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오디션 프로그램의 첫 번째 우승자.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던 울산 출신의 청년에서 지금까지, 서인국은 차근차근 걸어왔다. 반듯한 그 얼굴을 헝클어뜨리고 싶었지만 서인국은 어김없이 가장 훌륭한 정답만 들려줬다. '번듯함’, 그게 바로 그였으니까.

재킷은 프라다(Prada). 셔츠는 87mm×비이커(87mm×Beaker).

얼마 전 <고교처세왕>이 종영했어요. 잘 쉬고 있나요?

촬영 마치고 며칠간 원 없이 술을 마셨어요. 작품 마치고 술을 실컷 마시는 건 습관 같은 거예요. 그간의 고생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까요?   

술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술이 보상일 정도예요?

촬영하는 3개월은 정말 긴장 상태거든요.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고, 몇 시에 끝날 거라는 기약도 없으니까요. 약속을 잡고 누구를 만나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술에 취해서 살짝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좋아요. 며칠 그렇게 보내고 지금은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보통 작품 들어가기 전에 관리 차원에서 운동을 많이 하던데, 작품을 마친 후에도 운동을 하네요.

작년하고 올해 몸 상태가 많이 달라져서요. 만성피로 수준이라 짧게 놀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죠.   

<나 혼자 산다>에서 닭가슴살을 억지로 먹던 모습이 떠올라요.

지금은 먹고 싶은 건 편하게 먹고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는 아니니까 몸을 만든다기보다는 쉬면서 조금씩 관리를 하는 거죠.

<고교처세왕>도 마찬가지였지만 작품에서 맡은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어요. 연기 데뷔작인 <사랑비> 때 영상을 찾아봤는데, 그 때도 잘하더라고요. 칭찬 많이 받죠?

<사랑비> 때는 겁이 많이 났어요. 윤성호 감독님 작품이라니 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 큰데, 그때만 해도 제가 연기를 한다는 건 상상해본 적이 없 었거든요. 저조차도 가수 출신 연기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고요. 그때 전 제가 연기를 못할 거라고 확신했어요.

못할 것을 확신했다고요?

‘나는 서인국이면 안 된다’라고 생각했어요. 입 열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 처럼 보이기 위해 살도 잔뜩 찌우고, 더벅머리에 도수 높은 뺑뺑이 안경 을 썼죠. 수염까지 기르려고 했는데 수염이 어찌나 안 자라던지….   

결과적으로는 잘해냈잖아요. 

많이 부족했죠. 그래도 원래의 저를 버리고 캐릭터를 구상한 건 잘한 것 같아요. 겁이 나서 한 행동인데 캐릭터를 만들고, 연기를 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더라고요.   

연기를 하든, 뭘 하든 간에 열심히 노력한다는 게 화면에서도 느껴져요. 영화 <노브레싱>도 하필이면 하루 종일 수영을 해야 하는 영화였죠! 

어떨 때는 좀 미련한 것 같아요. 이번 <고교처세왕> 때도 어깨를 다쳤어요. 그런데 정말 대충 할 수가 없어요. 오늘 같은 화보 촬영도 제가 조명, 의상을 다 준비하고 혼자 촬영해서 볼 거라면 쉽게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 자리를 만들어준 사람들한테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영화나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코멘터리를 보면 당신이 있는 현장 분위기는 늘 좋아 보이더군요. 타고난 건가요? 아니 면 일부러 노력하는 거예요?

현장 분위기가 좋으면 저도 편하죠. 하지만 제가 편하기 위해 억지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건 너무 계산적이지 않나요? 전 편하게 있는 편이에요. 방금 목줄 풀어서 잔디밭에 내놓은 강아지처럼 기분이 좋을 때도 있지만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있거든요. 그런 상태를 현장에서 솔직하게 발산하니까 오히려 다른 출연자들도 배우나 동료라기보다는 동 생, 형, 오빠로 편하게 봐주는 것 같아요.    

<응답하라 1997>부터 <노브레싱>, <고교처세왕> 모두 또래 친구가 많 이 출연한 작품인데, 주연인 당신을 질투하거나 안 좋게 보는 시선은 없 었나요?

제가 알기로는 없어요. 오히려 작품이나 연기에 대해 상담하는 경우가 종종 있죠. 그럼 ‘야, 나한테 상담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해요. 호불호가 갈리긴 해요. 저를 좋아하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이 있긴 있군요?

100명 중에 한 명 정도이긴 하지만요.   

자랑인가요?

자신감이 있는 건 맞아요.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딱히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는 게 스트레스예요. 저한테 차례가 돌아왔을 때 엄청나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면 식은땀이 나요.    

예능 프로그램인 <슈퍼스타 K>로 데뷔했지만 진짜 예능은 어려워하는 거군요.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기에 성별과 연령층을 막론하고 고르 게 잘 알려졌는데 불편한 점은 없나요?

저는 좋아요. 데뷔를 하고 나니까 행사나 TV 외에는 어르신들을 접할 통로가 없더라고요. 그런데도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으니 오히려 고마워요. 초등학생도 저를 알아보고 ‘서인국이다, 서인국’ 이런다니까요?   

그런 것도 좋고요?

재미있어요. ‘서인국이 뭐냐, 형이라고 불러’ 이러면 또 금방 ‘인국이 형’이라 부르면서 쫓아다녀요. 같이 좀 놀아주다가 이제 엄마에게 가라고 돌려보내죠. 

그래도 <나 혼자 산다>에는 고정으로 꽤 오래 출연했어요. 집이 예상 외로 지저분해서 화제가 됐죠. 요즘 방 상태는 어떤가요? 

깨끗해요. 그런데 원래도 그렇게 더럽진 않았어요. 카메라가 어디를 어떻게 촬영하느냐에 따라 달라 보이잖아요. 그때도 깨끗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말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고요.    

많이 억울했나 봐요. 

부모님이 방송 보고 너무 속상해하셔서요. 혼자 살긴 하지만 정말로 혼자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사는 것도 나름의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친구들을 불러서 노는 게 좋다가, 집을 꾸미는 데 관심이 생기기도 하죠.

저는 처음부터 혼자 있는 게 제일 재미있었어요. 고등학생 때까지 통금 시간이 있을 정도로 가풍이 엄격했기 때문에 대학에 입학해서 친구들과 자취할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혼자서 조용히 있는 게 좋아요. 텔레비전 소리도 조용하게 틀어놓을 정도예요.      

<응답하라 1997> 전에는 케이블 드라마가 크게 성공한 적이 없었어 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도전이었죠. 올해는 웹드라마 <어떤 안녕>에 출 연했는데, 어떤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던가요?

조금씩 작품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데, 제겐 내용이 재미있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내용이 재미있으면 하고 싶어져요. 물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오디션을 보지만 <어떤 안녕>은 외계인이라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어요. 아이디어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죠.    

외계인은 옆으로 걷는다는 설정처럼요?

헐에겐 지구의 모든 게 다 신기하잖아요. 인간이 우는 이유를 궁금해 하고, 귤도 먹는 거라고 하니까 껍질도 까지 않고 먹고요. 촬영 내내 신나서 했어요. 한 몸에 두 인격체가 있는 역할이었으니까 1인 2역이나 다름없기도 했죠.    

그리고 <고교처세왕>에서 1인 2역 연기를 본격적으로 보여줬어요. 곤경에 처한 엘리트 형 대신 회사에 본부장으로 출근한 고교생 민석, 그 리고 형인 형석 역할도 해야 했죠. 어렵진 않았나요?

저는 극복을 잘하는 편이에요. 원래 무릎이 아픈데, 어깨를 때리면 무릎 통증은 잠시 잊잖아요. 그런 식으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또 다른 좋은 일을 찾는 편인데 이번엔 어려웠어요. 민석이를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 했고, 후반부에 형석이가 나올 거라는 것도 분명히 알았는데 막상 하려니까 감이 안 잡히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본인만 걱정한 건 아니고요?

다들 걱정했어요. 초반부터 민석이와 형석이가 번갈아 나왔다면 덜 어색 했을 텐데 15화가 되어 형석이가 처음 나왔잖아요. 누가 봐도 똑같이 생겼고, 목소리도 톤만 다른데 시청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형석이 분량 첫 촬영을 마치고 감독님하고도 이야기했어요. 저 본방 못 보겠다고.    

그래도 결국엔 보긴 봤죠?

나중에 보긴 했는데, 힘들었어요. 그런데 저만 본방송을 못 본 게 아니라 감독님도 못 보셨대요. 편집할 때도 민석이가 갑자기 너무 멋있으니까 본인도 낯설었다고 하더라고요. 현장에서도 다들 저를 ‘민석아, 민석아’ 하고 불렀으니까요.  

하지만 보는 사람들은 어색하지 않았어요. 작품 자체가 코믹하기도 하고, 1인 2역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서인국의 또 다른 얼굴을 본 기분이었죠. 

어색하지 않았다면 다행이에요.    

이하나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극 중에서도 그렇고, 실제로도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연상이었는데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누나가 말을 놓고 편하게 대해줬어요. 연기를 할 때도 ‘난 잘 몰라요. 그런데 어떡해요. 지금 이게 내 기분인데’ 하는 식으로 솔직하게 밀어붙였죠. 첫 번째 키스 신에서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좋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느낌?  

그게 보는 사람한테는 정말 엄청나게 설레는 지점이었어요! 데뷔 때 부터 누나 팬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도 그래요. 제 신체구조가 누나들이 좋아하게 되어 있는 것 같아요.    

하하, 신체구조의 어떤 부분이요?

제가 옆으로 넓잖아요. 딴딴해 보여서 누나들이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어린 친구들은 모델처럼 길쭉한 스타일을 선호하더라고요. 저도 가끔 무대에서 아이돌 친구들 보면 깜짝깜짝 놀라요. 타고난 신체 특성상 저는 절대 그렇게 될 수가 없거든요.    

그런 것에 비해 누나들에게 본격적으로 어필할 만한 캐릭터는 <고교 처세왕>의 민석이 처음이에요. <아들녀석들>에서는 바람둥이 역할이었고, <응답하라 1997>의 윤윤제는 속 깊은 또래 남학생이었죠.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노래를 고를 때나, 연기를 할 때나 어떤 층을 공략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답은 대본에 있거든요. 저는 캐릭터인 거고요. 민석이는 연상녀뿐 아니라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죠. 강아지 같아요. 할아버지나 상사 누구하고든 친해질 수 있어요. 형을 대신해 회사에 출근했을 때도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하라는 사장의 말에 ‘지금 이 자리가 불편한데 일어나면 안 될까요?’라고 하잖아요.   

여주인공과의 호흡도 좋지만 사실 ‘남남케미’도 좋아요. 또래 남자 배우들과 있을 때도 자연스럽고, 아저씨들과도 잘 어울려요. <고교 처세왕>에서 민석이와 형석이의 비밀을 알고 도와주는 실장 역할의 조한철씨와 콤비도 인상적이었어요.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게 호흡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한테 현장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으면 배우들끼리 사이가 안 좋은 경우도 있다던데  제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극에서는 서로 욕하고 낄낄대는 사인 데 ‘컷’하는 순간 ‘그런데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묻는다면 어휴, 너무 어색하지 않아요?    

하지만 모든 사람과 다 친하게 지낼 수는 없잖아요. 

지금처럼 인터뷰를 할 때라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거리감은 이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너무 친하면 진지하게 인터뷰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연기를 할 때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연기할 때 외에는 서로 말도 안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불편해요.   

지난 5년 동안 누가 보더라도 차근차근 잘해왔어요. 모든 게 갓 데뷔했을 때와 똑같진 않죠?

방금 깨달은 건데, <사랑비> 할 때는 잘 나지 않던 수염이 지금은 잘 자라 거든요. 예전에는 일할 때를 제외하면 애 같고, 천진난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어른스러워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저 스스로도 그걸 느끼고요. 올해 스물여덟이거든요. 서른의 문턱에서 연륜이라는  게 조금은 생긴 것 아닐까 해요.   

그런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표면적으로 생각하던 일들에 대해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전에 비해 감정 변화가 쉽게 일어나지도 않고요. 남들이 볼 때는 여전히 어린 나이지만 너무 갑자기 이런 변화가 생겨서 신기해요. 지금의 제 상태가 좋아요.   

본인은 지금이 더 마음에 들어도 변했다고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제가 깊게 사귀는 친구는 별로 없어서 그런 말은 들어본 적 없네요. 친구들 성향도 비슷해요. 어떤 친구는 카톡으로 뭐 하냐고 물어 봐서 제가 ‘집에 있다’고 하면 저희 집에 와요. 그러면 각자 할 거 하다가 또 ‘나 간다’ 하고 슥 가는 식이에요.    

밖으로 좀 나가야겠는데요? 드라마도 마쳤겠다, 지금 여행을 다녀오 기에도 참 좋은 타이밍인데. 

그렇지 않아도 저를 좀 풍요롭게 만들어줄 만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혼자 여행을 하고 싶은데 어디가 좋은지 잘 몰라요. 제주도라도 다녀올까 싶기도 하고.    

다녀와요. 혼자 여행하는 것, 좋잖아요. 

어릴 때부터 탐험에 대한 열망은 있어요. 그런데 무서워요. 혼자 밥 해먹고, 넘어지고, 까지고 고생도 해보고 싶은데 걱정이 많아요.    

뭐가 그렇게 걱정인데요?

혼자 잘할 수 있을까? 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가다가 낭떠러지 같은 데 떨어질 수도 있고, 발목을 삐어서 걷지도 못할 수도 있는 것 아니에 요?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서 사람들한테 연락도 못할 수도 있고.    

장담해요. 제주도에서 그런 일은 없어요!

그러게요. 정말 가까운 산에 혼자 텐트라도 쳐봐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