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라는 배우를 다 안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그는 예상한 대로 완벽하게 착한 남자였지만, 착한 남자는 그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에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스위터는 질 스튜어트(Jill Stuart).

스위터는 질 스튜어트(Jill Stuart).

본의 아니게 자꾸 못된 표정을 지어달라 했네요.
아, 저도 그런 표정을 짓고 싶은데, 정말 쉽지가 않아요. 제가 연기도 그렇고 촬영도 그렇고 그런 콘셉트로는 잘 안 해봐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촬영 중에 모니터의 본인 사진을 절대 안 보더라고요.
제 사진을 못 보겠어요. 민망하고 부끄러워요. 보면 자신감이 더 떨어질것 같아서 일부러 안 봤어요.

잘 나온 사진 많은데, 가기 전에 좀 보고 가요.
아니에요. 저는 책으로 볼게요.

요즘 한창 드라마 <결혼의 여신> 촬영하느라 바쁘죠?
네. 이제 결말을 향해 가고 있어요. 대본이 밀리지 않고 잘 나와서 순조롭게 촬영하고 있어요. 시청률은 잘 나오지도, 못 나오지도 않는 수준이고요.

<결혼의 여신>의 김현우는 어떤 점에서 끌렸나요?
작가님이 <사랑을 믿어요> 때 함께한 조정선 작가님이에요. 어느 날 연락이 와서 저를 생각하며 김현우라는 캐릭터를 썼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큰 그림만 있었고 세부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은 상태였는데, 저를생각하고 작품을 쓰신 작가님이 고마워서라도 고민의 여지가 없었어요.

<사랑을 믿어요>에서 짝 있는 여자를 좋아하더니 또 그렇게 되었네요. 누군가 당신을 떠올리며 쓴 캐릭터인 만큼 김현우라는 인물은 당신과 많이 닮았나요?
어느 정도 닮은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어요. 어느 때는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저도 현우가 답답할 때도 있어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요.

현우는 운명처럼 다가온 여자, 지혜를 떠나보냈어요. 현실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저도 아마 현우처럼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드라마에서는 ‘모든 걸 버리고 둘이 도망가자’라는 시나리오가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쉽지 않잖아요. 저 역시 떠나보내고 후회했을 것 같아요.

니트는 제라르 다릴(Gerard Darel), 팬츠는 솔리드옴므(Solid Homme), 스니커즈는 뷰테로(Buttero).

니트는 제라르 다릴(Gerard Darel), 팬츠는 솔리드옴므(Solid Homme), 스니커즈는 뷰테로(Buttero).

이번 드라마도 그렇고 노출 신이 꼭 하나씩 있어요.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수영을 했던 것 같아요. 일명 ‘드라마 수영’이라고, 제가 드라마 찍으면서 수영을 배웠어요.

작가들이 당신을 보면 벗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나 봐요.
벗는 장면을 격주로 찍기도 했어요. 샤워, 수영장, 러닝을 번갈아가면서.

<결혼의 여신>에서도 수영하는 장면이 꽤 오래 나왔어요.
수영을 잘하는 것처럼 나왔는데 사실 잘 못해요. 수영하면서 호흡을 할 줄 몰라요. 머리를 들고 하는 일명 ‘개헤엄’은 하는데, 머리를 물에 넣으면 몸이 가라앉아요. 그래서 저의 수영장 신은 무엇보다 편집이 중요해요. 이번에도 편집을 잘해주셔서 수영을 엄청 잘하는 사람처럼 나왔어요. 현장에 있는 배우들, 스태프들은 웃고 난리가 났었죠.

아무래도 노출 신이 있을 때는 부담이 되죠?
사실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아요. 제가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 먹고 싶은 것들을 먹기 위해 운동을 하는 거예요. 평소에는 헬스 정도만 하는데, 노출 신이 있으면 며칠 전부터 식단 조절과 운동을 병행해요. 그래야 잔근육이 나오거든요.

바르고 건실한 역할을 많이 했어요. 실제로도 참 좋은 사람일 것 같고요. 정말 그런가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정직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끔은 바르고 건실한 자신을 깨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일부러 그러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술을 마시면 좀 다른 사람이 되곤 해요. 회식을 하면 다른 배우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재미있게 놀아요. 사람들이 친해졌다 생각하고 다음 날 말을 걸면 다시 깍듯하게 인사를 해요. 자주 가는 노래방에도 친한 웨이터가 있는데 들어갈 때는 항상 정중하게 인사하고 나올 때는 ‘야’ 하고 등짝을 때려요. 그게 반복되니까 그도 정말 당황스러울 거예요. 술을 먹으면 이상하게 자신감이 생기고 말도 편하게 하게 되고 목소리도 커지고 그래요. 그런 제 모습이 재미있는지 사람들이 저에게 빨리 술을 마시라고 강요하기도 하죠.

어떻게 변하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문제는 다음 날 얼핏 다 기억이 난다는 거예요. 그럼 너무 괴로워요.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머리를 쥐어뜯어요. 그래서 술자리를 좀 줄이려고 해요. 다음 날 몸도 무겁고 운동도 더 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실수하지 않았나 걱정도 해야 하고 많은 대가가 따르니까요. 한 번 술자리가 있을 때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셔츠는 H&M, 팬츠는 알레그리(Allegri).

셔츠는 H&M, 팬츠는 알레그리(Allegri).

자주 술자리를 갖는 멤버가 있나요?
송창의 형, 이상윤과 친하게 지내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함께하며 친해졌는데 다 말수가 적어요. 그나마 창의 형이 말이 많고, 상윤이는 저보다 더 말이 없어요. 제가 369게임을 좋아하는데 다행히 그들도 좋아해서 자주 하는 편이에요. 한번은 3명이서 3백 넘게 간 적도 있어요. 구멍이 한 명 있으면 도달하기 힘든 숫자인데 다들 좀 잘해요. 하하.

오늘도 취중 촬영이었다면 더 자신 있는 표정이 나왔을까요?
사실 예전에 그렇게 한 적이 있어요. 자신만만하게 평소에 안 하던 표정도 짓고, 포즈도 과감하게 취했는데 결과물이 영 아니더라고요. 그냥 혼자 신났던 거죠. 그 이후부터는 절대 취중 촬영을 하지 않아요.

활동 기간에 비해 인터뷰나 화보 촬영 횟수가 극히 드물어요. 이런 시간이 불편한가요?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특히 활동 초반에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크게 할 말도 없었어요. 작품을 할 때는 최대한 작품에 집중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시간이 저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단지 이런 촬영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나 어떤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편이죠?
네. 그런 것 같아요. 생각이 많은 편이고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편이에요. 뭔가 하나 시작하면 잘하는데, 처음 어떤 일에 도전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리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겠어요.
혼자 오래 살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한 건 사실이에요. 집에 있을 때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고, 보통 집안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거든요. 어머니가 청소를 하러 오시려 하면 못 오시게 해요. 연세도 있고 힘드신데 저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서요.

부모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시도록 두는 것이 효도라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저도 그걸 깨닫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예전보다 자주 제 집에 오세요. 제가 부모님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한테 배려를 많이 하는 편인데 사람들이 그걸 정말 불편하게 여기고 오해할 때가 있더라고요. 군대에 있을 때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면회를 오지 말라고 했어요. 괜히 그녀가 왔다 갔다 하면서 힘들까 봐요. 여자친구를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건데 그걸 정말 서운해하더라고요. 그런 에피소드가 꽤 많아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배려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스웨터는 알레그리, 재킷과 팬츠는 꼬르넬리아니(Corneliani), 슈즈는 체사레 파치오티(Cesare Paciotti).

스웨터는 알레그리, 재킷과 팬츠는 꼬르넬리아니(Corneliani), 슈즈는 체사레 파치오티(Cesare Paciotti).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모으거나 집착하는 대상이 있나요?
어릴 때 손과 목에 금을 두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자잘하게 모은 금을 합쳐서 두꺼운 금목걸이를 하고 다닌 적도 있고요. 그러다 돈이 필요해서 그걸 팔았고, 그렇게 그 일을 잊고 있었는데 데뷔 초에 그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한 적이 있나 봐요. 언젠가부터 팬들이 금으로 된 모형을 보내주더라고요. 그 오래된 기사를 읽은 거죠. 한 번은 고래밥과 새우깡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게 또 박스로 계속 들어와요. 그래서 그 이후에는 이런 질문에 대답을 못하겠어요.

여전히 배려하고 있네요. 팬은 배우를 닮는다고 하잖아요. 얼마 전 상우 씨 팬들이 형편이 어려운 아이의 수술비를 지원했다고 들었어요.
제 생일 때 팬들이 돈을 모아서 뭔가를 사주겠다고 팸플릿을 보냈더라고요. 맘에 드는 걸로 고르라고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걸 고를 수 있겠어요. 거절했더니 더 큰 돈을 모아 제 이름으로 한 아이의 수술비를 지원했어요. 정말 큰 감동을 받았죠.

배우로서는 어떤 과제가 남아 있나요?
예전에는 어디 나서는 것이 힘들어서 심지어 시상식에서 상을 준다고 해도 반갑지 않았어요. 짧게 말하고 내려오기 바빴죠. 하지만 그런 저를 깨려고 노력했고, 이제 많이 편안해졌어요. 팬들에게도 계속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팬레터를 빠짐없이 읽는 편인데, 그런 내용이 많아요. 처음 데뷔했을 때보다 연기도 좋아지고 성격도 밝아지는 것 같아 기쁘다고요. 자신도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고 하는데 그런 저의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는다고 말이에요. 그런 게 정말 큰 힘이 되요. 저와 팬들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이 일을 하길 잘했다, 정말 감사하며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작곡 ‘상어송’을 부를 때 반전이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속 당신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니까요.
어항이 생겼는데 거기에 뭔가를 키우고 싶은 거예요. 철갑상어 두 마리와 가재 세 마리를 사 와서 3년을 키웠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죽었어요. 그걸 보고 있는데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요. 마침 어항 옆에 기타가 있어서 상어의 죽음에 대해 노래를 만들었어요. 일부러 어떻게 해봐야지 하는 의도가 아니라 그 상황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예요. 상어와 가재를 키워보니 자라지도 않고 알을 낳지도 않고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사람들이 왜 안 키우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금붕어와 잉어를 키우고 있어요. 뭔가 다른 사람들이 다 하고 좋아하는 건 피하는 편인데, 이런 식으로 둘러와서 결국 그걸 하는 편이에요.

지난해에 비해 기타 실력이 그렇게 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독학으로 기타를 꾸준히 치고 있는데 한 곡도 끝까지 칠 수 있는 곡이 없어요. 항상 두세 개의 어려운 코드가 있는데 그 부분을 완성하지 못해 미완인 채로 남아 있는 거죠. 하지만 직접 노래를 만들면 제가 아는 코드로만 만드니 한 곡을 완성할 수 있잖아요. 그 재미에 계속 작곡을 하게 돼요. ‘상어송’ 다음에 만든 곡이 ‘붕어송’이에요.

배우가 아닌, 서른넷의 남자로서는 어떤 고민을 하나요?
요즘 들어 아기들이 무척 예쁘더라고요. 친구들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왠지 그런 시기가 가까워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예전에 비해서 좀 더 그렇다는 거지, 당장의 일이라는 건 아니에요.

어떤 10월을 기대하고 있나요?
10월에 드라마가 끝나요. 이제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해와서 이번에는 좀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혼자서 훌쩍 여행도 떠나려고요. 저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런 10월이 되었으면 해요. 제가 가을을 제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더 기다려져요.