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같은 동네 식당 – 1
늘 지나던 골목에서 예쁜 가게를 발견하는 것은, 매일 만나던 친구의 새로운 장점을 찾은 것만큼 기쁜 일이다. 게다가 맛까지 훌륭하다면‘?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은 우리 동네의 그런 비밀 장소들.
갈현동 | 프롬별
지난봄, 포차와 고깃집으로 가득한 연신내 골목길에 잔잔한 사건이 생겼다. 카페 프롬별이 그 주인공이다. 문을 열자 웃으며 맞이해주는 남녀가 바로 프롬별의 주인. 곧 결혼할 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앳된 얼굴이다. 여자친구가 연신내에 사는 탓에 연신내역 주변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둘은 프랜차이즈 가게 일색인 이 거리에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남자는 요리사였고 여자친구는 커피와 푸드 스타일링을 공부했으니 ‘모든 메뉴가 맛있고 예쁜 카페’를 이곳에 함께 차리기로 결심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도산공원, 가로수길, 서래마을 등 서울 다이닝의 핵심 지역에서 일했던 남자는 파스타와 덮밥을 뚝딱 만들어내고, 라테, 프라페, 스무디, 요거트, 와인 등 풍부한 음료 리스트도 자랑이다.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하자 자기 자랑을 잘 못한다는 남자는 ‘제가 카페 음식을 할 정도의 실력은 된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수줍게 말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우리 집에서 연신내까지 지하철로 몇 정거장인지를 세어봤다. 멀지 않았다. 가격 오늘의 수프 4천5백원, 간장닭고기덮밥 7천5백원 영업시간 정오부터 새벽 2시까지 주소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 453-13 문의 070-8624-7883
은천동 | 야베
은천동은 낯설다. ‘신림역과 서울대입구역 사이에 있는 봉천역 근처’라는 설명을 들은 후에야 대략적인 위치가 그려지는 동네다. 일본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돌아온 야베의 이재훈 대표가 은천동에 일식집을 차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개척정신 때문이다. ‘뭐든 다 있는 뻔한 거리 말고, 낯선 곳에 가게를 내보자’는 마음 말이다. 처음에는 뭐 하는 곳인지를 물어보려고 가게문을 열던 손님도 많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낮에는 학생들이 든든한 한 끼 식사를 하러, 저녁에는 연인들과 회사원들이 술 한잔하러 오는 은천동의 보물로 단단히 자리 잡았다. 야베의 음식은 정통 일식을 최우선으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정통을 토대로 ‘맛있는 음식’을 차리는 것이 우선이다. 짬뽕은 입맛에 따라 맵게도 만들고, 채식주의자를 위해 기존 메뉴를 변형해 요리하기도 한다. 요리 고수의 자신감과 여유다. 오후 8시가 지나면 본격 이자카야로 변신하는 야베의 생맥주는 2천5백원이다.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있다면 동네 친구와 와서 밤새도록 밀린 수다를 떨 텐데. 가격 에비가츠동 6천원, 나가사키 짬뽕 7천원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주소 서울시 관악구 은천동 944-34 문의 02-871-9301
장안동 | 에스코피에
“딸들이 가게를 드나들며 아빠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랄 수 있길 바랐어요.” 8년 가까이 장안동 주민으로 살고 있는 장병동 셰프가 첫 오너셰프 레스토랑의 장소로 ‘동네’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다. 1990년 요리를 시작한 이래 국내 최고의 프렌치 셰프 중 하나로 꼽혀온 그지만 출퇴근의 피로, 일상과 격리된 파인다이닝 요리가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탄생한 에스코피에지만 갈 길이 녹록지만은 않다. 가격을 보고 ‘비싸다’며 나가는 손님도 있고, 메뉴판의 요리들을 낯설어하는 손님을 보며 스테이크와 파스타 같은 친근한 메뉴를 늘렸다. 그만의 요리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잠시 미루고 말이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주민들도 따라올 거라는 믿음이 아직은 더 크다. 촬영이 끝나가던 저녁, 분홍색 가방을 멘 딸이 가게에 들렀고 셰프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퍼졌다. 그래, 행복한 사람이 만드는 음식은 언제나 맛있는 법이다. 가격 토마토소스 스파게티 1만1천원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381-1 문의 02-2217-7112
망원동 | 정광수의 돈까스가게
마포구청역 6번 출구로 나오면 어디에선가부터 솔솔 피어나오는 돈까스 냄새를 만나게 된다. 냄새의 진원지는 바로 정광수의 돈까스가게. 두툼한 돈까스와 생선까스만으로 망원동 주민들의 입맛을 수년째 사로잡고 있는 곳이다. 테이블 네 개의 동네의 작은 돈까스 가게가 식사 시간이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붐비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정광수 대표의 신념 때문이다. 예전에는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손님과 싸우기도 하고 여러 번 가게를 ‘말아먹기도’ 했다던 그는 ‘사람이 먹을 것만 넣자’는 마음으로 요리한다. 트랜스지방을 아주 없애지는 못하지만 대신 식용유를 자주 갈고, 쇼트닝은 사용하지 않는다. 번거롭지만 화학 조미료와 캔 제품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피클과 깍두기, 반찬인 고추절임은 직접 담그고 돈까스 소스도 매일 새로 만든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있던 이후로 ‘혹시’하는 마음에 미국에서 수입한 조미료와 시즈닝, 소스의 사용도 멈췄다. 정광수의 돈까스가게는 최근 가게를 옮겼다. 다행히 망원동을 떠나지는 않았다. 반지하에 테이블 네 개가 전부였던 예전 가게와 달리 새로 이사한 곳은 테이블 여덟 개에 통유리창으로 된 1층 건물이다. 혼자 식사를 하던 단골 손님들이 통유리창 때문에 맘껏 식사를 못할까봐 걱정된다는 그를 보니 이 작은 가게를 망원동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격 왕돈까스 8천원 영업시간 정오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주소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71-9 문의 02-336-8919
문래동 | 솜씨
‘문익점이 처음 솜의 씨를 심은 곳’인 문래동의 지역적 어원과 작가들의 솜씨를 보이겠다는 두 가지 뜻을 가진 솜씨는 예술가와 문래동을 찾는 이들 간의 원활한 소통을 꿈꾸는 열린 공간이다. 텅 빈 철공소 2층 공간에 예술가들이 하나둘 작업실을 꾸리고 서울시에서 문래예술공장을 지정한 것이 어느덧 2년, 문래동을 작업의 터전으로 삼은 아티스트의 수는 200명이 넘는다. 전시와 공연, 영화 상영회 등 수준 높은 행사가 문래동을 터전으로 끊임없이 열리는 것은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아름다운 골목, 수십 년 된 오래된 건물들이 건재한 문래동을 아끼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전시를 바꾸며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는 솜씨는 문래동이 조금 더 알려지길 바란다. 아직은 갤러리카페라고는 이곳 하나뿐인 문래동에 ‘부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도 음식점이 곧 문을 열 거라는 동네의 비밀도 알려줬다. 가격 글라스와인 5천원, 미숫가루 3천5백원, 1천5백원 추가 시 토스트와 잼, 버터 추가 영업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소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358-15 문의 02-2637-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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