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사이의 이불

작가 이불의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을 비교해보며 25년 사이의 간격을 느껴보자.

1 이불, ‘태양의 도시 Ⅱ’. 2 ‘새벽의 노래 Ⅲ’ 앞에 선 작가 이불.

이곳에 들어서면 아찔한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눈이 부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수도,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이불의 작품이 놓인 길이 33m, 폭 18m, 높이 7m 규모의 대형 전시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벽과 바닥은 온통 거울로 뒤덮였고 어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거울의 빛은 굴절과 반사로 아른거리고 거기에 수많은 내가 비친다. 미지의 시간과 공간을 탐험한 듯, 관람객들은 자신의 내면과 상상의 세계로 들어서며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이 작품은 이불의 신작 ‘태양의 도시 Ⅱ’.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설치 작품으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라선 이불의 이 작품은 이탈리아 철학자 톰마소 캄파넬라의 저서 <태양의 도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깨진 유리 조각이 사방에 널려 있고, 벽 한구석에 250개의 조명이 빛을 발하는 고요하고도 강렬한 공간. 관람객들은 조심스럽게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거울에 비친 자신과 마주하고, 시공간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15m 높이를 지닌 또 다른 전시실 천장에는 알루미늄 등 금속으로 만든 설치물 ‘새벽의 노래 Ⅲ’가 매달려 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안개 분사기가 연기를 뿜으면 설치물 전체가 형태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뿌연 안개에 휩싸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제 형태를 드러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하얀 공간 위로 수많은 빛이 반짝인다. 어느 하나 같은 모습이 없는 인생의 편린처럼 매순간 다른 장면이 연출된다. 2009년 작품 ‘새벽의 노래’에 이은 ‘새벽의 노래 Ⅲ’는 1900년대 초반 모더니즘의 상징물인 독일 힌덴부르크 비행선에서 시각적 영감을 얻었다. ‘새벽의 노래’는 세레나데의 상대어인 ‘오바드’로 새벽녘 부르는 이별의 노래를 뜻한다. 초대형 비행선이 여러 조각으로 터져나간 채 공중에 매달려 있는 작품을 통해 이루지 못한 사랑을 표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내년 3월 1일까지 열리는 이불 개인전은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향후 10년간 매년 1명씩 국내 중진작가를 지원하는 사업의 일환이다.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가로 선정된 이불의 두 작품은 2005년부터 작업 중인 ‘나의 거대 서사’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다. 2년 전, 서울 아트선재센터와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선보인 작품들과 유사하지만, 그 규모와 존재감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작품은 ‘절망과 희망’, ‘추락과 비상’ 등을 상징하며 우리의 인생을 담고 있어요. 좌절과 실패를 겪고 또다시 시도하는 일련의 과정인 삶을 형상화한 것이죠. 관객들이 이것을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가슴으로 느끼기를 바랍니다. 각자 나름의 인생에 비춰 느끼고, 나아가 작품과 사랑에 빠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이불은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국내파로 내면의 분노와 에너지를 몸으로 표현하는 설치미술가이자 행위예술가다. 그녀는 1980년대 아름다움과 파괴 등을 주제로 한 ‘인습 타파’ 작업을 선보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남근 중심의 시각문화를 비판하고 여성 신체의 억압 구조를 드러내면서 21세기형 새로운 비너스 ‘몬스터’, ‘사이보그’ 연작을 발표했고,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휴고보스 미술상 수상,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이불의 개인전이 열리는 동안 광주비엔날레에서는 그녀의 1989년 퍼포먼스 기록 영상 3편과 조각 2점을 감상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작가 인생의 처음을 장식했던 작품과 가장 마지막 작품을 비교해보며 25년 사이의 간격을 느껴보길 바란다. 광주비엔날레의 전시는 11월 9일까지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조소영
    Photography
    Courtesy of M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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