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로 사는 세상

아이돌 스타가 아니어도, 스칼렛 요한슨처럼 섹시하지 않아도 좋다. 언젠가 한번쯤 꿈꾸지만 선뜻 다가가기는 어려운 금발 머리 이야기다. 여기, 톱 모델부터 패션 에디터, PR매니저까지 스타일 좀 안다는 여섯 명의 패션 피플이 자신의 금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이수향 | APR에이전시 홍보부장
Getting There ● 평소에도 헤어 스타일을 자주 바꾸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평범한 염색은 성에 차지 않았고 완전히 색다른 걸 시도해보고 싶었죠. 30대의 일상이 지루하다 느껴지는 찰나에 어느 날 갑자기 탈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미용실에 갔어요. 시작은 두 번의 탈색이었어요. 워낙 머리카락이 얇아서 더는 무리라는 진단을 받아 멈췄죠. 그러고는 한 달을 기다려 뿌리 부분만 따로 두 번, 그리고 경계선이 생기지 않도록 전체 탈색을 한 번 더 했어요. 그렇게 현재의 백발에 가까운 금발이 되었죠.
Being Blonde ● 금발은 제 평생 가장 마음에 드는 헤어 스타일이에요! “원래 금발인 듯!”이나 “내가 본 금발 중 제일 잘 어울려” 같은 코멘트로 미루어볼 때 주변의 반응도 좋고요. 심지어 부모님도 거부반응이 없어서 잘 바꿨다 싶어요. 사실 금발일 때나, 흑발일 때나 제 스타일에는 변화가 전혀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확 변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게 금발의 특징인 것 같아요.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어도 더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니까요. 검은 옷을 입으면 파리지엔의 분위기를 풍기고, 반대로 옅은 색 옷을 입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컬러가 연하니까 청순하고 연약해 보이는 등 금발일 때 스타일의 변화가 더욱 드라마틱한 것 같아요. 한번은 동네 꼬마들이 제가 외국인인 줄 알고 영어로 말을 걸기도 했어요. 헤어 스타일링은 특별히 하지 않아요. 타고난 반곱슬이기도 하고, 스스로도 부스스한 헤어 스타일을 좋아해서 그냥 놔두는 편이죠. 2차 탈색 이후에는 머리 끊김이 심해져서 두피 건강을 위해 샴푸도 바꾸고 1주일에 두 번 정도 헤어팩을 사용해요. 듀크레이의 아나패즈 크림 샴푸와 뉴스킨의 리뉴 헤어 마스크가 좋더라고요.
Afterwards 염색과 다르게 금발로 탈색한 머리카락은 굳이 뿌리 관리를 하지 않아도 게을러 보이지 않아요. 검은 뿌리가 올라온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스타일이 될 수 있거든요. 검은 머리가 자라더라도 자연스럽게 방치하다가 검은 부분이 내가 생각한 길이를 넘어서면 그때 또 다른 스타일을 고민해볼 생각이에요. 마흔 즈음엔 영화 <뉴욕의 가을> 속 위노나 라이더 같은 쇼트 커트를 시도할 생각인데, 그때 그 상태로 다시 한 번 탈색을 해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송단비 | 편집매장 ‘뉴러시안페인팅’ 대표
Getting There ● 처음 금발을 시도한 건 4년 전쯤이었어요. 패션 잡지에서 일하는 에디터 친구가 헤어 스타일 변신 프로젝트에 저를 참가시켰죠. 이틀 동안 5번의 탈색을 거쳐서 금발로 만들고, 그 후에 총 6가지 다른 색상을 입히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한 번 겪고 나니 이후로는 어떤 컬러를 해도 곧 익숙해졌죠.
최근의 금발은 탈색을 몇 번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요. 생각나는 건 맨 마지막 금발에 애시 컬러를 입혔다는 것. 색깔이 조금 푸르게 바뀌더라고요. 지금은 뿌리 염색을 멈추고 검정머리를 기르는 중인데, 뿌리가 나온 금발도 예쁜 것 같아요.
Being Blonde ● 하도 금발(및 그 외의 총천연색)을 자주 했더니 어느새 그게 더 익숙해졌어요. 주위 사람들조차 이제는 어두운 머리 색이 안 어울린대요. 제가 봐도 그렇고요! 금발일 때나 흑발일 때나 옷 스타일에 크게 변화는 없는 것 같아요. 추구하는 스타일이 확고한 편이라 헤어 컬러에 의해 달라지지는 않아요. 대신 화장법은 좀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눈매에 힘을 주거나 과감한 시도를 했었는데 금발이 된 후부터는 메이크업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고 해요.
Afterwards ● 날씨가 추워지니 ‘어두운 머리색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왠지 그러자마자 후회할 것 같기도 하네요.

정호연 | 모델
Getting There ● <도전 슈퍼모델>에 참가하면서 제작진의 뜻에 따라 금발을 시도하게 되었어요. 처음엔 그냥 많이 밝은 갈색이었던 것 같아요. 화사한 금발이라기보다 좀 누런색이라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죠. 노란 기가 많이 돈 첫 금발은 어딘가 촌스러운 느낌이었는데 여기에 카키색을 덧씌웠더니 훨씬 세련돼 보이는 것 같아요. 대신 색이 금방 빠져서 계속 유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요.
Being Blonde ● 아무래도 머리 색이 밝으니까 옷을 최대한 세련되게 입으려고 노력해요. 색깔도 밝은 것보다는 어두운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자주 입게 되고요. 화장법은 딱히 달라진 게 없어요.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하는 편이에요. 금발로 바꾼 후 좀 더 발랄하고 에지 있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아요. 더 많은 잡지 화보와 방송에 캐스팅된다는 게 바로 그 증거 아닐까요? 흑발일 때보다는 확실히 사람들한테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 같아요.

Afterwards ● 흑발도 해봤고, 한동안 금발을 유지했으니 다음번에는 짙은 빨강머리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박정하 | <얼루어> 패션 에디터
Getting There ● 다음 생에는 금발로 태어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어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니까요.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다음 생까지 기다릴 필요가 뭐 있나 싶었죠. 나이를 더 먹어서 사회적으로 얽매이는 게 많아지기 전에 한번 해보자 결심했어요. 우여곡절이 많은 금발이었어요. 원래 갈색으로 여러 차례 염색을 했던 머리라 처음 탈색을 했을 때 얼룩이 많았어요. 얼룩을 지우기 위해 다섯 번이나 탈색하고, 단무지 같은 샛노란 색을 톤 다운시키기 위해 애시 컬러를 한 번 더 입혔어요. 그 이후로는 햇볕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탈색해주더군요.
Being Blonde ● 금발을 한 뒤로 피부가 밝아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얼굴이 환해진 대신 이목구비가 흐릿해지는 것 같아서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를 꼬박꼬박 챙겨 발라요. 금발이 된 이후로 옷을 차려입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됐어요. 머리 색이 밝기 때문에 어딜 가나 시선을 모으는 게 사실이거든요. 처음 본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하고요. 그래서 옷과 액세서리의 조화를 세심하게 고민하고, 너무 캐주얼한 것보다는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춰 입으려고 노력해요. 금발에 대해 아빠는 ‘너무 요란하다’며 핀잔을 주셨지만 반대로 남자친구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우리 금발 베이비’라는 낯간지러운 애칭도 생겼고요. 뻣뻣해진 머릿결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아요. 머릿결이 영 푸석푸석할 때에는 그냥 가지런히 땋아요. 잔머리를 정리하기도 좋고, 희한하게도 검은 머리일 때보다 훨씬 잘 어울리거든요. 하지만 언젠가 친구의 다섯 살 배기 딸이 “엘사!”라고 외친 이후로는 조금 자제하게 되는 것 같아요. 머리를 못 감아도 티가 덜 나요. 이건 정말 엄청난 플러스!
Afterwards ●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금발이라고 생각해요. 머리카락이 버텨만 준다면 두어 번 더 탈색해서 완전한 백발을 시도해볼 생각이에요.

허세련 | <마리끌레르> 패션 에디터
Getting There ● 한때 핑크색 헤어 컬러를 고수하던 모델 샬롯 프리에 꽂혀 있었어요. 특히 2012년 여름 시즌의 <퍼플> 매거진에 등장한 그녀의 스타일은 최고였어요. 매니시한 스트리트 룩과 귀여운 베이비 핑크 헤어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죠. 아무래도 패션 에디터다 보니 헤어 스타일도 패션 화보 같은 데서 자주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정말 별의별 헤어 컬러를 다 시도해봤어요. 금발은 물론이고 퍼플, 오렌지, 그레이 등등 안 해본 게 없었죠. 제 인생에서 가장 독특한 헤어 컬러는 대학 시절에 한 일명 ‘수박 컬러’예요. 전체적으로 빨간 머리에 앞머리는 카키색, 그리고 목덜미 바로 윗부분은 검은색으로 총 세 가지 색상이 한 머리에 공존했죠. 그 엄청난 헤어를 하고 졸업 앨범 사진도 찍었어요. 할 수만 있다면 싹 다 불태우고 싶어요.
Being Blonde ● 머리 색이 밝아질수록 사람들이 제 스타일에 관심을 가지는 건 사실이에요. 아무래도 눈에 띄니까 그런 거겠죠? 헤어 컬러를 바꿀 때마다 옷 입는 스타일에 변화가 생기는 것 같지는 않아요. 대신 화장법에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특히 금발일 때에는 아이라인이나 눈썹 색깔을 가장 신경 썼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블랙보다는 브라운 컬러를 찾게 됐고, 립스틱도 오렌지 계열을 선호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옷도 오히려 어두운 컬러를 즐겨 입었던 것 같네요. 금발 헤어는 정말 관리하기 힘들어요. 헤어팩을 린스처럼 썼고, 머리카락에 물기가 다 마르기 전 실크 테라피 같은 헤어 에센스를 머리카락 끝 쪽에만 듬뿍 바르고 말렸어요. 사실 저 같은 경우는 머릿결을 복구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다 지친 케이스예요. 그래서 당분간은 염색을 하지 않겠다는 큰 각오와 함께 최근 검은색으로 돌아왔죠.
Afterwards ● 뜻하지 않게 흑발로 염색을 했으나 전 지금 헤어 컬러에 만족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앞으로 한동안은 이대로 유지하지 않을까요? 동양사람은 검은색이 그 어떤 컬러보다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송해나 | 모델
Getting There 금발은 정말 도전하기 어려운 컬러인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상상조차 못했죠. <도전 슈퍼모델>에 출연하면서 처음 탈색이라는 걸 해봤는데,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방송이 끝난 후 헤어 디자이너의 추천으로 색색의 컬러 블리치를 넣어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흑발에서 금발로 변신하고, 또 거기에 컬러를 입히면서 저만의 스타일이 완성된 느낌이 들어요. 이제 ‘송해나’ 하면 다들 색색의 알록달록한 헤어를 떠올리니까요.
Being Blonde ● 금발은 제 모델 커리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평범한 흑발보다 훨씬 눈에 띄거든요. 따라서 저보다 키가 큰 모델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고 눈에 띈다고 생각해요. 머리 색이 밝아진 이후로는 옷도 밝은 색으로 입어요. 가끔 검은색 옷을 입으면 혹시 백발마녀처럼 보이진 않을까 걱정되더라고요. 하하. 금발이라 불편한 점은 바로 젖은 머리를 말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거예요. 엉키는 건 기본이라 트리트먼트를 달고 살아요. 또 요즘은 아사이베리 성분이 함유된 에센스 오일을 바르고 있는데 기름지지 않고 부드러워서 참 좋아요.
Afterwards ● 제 머리카락은 빈 캔버스처럼 늘 새로운 컬러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늘 어떤 컬러를 선택할까 고민할 뿐이죠. 말 나온 김에 생각해볼까봐요. 다음엔 어떤 색을 입혀보면 좋을까요?

    에디터
    패션 에디터 / 박정하
    포토그래퍼
    정성원,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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