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아이 전성시대
두툼한 블랙 아이라인과 뭉친 듯 마스카라를 바른 속눈썹, 덩어지리고 투박하게 블랙 아이섀도를 바른 눈매까지, 다시 빅 아이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원더우먼으로 분했던 린다 카터가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소녀들은 열광했다. 어쩌면 소년들이 더 열광했을지 모른다. 원더우먼은 6백만불의 사나이의 부인이라고 멋대로 생각해보기도 했다. 둘이 결혼하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슈퍼베이비가 탄생할 거라는 막연한 상상도 했다. 그때는 그녀의 메이크업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원래 눈이 호수처럼 크고 입술이 빨갛고 힘이 세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더우먼>의 분장팀은 린다 카터를 강인해 보이는 원더우먼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아이 메이크업에 가장 공을 들였다. 원래 큰 눈이지만 그걸로는 모자랐다. 블랙 아이라이너로 두꺼운 아이라인을 그리고 그 위에 또 짙은색 아이섀도를 덮었다. 마스카라는 가뜩이나 긴 그녀의 속눈썹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린다 카터의 ‘블랙 빅 아이(Black Big Eye)’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이 후의 작품에서도 그녀는 눈을 크게 강조하는 화장을 고수했다.
사실 빅 아이 메이크업의 전성시대는 <원더우먼>을 절찬리에 방영하던 1970년대보다 10년 앞선 60년대였다. 당시 빅 아이의 전성시대는 트위기가 열었다. 두툼한 블랙 아이라인은 눈매를 따라 밀착되었지만 인위적으로 올리지도 내리지도 않고 제자리에 멈춰 있다. 두께를 과장했으니 형태는 절제한 것이다. 그 위에 풍성한 속눈썹을 붙이고 마스카라로 짙게 강조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아래 속눈썹은 뭉친 듯 일정한 간격으로 인조 속눈썹을 붙인 점이다. 특히 마이클 오취스가 촬영한 트위기 사진을 볼 때마다 ‘1967년에 어떻게 이런 메이크업이 가능했을까, 현재 더 나아진 것은 무엇일까’라고 경외심이 들 정도다. 한편 트위기와 동시대의 인물인 에디 세즈윅의 블랙 빅 아이 메이크업은 두꺼운 아이라인과 눈썹, 짙은 속눈썹, 눈두덩을 거의 메운 스모키 섀도 등 못돼 보이려고 작정이라도 한 사람 같았다. 그러나 천박해 보이지 않았다. 천사 같은 눈망울 때문이었는지 거칠고 투박하게 그려서인지 그 모습이 패셔너블해 보였다. 이 빅 아이 메이크업이 많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는 이처럼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정신에서 찾을 수 있겠다. 당신이 이걸 굳이 펑크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지만 이제는 쿠튀르 컬렉션에서도, 클래식 룩과도 멋지게 어우러진다는 것만 기억하길. 빅 아이 메이크업의 핵심 덕목은 ‘정교하지 않음’이다. 따라서 뭉툭하고 거친, 규정 없는 아이라인을 만드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할리우드 스타 중 이 메이크업을 즐겨 하는 배우는 시에나 밀러다. 그녀는 눈매 주변을 블랙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 아이섀도로 강조하는데, 어떤 날은 눈 주변을 번지게 하고, 어떤 날은 위와 아래 아이라인을 비슷한 두께로 또렷하게 그린다. 또 어떤 날은 스모키 아이섀도를 눈두덩에 뒤덮고, 어떤 날은 눈 밑 애교살에 잔뜩 섀도를 칠해 울어서 번진 듯한 눈을 연출하는 창의성을 보이기도 한다.
60년대 룩과 뉴섹시가 어우러진 빅 아이는 아무래도 록 뮤직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블랙 사바스의 오지 오스본처럼 지나치게 아트적이거나 과장되어 보이는 블랙 빅 아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쇼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프랑수아 나스 역시 록의 정신을 표방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검은색 아이라인을 선명하고 강렬하게 눈 위와 아래에 그었다. “건전한 룩에 싫증 났어요!”라고 말하면서. 블랙 아이라인의 감각적인 무드는 마르코 드 빈센조와 안토니오 바카렐로 쇼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톰 페슈의 손에서도 발현되었다. 백스테이지에서 항상 독백하는 배우처럼 자신의 룩을 이야기꾼처럼 재미있게 들려주는 그는 에디터에게 이번 메이크업의 비밀을 들려주었다. “메이크업 피팅을 하는 날 아침에 치과 진료가 있었어요. 병원 의자에 누워서 속으로 ‘아, 맞다. 치실!’을 외쳤죠. 그래서 파우더로 눈두덩을 정돈하고 치실을 팽팽하게 감고 블랙 아이라이너 액을 묻혀 이 정밀한 라인들을 만들었어요.” 베르사체 쇼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는 속눈썹에 공을 들인 후 눈 가장자리가 번진 아이라인을 선보이며 글래머러스 스타일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아이섀도 활용법은 드리스 반 노튼 쇼에서 우수한 답안을 볼 수 있었다. “맥의 블랙 크로마케이크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아이섀도 브러시를 사용했어요. 아이 메이크업은 깔끔하고 각이 살아 있도록 눈꺼풀 위를 가로지르다 눈끝을 지나 뭉툭하게 끝냈죠.” 눈매가 둔해 보일 것 같지만 오히려 멋스럽다. 빅 아이의 마지막은 마스카라다. 절대 빠뜨리면 안 되는 필수 단계 라는 것을 기억할 것. “덩어리지고 투박하게 마스카라를 발랐을 뿐인데 매우 아름다운 메이크업이 완성됐어요. ‘메이크업은 이렇게 해야 된다, 이게 가장 아름다운 표현이다’라며 규정을 만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제 생각에는 그런 법은 어디에도 없어요.” 마르코 드 빈센조 쇼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테리 바버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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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뷰티 에디터 / 강미선
- 포토그래퍼
- LEE HO HYUN, INDIGITAL, kim tae sun, Gettyimages/Multibi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