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원이 가는 길
‘브로콜리너마저’의 윤덕원이 솔로 1집 <흐린 길>을 발매했다. 원래 계획한 EP앨범이 정규 앨범이 되면서 준비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그는 ‘할 수 없는 건 안 한다’는 마음가짐을 내려놓고 좀 더 욕심을 내기로 했고, 그렇게 겨울 내내 듣고 싶은 앨범이 만들어졌다.
앨범의 시작이 된 ‘흐린 길’은 꽤 오래전에 만들어진 곡이라 들었다.
2011년, ‘흐린 길’이라는 곡을 만들었지만 좀 더 ‘발라드스럽게’ 완성해야 할 것 같아 잠시 넣어뒀었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전형적이면서도 가슴 찡한 90년대 발라드풍의 반주와 함께 이 노래의 멜로디가 남아있었는데, ‘손을 잡고 있지 않으면 서로를 잃을 것만 같은’이라는 구절에서는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던 기억이 있다. 브로콜리의 콘셉트와는 어울리지 않아 잊혀져있었는데 멤버의 출산으로 공백기가 생기면서 솔로 앨범을 준비하게 되었고, 그렇게 다시 살려낸 곡이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리더 덕원이 아닌, 솔로 가수 윤덕원으로서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었던 건 뭔가?
어쩔 수 없는 일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성숙해 가는게 아닐까. 브로콜리너마저 때와 생각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혼자 해보니 어떤 게 좋고 또 아쉬운가? 결정단계가 단순해서 좋다. 다만 사운드와 연주가 한 팀에서 이루어지고 수년간 닦여서 조율된 호흡 같은 것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영화 <달콤한 인생>의 조감독 출신의 이안규 감독과 ‘비겁맨’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
감독님에게서 단편 제작물 형태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기존에 하던 작업과는 다른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아 진행하게 되었고, 평소에 많이 하던 이미지적인 영상보다 좀 더 스토리가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 술자리에서 서로가 생각하는 ‘비겁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감독님의 ‘비겁맨’은 전형성을 깬 슈퍼히어로 같은 인물로 묘사된 반면, 내가 생각하는 인물은 훨씬 비겁하고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차이가 있다.
편곡에 더 클래식의 박용준, 밴드 강산에의 고경천이 참여한 건 매우 근사한 한 방이었던 것 같다.
브로콜리 때에는 가지 않은 행보이기도 하고. ‘흐린 길’을 머릿속으로 편곡했을 때, 그 편곡이 더 클래식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꼭 박용준 선배에게 편곡을 부탁하고 싶었고, 연락처를 수소문해 만나게 되었다. 매끄러운 작업과 훌륭한 편곡으로 녹음 과정 하나하나가 무척 즐거운 수업 같았다. 고경천 선배의 일렉트로닉 스타일이 ‘안녕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라는 곡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부탁드리게 되었는데, 점점 함께하는 곡이 늘었고, 역시나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각 곡에 참여한 연주자도 국내 최고의 연주자 분들이라 연주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지곤 했다. 이제껏 음악을 하면서, ‘할 수 없는 건 안 한다’라는 마음가짐으로 항상 내려놓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노래로 만나는 당신은 감성적이고 혼자 있는 걸 즐기고 생각이 많아 보인다. 맞거나 틀린 게 있나?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유 없이 피해 보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친해지면 말도 많아진다.
당신의 노래는 삶의 소소한 일상을 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런 당신의 음악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를 꼽아본다면?
부족한 테크닉을 극복하고자 하는 집요함? 잘 못하기 때문에 반복하게 되는 과정에서 배우고 깨닫는 지점들이 있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어설프게 들리겠지만 무조건 하다 보면 호수 바닥을 채우고 물 위를 걸을 수 있을 때가 오는 것 같다. 타고난 재능을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음악적 발전을 위한 고민과 노력은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나?
항상 꾸준히 곡을 쓰는 것이다. 연주나 노래로 압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기에 결국 곡으로 증명하는 게 내 방식이다. 물론 매일 연습도 하고 악기도 배운다. 그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신이 빠져 있는 음악은?
애니메이션 <마크로스>의 주제곡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오리지날 러브의 ‘Kiss’, 음악 교재 연습곡인 안승준의 ‘꿈이 꿈을 꾸다’, 펄프의 ‘Bad Cover Version’ 등이 있다.
올해가 가기 전 가장 기대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데 선생님과 일정을 맞추지 못해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당신의 앨범에 있는 ‘흐린 길’, 그리고 ‘갈림길’은 연결된 두 개의 에세이 같다. 지금 윤덕원은 어떤 길에 서 있나?
한 번의 결정이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선택의 순간은 인생에서 그렇게 많지 않거나 혹은 없다고 생각한다.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뿐이다. 선택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어떤 큰 변화가 다음번에 혹은 그 다음번에 있다면 지금 변수를 미리 끼워 넣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특별한 변화 없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시기지만 그래서 더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조소영
- Photography
- Courtesy of Studiobrocco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