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를 쓰고, 신용으로 대출받으면서 정작 신용등급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한번 무너지면 변심한 남자친구 마음 돌리는 것보다 힘들다는 신용등급에 대하여.

부끄럽지만 신용카드 대금을 연체한 적이 있다. 금액도 많지 않고 3년간 한 번도 연체한 적이 없기에 막연히 괜찮을 거라고 여겼지만 세상은 냉정했다. 대금결제일이 하루 지나자 카드가 당장 사용 중지됐고, 매일같이 카드사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카드사에서 문자와 전화를 하는 횟수가 늘어날 무렵, 문자의 내용도 점점 다양해졌다. 추가 지연료가 부과된다는 문자에 이어, 금융업체끼리 내 신용정보를 공유해 타사에서 발급받은 카드 사용도 제한받을 수 있다는 내용까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당장 해결했지만, 주거래은행에 가서 확인한 결과 2등급이었던 내 신용등급은 4등급과 5등급을 오가는 상태로 떨어져 있었다. 흔히 수입이 일정하고 연체가 없어 믿을 만하다고 평가받으면 1~2등급에 속하고, 1~2등급 진입 가능성이 있다면 3~4등급, 5~6등급부터는 은행을 비롯한 제1금융권 대출이 어려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마디로 나는 일주일 만에 듬직한 신용사회의 일원에서 ‘부실 가능성’이 있는 관리 대상이 된 것이다. 그나마 위안은, 한 번의 실수로 신용등급이 곤두박질한 이들이 나 빼고도 제법 많다는 사실이었다.
신용등급은 일상생활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우리가 신용등급에 무관심해지는 이유다. 자신의 신용등급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용등급이 1등급에서 10등급까지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방치한 신용등급은 ‘목돈’이 필요한 중요한 때에 뒤통수를 친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같은 신용카드를 발급받아도 신용등급에 따라 카드한도액이 크게 차이 나기도 하며, 금리 차이는 그보다 더 엄청나다. 신용평가사인 코리아크레딧뷰의 발표에 따르면 1등급의 평균 신용 대출 금리는 6.12%, 상환 기간은 2~3년인 반면, 3등급은 9.72%의 금리를 내야 하고, 위험등급에 속하는 10등급은 28.24%의 금리에 상환 기관도 3~6개월 정도로 짧다. 신용등급 관리는 자산 관리와도 직결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신용등급 평가는 누가 무슨 기준으로 하는 걸까? 신용등급을 정하는 건 금융위원회로부터 허가받은 신용조회회사나 금융회사들이다. 한국개인신용(KCB), 한국신용정보(NICE) 등 개인의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회사들의 평가기준은 부채수준 35%, 연체정보 25%, 신용형태 25%, 거래기간 15%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항목인 부채수준은 소득에 비해 부채가 지나치게 많지는 않은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때 ‘부채’에는 신용카드 대금도 포함된다. 리볼빙 서비스 등으로 카드사용액이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연체정보는 크게는 신용카드 사용과 신용대출, 작게는 현금서비스(단기카드대출)부터 핸드폰 요금, 교통카드 요금 등 ‘신용’을 기반으로 한 모든 거래에서 연체가 발생한 적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10만원 이상의 금액을 5일 이상 연체했을 경우, 향후 3년간은 이 기록이 남아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니 소액이라도 연체는 금물이다. 신용형태는 어떤 거래처와 신용거래를 했는지를 말한다. 즉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을 과다 이용했거나, 제3금융권을 이용했을 경우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TV 광고에서 흔히 접하는 대부업체, 카드론 등이 속하는 제3금융권은 단 한 번만 거래했다고 하더라도 신용등급이 6~ 7등급으로 곤두박질하니 멀리멀리 피할 것! 마지막으로 거래기간은 특정기간 동안 이루어진 대출과 연체 횟수로 평가한다. 이때 거래에는 현금서비스도 포함되며, 현금서비스로 빌린 돈은 연체 없이 갚더라도 신용등급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무너진 신용등급 다시 쌓기
최근 금융감독원에서 ‘신용등급관리 10계명’을 발표했다. 연체하지 말 것, 대출보증은 가급적 피할 것 등 상식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바뀐 연락처를 바로 금융회사에 통보하라는 것처럼 의아한 항목도 있다. 이는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칠 만한 일이 생길 경우, 금융사에서 먼저 이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뀐 연락처 때문에 연락을 못 받았다면 이는 철저히 나의 잘못이 된다. 오래된 연체 건부터 상환하라는 내용도 귀 기울일 만하다. 신용등급 평가는 일정 기간 동안의 연체 건수를 파악하므로, 오래된 기록부터 빨리 삭제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신용평가기관의 무료열람권을 활용하라는 항목도 눈에 띈다. 신용등급을 자주 확인하는 것이 신용등급을 낮춘다는 소문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카드발급, 대출상담 등으로 기관에서 신용조회를 ‘당할’ 경우에만 해당된다. 개인적으로 신용평가사이트에서 신용등급을 조회하거나 주거래은행에서 조회하는 일은 신용등급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 안심하길.
그렇다면 이미 떨어진 신용등급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히 경제관념이 또렷하지 않은 학생 때 연체한 학자금 대출금, 핸드폰 사용료와 교통카드 비용 등 소액을 자주 연체한 경험 때문에 이미 4~5등급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회초년생이라면, 빨리 신용등급 회복에 나서는 것이 좋다. 원칙은 단순하다. 신용등급 평가의 기본 원리인 ‘잘 빌리고 잘 갚기’를 충실히 이행하면 된다. ‘잘 빌리라’는 말은 낯설지만, 신용거래 내역을 기반으로 하는 신용등급 평가에서는 신용카드, 체크카드 등 신용거래 내역이 존재하지 않아도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나는 돈을 빌려줘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할부 거래를 일시불로 일찍 상환하거나, 적금으로 예적금담보대출을 받았다가 한두 달 이내에 갚아버리는 등, 빌린 돈을 일찍 갚는 것은 신용등급을 회복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부디 당신의 신용등급에 축복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