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잎처럼 따스한 오연서
아무도 없는 붉은 방에 배우 오연서가 홀로 앉았다. 흰 꽃처럼 파리한 얼굴에 붉은 꽃잎의 따뜻한 기운이 스몄다.
그동안 패션과 뷰티 화보를 통해 색다른 변신을 많이 시도한 걸로 기억해요. 오늘 화보 촬영도 ‘변신’이라 할 만한가요?
드라마 속에서는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주로 하다 오랜만에 과감한 메이크업과 의상을 입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특히 전부터 오리엔탈 무드의 화보를 촬영해보고 싶었는데 오늘 메이크업과 의상은 상상했던 것보다 저를 더 근사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특히 레드 립스틱을 바른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요.
드라마 <왔다! 장보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시청률이 40%에 육박하고, 인터넷에 ‘장보리 모의고사 기출문제’가 돌 만큼 화제를 모았는 데 큰 사랑을 받은 드라마를 끝낸 소감이 어떤가요?
일곱 달 가까이 드라마 촬영을 하다 보니 올해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어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준 덕분에 현장 분위기가 좋아서 피곤도 덜 느꼈어요. 며칠 전 베트남으로 해외 촬영을 다녀왔는데 한국 관광객들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보리, 보리’ 하면서 알아봐주더라고요.
촬영 기간도 길었지만 감정 소모가 많은 작품이라 연기하면서도 힘든 순간이 많았을 것 같아요.
작품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모성애 연기였어요. 경험이 없으니 그 깊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죠. 다행히 극중에서 딸 비단 역을 맡은 지영이가 연기를 잘해서 비단이와 함께하는 장면에서는 애틋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겨났어요.
극중에서 앙숙 관계인 연민정 역을 맡은 이유리의 악역 연기가 뜨거운 관심을 받았는데 보리 대신 연민정을 연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 드라마 촬영을 하는 동안에는 보리를 연기하기도 벅찼기 때문에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같은 배역이라도 배우만의 색깔이 묻어난다고 생각해요. 제가 연민정을 연기했다면 좀 더 절제된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극중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해 화제가 됐어요. 외모만 보면 ‘서울 깍쟁이’ 같잖아요.
열여섯 살에 걸그룹 ‘러브’로 연예계에 데뷔하기 전까지 창녕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쭉 살았어요. 오늘 함께 촬영한 조선희 사진가가 12년 전 데뷔 앨범 재킷을 촬영했죠. 그때는 신인 가수로, 지금은 배우로 촬영을 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어떤 계기로 연예계에 데뷔하게 됐나요?
막연히 연예계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TV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예쁘고, 근사하고, 즐거워 보였죠. 그러다 우연히 오디션에 참여하게 돼 가수로 먼저 데뷔하게 됐어요. 그런데 막상 데뷔하고 보니 재미있는 일보다 책임져야 할 일이 더 많다는 걸 알았죠. 데뷔 초에는 힘들어서 많이 울었어요.
데뷔 6개월 만에 팀이 해체되고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무명시절이 긴 편인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데뷔 후 6개월 이상을 쉬어본 적이 없어요. 팀이 해체된 뒤 학교도 다니고, 오디션도 보러 다니고, 단역이나 조연에 캐스팅되면 촬영도 하고. 누구보다 바쁜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아무래도 배우라는 직업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그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망도 많이 하고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많았죠.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후 <왔다! 장보리>까지 지난 3년간 쉴 틈 없이 작품활동을 해왔는데, 잠깐 쉬어갈 만도 한데 연달아 작품에 출연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아직까지도 마음이 조급해요. 다양한 작품, 다양한 배역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과 사람들로부터 더 사랑받고 싶은 마음때문에 그래요. 오래 쉬다 보면 다시 연기하는 게 겁날 것 같기도 하고요. 이번에도 드라마가 끝나면 푹 쉬어야지 다짐했는데 좋은 작품이 들어온다면 놓치고 싶지 않아 바로 일을 시작할 것 같아요. 찾아주는 곳이 있어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 줄 잘 아니까요.
바쁘게 활동하다 보면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많아질 텐데 어떻게 해소하나요?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말숙이 캐릭터가 워낙 강하게 남아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실제 성격도 새침하고 여성스러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그 반대예요. 촬영이 없는 날에는 민낯으로 다니고 편안한 옷차림을 즐기는 편이에요. 씩씩한 남자 아이 같다고 할까? 다행히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편이라 한창 촬영을 할 때도 잘 먹고 잘 자서인지 잠깐 방심하면 살이 금방 쪄요. 운동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체중이 늘면 식사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체중을 조절해요.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피부가 좋아서 놀랐어요. 평소 어떻게 관리하나요?
피부과는 거의 가지 않고 집에서 틈틈이 관리해요. 좋다는 화장품은 직접 사서 발라보고 마스크팩은 주기적으로 빠뜨리지 않고 사용하며 반신욕을 즐겨 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일까요?
20대의 마지막 해를 앞두고 있는데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진 않나요?
30~40대가 되어도 여전히 아름답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배우들이 많아서인지 여배우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 없어요. 20대의 청춘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요. 워낙 어릴 때 데뷔해서 어딜 가든 막내였기에 빨리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서른을 앞두고 있으니 즐겁지만은 않아요. 20대의 청춘은 그 어떤 걸로도 되돌릴 수 없는 거니까요.
연예계에 데뷔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거 같아요. 평범하게 살면서 지금쯤 결혼해서 아이가 있지 않을까요? 지방은 도시보다 결혼을 일찍하는 편이거든요.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일을 하면서 지쳤을 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결혼을 한다면 제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비슷한 일을 하면서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사람과 하고 싶어요. 서른둘에서 넷쯤 하면 좋지 않을까 싶긴 해요.
누구보다 치열하게 10대와 20대 시절을 보냈는데, 그것에 대한 아쉬 움은 없나요?
연기를 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래도 연예계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만 있다 보니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워요.
12년 넘게 활동하면서 스스로 터득한 지혜는 무엇일까요?
살면서 가치관이 조금씩 바뀌는데 최근에 깨달은 진리는 진심과 따뜻함, 무모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사람을 대하건 연기를 하건 조금 부족 하더라도 가식 없이 진심을 다하고, 때로는 조금 무모할지라도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수록 포기할 부분은 과감히 내려놓고 스스로 편해지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요즘 예전보다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닮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고현정 선배님이에요. 연기도 잘하시고, 여배우로서의 카리스마도 닮고 싶은 부분이에요. 예전에 드라마 <히트>에 단역으로 출연했을 때 뵌 적이 있어요. 그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특히 이 말이 기억에 남아요. “너한테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은 옆에 두지 말고, 쓴 소리, 모진 소리 하는 사람들을 곁에 둬라. 그래야 배우로서 잘 성장할 수 있다.”
이제 곧 12월이에요. 올해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는데 남은 한 달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우선 일본으로 일주일 정도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에요. 그리고 곧 새 작품에 들어갈 것 같아요. 내년에는 영화작업을 꼭 해보고 싶어요. 추리 영화나 영화 <도둑들>이나 <타짜>, <관상>처럼 개성 있는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면 좋겠어요.
최신기사
- 에디터
- 뷰티 에디터 / 조은선, 스타일 에디터 / 김지후
- 포토그래퍼
- 조선희
- 모델
- 오연서
- 헤어
- 유다
- 메이크업
- 류현정
- 세트 스타일리스트
- 김배원(다락)
- 어시스턴트
- 이주현, 황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