오는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서 색에서 치유받고 싶어 하는 정서가 생기고 , 그 결과 밝고 강렬한 컬러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아름다운 색에 거친 포인트가 들어가는 형태도 많이 보였는데, 이런 강렬한 콘트라스트가 이미 패션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지 않나. 물론 아티스트적인 직감과 영감도 무시할 수 없다. 일례로 거리의 낙엽만 봐도, 작년과 올해의 낙엽색이 다르다는 사실이 감성을 자극한다. 비가 많이 온2014년에는 낙엽이 무겁고 진한 색이었다면, 햇볕이 많았던 2015년의 낙엽은 좀 더 밝다. 오감만 열어놓고 있으면 어디서든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공부를 통해 알게 되는 트렌드, 각종 영감들이 버무려져 색으로, 제품으로 구현된다.
그렇다면 2016년의 트렌드는 무엇인가?
개인의 행복이 중요한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 만족스러우면 되는 시대다. 따라서 아주 강한 발색력을 자랑하는 립스틱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아이라인도 더 과감해질 듯하다. 유행을 좇기보다는 자신의 감성, 개성을 아이코닉하게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룩이 유행할 것이다. 대담하고 강렬한 컬러와 개성있는 과감한 포인트. 그게 내가 생각하는 올해의 트렌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의 화장대 위 필수 아이템도 궁금하다.
⇢ 크리니크의 처비 스틱 힙핑 헤이즐넛. 입술이 건조할 때 바르면 자연스러운 입술 컬러로 예쁘게 표현되어 자주 사용한다.
⇢ SK-Ⅱ의 미라클 오일. 보습력도 좋고 자연스러운 피부 윤기를 만들어준다. 오일이지만 세럼처럼 가볍게 발리는 것도 장점이다.
⇢ 정샘물의 에센셜 스타실러 파운데이션. 가볍게 발라도 잡티와 모공을 싹 가려서 투명하고 건강했던, 내 피부가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되돌려주는 파운데이션이다.
⇢ 정샘물의 하이 컬러 립스틱 리얼 레드. 나의 시그니처 컬러. 나의 눈동자 색깔, 피부 색깔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레드 컬러다.
어느덧 26년 차 메이크업 아티스트임에도 불구하고 갓샘물이라 불릴 정도로 젊은 층에게 인기다. 고루해지지 않는 비결은?
나는 매일 똑같은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메이크업 순서도 매일 달리 해본다. 습관대로, 원칙대로 고수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지루하고 뻔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생활 속에서 사소한 패턴도 정형화시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람들은 마음만은 20대라고 항상 말하면서 정작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러지 않기 위해 애쓰는 거다. 젊은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다행히도 그런 노력들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앞으론 또 어떤 행보를 보일지 기대된다.
나만의 브랜드를 출시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눈을 마주쳐야 할 대상이 늘었다는 의미다. 뷰티 클래스 등 여성들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마련하고 싶다. 메이크업을 하다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천편일률적인 미의 기준이 너무 두터워서 그것에 자신을 맞추다 보니, 고유의 아름다움을 폄하하는 것. 나는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이 자기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메이크업을 알려주고 싶다. 예를 들어 눈동자 색깔을 관찰해보면 어떤 컬러가 섞여 있는지 알 수 있다. 내 눈동자는 녹색과 빨강이 섞여 있는 진한 적갈색. 그렇기 때문에 채도가 높은 빨간 립스틱이 잘 어울린다. 파랑과 오렌지가 섞여 있는 연한 갈색 눈이라면 비비드한 오렌지 컬러와 파란 계열의 섀도가 잘 어울린다. 자기 자신의 얼굴을 잘 관찰하고 파악하면 본연의 아름다움을 끌어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그걸 알려주는 일을 하고 싶다.
글로벌 화장품 과학자 | 강수영
헤어 케어 전문 브랜드 리빙프루프의 제품 안전 및 개발 디렉터. 현재 보스턴에 거주하고 있다. 리빙프루프의 제품을 개발하고 안정성을 검사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굴지의 해외 대학 연구소와 협업하여 제품의 효능을 테스트하는 등 단순한 화장품 과학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첨단 과학을 이용한 기술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순수 과학자였는데, 어떻게 리빙프루프에 합류하게 되었나?
대학 시절 결장 종양 형성과 암세포 유전자 발현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후 하버드 대학 공중 보건 과정의 암세포 생물학과를 거쳐 보스턴 어린이 병원의 혈관 생물학과로 옮겼고, 거기서 나의 멘토이자 세계 암학회에서 저명한 주다 포크맨 박사를 만났다. 그런데 그분이 2008년에 돌아가신 것이다. 믿고 따르던 분이 세상을 떠나자 너무도 충격을 받았고, 그를 계기로 내 커리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더라. 그러다 우연히 나처럼 포크맨 박사를 멘토로 삼고 있던 로버트 랭어 박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리빙프루프의 창업자였다. 당시 탈모나 모발의 노화가 화두였는데, 이를 과학적으로 접근해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브랜드라는 사실이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과학자로서 뷰티 브랜드에서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삶과 죽음을 가를 정도로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비슷한 고민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암 관련 연구를 하면서 나는 많은 암환자가 자신의 변해가는 외모 때문에 슬퍼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피부가 노래지고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더욱 병에 지친 외모로 변해가는 것, 그것이 환자들의 심리적인 안정감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몇 년 전 발모벽, 즉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정신병을 가진 여성이 보낸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세포라에서 우리 제품을 구입한 후 욕실에 주저앉아서 한참 동안 울었다고 했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고 강해지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누군가는 암 연구보다 머리카락을 연구하는 것이 훨씬 덜 중요한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편지를 보는 순간, 내가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다. 화장품은 여자에게 단순히 화장품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화장품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
제품이 소구하는 바를 실현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화장품이 허황된 광고 문구로 소비자를 유혹하지만 그만큼 실력을 갖추지 못한 제품이 많다. 적어도 나는, 내가 설명하는 그대로 실현되는, 솔직한 제품을 만들고 싶다.
실제로 사용하는 화장품도 남다를 것 같다.
⇢ 리빙프루프의 PhD 샴푸 & 컨디셔너. 모발 자체가 근본적으로 건강해진다.
⇢ 겔랑의 메테오리트 베이비 글로우. 피부에 최적의 커버력과 윤기를 준다.
⇢ 아모레퍼시픽의 모이스처 바운드 세럼. 정말 놀라울 정도로 보습력이 좋다.
⇢ 샤넬의 레 꺄트르 옹브르. 정말 좋은 피그먼트를 사용한 제품이다. 컬러도 아름답다.
미국 브랜드의 담당자로서 한국 소비자들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보나?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한국 소비자들은 제품이 과학적이면서도 동시에 트렌디하고 재미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제품에 대한 니즈가 복잡하다. 미국 소비자들은 보다 심플하다. 그런 면에서 한국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가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을 할 때 당신만의 원칙이 있다면?
일을 할 때 내 역량의 100% 이상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글로벌 그룹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리빙프루프만 해도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하고 있다. 어떤 국적이냐는 별 문제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는 다른 글로벌 그룹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를 얼마나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시킬 수 있느냐이다. 과학자로서 말하자면 다음의 세 가지를 얘기해주고 싶다. 우선 당신이 현재 공부하고 있는 과학 분야의 기본을 완벽하게 이해하라. 화장품 과학이나 리서치 역시 모두 이 기본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둘째는 화장품 시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라는 것. 이를 위해서는 우선 화장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들이 현재 뭘 원하는지, 무엇을 고민하는지, 요즘 화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과학자로서, 우리가 아직 풀지 못한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자세가 화장품 산업에서의 진보를 가져온다 . 셋째,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기 원한다면 자기 스스로를 글로벌화해야 한다.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화장품 과학이란 결국 사람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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