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없이 떠나는 길이 더 소중한 여행임을 이야기하는 책들.

여행이 멀리 떠나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4권의 책.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사는 동네로, 가까운 도시로 여권 없이 떠나는 길이 가장 소중한 여행이 되니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구석구석 다른 도시가 있는 줄, 어른이 된 후에야 알았다. 그전에는 비슷비슷한 여름 휴가지, 비슷비슷한 수학여행 코스만 다녔다. 하지만 제천도, 전주도, 증도도, 군산도 좋았다.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풍경들이 내 마음에 켜켜이 쌓여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여행>에는 우리나라 곳곳으로 떠나는 1박 2일 여행이 있다. 10년간 건축 답사 여행을 하며 축적된 전국 여행 노하우를 책으로 펴낸 저자 이상헌. 모든 여행은 주관적이지만, 언제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1차적 고민을 대신해준다. 여행지마다 지도 위 지점과 경로를 표시해준 지도 ‘Journey Map’을 넣었는데, 직접 운전하며 여행하는 여행자에게는 이보다 더 편리한 지도는 없을 것 같다. 강릉이나 정동진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부터 고성, 평창, 도고, 부여, 봉화, 충주까지 그의 손으로 다시 썼다. 차 없이도 좋은, 기차로 떠나는 여행은 어떤가? <내일로 비밀코스 여행>은 청춘을 위한 기차 여행을 제안한다. 기차로 못 갈 곳이 없었다.
제주는 요즘 부쩍 더 많이 부르게 되는 이름이다. <섬데이 제주>에는 제주에서 발견한 열세 곳의 카페가 있다. 이 카페를 돌다 보면 제주를 한 바퀴 돌게 되고, 카페가 안고 있는 제주의 멋과 풍광을 알게 된다. 그곳, 귤꽃, 모살, 하도, 공작소, 왓집, 두봄…. 이름도 예쁜 카페들을 마치 잡지처럼 담아냈다. ‘잡지처럼’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이 책은 카페 주인에게 제주에서의 삶을 인터뷰하고, 카페를 순례하며, 시인에게 비자나무 숲에 대한 글을 청탁하고, 또 시를 읽고, 제주를 관통하는 키워드 37개를 골라내며 스스로 ‘취재 뒷이야기’도 쓴다. 제주에 바치는 한 권의 잡지다. 흥미로운 건, 이 책만큼 정직하게 제주의 낯을 밝히는 책도 없다는 것이다. 제주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책으로 이어진다. <여행하듯 랄랄라>의 제목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홍대 앞에서 빈티지 가게 ‘앳코너’를 열었던 황의정은 이제 남편과 강아지 두식이와 함께 제주에 산다. 그녀가 마음을 주고 머물렀던 유럽과 홍대,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빈티지 수집가이기도 한 그녀에게는 한 물건이 가진 역사처럼 많은 추억이 있고, 그 따스한 추억을 기꺼이 나눠준다. 워낙 안목이 좋다 보니, 그들의 살림과 세간을 훔쳐보는 재미도 있다. 그 추억의 결은 콧노래를 부르는 여행과 닮아 있다.
제주도는 물론, 가까운 인천 앞바다에 갈 여유가 없어도 걱정 말길. <서울 재발견>은 우리가 사는 서울이야말로 여행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추천사를 써준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는 “내 나라가 가진 개성을 인식하고,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살고 있는 이곳을 풍요롭게 해주는 자산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고 추천의 말을 마무리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태어난 서울이라지만, 몇몇 동네를 빼면 아는 게 없었다. 곳곳에 숨어 있는 예술가의 집을 간 적도, 북촌에서 오후만 있는 토요일을 보낸 적도 없었다. 궁궐 구경은 늘 미뤘다. 이 책을 보면 서울이라는 매력적인 도시가 다시 한 번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내가 아는 서울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내가 모르는 서울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으로 조급해진다. 비가 오거나, 쨍쨍하거나, 낮이나 밤이나 참 괜찮은 도시, 서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