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국의 남자들이 각자의 나라와 삶의 경험에 대해 맘껏 떠드는 프로그램을 보게 될 줄이야! 달라도 너무 다른 매력을 가진 <비정상회담>의 네 남자 로빈과 타일러, 다니엘, 그리고 장위안을 만났다.

슈트와 셔츠는 모두 스튜디오 K(Studio K). 스니커즈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Adidas Originals). 타이핀은 S.T 듀퐁(S.T Dupont). 시계는 오메가(Om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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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데이아나 | 프랑스
출연자들끼리 서로를 평가하며 독설과 칭찬이 오갔던 2화에서유일하게 로빈만이 모든 출연자가 ‘좋다’며 웃었다. 물론 우리도 모두 로빈을 좋아한다.

“<연애편지>나 <엑스맨>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봤어요.” 로빈의 입에서 추억의 예능 프로그램 제목이 튀어나왔다. “한국인 친구가 많았거든요.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봐서 한국 사람들은 웃음이 엄청나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죠.” 미안하지만 무표정하기로 소문난 게 한국 사람들이다. “막상 와보니 오히려 무뚝뚝한 편이더라고요. 특히 아주머니, 아저씨들이요!”예능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접했던 로빈은 어느덧 한국 생활 3년차다. 서울에 대한 로빈의 첫인상은 식당이 많다는 것. 집에서 요리를 해서 먹는 것이 일상인 파리에서는 드문 풍경이다.
“한국 사람들은 쇼핑이나 외식에 지출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는 대부분의 커플이 동거를 하기 때문에 집에서 주로 밥을 해 먹거든요.” 물론 장점도 있다. “같이 밖에서 밥을 먹다 보니 금세 사람들과 정이 들었어요.” 한국식 ‘밥 정’의 위력이다.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을 찾아다니는 한국의 데이트 방식이 로빈에게는 낯설지 않았을까? 혹시 데이트 비용 때문에 고민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정말 슬픈 이야기인데, 돈이 없어서 오랫동안 여자친구를 못 사귀었어요.” 눈앞의 그를 보면 믿기 힘든 답변이다. 예상보다 더 큰 키, 떡 벌어진 어깨, 엄청나게 긴 속눈썹에 부드러운 말투까지. 실제로 본 로빈은 화면으로 보던 것보다 다섯 배는 멋졌다. 그런 그에게 기꺼이 밥을 사주는 여자가 없었을 리가! “그래도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와 있을 때면 자기가 돈을 내고 싶어 해요. 더치페이? 친구 사이에서는 좋죠. 그래도 여자친구한테는 다 사주고 싶은데 그럴 형편이 안 되니까 아예 만나는 걸 포기한 거죠.”
비보이로 활약했고,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트로트 엑스>에도 출연한 로빈은 한국의 클럽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부킹하는 걸 보고 정말 충격받았어요. 여자 손목을 잡고 여기저기 끌고 다니다니, 프랑스에서는 진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아니, 애초에 여자가 따라가지도 않을 걸요?”
‘프랑스 남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다. 다정다감하고, 논쟁이나 의견을 피력하는 데 능숙할 것이라는 것. <비정상회담>에서 ‘미소’를 담당하고 있는 로빈은 확실히 전자 쪽이다. “한국에 와서 ‘아,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은 이렇다고 생각하는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저 역시 장난기가 심하긴 하지만 부드럽고 다정한, 프랑스 남자다운 면이 있죠.” 그리고 덧붙인다. “그런데 사실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이탈리아 사람이에요.”
에디터 | 이마루

재킷은 일레븐티 (Eleventy). 셔츠는 우영미(Wooyoungmi). 팬츠는 구찌(Gucci). 모자는 카오리(Kaori). 안경은 그라픽 플라스틱 X 옐로우 비(Grafik Plastic X Yellow Bee).

재킷은 일레븐티 (Eleventy). 셔츠는 우영미(Wooyoungmi). 팬츠는 구찌(Gucci). 모자는 카오리(Kaori). 안경은 그라픽 플라스틱 X 옐로우 비(Grafik Plastic X Yellow Bee).

타일러 라쉬 | 미국
확실히 타일러는 우리가 방송에서 본 적 없는 ‘엘리트’다. 해맑음과 지성미, 두 가지를 갖춘 그의 매력을 설명하는 데에 그의 학벌과 경력은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와, 여기에서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감개무량했어요!” 처음부터 ‘빵’ 터졌다. 한국의 첫인상이 어땠냐는 질문의 답변으로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할 때의 소감을 들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자신과 가장 닮은 동물로 ‘책벌레’라고 답하기도 했던 타일러가 학구파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드 <빅뱅이론>의 셸든과는 전혀 다른, 쾌활한 학자이긴 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외국인’은 미국인이다. 하지만 타일러는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에 사는 미국인하고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본인도 그 사실을 안다. “한국의 미국인은 주한미군이나 영어강사가 대부분이죠. 그리고 그들이 미국 사회의 특정 계층에 속한 건 사실이에요.” 타일러의 말에 따르면 미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데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해다. “프랑스에서 농담으로 한 가지 언어밖에 못하는 사람을 ‘미국 사람’이라고 해요. 그런데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거든요. 가정에서 두 가지 언어를 쓰는 비율이 40%가 넘어요. 저와 제 친구끼리 만나도 한글로 대화하죠.” 속담과 사자성어, 그리고 학술적인 언어까지 능숙하게 구사하는 타일러는 서울에 거주하는 해외 유학생들과 함께 국제학생잡지 <서울리즘>도 펴내고 있다. “한국 교수님들은 말을 툭툭 던지는 편이잖아요. 말레이시아나 중국에서 유학 온 친구들이 ‘이거 인종차별 아니냐’고 할 때도 있어요. 함께 경험을 나누다 보면 그게 차별이 아니라 한국 사람의 특성이라는 걸 알게 돼죠.”
방송에서도 한국의 ‘남녀칠세부동석’을 언급한 적 있는 타일러의 눈에는 남녀 구분이 또렷한 한국의 풍경이 신기하다. 교내나 모임에서 남자와 여자 그룹이 나뉘어 다니는 게 마치 60년대 미국 고등학교 풍경을 그린 영화 <그리스> 같다고. 과“ 점퍼라니! 미국에서는 60년대 고등학생 미식축구 선수가 데이트할 때 여자친구 어깨에 걸쳐주던 옷이에요.” 한국에 온 지 3년이 된 타일러는 서울 지리에도 밝다. 데이트를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대학로 낙산공원, 경복궁 돌담길과 삼청동 등 제법 훌륭한 데이트 코스들이 튀어나온다. “한국에서도 저렴하게 데이트를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계획을 잘 세워야 하니까 사람들이 그냥 좋은 곳에서 밥을 먹거나 여행 가서 돈을 쓰는 편을 택하는 것 같아요.” 하긴, 부모님께도 애써 선물을 고르는 것보다 용돈을 드리는 게 더 편하긴 하다.
무엇이든 활짝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타일러도 한국 생활에서의 벽을 느낀다. “결국에는 저를 ‘백인남자’라고 선을 긋죠. ‘타일러, 넌 미국 사람이잖아’ 이런 말을 듣는데, 오히려 말은 더 서툴어도 제가 재미교포였다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큼지막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타일러는 계속 말했다. “어때요? 이렇게 얼굴이 안 보이면 조금 다르게 생각할 것 같지 않아요?”
에디터 | 이마루

수트는 우영미, 머플러는 보기 밀라노(Boggi Milano). 슈즈는 리커(Liquor).

수트는 우영미, 머플러는 보기 밀라노(Boggi Milano). 슈즈는 리커(Liquor).

다니엘 스눅스 | 호주
지루한 표현이지만, 다니엘은 순정만화에서 막 빠져나온 것처럼 생겼다. 하지만 단호하고 명쾌한 답변에서는 ‘ 상남자’ 냄새가 물씬 풍긴다. “살아 있네”가 이렇게 근사하게 들릴 줄이야!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에 고작 스무 살이던 다니엘이 한국에 온 건, 여자친구를 따라서였으니까. “호주에서 만났어요. 여자친구 고향이 부산이라 처음에는 부산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죠. 지금요? 지금은 헤어졌어요.” 멜버른 외곽의 작은 동네에서 살았던 만큼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물론 한국에서 모델이 되고 TV에도 나오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제 미래를 봤다면 문신을 손등에까지는 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목부터 시작해 손까지 이어지는 문신은 다니엘의 트레이드마크다. “한국은 문신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호주 사람들은 외적인 면에 편견을 갖지 않아서인지, 문신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않거든요.” <비정상회담>의 공식 ‘유생’인 터키의 에네스와 가장 반대 지점에 있는 출연자는 아마도 다니엘일 거다. 다니엘은 자신이 호주 대표로 뽑힌 이유가 생각이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호주는 영국에서 비롯한 나라잖아요. 여러 국가 사람들이 정착한 다문화국가이기 때문에 생각이 자유롭고, 서로를 존중하는 게 호주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죠.”
지금은 경리단길과 한남동, 가로수길이 친숙한 서울 주민이 된 다니엘. 그래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들었던 부산 사투리가 여전히 재미있다. “형들이 ‘까리하네’, ‘살아 있네’ 이러면 진짜 웃겨요.” 사투리보다는 유행어에 가까운 말이지만 ‘다니엘, 쫌 하는데’하고 형들 말투를 따라할 때의 눈빛이 딱 그 나이처럼 천진했다. ‘오픈 마인드’인 다니엘에게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게 있었을까? “성형수술이요. 이런 말을 하면 너는 문신도 많으면서 왜 그러냐고 해요. 그런데 성형수술이랑 문신은 전혀 달라요. 문신은 한 뒤에도 가족과 닮은 제 얼굴과 몸은 남아 있죠. 하지만 성형수술을 하면 가족이 아닌, 같이 수술 받은 사람들과 닮게 되는 걸요!”
한국인 여자친구를 사귀었지만 ‘오직 사랑’을 외치는 한국 노래와 드라마도 다니엘에에겐 이해하기 힘든 것 중 하나다. “호주에서는 사랑이나 연애가 엄청나게 중요한 주제는 아니거든요. 진지하게 연애를 하는 건 좋지만 너무 지나치면 그건 좀….” 소위 ‘호소력 짙고 애절하다’는 몇몇 노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랑 때문에 모든 걸 희생하고, 때로는 같이 죽는 게 당연한 몇몇 드라마도!
방송에서 밝혔듯이 다니엘은 열다섯 살에 부모님 집을 떠났다. “호주에서 저는 외모나, 성격이나 정말 평범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난다는 게 고마워요. 일할 수 있는 한 한국에 계속 있을 수 있겠죠. 지금 생활이 마음에 들거든요.” 그를 앞으로 오래 보고 싶은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에디터 | 이마루

슈트와 셔츠는 모두 권오수클래식 (Kwonohsoo Classic). 스니커즈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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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안 | 중국
시종일관 점잖다. 무게 잡는 걸 좋아해서일까? 아니다. 장위안을 한 번이라도 만났다면, 그의 진중함 뒤에 감춰진 수줍음을 금세 눈치 챌 것이다. 수줍은 미소의 장위안이 말을 이어갔다.

가까운 듯 가깝지 않은 나라. 모두 알다시피 장위안은 그 커다란 대륙, ‘14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 왔다. 북경TV의 아나운서로 활동한 그가 몇 년 전 처음 한국에 온 이유는 ‘너무 힘들어서’였다고. 같은 방송인인 전현무와 금세 공감대를 형성할정도로 바쁜 스케줄이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잠시 어학당에 다녀보았는데 한국의 모든 것이 좋았다. “지금은 신림동에 살지만, 처음에는 연세대 근처 고시원에 살았어요. 한국이 중국보다 훨씬 편해요. 특히 한국인과 성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 단어는 ‘ 정’이에요.” 그는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명동에서 쇼핑만 하지 말고 전주, 안동을 여행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저는 전라도가 진짜 좋아요. 한국 문화를 많이 느낄 수 있고, 탈춤과 사물놀이를 직접 해봤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주말을 제외하면 매일 오전 중국어 강의를 맡고 있는 ‘장위안 선생님’. 방송 후 학생은 많이 늘었을까? 안타깝게도 그의 수업은 ‘고급 중국어’라 호기심만으로는 참여할 수 없는 수업이라고 한다. “학원에서 매일 오전에 3시간 정도 강의를 해요. 오후에는 라디오도 있고, 성우로 더빙 활동을 하고 있어요. 요즘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고 밤 11시쯤 집에 가요. 또 일요일에 <비정상회담> 촬영을 하니까 쉬는 날이 없죠.” 알고 보면 바쁜 남자 장위안. 바쁘게 일하는 만큼 저축도 많이 하냐고 물었다. “중국 사람들은 체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서 항상 제가 쏘거든요. 정말 큰 고민이에요.”
중국과 일본의 냉랭한 기류에 따른 장위안과 일본 비정상 대표 타쿠야와의 설전은 아슬아슬하면서도, 비슷한 역사를 가진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원래 타쿠야가 술을 잘 안 마셔요. 그런데 그 녹화날에는 저랑 술을 정말 많이 마셨어요. 오히려 서로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됐죠.” 두 사람의 에피소드는<비정상회담>이 각자의 문화 차이를 즐겁게 떠드는 자리만은 아니며, 각국의 미묘한 정치, 경제, 사회적 위치가 국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제 역사 발언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예요. 저도 댓글을 봤어요. 하지만 다양한 반응이 있는 이게 ‘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장위안은, 하고 싶은 말은 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생각하는 말밖에 하지 못하고, 진짜 마음먹은 말은 해야 하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서로의 의견을 더 강하게 말할 수 있는 심각한 주제를 생각하고 있어요. 무엇이든 한국과 중국 사이의 편견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항상 진지한 말을 하는 게 이런 이유에서예요.”
“저는 이영자처럼 매력 있는 사람을 좋아해요. 정말 끝까지 가려면 마음만 봐야 해요. 대신 마음을 보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요즘 연애를 못하고 있어요.” 계속 한국 여자의 부드럽고 배려심 많은 성격을 칭찬하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중국에 ‘행복 중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행복한 줄 모른다’는 말이 있어요. 한국 남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죠.”
에디터 | 허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